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3. 겨우 살았다 했더니... -- >
3등급 몬스터들 중에 '이무기'라는 놈이 있어. 진짜 끔찍한 놈이야.
아 다들 알지? 이무기가 뭔지. 그래. 그놈이야. 용이 되다만 놈인데 얼추 뱀처럼 생긴 놈이지. 근데 이게 말로만 들어선 용도 못 된 놈인데 뭐가 무서워 할 수도 있는데 막상 마주쳐보면 그게 아니란 말이지.
일단 크기부터가 어마어마 해. 그래. 딱 지하철 만하다고 보면 돼. 또 머리통은 기형적으로 큰데 그게 거의 집채만 하다니까. 가분수 주제에 행동은 또 얼마나 날랜지 재앙 자체라고.
그래. 어쨋건 그놈이 우리 앞에 나타난 건 우리들도 막 싸움에 익숙해질 무렵이었어. 그때까지만 해도 꽤 많은 수가 살아남았던 전우들 탓에 그래도 꽤 견딜만 했었는데 그날 놈이 나타난 거야.
끔찍했지.
놈은 나타나자마자 대뜸 가장 앞에 있던 이능력자를 덥썩 물었지. 음흉하게도 그 커다란 덩치랑 어울리지 않게 소리 없이 나타난 탓에 아무도 몰랐던 거지.
불쌍한 희생자는 주먹에 화염을 휘감고 꽤나 잘 싸우던 남자였는데 가엾게도 단번에 놈의 목구멍으로 넘어가버렸어. 능력자들 이야기를 들어보니 5등급에 속하는 꽤나 강한 사람이었다는데 비명도 지르지 못하는 꼴이 끔찍했지.
어쨋건 그렇게 나타난 놈 탓에 우리는 패닉에 빠졌어. 날고 긴다는 능력자들조차도 겁에 질려 있었으니 평범한 군바리인 우리들이야 어땠겠어. 모르긴 몰라도 몇놈은 바지에 오줌까지 지렸을 거야. 나도 찔끔 했거든.
놈이 그 끔찍한 뱀 눈깔로 우리를 바라보는데 진짜 무서웠다니까. 마치 디저트를 앞에 두고 고민하는 눈빛이라 손발이 사시나무 떨리듯 떨렸었어.
그래. 그땐 진짜 끝 인줄 알았어.
붉고 하얀 그림자가 놈에게 달려들기 전까지는 말이지.
막 우리를 보며 침을 흘리던 놈에게 이능력자 둘이 달려들었어. 붉은 갑옷을 두른 남자랑 늑대하고 인간을 반씩 섞어둔 것 같은 남자 하나. 그 둘이 놈에게 겁도 없이 달려들었었지.
응. 맞아. 그 유명한 '피바라기' 김형준이랑, '하얀 송곳니' 민용모야. 지금이나 그 둘이 유명하지 당시만 해도 난 미친놈들이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했다니까.
어쨌든 그렇게 이무기에게 달려든 둘 덕에 사람들도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지. 서른명 정도 되는 이능력자들이 놈에게 달려들었어. 우리? 서 있는 게 고작이었지. 당장 콧김만 뿜어도 우리는 죽어버릴 거 같은데 어떻게 달려들어. 그리고 변명은 아니지만 처음에 달려들었던 김형준과 민용모 둘을 빼고는 능력자들도 반쯤 정신이 나간 상태에서 덤벼든 거라고. 내가 봤거든. 그 사람들 눈 풀려 있었어. 이렇게 맛이 가 있었다니까. 물론 그런 상태에서도 용케 괴물한테 달려든다는 게 대단하긴 했는데 그게 그 사람들 일이라면서.
아. 자꾸 말 끊지 말라니까.
어쨌건 능력자라는 사람들이 놈에게 달려들고 싸우는데 완전 장관이더라고. 불덩이가 날라다니고 얼음이 깨지고, 전기가 파지직 거리고. 영화더라니까 영화. 물론 그때는 겁에 질려서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었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좀 더 자세히 볼걸 하고 후회가 된다니까.
다들 무슨 영화 속 주인공처럼 쾅쾅 거리면서 괴물을 들이받는데, 그 거대한 놈이 찔끔 거리더라니까. 그 중에서도 특히 김형준하고 민용모 이 두사람의 활약이 압권이었어.
