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 이게 뭔 난리야. -- >
"몬스터들이 물러갑니다!"
누군가의 외침에 다들 자리에 풀썩 주저앉는다. 승리의 함성? 그딴 거 개나 주라고 해. 그런 짓거리 할 힘 있으면 조금이라도 더 쉬겠다. 군바리고 이능력자고 뭐고 간에 다 같이 사이좋게 바닥에 누워서 숨을 몰아쉰다.
벌써 나흘째다. 이 지옥 같은 곳에서 전투를 벌인 게.
그날 군의 작전은 실패로 돌아갔다. 안개가 짙게 깔린 이후로 모든 통신기기가 먹통이 된 탓에 정확한 상황은 알 수 없었지만 지금 우리가 이 꼴로 있는 걸 보면 대충 짐작이 간다. 맹렬하게 엔진음을 토해내고 우리 위를 통과한 전투기들은 그 뒤로 감감무소식이었다.
그 어떤 폭음도, 전조도 없었다. 잠시 후 만 하루만에 모습을 드러낸 몬스터들과 싸우느라 당시에는 신경 쓸 여력도 없었고. 그저 살아남기 위해 싸웠을 뿐.
인력이든 물자든 그 어떤 지원도 없이 우리는 나흘 동안 악귀처럼 싸워댔다. 처음에
는 뭣도 모르고 있다가 몬스터들의 습격에 몰살당할 뻔 했다가 후퇴를 시도했지만, 간신히 이겨냈다. 이 자리를 벗어나려 했지만, 빌어먹을 안개가 어떤 수작을 부리는지 우리는 몇 번이고 제자리로 돌아왔다. 방향도 모른 채 이동 중에 몬스터의 습격을 받았던 후로는 그마저도 포기하고 버티는 것에 주력하고 있다.
나흘 동안 몇 번이나 치뤘을지 모를 전투 탓에 이능력자고 일반인이고 구별할 것도 없이 모두 피로가 극에 달했다. 이미 하급의 능력자들은 이능을 개방할 여력도 없이 박투를 거듭하고 있으며, 이는 안개가 낀 후로 화기가 제 구실을 못하게 된 군인들도 마찬가지였다. 게다가 짙은 안개 탓에 조금만 정신을 놓고 있어도 금세 방향을 잃고 몬스터들의 한가운데 떨어지기 십상이었다. 그렇게 목숨을 잃은 이능력자와 군인들만 해도 오십에 가까운 숫자다.
그나마 몇몇 조장급의 이능력자들만이 아직 제 힘을 유지 하고 있을 뿐. 나 역시 유물의 힘을 빌어 흡수한 생명력 덕에 간신히 자리를 지키고 있을 뿐이다. 안개에 가리워진 그림자가 이제는 오십 명도 채 안 된다. 특히 군인들의 피해가 컸는데 화기가 무용지물이 됐는지 모르고 치뤘던 첫 전투에서 입은 피해가 대부분이다. 조금만 더 생각을 했다면 피해를 줄일 수 있었겠지만 이제 와서 후회를 해본들 무슨 소용이랴.
"용모. 괜찮아? 난 죽겠다. 유물이고 뭐고 한계야 이제."
죽는 소리를 해대며 바로 곁에 나자빠져 있던 용모에게 말하니, 곁에서 으르렁 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아 잊고 있었다. 용모는 전투가 격해진 이후로 늑대인간 상태를 줄곳 유지해왔다. 그 상태가 회복이 빠르고 좋다나. 놀랍게도 3등급 이능력자라고 자신을 소개한 민용모는 인간이 아니었다. 이능력자들과 얽혀서 저쪽세계에서 살아온 경계의 주민인 수인, 그중에서도 늑대인간이 그의 정체다. 원래부터 이능력자들과 비인간류들 중 인간에게 우호적인 존재들과는 함께 공존해왔던 저쪽세계인지라 그다지 놀랄 일은 아니다. 하지만 그중에서도 드물게 존재하는 순혈의 이종이었던지라 좀 의외긴 하다.
"아. 그래. 넌 그렇게 낑낑 대고 있으라고."
괜스레 편해 보이는 그에게 핀잔을 주니, 엽기적이게도 주둥이 부분만 늑대인간화를 푼 용모가 대꾸한다.
"내가 아는 사람 중에 네가 말이 제일 많아. 말할 시간에 조금이라도 체력을 회복하지?"
