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39화 (39/223)

< --  3. 겨우 살았다 했더니...  -- >

결국 나는 유니온의 참가권유를 받아들이기로 했다. 모양새 좋게도 민아년이 딱 알맞은 때에 한 번 더 찾아왔던지라 어찌나 반갑던지. 요 아줌마가 미쳤는지 요즘 내게 제법 살갑게 대해준다. 왠지 모르게 말투도 조금 부드러워진 것 같고.

어쨌건 바로 그날로 따라가서 유물 한 개를 얻어왔다. 등급이 6등급에 속하는 놈이라 조금 김이 빠지는 느낌이었지만 그게 어딘가. 4등급 '찔레가시 꽃'만 해도 어마어마한 위력이었는데 한 개를 더 바라는 건 욕심이리라. 내가 언제부터 유물을 가지고 다녔다고.

그렇게 유니온이 던져준 미끼를 덮썩 물고는 작전 당일을 기다렸다. 전에는 그렇게 벗어나고 싶었던 그 지옥으로 스스로 자청해서 들어가는 꼴이라니. 나 스스로도 어이가 없을 지경이다.

일단 전과 같은 일이 없도록 부모님에게 미리 연락을 드렸다. 역시나 걱정을 태산과 같이 하는 부모님이지만, 이번 일은 저번 참사와는 다르게 준비를 철저히 하고 들어간다는 설명을 한참 드리니 그나마 몸 건사하라는 말로 통화를 마칠 수가 있었다.

역시 부모는 자식이 나이가 들어도 품 안의 애라고 생각한다더니 딱 그 짝이다.

그렇게 차근차근 주변 일을 정리하다보니 어느새 작전 당일 아침이 찾아왔다. 일전에 들은 소집장소로 가보니 인간들이 바글거린다. 히야. 저게 다 이능력자들이란 말이지? 많기도 하다.

평생 봐왔던 이능력자들보다 몇 배는 많을법한 수에 잠시 놀라고 있는데 낯익은 얼굴들이 제법 보인다. '달무리' 김수현과 '바람칼' 이영태, '불꽃놀이' 김준진 등 일전에 해파리 사건 때 봤던 얼굴들이 멀지 않은 곳에 모여 있다. 또 약간 떨어진 곳에는 김도연이 보인다. 유니온 직속 타격대의 인물들은 보이지 않는다. 소문만 무성한 1등급 능력자들도 보이지 않는 게 아마 조금 늦게 오려나보지.

원래 높으신 분들은 늦게 오잖아?

별 다른 지시사항도 없었고 하던 차라 낯 익은 얼굴들에게 가서 인사를 한다.

"오랜만입니다."

한창 이야기 중이던 김수현과 다른 능력자들이 나를 보고 반가운 얼굴로 맞아준다.

"아. '피바라기'? 역시 왔군요. 4등급 이상은 다 부른다더니 정말 수가 어마어마 하네요."

"'피바라기'가 아니라 김형준입니다. 뭐 전에 없던 대규모 소집이긴 해요."

일전에 알려준 이름을 금세 까먹었는지 콜싸인으로 부르는 그들에게 다시 이름을 알려준다. 이번 작전에 대해 각자 의견을 말하는 중이었던지 나를 보고 반색을 하는 게 또다시 질문공세에 시달릴 듯 하다.

"그러고 보니 형준씨는 저 안개에 대해 잘 알테 니 잘 됐네요."

다짜고짜 여러 가지 일들을 묻기 시작하는 이영태의 음성이 꽤나 컸던지라 이목이 쏠린다. 안 그래도 꽤나 궁금한 일들이 많은 능력자들이었던지라 나를 알아보고 귀를 쫑긋 세우고 있는 꼴들이라니.

출몰하는 몬스터들의 등급부터, 그 종류까지. 또 안개가 몸에 해로운 건 아닌지. 별의 별 시답잖은 것까지 물어보는 통에 한참이나 대답을 하느라 진땀을 빼야 했다. 게다가 몰려드는 인파가 장난이 아니라서 무서울 정도다. 아니 이능력자라면 멀리서도 들릴 텐데 뭐 이리 들이대는 거야.

한참을 그리 곤욕을 치르고 있는데 갑작스럽게 반대편에서 소란이 인다.

"유니온이다!"