민용모라는 사람은 안개가 생긴 후로 언제부턴가 늑대인간 상태로 있었는데 그날도 그 모습으로 괴물에게 달려든 거야. 손에서 막 사람 키만 한 손톱을 뽑아서 휘두르는데 그게 괴물의 몸에 닿을 때마다 괴물이 몸부림을 쳤어. 또 동작은 어찌나 날렵하던지. 진짜 장난 아니었다니까.
김형준? 장난해? 그 사람은 사람이 아니야. 겉모습부터 새빨간 갑옷 비슷한 걸 두르고 괴물에게 달려드는데 포스가 장난이 아니었다니까. 민용모하고는 다르게 이 사람은 좀 비현실적으로 싸우더라고. 민용모가 좀 스케일 큰 격투기라면 이 사람은 뭐랄까. 말로 설명하기가 힘들어.
언제 꺼냈는지 모르게 도끼며, 칼이며 또 창을 찌르고 베어대는 데 크기도 커졌다 줄었다가 마음대로인 게 꼭 손오공의 여의봉 같더라고. 민용모가 내지른 손톱은 사람 만하다고 했지? 김형준이 쓰는 무기들은 크게는 거의 오미터는 넘어가더라고. 그렇게 사이즈가 크니 괴물도 공격을 받을 때마다 괴성을 질러댔어.
다른 이능력자들은 이 둘에 비하면 차라리 초라할 지경이었다니까. 번개고 얼음이고 불덩이고. 그렇다보니까 이 괴물도 두사람만 신경쓰더라고. 어찌나 약올라 보이던지 보는 내가 안쓰러울 지경이었어. 아 물론 말이 그렇다는 거야. 지하철만한 뱀이 뭐가 불쌍해. 끔찍하기만 하지.
우리는 그 광경을 보고 금방이라도 괴물이 쓰러질 줄 알았거든? 근데 그게 아니더라고. 이능력자들의 공격이 꽤나 아픈 것 같아보였는데 놈이 당최 쓰러질 생각을 안 하는 거야. 한참이나 그렇게 투닥거리는데 우리가 보기에도 느껴질 정도로 이능력자들이 지쳐가기 시작했어. 주변을 알짱거리면서 김형준과 민용모가 공격할 기회를 만들어주던 능력자들이 어느새 하나둘 나가 떨어지기 시작했지.
얼음을 쓰던 남자는 놈의 몸통에 깔려 죽었고, 전기를 뿜어내던 남자는 한입에 삼켜져 버렸어. 그리고 꽤나 이쁜 여자였는데 특이하게 박치기를 쓰던 여자가 있었는데 그 여자도 곧바로 놈의 입속에 먹혀버렸고. 어느새 정신을 차리니 서른 명은 되던 능력자들의 수가 스무 명도 안 돼는 거야.
그제서야 다시 겁이 나기 시작했지. 이대로 저치들이 져버리면 우리 차례구나 하고. 도망갈 생각도 해봤는데 도망가 봐야 안개 속이라 언제 다른 괴물들한테 당할지 몰라서 벌벌 떨고만 있었어. 한심하게 보지 마. 너도 내 입장이었다면 마찬가지였을 테니까.
그래서 어떻게 됐냐고? 그래 어떻게 됐냐면 말이야... -------------------안개 속에서 생환한 어느 병장이 동기들에게 해 주는 무용담 중..... 그곳에서 돌아 온지 벌써 삼 일째, 아직도 실감이 제대로 나질 않는다. 정말 끝이라고 생각했었는데 이렇게 멀쩡하게 살아 돌아오다니.
당분간은 부모님 댁에서 지내기로 결정했다. 워낙에 걱정이 태산 같으신 상황이라 도저히 오피스텔로 돌아가겠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내 생각 역시 부모님의 생각과 다르지 않았고.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는 이 강박증이 사라지기 전엔 돌아갈 가능성은 없겠지.
거실의 쇼파에 누워서 뎅굴거리며 뉴스를 시청중이다.
'삼일 전에 귀환한 생존자들을 제외하고는 더 이상의 추가 생존자는 발견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만큼 치열했던 상황을 알려주는데 군당국에서는 생존한 병사들의 증언을 토대로 이능력자들과 다시 한 번 합동 작전을 준비하고 있다고....'
