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37화 (37/223)

< --  3. 겨우 살았다 했더니...  -- >

하늘거리며 다가오는 모습이 차라리 느긋해 보이기만 하다. 물론 내 입장에서는 워낙에 수가 어청난 지라 절대 느긋할 수가 없지만.

해파리를 닮은 투명한 몸통에 머리통 아래로 뻗은 수많은 촉수. 그 꿈틀대는 모습이 낯익다. 놈은 '멸망을 지켜보는 눈'과 놀랍도록 닮아 있다. 투명한 몸과, 크기를 제외하고는 판박이라고 해도 믿을 정도의 모습이다.

분명 그 괴수가 뭔가를 했겠지. 근래 들어서 하도 황당한 일들을 많이 겪었던 탓인지 이제 갑자기 나타난 해파리 때거지에도 놀라지도 않는다.

원래대로라면 아무리 강해진 나라도 저런 많은 수를 상대하는 건 불가능하겠지만 나에게는 비장의 무기가 있다.

"피어오르는 그 꽃의 향기는 만리를 가리라."

안개 속에서 수 없이도 외쳤던 구절을 뇌까린다. 처음에는 오글거렸지만 이제는 입에 착 달라붙는 한마디와 함께 내 오른손을 중심으로 붉은 줄기가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수십 수백개의 선이 해파리 무리 틈으로 파고든다.

"피어라."

언제나와 같이 돋아난 섬뜩한 가시들이 해파리들의 투명한 몸을 꿰뚫는다. 그리고 붉은 선을 따라 전해져 오는 막대한 생명력. 일전에 들었던 흡혈귀들의 흡혈과도 같은 나른한 쾌감이 온 몸을 휘감았다.

꾸물거리며 '가시덤불'을 벗어나려고 하는 해파리들이지만 부질없는 몸짓. 저 가차 없는 가시들은 절대로 한번 문 먹잇감을 놓지 않는다.

그렇게 한가롭게 비쩍 말라가는 놈들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변이 일어났다. 유물을 통해 들어오던 생명력이 멈칫거리기 시작했다. 단 한 번도 없었던 일이기에 의아함에 눈을 치켜떴다.

"무.. 무슨.."

멈칫거리던 흐름이 아예 멈추었다가 이내 역류하기 시작했다. 처음 겪어보는 일이라 나도 모르게 신음성이 비어져 나왔다.

"크윽."

전에 없던 일이라 당황하긴 했지만 나는 서둘러 정신을 집중해 '가시찔레 꽃'에 힘을

불어넣었다. 역류하려던 생명력이 다시금 내 쪽으로 주춤거리며 돌아서기 시작했다. 온 정신을 집중해서 흐름을 원위치 시키는데 주력하기를 한참. 마침내 퍼석거리며 해파리무리가 바닥에 떨어지기 시작했다.

한 놈, 두 놈, 스무 놈, 그리고 셀 수 없이 추락한 놈들의 몸이 바닥에 닿자마자 부스러졌다. 작은 놈들은 거진 처리되고 이제는 몇 미터는 넘을 법한 놈들만이 살아남아 몸부림을 치고 있지만 그마저도 곧 처리가 될 듯 보인다.

유물의 힘을 과신 했던 탓인가. 잠깐 사이에 얼마나 긴장을 했던지 등이 축축할 지경이다. 애초에 놈들이 사람들의 생명력을 빨아먹는 것을 보고도 경솔하게 덤벼들었었다. 요 근래 부쩍 강화된 이능도 그렇고 유물의 힘을 맹신 한 나머지 조심성이 없어졌다는 것을 깨닫고 자책했다.

내가 스스로를 질책하는 사이에 마지막 한 놈마저 부스러져버린다. 근방에 있던 놈들 중 대부분이 이쪽으로 달려들었던 탓인지 창밖은 고요하다. 확실하게 주변을 살펴볼 필요가 있어 밖으로 걸음을 내딛으니 참혹한 광경이 눈에 들어온다.

운전 중에 해파리에게 습격당했는지 가도를 벗어난 차량들이 건물의 이곳저곳에 처박혀 있고, 온 사방에 늘어진 미라와도 같은 시체들. 저 멀리서 비명소리가 간간히 이어지는 게 다른 쪽은 상황이 미쳐 정리 되지 않은 듯 하다.

근데 그 비명소리가 꽤나 여럿이라 이대로 인명구조에 나설까 하다가 붉은 막 안에서 오들거리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혼자서 모든 사람을 구할 수는 없으니 그저 눈 안에 있는 이들이라도 확실하게 지키자. 그리고 솔직히 유물의 힘이 역류할 뻔 한 후로는 꺼리끼는 마음도 없지 않아 있었고.