누군가의 외침이 터져 나오고 내 쪽에 몰려있던 사람들이 금새 반대로 몰려간다. 늘 봐왔던 타격대야 새로울 것도 없지만 그들과 같이 나타날 1등급 능력자들을 기대하는 거겠지.

나도 그들 속에 섞여드는데 저쪽에서 느릿느릿하게 걸어오는 타격대가 보인다. 평소보다 더 거창한 차림새의 그들이 위풍당당하게 걷고 있다. 자유분방하게 삼삼오오 몰려있는 다른 이능력자들과는 다르게 대열을 맞춰 다가오는 그들의 모습이 사뭇 그럴싸해 보인다.

"이야. 타격대도 꽤나 준비 했는데? 상위 타격대들까지 싹 납셨네?"

곁에 있던 이영태가 감탄한다. 그의 말에 다시 한 번 타격대를 살펴보니 아닌 게 아니라 용모가 꽤나 뒤쪽에 있는 게 앞 번호의 이들도 죄 불려온 듯 하다. 하지만 역시 가장 큰 관심사는 타격대가 아니라 그 뒤에 따라올 1등급 이능력자들인 터라 모두의 시선이 저 뒤를 향하고 있다.

보무도 당당한 타격대들이 우리를 지나치고 저 뒤편에 따르고 있는 두명의 인물이 보인다. 누가 말해준 것도 아니건만 보는 순간 그들이 1등급의 이능력자들임을 느꼈다.

특별한 차림도 아닌 남녀 한 쌍. 그저 걷고 있을 뿐인 그들이지만 보는 순간 시선을 돌릴 수가 없다. 특별히 드러내려고 한 것 같지도 않은데 주변에 넘실거리는 에너지, 그들만 다른 세상을 걷는 듯 하다.

등장부터 압도적인 카리스마를 자랑하는 두명의 남녀. 1등급 능력자들의 등장에 온 사방에 침묵이 감돈다.

순수한 호기심으로 기대했던 게 무색할 정도로 압도적인 모습이다. 감탄이고 뭐고 그들은 그런 흥밋거리가 아니다.

단지 바라보는 것만으로 존재 자체를 먹혀버릴 것만 같은 태산과도 같은 존재감. 1등급 능력자들의 존재감이다.

멍하니 그들을 바라보는 사이 어느새 사람들의 중심에 다다른 그들이 타격대의 앞쪽에 선다.

"유니온 직속 타격대 1번대 조장 이호상입니다. 간단한 브리핑 이후 바로 출발합니다. 또한 각자의 능력 특성에 맞게 조를 구성했으니 호명대신 분들은 바로 자신의 조에 합류하시길 바랍니다."

평소라면 꽤나 주목을 끌었을 타격대 1번대지만 이미 한쌍의 남녀에게 홀려버린 사람들은 아무 호응조차 하지 않았다.

모든 시선이 이호상의 바로 앞쪽에 쏠려 있을 지경이니 제대로 설명을 들은 사람이 몇이나 될까 모르겠다. 그 역시 그 점을 눈치 챘는지 다시 한 번 말한다.

"간단한 브리핑 이후 바로 출발할 거니 호명하신 분들은 각자의 조원과 합류하십시오."

이호상이 이번에는 제대로 기세를 담아 말했던 탓에 장내를 감싸고 있던 묘한 분위기가 사라진다. 그제야 제 정신을 차린 이들이 이호상에게 시선을 돌린다.

나는 용모에게 미리 언질 받은 바가 있기에 이호상은 신경 쓰지 않고 한쌍의 남녀를 관찰하는 데 집중했다.

남자는 20대 중반? 대략 그쯤 되어 보이는 외모에 꽤나 부드러운 인상의 소유자였는데 주변을 감도는 위압감만 없다면 꽤나 친근한 인상이다. 여자는 남자보다는 더 나이가 있어보이는데 꽤나 이지적인 미녀다. 둘 다 생각보다 어려보이지만 이능력자의 나이를 겉만 보고 판단해서는 큰코다치기 십상이지.

"1조 호명할 테니 이름이 불리신 분들은 저쪽에 서주시면 됩니다. 그럼 제 1조! 3등급 '인형술사' 김현진! 2등급...."

내가 너무 뚫어지게 그들을 살폈음인가 남자가 내 쪽으로 고개를 돌린다. 남자의 입꼬리가 슬며시 치켜 올라간다. 꽤나 먼 거리였지만 확연하게 느껴질 정도로 진한 미소다. 그냥 단순한 미소일 뿐인데도 불구하고 온 몸에 소름이 돋는다. 마치 뱀 앞에 던져진 개구리처럼 공포감에 몸이 굳는다. 등가로 차가운 무언가가 스물거리며 기어가고, 입이 바짝 마른다.

