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 이게 뭔 난리야. -- >
유니온은 윤민아의 추측을 토대로 계획을 잡고 때를 기다렸다. 안개가 옅어질 기미가 조금이라도 보이면 바로 지원병력과 교체병력등을 투입할 만반의 준비를 하고 있었다.
일주일이 지나고, 또 일주일이 지났다.
그리고 다시 일주일이 지나고 어느새 한 달이라는 시간이 훌쩍 지나가버렸다.
매스컴에서는 연신 괴수의 정체에 대한 추측과 일산 신도시의 괴멸에 대한 기사를 뿌려댔다. 일산 전체를 감싼 비정상정인 안개에 대한 기사가 연일 보도 되었으며, 안개지역 부근을 중심으로 괴담이 퍼져나갔다. 안개가 퍼지기 시작한 며칠간은 시끄럽게 울려댔던 포성과 굉음이 이제는 완전히 멎어버리고, 안개 밖에서 지켜보는 사람들의 피가 마른다. 나라 분위기가 말이 아니다. 수많은 유가족들의 통곡소리에 조용할 날이 없고, 이제나 저제나 돌아올까 기다리는 실종자들의 가족들이 밤새 기도하는 소리가 멈추지 않는다.
안개가 생긴지 두 달째 되던 날 이변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일산을 중심으로 덕양구까지 퍼져있던 안개가 조금씩 옅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 포기했던 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비록 상처투성이에 피골이 상접한 꼴이고, 그 수가 얼마 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귀환 소식에 나라 전체가 열광했다.
하나 둘 보이기 시작한 귀환자들은 밤새도록 이어졌다. 무리를 지어 돌아온 이들도 있고 외따로 혼자 돌아온 이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모습을 드러낸 이들 중에는 형준과 그 일행도 있었다.
"으아아아아!"
이게 얼마 만에 보는 햇빛이냐. 얼마 만에 맡아보는 상쾌한 공기고!
얼마나 지났는지 모를 시간동안 내내 축축한 안개 속에 있다가 벗어나니 감격이 이루 말 할 수 없었다. 곁을 보니 용모도 말없이 눈을 감고 감회에 빠져있었다. 그리고 뒤를 따라 나온 이들도 모두 제각각의 방법으로 생환의 기쁨을 즐기고 있다.
고개를 돌리니 그동안 끔찍스럽게도 우리를 옭아매던 안개가 흉물스럽게 넘실거리고 있다. 당장이라도 주저앉아 쉬고 싶지만 언제 다시 덮쳐올지 모를 안개로부터 최대한 떨어지는 게 먼저다.
다들 감격스러운 표정 뒤에 일말의 불안감과 공포를 안고 내 뒤를 따라 걷는다. 그렇게 얼마나 걸음을 옮겼을까, 멀리에 바글거리는 사람들이 보인다.
"부상자는 없습니까!"
가장 먼저 달려온 주황빛 옷을 입은 구급대원들이 외친다. 부상자? 그런 거 없어. 조금이라도 심한 부상을 입은 사람들은 이미 다 죽어버렸거든.
말없이 자신을 바라보는 우리 일행의 눈빛에 주눅이 든 표정을 지어보인 구급대원들이 일행의 이모저모를 살피다 다른 이에게 부축을 받고 있는 이들을 들것에 실어 나른다. 들것에 실려 가는 면면이 이제 살았다는 안도감에 눈물을 흘리고 있다.
뒤를 이어 걸어오는 이들은 유니온과 군의 인사들이다.
군인과 이능력자를 떠나 한데 엉켜 서 있던 우리들은 말없이 그들을 바라본다. 빌어먹게도 이 상황에서도 체면을 따지는지 느릿하게 걸어오던 이들이 우리 앞에서 멈춰 선다.
"유니온 타격대 제 12조 조장 민용모외 4인 임무 마치고 귀환했습니다!"
역시나 유니온의 인물답게 빠릿빠릿하게 복귀 보고를 하는 용모다. 복잡한 표정으로 그런 용모를 바라보고 있던 유니온의 인물들은, 금새 건들거리며 자세를 바꾸는 용모의 태도에 눈을 휘둥그레 하게 뜬다.
킬킬킬.
이 자식도 저 안에서 꽤 망가졌거든. 유니온? 조까라 그래. 기나긴 시간동안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던 저들이 뭐 어쩌라고. 그들의 명령 하나에 사지인줄도 모르고 뛰어들었다가 지옥을 겪고 나온 이들에게 더 이상 유니온은 큰 의미가 없어져 버렸다.
처음에야 사명감이나 자부심에 가득 찼던 유니온의 인물들이 가장 적극적으로 싸웠지만, 워낙에 치열했던 전투 탓에 그런 이들이 먼저 하나 둘 쓰러졌다. 그리고 남은 이들조차도 기다려도 보이지 않는 구원의 손길에 지쳐 어느 사이에 저렇게 망가져버렸다.
"그래. 수고했네. 다른 이들은?"
