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 겨우 살았다 했더니... -- >
"김형준씨 아직 제 말이 이해가 안 가시나본데, 이런 불성실한 태도라면 이제껏 해왔던 유니온의 모든 지원이 끊긴단 말입니다. 마지막 변이 억제 시술을 받은 게 언제죠? 꽤 된 걸로 알고 있는데 이런 식이라면 몬스터 에그고 뭐고 시술 자체가 불가능합니다."
몬스터 에그라. 내가 전에 그렇게도 악착같이 모았던 몬스터 에그는 유니온이 능력자의 변이 억제 시술을 할 시에 들어가는 재료다. 어떤 원리로, 어떻게 시술을 하는지는 모르나 이제 와서 무용한 것이기도 하고.
나는 말없이 방으로 들어가 그 지옥 같았던 순간에도 억척스럽게 모아둔 몬스터 에그들을 꺼내왔다. 그리고 내가 하는 짓거리를 멍하니 보고 있던 남자의 면상에 그 몬스터 에그들을 집어 던졌다. 꽤나 힘을 줘서 던졌던지라 남자가 으억하고 얼굴을 감싸 쥔다.
"이런 참새 뭐만한 새끼야! 어디 같지도 않은 새끼가 와서 협박질이야!"
사납게 윽박지르니 남자가 금세 히끅 거리며 바닥에 주저앉는다. 햐. 이 자식 완전 쓰레기잖아? 유니온만 믿고 거들먹거리는 놈들 중 하나네.
완전히 겁 먹어버린 듯 일어설 생각조차도 못하고 나를 올려다보는 남자를 일으켜줬다. 친절하게 멱살을 잡아들어서 말이지.
"억!"
남자가 억눌린 신음소리를 내뱉었다. 나는 그런 남자에게 바짝 얼굴을 가져다댔다.
"저는 유니온에 출두할 생각이 아직 없으니, 그냥 돌아가서 내가 나중에 찾아간다고 전해주세요. 이 비루먹은 똥개 같은 새끼야."
괜스레 옷을 털어주는 시늉을 하며 그의 가슴팍을 팡팡 후려치니 그가 억 하는 신음소리를 내며 휘청거린다.
"알았으면 가보시라니까요. 이 새끼야."
내 말에 뒤도 돌아보지 않고 도망치듯 나가는 남자다. 그런 남자를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나는 고개를 돌렸다. 발치에 굴러다니는 몬스터 에그들을 보며 인상을 찡그렸다. 그리고 쭈그리고 앉아서 몬스터 에그들을 주웠다.
그냥 보여줄 걸. 괜히 폼 잡다가. 그래도 속은 후련하네.
궁시렁 거리며 바닥에서 굴러다니는 몬스터 에그를 주워 다시 방에 가져다 놨다. 잠시 거실에 앉아 생각했다.
민아년은 싸가지는 없었어도 저렇게까지 강압적이진 않았었는데, 어디서 저런 같지도 않은 놈을 보낸단 말인가. 괜스레 무시당한 기분에 입술을 곱씹는데 용모의 전화가 왔다.
"요오옹모!"
장난스럽게 그의 이름을 부르자 그가 질색을 한다.
"그렇게 부르지 말랬지! 아 징그럽게."
오바 하기는. 피식 웃으며 그에게 전화한 용건을 묻는다.
"지금 유니온의 사람이 다녀갔지?"
어따. 소식도 빠르네. 간지 30분도 안됐는데 어떻게 벌써 알았데. 신기하다는 듯 물어보자 그가 짐짓 우쭐대며 말한다. 처음에는 이런 놈이 아니었는데 저 안에서 많이도 망가졌구만. 마치 날 선 군인과도 같았던 그가 이제는 시정잡배처럼 껄렁거린다.
"네 일이야 신경 쓰고 있었으니까. 이래 뵈도 3등급의 고위 이능력자라고. 어쨋건 이번에 소집에 늦장 대응한 사람들하고 몇몇 사람들을 대상으로 유니온이 본보기 차원에서 경고를 할 예정이야. 너야 일단은 여론도 있고 트집잡을만한 게 별로 없으니 별개지만."
간단하게 유니온의 분위기를 설명해준 용모가 통화를 종료한다. 사실 예상하고 있었지만 소집에 늦장을 부린 이능력자들을 상대로 본보기를 보여준다니 새삼 유니온의 횡포에 치가 떨린다. 미국이나 영국 같은 서방국가들은 이능력자를 대우해준다는 데 유독 중국과 일본, 우리나라만이 강압적인 태도를 유지한다. 마치 군대와도 같은 수직적인 구조로 내리 찍어 누르기 일쑤지만 태생적인 약점이 있으니 따를 수밖에. 이능력자의 태생적인 약점, 그건 잦은 이능력의 발현 뒤에 찾아오는 변이 내지는 폭주다. 우리끼리는 먹혀버린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나약한 인간의 육신이 자신의 힘을 감당하지 못해 무너지는 현상이다.
