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 겨우 살았다 했더니... -- >
"누가 들이댔다고 그래!"
희창이놈이 소리를 지른다. 워낙에 정색하고 고함을 질렀던 탓에 전부 시선을 희창이게로 향한다. 내 앞에서 자신의 치부가 들어났다는 게 꽤나 분한지 부들부들 떨기까지 하는 모양새가 이제는 안쓰러울 지경이다.
"그냥 몇 마디 했더니 저 기지배가 오바 한 거라고!"
아. 자폭하는 구나. 이희창.
녀석은 술에 취한건지, 아니면 열이 뻗쳐서 그런 건지 자신이 무슨 말을 하는 지도 모르는 것 같다. 역시나 지은이가 얼굴을 확 붉힌다. 저놈 지은이한테 마음이 있었다면 다 텄다. 텄어. 멍청하기는.
하지만 단순히 무안해서라기엔 정도가 심한 희창이의 모습에 분위기가 싸늘해진다. 은정이도 이런 반응을 바랬던 게 아니라 당황하며 수습을 하려지만 희창이의 짓거리는 계속됐다. 나중에 가서는 숫제 동창들을 깔아뭉개듯 잘난 척에 비난을 한다. 녀석 때문에 꽤나 오래갈 법한 술자리가 그대로 끝이 나 버렸다.
나로서는 고맙다고 해야 하나?
끝까지 원망에 찬 눈빛으로 나를 노려보다가 가버린 희창이 놈과, 다음을 기약하며 자리를 뜬 나머지 동창들을 배웅하고 나니 벌써 시간이 새벽 두시에 가깝다. 탁자 위에 늘어진 소주병이니 뭐니를 보다 그냥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한다.
시간이 어느 정도 흐르자 참사가 어느 정도 진정이 되는 기미가 보인다. 우리나라 건설업체들이 얼마나 발 빠른지 괴수 출현 당시에 무너졌던 건물이나 시설이 거의 복구 되고, 나라 자체의 분위기도 잠잠해졌다. 뉴스에는 여전히 안개와 괴수, 이능력자들에 관한 사항들이 메인으로 나오고 있지만 유가족들을 제외하고는 얼추 나라가 정리가 되가는 분위기다.
분단국가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특성인지 뭔지. 어쨋건 마비되었던 사회 시스템이 제 기능을 하기 시작했다.
그 사이에 유니온의 연락이 몇 번 더 왔지만 강압적이거나 뭔가를 요구하거나 하진 않았다. 그저 시간 날 때 유니온으로 들려주십사하고 어찌나 공손하게 말하던지. 일전의 태도를 기억하는 내가 황당할 지경이었으니 얄팍하게 태도를 바꿔대는 그치들의 모습이 행동이 얼마나 가치 없는 지 알만하다.
유니온의 간부제의고 뭐고 그런 모습을 보면 정이 떨어진다. 지금은 이렇게 대우 해주다가 쓸모가 없어지거나 거슬리면 바로 똥 치우듯이 치우겠지.
망할 년 놈들.
이제 와서 새삼 열 받을 일은 아니지만 그간 당해왔던 설움 탓인지 자꾸만 복수를 하고 싶은 마음이 고개를 쳐든다. 하지만 아직은 때가 아니다.
나는 휴식을 하면서 생각을 정리하거나, 이능을 점검하며 최대한 시간을 짜임새 있게 보내려고 노력했다. 아직까지 파악이 다 되지 않은 유물의 힘이라든가.
안개 속 수많은 전투에서도 나를 버티게 해준 건 '가시찔레 꽃'의 힘이 제일 컸다. 몬스터들의 넘치는 생명력은 나를 먹지도 마시지도 않고 그 긴 시간을 버티게 해준 원동력이다. 하지만 역시나 오랜 시간을 전해져 내려온 유물답게 아직은 많은 것이 베일에 싸여있다. 그 남겨진 비밀들이 앞으로 내 힘이 될 것이다.
아직 힘이 부족하다.
내가 생각했던 계획을 이루기에는 나 자신의 힘도, 그리고 사람들도 부족하기만 하다. 아직은 크게 돌출되지 않은 나이니만큼 시간을 두고 조금씩 부족한 부분들을 채워 가면 되련만, 마음이 자꾸만 조바심이 난다.
저 멀리에서 웅크리고 있을 빌어먹을 안개와 괴수를 생각하면 자꾸만 마음이 조급해진다. '멸망을 지켜보는 눈'이니 뭐니, 저런 안개 따위로 끝일 리가 없잖은가. 안개와 몬스터 고작 그런 걸로 멸망의 괴수라는 이름을 얻지는 않았을 터. 앞으로 뭔가가 일어날 것 같은 예감에 자꾸 마음이 무거워진다.