조금 얼떨떨한 표정으로 용모의 보고를 받은 인물이 다시 물어온다. 수고했어? 그게 다야? 지금 저 지옥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도 모르고 꼴랑 그거 하나야?
"12조 소속, 김영철, 최우진, 우재열, 강형식, 김 은정, 한 상태, 오영은, 이 태형, 8명 임무 수행중 사망했습니다. 살아남은 건 저희 넷뿐입니다."
건들거리던 용모가 이때만큼은 형형하게 눈을 빛내며 유니온의 인물을 노려다본다. 그 눈빛에 담긴 원망과 복잡한 감정들을 마주한 남자의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다.
"우리도 최대한 노력을 했지만 저 안개를 어떻게 할 방법이 없었네."
변명이랍시고 하는 말이 가관이다. 고작 그 한마디로 우리가 겪었던 지옥을 무마 하려는 건가. 역시나 용모의 인상이 더욱 사나워진다.
"그럼 난 갈게 용모. 다음에 보자고."
나는 딱히 유니온 직속의 능력자도 아니기 때문에 그들을 무시하고 걸음을 옮겼다. 이전까지야 유니온의 행사에 어느 정도 끌려 다녔었지만 이제는 아니다. 정나미도 떨어질 대로 떨어져버렸고 더 이상 유니온에게 아쉬워 할 입장도 아니다.
이능의 피드백, 그리고 신체의 부정적 변이. 그런 거 저 안에서 다 버리고 왔거든. 이제 당신들한테 꿇릴 이유가 없다고.
막 지나치던 용모와 그 조원들이 나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나 역시 그들의 것과 마찬가지일 미소를 지어보이곤 자리를 벗어났다.
얼핏 보니 살아남은 군바리아저씨들도 열심히 보고를 하는 것 같은데 중대장아저씨를 제외하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바쁜 그들이다. 무리도 아니지. 군인이라고 해봤자 기간 병들은 죄다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였으니 저러는 것도 이해가 간다. 역시 직업군인답게 중대장 아저씨만이 낭랑한 음성으로 보고를 하고 있다.
그들에게도 고개를 살짝 숙이는 걸로 인사를 마치고 막 인파를 헤치고 가려는데 플래쉬 세례가 터진다. 정신없이 질문을 해오는 기자들이 악귀처럼 달려든다.
이런 미친 인간들을 봤나! 난 지금 사지에서 겨우 살아 돌아오는 거라고!
배려 따위 찾아볼 수 없는 언론의 모습에 사나운 표정으로 그들을 헤쳐 가는데 낯익은 음성이 나를 잡는다.
"형준아..."
염려와 걱정, 원망 등이 복잡하게 얽힌 그 음성에 발걸음이 멈춘다.
"이놈아..."
고개를 돌리니 저 지옥 속에서 그토록 그리워 했던 부모님이 눈물을 흘리며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버지! 엄마!"
감정이 쏟아진다. 그토록 그리웠던 가족의 품에 안겨 펑펑 눈물을 흘렸다. 몇 번이고 내 얼굴을 어루만지며 말을 잇지 못하는 엄마의 모습에 어린아이처럼 엉엉 울었다. 한참을 그렇게 눈물을 흘리며 서로를 부여잡고 있던 나는 눈물이 그치자 갑자기 부끄러워져 버렸다. 서른 가까이 되어가는 나이에 이게 웬 추태란 말인가. 더군다나 기자들이 눈을 빛내며 플래쉬를 터트리기 바쁘다. 아. 얼굴 팔리게 다 찍혔겠네.
뒤늦게 찾아온 민망함에 얼굴을 붉히고 있는데 아버지가 말없이 나를 끌어안고 등을 두들겨주신다. 얼굴 좀 팔리면 어때! 나는 다시금 가족의 온기에 얼굴을 파묻는다.
찰거머리처럼 달라붙는 기자들을 지나치는 중에 언뜻 윤민아의 얼굴을 본 것도 같지만 워낙에 인파가 많았던지라 그저 스쳐가듯 눈인사를 주고받는 걸로 인사를 대신했다. 뭐 내가 그녀와 딱히 할 말이 많은 것도 아니고 애초에 유니온 직속도 아닌 바에야. 가족과의 상봉이 더욱 중요할 뿐이다. 그렇게 감동의 해후를 마친 나는 평소 내가 주거하던 오피스텔이 아닌 부모님 댁에 와 있다. 전에 쓰던 내 방을 그대로 두신 부모님의 마음이 느껴져 가슴이 먹먹해진다.
집에 돌아와서도 말 없이 내 손을 어루만지시는 엄마 탓에 뭘 할 수가 없었지만, 그간 마음고생이 지대했을 엄마를 생각해 마주 손을 어루만질 뿐이었다.
그리고 밤이 되어서야 엄마는 내 손을 놓아주셨다. 못내 미련이 남았는지 몇 번이고 내 방을 찾아오시던 엄마, 아버지도 잠 들으셨을 시각. 나는 홀로 누워 생각을 정리했다.
