소설리스트

피바라기-41화 (41/223)

< --  1-4. 다시 안개 속으로...  -- >

꽤나 지친 탓에 능력자라는 사람들의 피해가 점점 커질 무렵, 민용모가 크왕하고 포효했어. 어찌나 사납게 울어 재끼던지 같은 편인걸 알면서도 다리가 후들거릴 지경이었다니까. 덕분에 주변에서 깔짝거리던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던 이무기가 놀라서 공격을 멈출 정도였어. 가뜩이나 거대했던 민용모가 더욱 거대해졌어. 쑥쑥 키가 자라더니 나중에는 거의 5m터는 될 것 같았다니까. 그리고 반 늑대 반 인간 이런 모습이 아니라 좀 더 늑대에 가까워진 모습이었는데 이빨하고 발톱도 어마어마했지.

그런 민용모가 이무기를 향해 달려들었어. 이제까지보다 훨씬 더 흉폭한 기세였던지라 그 괴물도 가볍게 보지 못했는지 꽤나 사납게 마주 들이받더라고. 우와. 그 전까지의 전투가 영화 같았다면 그때부터는 그냥 괴물들이 서로 치고 받는 모양새였는데 엄청 살벌하더라고. 서로 물어뜯고 발톱으로 후벼 파고. 피가 솟구치고 살점이 날아다니더라고. 상처를 입는다 싶어도 금세 아무는 늑대인간과 집채만한 대가리의 이무기. 정말 볼만했지. 물론 당시에는 죽고싶을 만큼 무서웠지만 말이야.

근데 그렇게 서로 물고 뜯기를 한참 했는데도 싸움은 끝나지 않았어. 이무기의

치가 워낙에 거대한 탓에 민용모의 이빨과 발톱이 그렇게 큰 피해를 주지 못하는 걸로 보였지. 반대로 이무기 입장에서는 날렵한 늑대인간에게 공격을 맞추기가 쉽지 않았을 거야. 서로 피 터지게 싸웠지만 결국은 무승부였지.

근데 알다시피 그 싸움은 1:1이 아니었잖아? 이미 지쳐서 나가떨어진 다른 사람들은 몰라도 김형준은 멀쩡했으니까. 그게 승부의 포인트였지.

잠시 대치상태로 있던 민용모와 괴물 사이에 김형준이 끼어들었어. 창이고 검이고 어디로 갔는지 맨 손이었던 그가 오른손을 앞으로 쭉 내밀더라고. 그리고는 뭐라고 했더라? 향기야 퍼져라? 아닌데. 꽃의 향기 어쩌구. 아! 맞아!

'피어오르는 그 꽃의 향기는 만리를 가리라.'

캬! 장난 아니지? 아 무슨 만화영화 주인공이라니까. 이 사람은. 어쨌건 그렇게 손을 내미니까 갑자기 손에서 붉은 줄기 같은게 튀어나오기 시작했어. 처음에는 한가닥이더니 눈 깜짝할 사이에 수십 수백가닥으로 늘어난 줄기가 괴물의 몸을 묶어버렸어.

괴물도 그게 심상치 않았는지 몸부림을 쳤는데 그마저도 금세 잠잠해지더라고. 그리고 김형준이 또 간지 나게 한마디 했지.

'피어라.'

멋있지? 그지? 그래. 장난 아니라니까. 진짜. 생긴 것도 무슨 만화에 나오는 히어로처럼 붉은 갑옷에 투구에. 뭐? 손발 오그라들어? 야 저 새끼 내보내. 말할 맛 떨어진다. 저런 걸 동기라고.

어디까지 이야기 했어? 어. 그래. 그 '피어라'.

여튼 간에 그렇게 괴물의 몸을 꽁꽁 묶은 줄기에서 갑자기 가시가 돋아났지. 어떻게 됐겠어? 어. 맞어. 괴물의 온몸이 걸레가 되어버렸어. 근데 진짜는 이 다음부터야.

이무기가 비명을 지르기 시작했어. 처음에 질렀던 그런 살벌한 그런 게 아니라 정말 처절한 비명이었지. 괴물의 몸을 걸레로 만들어버린 가시가 점점 거대해지고 반대로 괴물의 몸이 눈에 띨 정도로 바짝 말라들어가더라고. 하도 맨질거려서 이능력자들의 공격을 미끄러트리던 그 피부가 수분기 하나 없이 푸석푸석해지고 통통하게 살이 올랐던 몸통이 갑자기 말라들어가기 시작했지.

김형준과 이무기 사이에 연결된 줄기들이 꿀렁꿀렁 거리는 거야. 마치 호스를 통해 물이 지나가듯이 꿀렁대면서 김형준 쪽으로 뭔가가 빨려들어 가더라니까.

그래. 눈치 챘지?

이 양반 마치 흡혈귀라도 되는 것처럼 이무기한테서 뭘 빨아들이고 있었어. 점점 앙상해져가는 괴물이 처절하게 비명을 지르는데 이제는 불쌍할 지경이었지. 아. 말이 그렇다고. 불쌍하긴 뭐가 불쌍해. 제 놈이 잡아먹은 사람만 해도 몇 명인데. 자업자득이지.