그렇게 얼마나 그와 눈을 마주치고 있었을까. 그가 시선을 돌림과 동시에 온몸이 속박에서 풀리듯 자유로워진다.

"2조 호명하겠습니다!"

꽤나 오랜 시간을 그리 있었던 것 같은데 정신을 차려보니 이제 겨우 2조를 호명하고 있다. 마치 꿈이라도 꾼 듯한 기분이지만 식은땀으로 차갑게 식어버린 등가의 서늘함이 현실임을 알려준다.

차마 다시 그와 눈이 마주칠 엄두가 안 나, 가만히 사람들이 호명되는 꼴을 보고 있으니 놀랐던 가슴이 뒤늦게 진정된다.1등급. 괜히 1등급이 아니구나.

이제는 2등급에 육박하는 이능 덕에 꽤나 자신감에 넘쳤던 나지만 순식간에 초라해진다. 저런 강자가 있는데 그동안 너무 우쭐댔던 내 자신이 한심할 지경이다.

어느새 마지막 조까지 편성을 마친 타격대가 다시 호명을 시작한다.

"지금부터 호명되는 분은 예비대에 속하시는 거니 이 쪽으로 나와 주시면 됩니다."

용모에게 미리 들었던 대로 3등급 중에서도 전투에 최적화 된 인물들이나 2등급 이상의 능력자들은 예비대로 포함시키는 구성이다. 혹시 모를 만약의 사태를 대비한 보험이며 위급 시에 전열을 메꾸는 역할을 맞게 될 것이다.

그런데 하필 결집장소가 1등급 이능력자들의 곁이다. 위협을 한 것도 아니건만 벌써부터 그들이 꺼려지는지라 발걸음이 자연 무거워진다.

한참 주눅 든 얼굴을 하고 있는데 낯익은 인물들이 아는 체를 한다.

"형준씨도 예비대네요?"

'달무리' 김수현이다. 전의 전투에서 느낀 거지만 그녀의 이능은 꽤나 위력이 강했으니 예비대에 포함되어도 이상하지 않았다.

"네. 자주 뵙네요. 유독."

억지로 쾌활하게 그녀의 인사를 마주 받는데 이호상이 다가온다.

"예비대에 포함되신 여러분들은 일종의 정예부대입니다. 앞으로 일어날 전투에서 변수를 제거하는 중요한 역할을 하셔야 하니 각자 힘을 비축하시고 별도의 지시가 없는 한은 절대 전투에 참가하지 마시기를. 또한 저기 계신 1등급 능력자분들을 호위하는 성격을 가진 부대이기도 하니 각별히 행동에 주의해주시고 개인행동은 일절 삼가길 바라겠습니다."

이미 들었던 내용이지만 하나가 추가되었다. 1등급 능력자들의 호위역이라니? 누가 누구를 호위한단 말인가. 아직 그들의 힘을 견식해본 건 아니지만 기세만으로 여기 있는 다른 이능력자들을 홀랑 다 해 먹겠구만.

기도 안차는 말이지만 다른 이들은 눈을 빛낸다. 아마 1등급 이능력자의 주변에 있다 보면 가까워질 기회라도 있을 거라 기대하는 것이리라.

마침 그들이 다가온다.

"전지현이다. 호위라니 얼통당토 않지만 어쨌건 수고하도록."

이지적인 얼굴에 잘 어울리는 차분한 음성이지만 그 어조가 심히 거만하다. 하지만 그 정도 능력은 있는 이인지라 절로 고개가 끄덕여질 만큼 잘 어울리는 말투이기도 하다.

"허준영입니다. 오랜만에 사람들을 만났더니 반갑군요. 잘 부탁드립니다."

온화한 얼굴에 미소를 가득 띤 남자의 인사다. 사람들은 정신없이 고개를 꾸벅거리며 인사를 하느라 바쁘다. 나 역시 꺼리는 마음을 숨긴 채 고개를 숙여 보였다.

자기소개를 한 것을 끝으로 입을 굳게 다문 전지현과는 다르게 허준영이라는 자는 꽤나 친근하게 사람들에게 한명 한명 악수를 청한다. 평소라면 콧대 쎄기로 유명한 고등급의 능력자들이 황송하다는 듯이 그 손을 마주 잡는다.