빠르든 늦든 간에 언제고 찾아올 이 상황은 이능력자들이라면 누구라도 두려워 마지않는데 고등급의 능력자일수록 그 정도가 심하다. 더 큰 힘일수록 폭주 시에 감당하기가 어려우니 저등급의 이능력자들보다 고등급의 이능력자들이 더욱 불안에 떨 수밖에. 그런데 그 변이를 억제시킬 비술을 유니온에서 쥐고 있다. 우리가 이를 갈면서도 유니온의 지시에 따르는 이유다. 뭐 가끔가다가 이능을 술법으로 응용한 김도연 같은 변종들이 있지만, 그래도 대부분의 이능력자는 유니온에게 순종적일 수밖에 없는 이유가 거기에 있다. 그렇다고 마냥 찍어 누르자니 이능력자들의 기질이 만만치 않고, 당근과 채찍을 번갈아 휘두르는 유니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름을 날리는 능력자들이 많으니 불가사의한 우리나라일세. 어쨋건 나는 지금 그 모든 굴레에서 벗어났으니 유니온에게 더 이상 절절 맬 필요가 없다. 조금 시간이 지나자 누군가 다시 초인종을 눌렀다. 인터폰을 확인하니 윤민아 그녀다.
"여어. 웬 일이야. 나 당분간은 유니온에 찾아갈 생각 요만큼도 없는데."
딱히 지금에 와서 그녀에게 불만이 있다거나 하진 않았지만 그간 이뤄놓은 관계가 이따위인지라 곱지 않게 그녀를 맞이했다. 그런데 그녀의 반응이 뭔가 이상하다. 평소라면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용건을 꺼냈을 그녀가 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입구에서 서성거린다.
"뭐야. 용건 있어서 온 거 아니야?"
우물쭈물하는 그녀가 답지 않아서 핀잔을 주니 그녀가 입을 오물거린다. 막 그녀가 입을 열려는 찰나 처음 보는 인물이 문 뒤에서 나타났다.
"당신이 김형준인가? 나 서울지부장이다. 반갑다."
30대 중반이나 됐을까 화려한 인상을 가진 미녀가 갑자기 나타나 인사를 하는데 본인이 지부장이란다. 그냥 얼핏 보면 농염한 미녀처럼 보이는 그녀가 유니온의 지부장이라니.
"아. 안녕하세요."
얼떨떨한 얼굴로 마주 인사를 하니 그녀가 넉살 좋게 지껄인다.
"찾아오라고 해도 원체 찾아오질 않으니 우리가 오는 수밖에."
권태로운 표정을 해 보인 그녀가 청하지도 않았건만 불쑥 집 안으로 들어선다. 어쩔 수 없이 거실로 자리를 안내하는데 윤민아 이년이 망부석이라도 된냥 움직일 생각을 안한다.
"뭐해. 그냥 갈 거 아니면 들어와."
내 말에 그제야 신발을 벗고 거실로 들어서는 그녀다. 평소와는 다르게 불안해 보이는 모습의 그녀라 의아했지만 요즘 워낙 정신이 없으니 그런가보다 했다. 불청객이지만 손님은 손님인지라 마실 것을 대령하고 자리에 앉았다.
"그런데 무슨 일로 오셨습니까."
어차피 삐딱선을 타기로 한 나지만 지부장이나 되는 사람에게 껄렁댈 수는 없던 차라 나름 조심스럽게 말을 꺼낸다.
"뭐 말하지 않았나? 물어볼 말이 있어 오라 했더니 찾아올 생각이 없는 것 같아서 우리가 왔지"
제 집도 아니건만 태연하게 품에서 담배를 꺼내 무는 그녀다.
"저희 집은 금연입니다만."
내 말에도 그녀는 아랑곳하지 않고 담배에 불을 붙인다. 길게 담배를 빨아 마신 그녀가 쇼파에 몸을 깊게 파묻는데 그 꼴이 마치 자기 집 안방이라도 되는 냥 당당하기만 하다.
"왜 지부를 찾아오지를 않지?"
단도직입적으로 묻는 그녀의 말투가 나른하기만 하다. 하지만 풍기는 기세는 전혀 반대의 것이라 진땀이 삐질 나온다.
이게 이야기만 듣던 2등급 능력자의 위엄인가. 나도 모르게 몸이 굳는다.
"그저 간단하게 질문 몇 가지만 하려 했건만 일을 이렇게 번거롭게 만들다니, 뭐 같잖은 반항심인가?"
유니온의 입장과 똑같은 강압적인 태도라 순간 긴장이 사라지고 화가 치민다. 하지만 지금 화를 내봐야 얻을 것도 없는지라 최대한 침착하게 그녀의 말을 받았다.
"간단하게 질문 몇 가지만 하려면 전화로도 가능합니다만, 사지에서 갓 살아 돌아온 사람한테 오라 가라. 별로 마음에 들지 않는군요."
참기로 마음먹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태도에 울화가 솟구쳤다. 나도 모르게 나오는 말이 고깝기만 하다. 내 말에 그녀가 눈썹을 꿈틀 하더니 어깨를 들썩인다. 키득거림으로 시작했던 그녀의 어깨짓이 이내 폭소로 바뀐다.
"뭐 하시는 겁니까."