간간히 이어지던 비명소리가 점차 잦아든다. 자꾸만 속이 쓰려와 입술을 깨물었다.

너 혼자 다 구할 순 없어. 김형준.

무거운 발걸음으로 사람들에게 돌아가니 아직까지 떨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아까처럼 패닉상태는 아닌 듯 하지만 그다지 좋은 상태라고는 할 수 없다.

"일단 근처에 있는 놈들은 처리 된 듯 합니다."

그래도 그중 몇몇은 황당하게 핸드폰을 집어들고 나를 찍고 있다. 별다른 손놀림 없이 그저 나를 따라다니는 휴대폰을 보니 동영상이라도 찍는 듯 싶어 벌써부터 머리가 아펐다. 쳇. 아무려면 어때. 어차피 얼굴 팔릴 만큼 팔린 거.

그들을 제지하려다가 그냥 내버려둔다. 어차피 말 한다고 해서 말 들을 것 같아보이지도 않고.

"혀.. 형준아?"

얼떨떨한 음성으로 나를 부르는 연철이의 음성에 뒤늦게 일행에게까지 생각이 미친다. 딱히 숨기려고 했던 것은 아니었지만 왠지 모르게 속인 기분이다.

"형준아. 네가 TV에서 나오는 그 빨간 능력자야?"

은정이의 말이다. 빨간능력자라니 괴상한 호칭에 뜨악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곧바로 일행들이 소란을 떤다.

"왜 말 안했어!"

마치 친구가 연예인이라는 것을 뒤늦게 안 사람들처럼 호들갑을 떨어대는 일행들이다. 그 와중에도 기훈이 놈이 자신은 알고 있었다고 거들먹거리다가 은정이에게 욕을 한 바가지 먹었다. 굳이 일부러 말할 거리도 아니었다고 이야기 하니 고개를 끄덕인 그들이지만 서운한 눈길들은 여전했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사람들이 살았다고 환호를 한다. 어디서 주워들었는지 내 콜싸인을 외치는 이도 있어서 민망하기 그지없었다. 남자들은 선망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고 여자들은 왠지모르게 위험스러워 보이는 눈빛으로 나를 보고 있다. 아직까지 이능을 거두지 않았던 상태였던지라 막을 넘어서 이쪽으로 다가오진 않고 있지만 등가로 식은땀이 내릴 만큼 소란이 일었다.

사람들이 저리 소란을 떨지만 사실 상황이 끝났는지 확실하지 않은 상태라 휴대폰을 꺼내 유니온에 연락을 했다.

"마포구 서교동. '피바라기' 김형준 해파리형 몬스터 다수 처치하고 현재 민간인과 대기중입니다. 다른 쪽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현재 일산 방면으로 전개했던 능력자들이 대거 사태 수습에 나선 상태입니다. 은평구를 비롯해 마포구 방면까지 정리가 빠르게 되고 있습니다. 잠시 더 대기하다가 경계 해제령이 떨어지면 이동하시기를. 수고하셨습니다. 김형준씨.'

꽤나 피곤한 목소리의 오퍼레이터가 치하를 한다. 이게 유니온의 간부나 사무직 종사자들과는 다른 실무자들의 차이다. 이들은 이능력자들의 고초를 잘 알고 있고 늘 작은 말로나마 격려를 해준다. 또한 우리가 얼만큼 죽음과 맞닿아있는지를 가장 잘 알아주는 이들이기도 하고. 그런 일이 있어서는 안 돼지만 혹여 내가 목숨을 잃게 된다면 내 유언을 전해줄 사람들이기도 하다.

자연 내 음성도 그들에게 살가울 수 밖에.

"몬스터의 정체는 뭡니까? 그 괴수의 미니어쳐라고 해도 믿을 판인데."

내가 몬스터의 정체를 묻자 저쪽에서 바로 대답해온다.'일산에 자리 잡은 '천개의 눈동자

'가 일시적으로 분열을 일으킨 것으로 보입니다. 본체에서 갈라져나온 놈의 분열체인 걸로 판단 중이지만 아직 정확한 것은 알 수 없습니다.'

역시나 내 예상이 맞았다. 오퍼레이터와의 통신을 종료하고 일행에게 다시 돌아가니 그들이 멀뚱멀뚱 나를 바라보고 있다.