안개 속에서 보냈던 지옥 같았던 시간. 마치 1년은 보낸 듯 한데 사람들은 그게 불과 두 달이란다. 워낙에 끔찍했던 시간이라 내가 그렇게 길게 느꼈을 수도 있고, 애초에 밤 낮 구분 없이 안개에 둘러싸여 지냈던 탓에 시간감각이 무너졌을 수도 있지만 뭔가 석연치 않다.
지난 시간을 잠시 떠올린다. 악몽 같았던 시간이라 그저 기억을 끄집어내는 것만으로도 나 자신이 침잠되어 버린다.
군의 작전이 실패한 이후 우리는 안개 속에서 지옥과도 같은 전투를 겪었다. 방어선이고 뭐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 시도 때도 없이 몰려드는 몬스터들과 지독스럽게도 싸웠었지. 덕분에 얻는 것도 많지만 잃은 것은 무수한 생명. 그렇게 비교 할 수 없는 저울에 추를 매달아가며 수십 번 수백 번이 넘는 전투를 치뤘다.
식량은 진즉에 떨어졌고 나중에는 동물형 몬스터들을 포획해 배를 채우며 간신히 버텼다. 차마 다른 이들에게 말하지 못할 일들을 겪으며 그렇게 우리는 악착같이 살아남았다. 50명에 달하던 이능력자는 마지막에 가서는 9명도 채 살아남지 못했고, 3개 중대에 달하던 군인들은 불과 스무명 정도만이 살아남았다. 무수한 희생을 치러가며 겨우 살아남은 우리들. 나중에 가서는 일반인에 불구한 군인들조차도 저급한 몬스터들 정도는 때려죽일 무렵이 되어서야 우리는 지옥 같은 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갑작스럽게 옅어지는 안개를 따라 무작정 걷다보니 사람들 앞이었다고 할까.
또 다른 전장의 상황이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하기도 하지만 오늘만큼은 모든 걸 잊고 쉬고 싶다. 가족들도 그런 나를 생각해서인지 텔레비전은커녕 그 어떤 말도 꺼내지 않았다.
가만히 침대에 누워 있던 나는 푹신한 침대의 감촉에 도리어 불안해졌지만 눈을 질끈 감고 견뎌낸다.
더 이상 안개도, 몬스터의 습격도 없다. 부상당한 동료의 비명소리도 몬스터들의 끔찍한 괴성도 없다.
이곳에서 나를 위협하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끝없이 되뇌며 잠을 청했다.
============================ 작품 후기 ============================으아아아~ 이제야 본 궤도!
이제야 제가 생각한 세계와 글이 펼쳐질 기반이 되었네요.
변함없이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 더불어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을 주신 모든 분들께도 감사 인사 드립니다홍승식 : 저는 하울링 못 봐서요. 글구 극중 캐릭 이름은 민용모입니다!
천겁혈신천무존 : 글쎼요. ㅋㅋㅋ 멀지 않은 거 같기도 하고 아닌 거 같기도 하고;;;묵석 : 네 다음편에서도 또 뵈어용!!
민영모 : 데헷. 중요캐릭으 급 부상!
린아화 : 네. 작품 후기는 용량에 포함이 안 들어갑죠. 그래서 아숩 ㅋㅋㅋ지리산의늑대 : ㅋㅋㅋ 돗가비가 늑대님을 갖습니다. 로맨티스트 돗가비 ㅋㅋwo2865 : 지부장 중요캐릭이니 조금만 참아주세요 ㅜㅜ아트락시아 : 상처라니요. 제가 오해를 불러 일으킬 실수를 했으니 제가 죄송할 뿐입니다.
미셀유미 : 다음 편에서 또 뵈어요!!!
九靈感 : 마음은 늘 연참인데 마눌님이 허락을 안 해주십니다. ㅜㅜ 엉엉.
블루크리스탈 : 선작, 추천, 코멘트, 쿠폰등입니다. 줄여서 선추코쿠 ㅋㅋㅋ아이카이제 : 내가 리코멘트 다는 아이카이제님 ㅋㅋㅋ메카스타 : 항상 코멘트 감사드립니다!! Ken12 : 감사합니다! 저도 요즘 독자님들 코멘트 보는 재미로 삽니다!! Zernik : 원래는 계획에 없던 연참이지만 ㅜㅜ파카사리 : 냠냠냠냠!!!!
냠!
냠! ㅋㅋㅋ 지성. 우리 함께 써요.
freewell : 갑질은 자연스럽게 나올거에요;;; 스토리 전개상 지금 이제 배경 설명 끝난 때라서.
무협소설광 : 후기가 분량에 포함은 안 돼지만 페이지 수에서 오해가 있을 수 있다는 말씀 같아서 수정했습니다!
^^DarkANGEL- : 말씀대로 논란의 여지가 있어 리코멘트 방식 수정했습니다. 조언 감사합니다. 분량이나 그런 부분에 대해 제가 생각이 부족했습니다 ㅜㅜ포르티나 : 저 지구 반대편이라 한국이랑 딱 시차 -12시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