비웃음이라도 당한 듯 해서 기분이 말이 아닌데 그녀가 여전히 웃음을 멈추지 않고 말한다.
"아니. 노는 꼴이 원체 귀여워야지. 푸핫."
노골적인 무시다. 원래 고등급의 능력자들이 괴팍하고 거만한 면은 있지만 정도를 지나친 그녀의 행동에 슬슬 인내심이 바닥나려고 했다.
"아. 미안. 이거 기분 나빴다면 사과하지."
내가 노골적으로 기분이 상했다는 티를 내자 그녀가 사과를 해온다. 아직까지 채 멈추지 못한 웃음기가 그리 진심으로 보이진 않지만 일단 화를 가라앉힌다.
"그래. 기분도 안 좋은 거 같은데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지. 원래는 다른 걸 물어볼 계획이었지만 생각이 달라졌어."
고개를 끄덕이며 그녀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그 안개 속에서 뭘 봤지? 그리고 뭘 얻었고."
방금 전과는 판이하게 다른 그녀의 눈빛에 진땀이 흐른다. 사냥감을 앞에 둔 암표범과도 같은 매서운 눈길에 담긴 기세가 만만치 않다.
"우리 직원한테 몬스터 에그다발을 던졌다지? 그거 당신 입장에서는 그렇게 함부로 할 게 아닐 텐데."
같잖게 뻣대던 남자에게 울컥해서 한 짓인데 그녀의 질문을 받고나니 후회가 들었다. 너무 경솔한 행동이었던가.
"변이 억제를 들먹이며 하는 꼴이 하도 같잖아서 홧김에 한 행동입니다.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닙니다."
애써 변명을 하려 하지만 이미 물은 엎질러진 후. 그녀의 눈빛이 더욱 날카롭게 빛난다.
"아냐. 아냐. 그런 게 아니야."
나른한 말투로 고개를 흔드는 그녀의 모습에 애써 태연을 가장했다.
"이제는 억제시술이 필요 없어진 거겠지."
정곡을 찌르는 그녀의 말에 몸이 굳는다. 내가 그러거나 말거나 그녀가 권태로운 표정으로 말을 잇는다.
"안개 속에서 뭘 얻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짐작 가는 게 하나 있어."
그녀의 눈빛이 깊게 가라앉았다. 담배를 길게 내뿜은 그녀가 몸을 일으켜 내게 바짝 다가선다. 코라도 맞닿을 듯 얼굴을 들이댄 그녀가 한자 한자 내뱉는다.
"각성이라도 했나?"
그녀의 단도직입적인 말에 숨이 탁 멎는다. 태연을 가장하려 했지만 정확하게 흉중을 꿰뚫는 그녀의 말에 단번에 가면이 깨져버린다.
"이런. 이런. 얼굴을 보니 자신이 처음으로 각성한 줄 알기라도 했나봐?"
조롱기 다분한 그녀의 음성이지만 화조차 나지 않는다.
"각성하고나자 사람들이 우스워보였겠지. 힘도 생겼겠다, 우쭐거리는 마음도 있었을 거야. 여태 자신에게 이래라 저래라 하던 유니온도 고까웠을 테고."
차분하게 지껄이는 모양새가 마치 내 속을 파헤치는 듯 해 차라리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그녀의 조롱은 계속 된다.
"꼴을 보니 한 2등급정도로 각성했나보지?"
그녀의 말에 갑자기 머리가 차갑게 식는다. 2등급. 그래 2등급이라. 눈을 뜨고 그녀의 얼굴을 똑바로 쳐다보는데 더 이상 그 어떤 위압감도 느껴지지 않았다. 그간 4등급으로 너무 오랜 시간을 보냈던 차라 순간적으로 잊고 있었다.
나 역시 지부장과 같은 2등급의 힘을 손에 얻었다. 내가 꿇릴 이유가 전혀 없다. 움츠러들었던 어깨가 펴지고 자신감이 돌아왔다. 갑작스럽게 속내를 들켰던 탓에 위축됐던 나는 다시 평상심을 찾았다.
아아. 이게 다 노동자 근성이야.
한창 잘난 듯이 떠들고 있던 지부장이 내 변화를 보고 눈을 크게 뜬다.
"꽤나 잘난 듯이 떠들어대는 군요. 그래서 용건이 뭡니까. 제 각성에 대해서 어쩌구저쩌구 말이 많으신데 대답해줄 생각 없으니 본론이나 꺼내시죠."
그녀가 우리 집에 들어선 이후로 처음으로 보이는 공격적인 태도라 그 나른한 얼굴에 처음으로 당혹이 깃든다.
"아. 안개 속에서 뭘 봤냐고 했었습니까? 몬스터를 봤지요. 수십, 수백, 수천마리는 되는 몬스터를 봤습니다. 뭘 얻었냐고요? 별로 대답하고 싶지 않군요. 이제 질문 더 없습니까?"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말에 스스로 쾌감을 느낀다. 회사를 그만두면서 상사에게 들이받는 직장인의 심정이 이런 걸까. 멈추려 하지만 입이 멈추질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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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차 없이 3편 연달아 투척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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