정신 차려라 김형준. 지금은 할 수 있는 것만 생각하자.
그날은 갑작스럽게 찾아왔다. 군의 작전도 유니온의 계획도 아직은 지지부진하기만 한데. 그렇게 다시 한 번 이변이 일어났다.
마침 저번에 희창이 놈 탓에 아쉽게 헤어졌던 동창들. 기훈이, 은정이, 지은이, 연철이등과 함께 커피숍에 있던 와중에, 그것들을 가장 먼저 발견한 건 은정이였다. 호들갑스럽게 소란을 떨던 그녀가 갑자기 멍하니 창 밖을 보고 있다.
"야. 너는 한참 말하다가 왜 그래. 그래서 어떻게 했는데 희창이가."
대화라고 해봤자 소소하게 동창들 뒷담화나 하고 있었던지라 기훈이가 그녀를 재촉한다. 은정이는 그런 기훈이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고, 멍하니 창밖을 손으로 가리킨다.
"저.. 저거 뭐야?"
한창 수다 삼매경이던 나는 그녀의 손짓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가 그대로 몸이 굳어져버렸다.
"해.. 파리?"
커피숍에 있던 누군가가 중얼거린다. 서울의 하늘을 온통 뒤덮은 해파리 무리. 크고 작은 놈들이 바다를 부유하듯 떠다니고 있다. 수 천, 수만 마리는 될법한 놈들이 온 하늘을 가득 채우고 있다.
"우와. 이쁘다..."
누군가가 감탄해서 중얼거리지만 나는 이를 악물었다. 해파리? 저놈들은 그런 게 아니야. 끔찍하기만 한 놈의 본 모습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멍하니 하늘을 보고 있던 남자 하나가 바닥에 닿을 듯 내려온 작은 해파리에게 손을 가져다 댄다. 마침 손바닥 만한 놈이었던지라 꼬물거리며 행인의 손바닥에 올라선다. 꽤나 신기하게 놈을 바라보던 남자의 표정이 갑자기 굳더니 비명을 지른다.
"끄아아악!"
비명과 동시에 손끝부터 시작해 몸이 쭈그러든다. 투명한 놈의 몸을 통해 시뻘건 뭔가가 꿀렁대는 게 보인다. 손을 털어보아도 아무리 발버둥을 쳐도 떨어지지 않는다. 남자의 비명이 더욱 끔찍해져가다가 이내 바닥을 뒹군다.
"이런 씨발! 저게 뭐야!"
홀린 것처럼 그 광경을 보고 있던 기훈이가 욕을 토해낸다. 끔찍하게도 한참 버둥거리던 남자가 그 처절한 발악을 멈췄는데 그 모습이 추하기 그지 없다. 마치 미라와도 같은 모습으로 바닥에 몸을 눕힌 남자의 모습에 커피숍 여기 저기서 비명이 터져나온다.
그 비슷한 광경이 거리의 이곳 저곳에서 일어난다. 손 쓸 틈도 없이 일어난 참사에 나는 비명이라도 지르고 싶은 지경이다.
"저.. 저게 뭐야!"
마치 비명과도 같은 의문. 이 곳에서 저 해파리의 정체를 아는 건 나 밖에 없다. 잠시 주변을 둘러보니 커피숍 안의 손님들이 전부 공포에 질려있다.
탁.
흐물거리며 하늘을 부유하던 해파리 몇 마리가 창가를 들이 받는다. 힘아리 하나 없는 동작이고 여유로워 보일 정도로 느릿한 광겅이지만 사람들이 놀라서 비명을 지른다. 그렇게 한 마리, 두 마리 늘어나던 해파리가 창을 온통 가릴 정도로 다닥다닥 달라붙었다.
"다들 창에서 떨어져!"
진즉부터 창가에서 멀어진 몇몇을 제외하고는 겁에 질려 있던 일행이 와당탕 자리에서 일어나 안쪽으로 물러선다. 내 고함을 기점으로 사람들이 우르르 창에서 멀어지는데 섬뜩한 소리가 들린다.
쩍.
작기만 한 소리라 신경쓰지 않으면 듣지 못할 소리지만, 내게는 천둥보다 더 커다랗게 들렸다. 통유리도 된 창에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한다. 그저 달라붙어 있을 뿐인 해파리 무리지만 유리가 쩍쩍 갈라진다.
"이런 썅."
나도 모르게 욕이 튀어 나온다. 온통 패닉에 빠진 사람들 뿐인데 일행들도 그리 다르지 않은 모습이다. 멀리 떨어져 바들바들 떠는 모습들이 제대로 도망이나 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잠시 고민하던 나는 서비스빠에 다가가 나이프를 집어 들었다. 혼란에 빠진 와중에도 은정이가 나를 바라본다.
"혀.. 형준아?"