어쨌건 말이야. 그렇게 괴물이 바싹 말라가다가 쿵하고 그 대가리를 떨궜어. 뼈만 앙상하게 남은 모양새가 꼭 죽은지 몇 달은 지나 보였는데 죽고 나서도 흉악해 보이긴 마찬가지였어.

끝이냐고? 아니야. 좀 더 들어봐.

괴물이 쓰러져서 환호하는데 김형준이 좀 이상했어. 멍하니 서서 이리 저리 비틀대는 게 꼭 술 취한 사람 같았지. 다른 사람들은 환호하고 난리법석을 떠느라 못 봤게지만 난 분명히 보고 있었거든.

한참을 혼자 비틀대던 그가 이상해 보이긴 마찬가지였는지 어느새 덩치가 쪼그라든 민용모가 김형준에게 다가가는데 갑자기 확 빛이 퍼져나왔어.

온통 씨뻘건 빛이 김형준의 몸에서 터져 나온 거야. 그제야 소란을 떨던 다른

사람들도 놀라서 김형준을 바라보기 시작했어.

갑자기 김형준이 소리쳤어.

'물러서!'

짧은 한마디였지만 나도 모르게 몇 걸음인가 뒤로 물러설 정도로 묘한 외침이었어. 민용모 역시 놀랐는지 허겁지겁 뒤로 물러섰어.

그때 김형준의 몸이 둥실 하고 떠올랐지. 그리고 그 등에서 거대한 핏빛...... -------------------안개 속에서 생환한 어느 병장이 동기들에게 해 주던 무용담 중..... 안개 속에 들어온지 벌써 하루가 지났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몬스터 탓에 이미 몇 번이나 전열을 교체했다. 아직 사망자나 중상자는 나오지 않았고 가벼운 부상을 입은 이들만이 몇 있을 뿐이다. 그나마 그 경상자들조차 회복의 이능을 지닌 이들에 의해 멀끔하게 치유가 되었다. 이대로라면 괴수 앞에 당도하는 건 시간문제일 걸로 보인다.

내가 속한 예비대는 아직까지 단 한 번도 전투에 투입되지 않았으나 다른 조들은 이미 다 한두번씩은 전투를 치루고 체력을 안배중이다. 전투의 피해가 전무한 건 허준영이 항상 몬스터들의 접근을 경고한 덕이었다. 안개 탓에 제대로 보이지도 않는 탓에 만약 그의 경고가 없었다면 꽤나 곤욕을 치렀으리라. 그렇게 느리지만 착실하게 괴수를 향해가던 원정대. 수가 워낙에 많다보니 전그렇게 느리지만 착실하게 괴수를 향해가던 원정대. 수가 워낙에 많다보니 전에 안개 속에서 겪었던 지옥이 마치 거짓말과 같다. 이제 와서는 허탈할 지경이랄까.

그때는 그렇게도 끔찍하게 우리를 괴롭혔던 고등급 몬스터들의 시체가 발치에 나뒹군다. 다른 사람들도 떨떠름하게 그 시체들을 피해 길을 걸음을 옮겼는데 나중 가서는 별로 신경 쓰지도 않게 되어버렸다.

그렇게 압도적인 힘으로 몬스터들을 학살하며 괴수를 향해 나아가던 무리가 긴장이 풀어질 무렵 허준영이 소리쳤다.

"멈춰!"

이제까지와는 다르게 반말로 외친 그 탓에 부대의 중간부터 서서히 걸음을 멈추는데 저 앞 쪽에서 제창하는 소리가 들렸다.

다들 의아한 눈으로 그를 바라보는데 그가 다시 소리친다.

"사람들을 모아요! 빨리!"

이제껏 여유로웠던 그답지 않게 그 모습이 꽤나 급박했던지라 반사적으로 사람들이 그를 중심으로 몰려든다.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에 어안이 벙벙하기만 하다. 허준영은 그 전의 여유는 어디 갔는지 다급한 모습으로 손을 이리 저리 휘젓고 있다.

뭐라 묻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분주한 그를 보며 고개를 갸웃거리는데 불쑥 불길한 예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나도 모르게 주변을 살펴보지만 이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저쪽으로 고개를 돌려도 보이는 건 안개뿐이라 불안감이 더욱 커져만 간다.

어느새 이쪽으로 달려온 이호상이 그런 그에게 묻는다.

"무슨 일이십니까. 일단 말씀대로 부대를 멈췄습니다."

워낙에 바쁘게 손을 놀리던 허준영이라 이호상이 조심스럽게 말을 꺼내곤 대답

을 기다린다. 대답은 허준영이 아닌 전지현에게서 나왔다.

"놈이 다가온다."

뜬금없는 말에 이호상이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을 한다.

"'멸망을 지켜보는 눈'이 오고 있다. 부대를 정비하고 대비해라."