"현재 은평구와 마포구를 시작으로 서울 전체를 정화중이니 잠시만 더 기다리시면 집으로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일행을 포함한 사람들이 열렬히 고개를 끄덕인다. 다들 나를 믿는 탓인지 침착함을 유지하고 있어서 큰 소란이 일지는 않았다. 얼추 정리된 상태지만 혹시 몰라 그대로 자리를 지킬 것을 당부하고 거리로 나가 있으니 핸드폰이 진동음을 토한다.

'현재 신촌 방면에 변이된 몬스터 출현. 해파리의 결합체로 보이며 기존의 생명력 흡수뿐만이 아닌 물리력을 행사하고 있습니다. 현재도 계속해서 작은 해파리들과 결합을 하고 있으며 크기는 현시각 오후 3시 27분 약 12미터에 이릅니다. 인근의 해파리들과 계속해서 결합을 하고 있으니 조속한 처리 바랍니다. 반복합니다. 현재...'

다급한 오퍼레이터의 음성이 상황을 알려온다.

'서교동 부근의 모든 개채가 신촌으로 이동 변이체와 결합중이니 조속히 신촌 방면으로 합류하시길 바랍니다.'

지원 요청이다. 인근이 지나치게 조용하다 했더니 엄한 곳에서 놈들이 결합하고 있단다. 제길. 그러면 그렇지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 했다. 원래대로라면 유니온 전용 통신기를 통해 상황이 그때 그때 중개가 되었겠지만 휴대폰만 가지고 온 상태라 따로 연락이 온 듯 하다.

"잠깐 다녀올게! 인근에 있던 놈들은 전부 이동했으니 큰 일은 없을 거야!"

급하게 일행에게 말하고 자리를 이동한다. 사람들이 내가 자리를 뜨자 금세 소란을 피울 기세라 다시 멈추고 그들에게 알린다.

"이 근방에 있던 괴물들은 다 처리 됐습니다만 다른 쪽은 어떤지 모르니 잠시만 더 이대로 있으세요! 현재로선 여기가 가장 안전한 지역입니다!"

아우성을 치던 그들이 내 말에 막 움직이려던 발걸음을 멈춘다. 조금 불안한 감은 있지만 신촌 쪽의 사정이 급한 것 같아 그대로 몸을 날린다. 차라도 타면 좋겠지만 이쪽 인근은 워낙 소통이 복잡한데다가 이난리가 났었으니 어떨지 몰라 그냥 달리기 시작했다.

이능을 최대한 발휘해서 속력을 높이다보니 널찍한 도로 저 멀리에 있는 괴물이 보인다. 아직도 꽤 거리가 있는 데에도 불구하고 압도적인 덩치를 자랑하는 거대 해파리가 흉물스럽게 촉수를 나풀거리고 있다.

억 소리가 나올 정도로 거대한 놈이다. 일전에 안개에 갇혀 있을 때 상대했던 이무기만큼이나 무지막지한 비쥬얼이다. 게다가 등급에도 없는 신종 몬스터인지라 그 흉포함이 얼마나 될지도 모르는 상황이라 달리는 내 발걸음이 무겁기만 하다.

근방에 다다르자 귀를 찢는 폭음과 오색의 빛들이 번쩍거리고 있다. 먼저 도착한 이능력자들이 이미 전투를 시작했는지 꽤나 화려하게 싸워대는 모양이다. 속도를 올리니 예상대로 열명은 되 보이는 능력자들이 이리 저리 뛰어 다니고 있다.

방정맞아 보일 정도로 팔짝 팔짝 뛰는 모습에 의아했는데 내 존재를 감지한 놈이 바로 촉수를 뻗어와서 이유를 알게 됐다. 수백가닥은 될 법한 촉수가 정신없이 주변을 쓸어댄다. 나 역시 팔짝대는 능력자들에게 합류해서 이리 저리 뛰기 시작했다.

스치듯 마주치는 이능력자들에게 합류를 알렸다.

"콜싸인 '피바라기' 전투에 합류합니다!"

정신없이 촉수를 피하는 와중에도 내 합류에 몇몇 능력자들이 호응해온다.

"놈의 촉수에 닿으면 바로 에너지를 흡수당합니다! 주의하세요!"

바로 주의사항을 알려주는 여자 이능력자에게 고맙다고 말하곤 손 끝에 거대한 창을 형성했다. 투사체로 이능을 발휘할 경우 회수가 안되는 생명력 탓에 꽤나 곤란하지만 지금은 생명력이 넘치는 상태다. 바로 전에 흡수한 해파리들의 생명력이 창두와 창대에 몰려든다.1m, 2m, 3m, 점점 거대해져가는 창대. 일단 시험해 본다는 생각으로 창을 던졌다. 쐐액하는 소리와 함께 맹렬하게 날아가는 붉은 선에 조금은 기대하는 마음이 들었지만 바로 산산히 부서진다.