저도 여유가 꽤 있어 보이는 모습인지라 수인의 질긴 생명력을 보여준다. 나 역시 '가시찔레 꽃' 덕에 생명력을 흡수하여 더 이상 이능의 피드백에 연연하지 않는 상태라 마주 대꾸해준다.
"아. 생명력을 하도 흡수해서 기운은 넘쳐, 지금 내가 누워있는 건 정신적인 피로라고. 그러니 노가리라도 까면서 좀 스트레스를 풀 필요가 있어. 이 중에서 그나마 대꾸 할 체력 있는 건 용모 너 하나잖아?"
주절주절 떠들어대는 데 여전히 주둥이만 인간인 용모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말을 말자. 난 좀 더 쉬어야겠어."
그러고는 다시 완벽한 늑대의 얼굴을 해 보인다. 하얀 털들이 피에 잔뜩 절어 엉겨 붙은 모습이 꽤나 살벌하지만 본질은 인간과 다름이 없다.
잠시 더 누워 있던 나는 몸을 일으키곤 전장 정리를 시작했다. 몬스터의 시체를 한 켠에 쌓아두고 유물의 힘을 발동한다. 섬뜩한 붉은 줄기가 몬스터들의 사체를 옭아매고 탐욕스럽게 입을 축인다. 매번 보았던 광경이지만 유물의 주인인 나조차도 섬뜩한 광경이라 모골이 송연하다.
그 모습이야 끔찍하건 어쨌건 효과는 확실하다, 거대한 사체더미가 금세 쭈그러들고 내 몸에 생명력이 가득 들어찬다.
바란 건 아니지만 일단 부수입에 가까운 일이라 그저 그런가보다 하는데 사람들이 하나 둘 비척대며 일어선다.
군인이고 이능력자고 전부 좀비와도 같은 모습으로 비칠대며 일어나 말라비틀어진 사체들을 거둬낸다. 크고 작은 상처 가득한 그들이 안개 속에서 불쑥 튀어나왔다가 사라지고, 또 다른 이가 나타나 미라와도 같은 사체를 옮긴다. 바삭거리는 그 생명 없는 육체들이 바스락거리며 하나 둘 눈 앞에서 사라져간다.
하늘을 올려다보지만 희뿌연 안개만 가득 눈 안으로 들어온다.
톡톡거리며 규칙적으로 책상을 두들기는 손길이 신경질 적이다. 아름답지만 권태로워 보이는 중년여인이 인상을 잔뜩 찌푸린다.
"그래서? 아직까지 아무런 해결 방법을 못 찾고 있다고?"
서울지부의 지부장 신은혜가 짜증이 가득한 음성으로 말한다. 질책 가득한 그 어조에 앞에 서 있던 두명의 남녀가 몸을 굳힌다.
"안개의 외곽부터 접근을 시도해보고 온갖 방법을 써보아도 방법이 없습니다."
김상태가 바짝 굳은 얼굴로 변명하듯 말 했다.
"아니. 방법 없다고 하면 끝이야? 저 빌어먹을 안개 안에 대체 얼마나 되는 유니온의 전력이 들어가 있는지 몰라서 그래?"
가녀린 손길이 책상을 탕 하고 내리친다. 평소라면 권태로운 얼굴을 하고 있어야 할 신은혜는 드물게 사나운 표정을 하고 있다. 그 서릿발 같은 기세에 죽어나가는 건 김 태식 그 하나다. 바로 곁의 여인 윤민아는 언제나처럼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고 있다.
"아니. 애도 아니고 능력자들이 기껏 안개 때문에 저 안에 같혀 있다는 게 말이 되냐고!"
언성을 높이는 신은혜의 말에 다시 어깨를 움츠리는 건 김 태식 하나다. 윤민아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하고 있다가 입을 열었다.
"지부장님. 이건 가정입니다만..."
그녀답지 않은 추측성 발언에 신은혜가 미간을 찡그리지만 턱짓으로 보고를 계속하라 한다.
"괴수는 처음부터 안개와 함께 나타났었습니다. 그 안개가 사라진 건 괴수가 몬스터를 생산하기 시작했을 무렵부터입니다. 그리고 다시 안개가 생성된 것 역시 몬스터의 생산이 멈춘 이후부터입니다. 뭔가 상관관계가 있는 게 아닐까요."