"TV에서 몇 번인가 본 적 있는 분이군요. 콜싸인이 제법 멋지던데. '피바라기'였던가요?"

지긋이 나를 바라보는 그의 얼굴이 부드럽기만 하다. 아까 같은 살벌한 기세는 전혀 찾아볼 수 없어서 어리둥절할 판이다. 얼빠진 얼굴로 마주 인사를 하니 그가 어깨를 두들기며 다음 사람에게 인사를 청한다.

뭐지? 아까는 나 혼자 착각한 건가? 하긴 워낙에 압도적인 기세에 지레 주눅이 든 상태였으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잠시 뒤 이호상이라는 작자가 다시 찾아와 출발을 알린다. 아무래도 허준영과, 전지현을 신경써서 미리 알리는 모양새다. 다른 곳에서 만났다면 꽤나 거만을 떨 위치의 사람이지만 지금만큼은 9등급 능력자처럼 공손하기만 하다.

"그럼 이제 출발할까 하는데 준비 되셨습니까?"

이호상의 말에 그저 시선을 한번 주는 걸로 끝인 전지현과는 다르게 허준영이 살갑게 고개를 끄덕인다.

"아. 저희 때문에 지체가 되었나요? 바로 출발하시죠."

아무것도 아닌 말이고 오히려 미안하다는 투지만 이 호상이 절절맨다. 아. 저양반도 죽을 맛이겠구만. 혼자 그런 이호상을 보며 고개를 절래절래 흔든다.

곧 능력자들을 주목시킨 이호상이 출발을 알린다. 이쪽에서는 비실거리더니 저쪽 가서는 장군의 기상을 보여 주는구나 아주. 강자한테 약하고 약자한테 강한 유니온이여. 그 고질병은 언제 고쳐지려나.

내가 잡생각을 하는 사이 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부대라고 하니 거창하지만 거의 삼백명에 달하는 무리인지라 부대라는 말이 딱 알맞다. 유니온 직속 타격대를 선봉으로 그렇게 안개 속으로 향하는 원정대가 출발한다.

============================ 작품 후기 ============================한편 더 올립니다. 몸이 여전히 멜롱합니다. ㅜㅜ독자분들 선추코로 힘을 주소서. 혼미한 정신으로 쓴글이라 죄송할 따름이지만 기다리시는 분들을 위해 업로드 합니다. 혹여 눈에 띄이는 오류나 오타를 발견하시면 지적 부탁드립니다.

제 혼과 백이 다시 육체에 돌아오면 수정작업 들어가겠습니다.

코멘트에 리코멘트 못 다는 저를 용서해주시고 좋은 하루들 되시기를.

몸이 너무 안좋습니다. 도저히 연재를 할만한 상태가 아니네요.

사실 몸이 안 좋은지는 한 1주일 됐는데 제대로 쉬지도 못한 상태에서 무리를 했더니 결국 탈이 나네요.

오늘 지방을 가야해서 비축분을 만들어두려고 했는데 도저히 불가능하겠네요. 지금 상황에서는 혼과 백이 육신을 떠날 지경입니다.

혹시 몰라 미리 공지합니다. 노트북은 가져가긴 할거지만 몸 상태가 낫지 않으면 업뎃은 불가능할 것 같습니다.

최대한 빨리 회복해서 밀리는 만큼 연참으로 사죄드리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셔서 감사드리고 선추코쿠 다시 한 번 감사드립니다.

휴재는 절대 하루를 넘지 않도록 하겠습니다. 첨언. 전편에서 지적해주신 오류 상태가 좋아지면 수정하겠습니다. 그리고 블랙탬플러님의 지적에 대해 답변을 드리자면 주인공 무사태평한 성격 맞습니다. 둔한 편이기도 하고 흘러가는 데로 살던 주인공이지만 이제 변하려고 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보면 하루 하루 그냥저냥 살아가는 성격이라고 봐야겠네요. 극중 캐릭터가 더욱 녹

아나도록 놁하겠습니다.

인사 한번으로 그 전의 공포나 위기감이 착각이라 넘어간 건 워낙에 압도된 상태였던지라 아직 제 정신이 아니라고 말씀드리곘습니다. 다음편에 설명될 부분이지만 휴재탓에 미리 알려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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