어디를 틀어도 뉴스에서는 온통 생존자들 이야기와 괴수 이야기뿐이다. 일산 시민들을 제외하고도 작전에 동원된 군민의 희생자가 만 단위를 넘어간다. 아직도 실종자로 분류된 희생자들의 수가 꾸준히 사망자로 옮겨가는 와중이라 온 나라가 초상집 분위기다.
유니온에서 연락이 벌써 몇 차례나 왔었다.
담당자가 바뀌었는지 민아 그녀가 아닌 생소한 남자의 음성이었는데, 유니온의 인사답게 고압적인 태도 일색이었다. 도저히 사지에서 생환한 사람을 대하는 투가 아니라 한번 승질을 부리고 나서는 더 이상 연락도 받지 않고 있다.
난 예전의 김 형준이 아니라고. 이제 더 이상 그들에게 끌려다닐 만한 이유도 없던 차라 시원스레 성질을 부렸더니 스트레스가 풀릴 지경이다.
그 사이 김도연의 연락이 한차례 왔었고, 용모를 비롯한 유니온 소속의 능력자들에게도 연락이 몇차례 왔었다. 희선씨에게도 연락이 꽤 왔었고.
김도연은 근접전 대응력이 취약한 관계로 1차 소집에 응하고도 전장에 투입되지 않았다고 한다. 덕분에 몸은 편했는데 유니온의 압박이 장난이 아니라 꽤 스트레스를 받았다고 하는데 통화 끝에 가서야 생환 축하한다고 말하고 끊어버렸다. 부끄러워 하는 건가.
용모를 비롯한 이능력자들은 조만간 회합을 가지기로 하고 그저 안부 차 전화를 했던 거고. 아. 유니온의 보고에 일부러 누락시킨 부분들에 대해 한 번 더 보안을 서로 다졌으니 그저 안부전화는 아니었구나.
희선씨와의 통화 이후 머리가 복잡하다. 그녀에게는 단지 두 달에 불과한 시간이었겠지만 나에게는 억겁과도 같았던 시간이다. 이제는 내가 그 속에서 보낸 시간이 얼마인지 도저히 알 수 없게 되어버렸지만 두 달보다는 길었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녀와의 통화에서 더욱 뼈저리게 느꼈지. 마지막의 애틋한 감정을 아직도 드러내는 그녀였지만 내 입장에서는 글쎄... 지옥 같았던 시간 속에서 그녀에 대한 감정도, 또 시간도 희미해져버렸다. 애초에 오랜 시간도 아니었고 잠시간의 교감일 뿐이었으니. 조금 미안한 감정도 없잔아 있었지만 뭐 어쩌랴. 이미 내 마음이 이런 것을.
이런 저런 일을 생각하며 머리를 정리한다.
저 지긋지긋한 안개는 우리가 돌아온 날 이후로 더 이상 옅어지지도 더욱 영역을 넓히지도 않았다. 그저 일산을 중심으로 웅크리고 있을 뿐. 멸망의 괴수니 뭐니 거창하게 떠들었던 것에 비하면 꽤나 잠잠한지라 불안감이 가중되지만, 뭐 유니온이 알아서 하겠지.
게다가 비틀림이 일어났던 몇몇 국가를 제외하고는 별 이변이 없던 국가에서 대대적으로 지원 병력을 보내기로 했으니 크게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아무리 내가 저 속에서 얻은 것이 많다 하더라도 결국은 나는 개인일 뿐이니까. 고민하고 궁리해봐야 변하는 것은 없다. 그저 위쪽의 높으신 분들이 현명하게 이번 사태를 해결하기를 바랄 뿐.
그렇게 폭풍 전의 고요함과도 같은 위태위태한 평화가 이어진다. 이제는 군도 유니온도 일산을 또 다른 D섹터로 인식하고 M섹터라고 명명했다. MIST의 약자인지 MONSTER의 약자인지는 모르겠지만 또 다른 위험구역이 설정되고 사람들도 익숙해지고 있다.
흉흉한 나라 분위기야 여전하지만 직접적인 피해를 보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그저 또 하나의 비무장지대 비슷한 것으로 인식되고 그렇게 시간이 흐른다.