겁에 질린 음성이 애처롭기만 하다. 나는 쓴웃음을 한 번 짓고는 일행에게 당부했다.
"지금부터 가급적이면 움직이지 말고. 내 시야를 벗어나지 않도록 해. 그리고 절대로 저 놈들이 몸에 닿지 않게 하고."
날카로운 나이프를 팔뚝에 가져다대며 말하자 일행들의 눈에 의문이 서린다.
"혀.. 형준아. 뭐 하려고. 위험하게 왜 칼을..."
무슨 끔찍한 상상이라도 한 건지 나를 만류하는 지은이. 가까이 다가오는 그녀를 바라보며 나는 손목을 그었다.
"꺄악! 형준아!"
지은이 뿐만 다른 일행들마저 비명을 지르며 내게 달려온다. 그런 그들이 순간 걸음을 멈추고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내 몸에 하나 둘 들러붙기 시작하는 붉은 덩어리들이 이내 전신을 휘감고 붉은 갑옷의 형상을 한다.
이미 내가 이능력자라는 사실을 알고 있던 기훈이만이 그제야 반색을 할 뿐, 다른 일행들은 워낙에 급박하게 변하는 상황 탓에 아예 정신을 놓은 듯 했다.
"절대로 내 시야에서 벗어나지 마."
내가 일행에게 다시 한 번 당부를 하는 데 커피숍의 이곳 저곳에서 소란이 일어났다.
"능력자다!"
"저 사람 뉴스에 나온 그 사람이야!"
웅성대며 호들갑을 떨던 사람들이 순식간에 내 주위로 몰려든다. 그간 뉴스에서 하도 많이 나왔던 모습이었던지라 괴물이니 뭐니 소란은 일지 않았다. 어차피 내 일행만 보호 할 수도 없었던 터라 내친김에 일행의 곁으로 사람들을 몰아 넣었다.
"대한민국 이능력자 유니온 소속 김형준입니다. 제 말을 따라주시면 큰 위험 없이 집에 돌아가실 수 있을 겁니다."
일단 사람들이 집단 공황상태에 이르지 않도록 되는 데로 지껄이니 금세 환호가 터져 나온다.
"이 근처를 절대 벗어나지 마시고 혹시라도 놈들이 가까이 다가오면 절대 몸에 닿지 않도록 하십시오."
대충 사람들에게 당부를 하고 나니 쩌적거리는 소리가 이제는 꽤 커다랗게 들려온다. 몸을 돌려 한 쪽 벽을 가득 채운 통유리와, 그 너머 끔찍할 정도로 바글거리는 해파리들을 노려봤다.
"어! 어!"
뒤편에서 사람들의 당황한 음성이 들려온다. 갑작스레 그들을 둘러싼 붉은 벽에 놀란 듯 하다. 만약을 대비해 설치한 장벽인데 미처 설명하지 못했던 탓에 사람들이 꽤나 놀란다. 사람들이 신기한 듯 바라보는 저 반투명한 막은 순전히 내 생명력의 결정체이며 혹시 모를 위급 사태를 막아줄 최후의 장벽이다.
썰물처럼 빠져나가는 생명력이지만 예전과는 다르게 현기증이 나거나 하진 않는다. 그간 꾸준히 흡수한 몬스터들의 생명력 탓인지 뭔지. 나는 예전의 김형준이 아니다.
"콜싸인 '피바라기' 김형준. 마포구 서교동에서 해파리형 몬스터와 조우. 민간인들을 보호하기 위해 전투 들어갑니다. 조속한 지원 바랍니다."
미우나 고우나 해도 이럴 때 기댈 건 유니온 밖에 없던지라 핸드폰을 꺼내 긴급 연락망에 지원을 요청했다.
'유니온입니다. 현재 서울 전체가 난리라 빠른 지원은 불가능하지만 인력을 최대한 돌려보겠습니다.'
미덥지 않은 응답이지만 애초에 온 하늘을 뒤덮은 해파리들을 본 뒤라 납득하고 통신을 종료했다.
콰장창!
타이밍도 기막히게 박살나는 유리창들.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은 놈들이 넘실거리며 다가오기 시작했다.
============================ 작품 후기 ============================공지를 한지 얼마나 됐다고 한편만 올리는 저를 용서해 주세요.
남미 사는 교포인데 시차가 12시간입니다. 한국보다 딱 반나절 느리죠.
업무 시간에 글을 써서 올리는 건데 늘. 오늘은 일은 일대로 많고 몸상태가 최악이네요.
머리는 아프고 속도 뒤집히고, 죽겠습니다. 도저히 글을 쓸만한 상태가 아니네요.
원래는 두편을 투척했어야 하는데 일단 한편만 올립니다. 몸이 좀 나아지면 바로 한두편 더 업뎃 하겠습니다.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늘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