나지막한 말이었지만 그녀의 말을 듣지 못한 사람은 단 한명도 없으리라. 지금 이 순간 주변은 바늘 떨어지는 소리조차도 들을 수 있을 정도로 조용했으니까. 안개 속에 들어선지 하루도 되지 않아서 괴수가 다가오고 있단 말을 들은 사람들의 표정이 눈에 띠게 굳어버린다. 다들 뉴스를 통해서든 먼발치에서든 한 번씩은 놈을 다 봤을 테니 그 끔찍한 존재를 떠올리곤 하얗게 질린다.

나 역시 그들과 마찬가지 표정이겠지. 놈이 처음으로 나타난 날 멀리서나마 놈을 보고 받았던 충격이 다시금 떠오른다.

산 하나가 통째로 움직이는 듯 했던 거대했던 놈의 위용. 한걸음마다 온 사방

이 진동하던 그 모습이 아직도 생생하다. 어? 그러고보니 놈 특유의 거대한 진동이 없다.

"놈이 움직였다면 발 소리가 들리지 않을 리가 없는데..."

나도 모르게 내심이 겉으로 나와 버렸다. 이호상이 내 말을 듣고 바로 전지현에게 의문의 눈빛을 보내자 그녀가 짜증스럽게 대답한다.

"이유는 우리도 몰라. 여튼 놈이 다가 오고 있으니 준비해!"

나지막한 음성이지만 음성에 가득한 기운이 자신도 모르는 사이 그녀의 말을 따르게 한다. 이호상 역시 더 이상의 질문은 그만두고 바로 부대를 정비하기 시작한다.

그 사이에도 허준영의 손놀림이 점점 빨라지고 있다. 위로 아래로, 다시 옆으로. 불규칙하게 흔들어대는 그의 손짓이 어쩐지 낯이 익다 했더니 김도연이 진언을 읊는 것과 비슷한 모습이다.1등급이라는 것만 알지. 아직 그의 능력에 대해 들은 바가 없었던 나는 그가 술법사인가 하고 짐작할 뿐. 그의 손짓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는 알 수 없다.

분위기가 흉흉한 탓인지 대열의 이곳저곳에서 빛이 번쩍인다. 불안한 마음에 각기 이능을 개방한 모양인지 하나 둘 터져 나오던 빛이 금세 정신없이 번쩍거렸다. 나 역시 미리 준비한 칼날로 손등을 길게 그어버렸다. 꿀렁거리다가 금방 실체화 되어서 온 몸을 감싸는 붉은 덩어리들에 마음이 조금 놓인다.

그때 허준영의 손짓이 멈춘다. 그리고 그의 눈이 번쩍 뜨였다.

"개천(開天)!"

그의 외침이 낭랑하게 사방에 퍼져나간다. 그리고 온 사방에 퍼져나가는 청명한 기운. 장대하고도 맑기만 한 그 기운이 온 천지를 뒤엎는다. 바람 한 점 없는데 온 몸이 바람에 떠밀리듯 휘청거리고 안개가 휘몰아치기 시작한다.

그오오오오.

마치 거대한 짐승이 목젖을 떠는 듯한 소리가 퍼져나가고 주변에 짙게 깔려있던 안개가 한쪽으로 휩쓸려가다가 하늘로 솟구치기 시작한다. 그렇게 안개가 빨려 들어가기를 한참 어느새 주변의 안개가 옅어진다. 조금씩 옅어지던 안개가 마침내 사라지고 마치 용권풍처럼 하늘로 솟구치는 안개를 멍하니 보다가 경악한다.

허준영의 강대한 이능 발현에 놀랄 사이도 없이 나타난 거대한 그림자에 눈을 크게 떴다. 안개가 사라지자 바로 지척에 보이는 거대한 괴수와 그 발치에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그득한 몬스터들. '멸망을 지켜보는 눈'과 그의 군대가 어느샌가 우리를 포위하고 있었다.

거의 잠실 운동장만한 덩치의 괴수의 위용에 질리고, 그 아래 즐비한 몬스터들의 수에 다시 한 번 질린다.  '용아병', '이무기', '하늘거북이'를 비롯한 온갖 3등급 몬스터들이 셀 수도 없다. 그들만 해도 끔찍한데 더욱 끔찍하게도 고개를 올려도 올려도 끝이 보이지 않는 거대한 괴수마저도 그들과 함께다.

"제길. 그 사이에 우리 이목을 돌렸군."

허준영의 낭패스러운 음성이 들린다. 자신 만만하던 그들조차도 몸이 굳게 만들어버리는 적과의 대면. 안개 속으로 들어선지 하루. 우리는 괴수와 조우했다.

============================ 작품 후기 겨우 겨우 써서 올리고 있네요. 몸상태는 제법 나아졌지만 감기에 알러지까지

돋아서 앉아있기가 괴롭습니다. ㅜㅜ그간의 피로가 한번에 몰려왔는지 아주 겹겹이 경사라서 죽을 맛입니다.

선추코쿠로 저에게 힘을 주소서 ㅜㅜ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코멘트와 선작 추천 쿠폰을 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님들, 코멘트와 선작 추천 쿠폰을 주신 모든 독자님들께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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