물론 그 와중에 생환한 이능력자들과 군인들이 영웅취급을 받기도 하고 실제로 영웅적인 행보를 보인 몇몇 이들이 매스컴을 탔다. 각종 매체를 통해 소개된 그들의 고결한 업적이 그들을 유명인사로 만들었다.
나 역시 그런 이들 중 하나다.
연일 매스컴에서는 '피바라기'가 언급되고 내가 치뤘던 전투들이 목격자들을 통해서 퍼져나가고 있다. 지난 번 유니온의 작업으로 인해 가뜩이나 유명했던 내가 이번 사건을 통해 거의 국민적 영웅으로 떠오르고 있다.
매스컴과 각종 단체에서 음으로 양으로 내게 접근을 해온다. 나야 뭐 생각해둔 게 있으니 이런 저런 핑계로 그들의 제안을 애매하게 거절하는 중이지만. 조만간 그들의 요청을 받아들이리라.
그렇게 평화로운 휴식기를 만끽하고 있던 나는 불청객을 맞이했다.
유니온의 인사는 예고도 없이 들이닥쳤다. 부모님이 외출 중이던 터라, 거실에서 뒹굴거리던 나는 그들의 방문에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 내 고까운 표정을 보고 와락 얼굴을 일그러트린 남자가 지껄인다.
"김형준씨. 유니온의 직속은 아니지만 한국 유니온에 소속된 사람으로서 너무 한 거 아닙니까? 이렇게 의무를 다 하지 않아서야 어찌 대한민국 유니온의 이능력자라고 하겠습니까."
대뜸 고압적으로 말을 내뱉는 그의 태도에 나는 차라리 어이가 없어 피식 웃었다. 내 웃음에 기분이 상한 그가 은근하게 협박을 해온다.
"지금 매스컴에서 영웅이다 뭐다 떠받들어서 어깨에 힘 들어가는 건 이해하는데, 그 국민들이 김형준씨가 가지고 있는 본질적인 문제를 해결해주진 못하죠. 당신의 문제
는 유니온만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걸 아실 텐데 왜 이러실까."
말끝에 가서는 비릿한 미소를 짓는 그 모습이 구역질 난다. 이제껏 이능력자들의 변이를 막아준다는 핑계로 얼마나 착취를 해 왔는지 그 썩은 냄새에 취한 이런 작자가 생기는 거겠지.
내가 아무 말 없이 자신을 바라보자 자신의 협박이 통했다고 생각한 남자가 비열한 미소를 짓는다.
"아. 물론 유니온에서도 그간의 공로를 인정해서 이런 불성실한 태도는 문제 삼지 않을 테니 이제라도 유니온에 출두해서 몇 가지 질문에 답을 좀 해주시는 건?"
제 딴에는 꽤나 아량이라도 베푼다고 생각했는지 그 간사한 얼굴에 나름 상냥한 미소를 지어 보이는 남자다.
나는 여전히 대답을 하지 않았다. 그제야 침묵으로 일관하는 내 태도가 미심쩍어졌는지 남자가 의아한 표정을 짓는다.
============================ 작품 후기 ============================으하하핫!
연참입니다. 선추코쿠는 언제나 저를 연참하게 만듭니다!
사랑합니다 독자님들!
선작과 추천 코멘트와 쿠폰을 주신 모든 분들께 애모의 감정을 전합니다.
사랑해요!!!! 하늘만큼 탕만큼!
그리고 자 오늘도 저를 한번 털어보아요. 또 한편 장전됐습니다. ㅋㅋㅋ그리고 이제부터 리코멘트는 전편의 코멘트란에다가 몰아서 하겠습니다. 물론 후기가 글의 용량에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실제 읽을 때 페이지 수 때문에 혼란이 올 수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그리 결정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가 글의 용량에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실제 읽을 때 페이지 수 때문에 혼란이 올 수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그리 결정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이제부터 리코멘트는 전편의 코멘트란에다가 몰아서 하겠습니다. 물론 후기가 글의 용량에 영향을 주지는 않지만 실제 읽을 때 페이지 수 때문에 혼란이 올 수가 있어서 부득이하게 그리 결정했으니 양해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