굉음과 함께 놈에게 날아가던 창대는 놈의 지척에서 튕겨져 나간다. 놈의 수많은 촉수 중 굵은 놈 하나가 후려쳐버려 창대는 애꿎은 바닥만 박살낸다.

"거대한 촉수 두 개가 방어를 전담하고 있어요! 저희도 이것 저것 시도해봤는데 먹히질 않습니다!"

어쩐지 공격보다는 방어에 치중하는 모양새라 했더니 그런 사정이 있었구나. 아까도 경고를 해줬던 여자 이능력자가 몸을 튕겨 올리며 양손을 모은다.

가녀린 양손 사이로 모이기 시작하는 빛줄기가 반원을 이루며 우웅하는 공명음을 낸다. 마치 달무리와도 같은 그 힘의 발현을 보고 속으로 감탄했다.3등급 이능력자 '달무리' 김수현! 전투 중에도 이런 저런 지시를 내리거나 경고를 하는 모습이 한가닥 하는 사람인가 했더니 유명한 사람이다. 과연 명불허전인지라 그녀의 손끝에서 회전하던 마치 달무리와도 같은 빛의 원반이 점차 크기를 불려간다.

"찌르거나 그런 것보다 베어버리는 게 차라리 효과가 있으니 다음 공격에!"

심상치 않은 에너지의 응집을 눈치 챈 건지 놈이 수십 가닥의 촉수를 뻗어온다. 이미 공중에 떠 있던 그녀라 위기다 싶었는데 근처에 있던 능력자들이 각기 그녀를 엄호한다. 화염줄기가 이어지고 바람의 칼날이 날카롭게 울어댄다.

나도 구경만 할 순 없던지라 손끝에 생명력을 집중했다. 평소처럼 구체적인 이미지가 아니었던 탓에 들쭉날쭉한 표면의 덩어리가 꿀렁거리다가 이내 납작하게 펴진다. 김수현의 공격이 꽤나 공을 들이는 것처럼 보여 나 또한 그에 맞추어 힘을 쏟아냈다. 볼품없는 모습이지만 날카로운 기운이 점차 크기를 불린다. 근처에서 정신없이 촉수공격을 회피하던 능력자들이 환호를 한다.

"이야. 대단한데요?"

아까부터 느낀 거지만 이치들 죄 고등급의 능력자인가. 처음 보는 몬스터랑 전투중인데도 묘하게 여유가 있다. 그러고 보니 김수현을 엄호하는 능력자들도 죄다 보기에만 급박해보일 뿐 나를 힐끔거리는 여유까지 보이고 있다.

"엄호를 부탁합니다!"

이들이 허접한 능력자들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막 던지려던 원반을 다시 크기를 불리는 데 집중했다. 거대한 해파리는 나 역시 위험인자로 인식했는지 촉수를 잔뜩 뻗어왔다. 내 외침에 진즉부터 근처에서 대기하고 있던 능력자들이 제각각의 방식대로 촉수를 차단한다.

김수현이 나를 힐끔 바라보더니 달무리를 급속도로 키우기 시작했다. 마치 나를 의식한 듯한 행동에 나 역시 원반을 불려나간다.

이런 전력이라면 의외로 쉽게 처리할 수 있겠다 싶어서 피식 웃음을 흘리는데 상황이 급작스럽게 변한다.

============================ 작품 후기 ============================으으. 어떻게 썼는지 기억도 제대로 안나네요. 일단 이번편까지 올리고 더 쉬어야겠습니다. 업무는 진즉에 마친 상태에서 글 쓰느라 몸이 더 악화되는 것 같아요 ㅜㅜ선작과 추천, 코멘트와 쿠폰은 골골거리는 글쟁이를 완쾌시키는 좋은 약입니다.

늘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몸이 어느정도 추슬러질 때까진 리코멘트 생략하겠습니다. 다음 편 쯤에 몰아서 할테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설문조사로 향후 스토리에 반영할 내용을 조사중이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설문조사로 향후 스토리에 반영할 내용을 조사중이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늘 읽어주시는 분들께 감사드리며, 몸이 어느정도 추슬러질 때까진 리코멘트 생략하겠습니다. 다음 편 쯤에 몰아서 할테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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