윤민아가 꺼낸 의견에 신은헤 그녀의 표정이 처음으로 누그러진다.
"계속 해봐."
바짝 굳어있던 김태식은 그런 지부장의 모습에 덩달아 윤민아를 멍하니 바라봤다.
"그렇다면 괴수가 다시 몬스터를 생성해내는 시점이 아마 안개가 걷힐 무렵이 아닌가 싶습니다. 괴수를 몬스터들의 모체라고 상정한다면, 몬스터가 더 필요한 시점이 되었을 때 다시 한 번 안개를 걷고 몬스터들의 재생산에 들어가지 않을까 합니다."
윤민아의 설명에 전부 고개를 끄덕이는 게 그럴싸한 추측이다. 듣고 보니 왜 이런 간단한 것을 떠올리지 못했을까 하지만, 그만큼 사태가 급박했기 때문이리라.
"안개 속에 있는 병력들이 몬스터들의 수를 일정 수 이상 처리한다면 저 안개는 사라질 거라는 게 제 추측입니다."
원래대로라면 보고에 추측성 발언은 절대 받아들이지 않을 신은혜지만 이번만은 그녀의 추측에 제법 납득을 하는 듯 하다.
"그러면 지금 이 시각 얼마나 남았을지 모르는 병력들이 몬스터들의 수를 줄이기만 기다려야 한다는 거지?"
하지만 역시 호락호락한 성격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듯 금세 불같은 외침을 토해낸다.
"그러다가 다 죽으면! 유니온의 전력이 약화될 게 뻔히 보이는 데 기다리기만 하라고! 말 같지도 않은 소리! 안개를 걷어낼 방법이 없으면 들어가서 한팔 거들기라도 해! 소집에 늦게 응한 능력자들 넘치잖아? 엉?"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인 둘이 곧 사무실을 벗어난다. 사무실에 홀로 남아있던 신은혜가 작게 중얼거린다.
"제길. 유니온의 타격대를 늦게 투입하는 건데, 말 안 들어 쳐 먹는 능력자들 자리 땜빵 시키다가 독박 쓰게 생겼네."
============================ 작품 후기 ============================오늘은 사실 연참 계획 없었는데 그냥 투척합니다!
여러분의 열화와 같은 선추코쿠가 저를 절로 연참하게 만들었습니다.
승리의 함성을 지르소서!!! 우아아아아아!
리코멘트에 독자님이 달아주신 글은 삭제하고 제 코멘트만 첨부했습니다. ㅜㅜ보기 불편하셨던 분들꼐 사과드립니다.
지리산의늑대 : -으하아아아아! 극찬 극찬 이세요! 감사 감사드립니다!!!! 늑대님 사랑합니다 ㅜㅜ 천겁혈신천무존 :-민아 냠냠? ㅋㅋㅋㅋㅋㅋㅋ 의외로 민아 냠냠하라는 코멘트가 자주 보여서 ㅎㅎㅎㅎ 안되면 되게 하라!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길어도 리코멘 합니다! 마음 같아서야 모든 코멘트에 리코멘 하고 싶죠. 처음 써보는 이능물이라;; 사실 글 쓴지 3달밖에 안 된 허접글쟁입니다요;; 魔D.
K帝 :-무한갑질은 좀 지나야겠지요? 당분간 주인공은 몬스터 잡으랴 뭐하랴 바쁩니다 ㅋㅋㅋ 타카츠키 :-아 그래요? 저도 이능ㅁ물 좋아하는데 그런 건 본 기억이 없어성;;; 격나면 말씀해주세요! 저 이능물 좋아합니다! 민아는 조만간 후루룩 ㅋㅋㅋ이끄요. ㅋㅋ 아트락시아 : -아트락시아님 코멘트 잘 봤습니다! 아무래도 군에 종사하신 분이라 아무래도 제 글에 부정적으로 나타나는 군의 묘사부분이 별로 마음에 드시지 않으신가봅니다. 먼저 사과의 말씀 드립니다. 설정상 군이 작전권을 포기한 상황에서 유니온이 작전권을 인수받은 상황입니다. 현재 전개된 군부대가 퇴각하거나 하는 것을 돕는게 극중 유니온의 임무고요. 전편에서 주인공이 대화를 시도해봤지만 아트락님의 말씀대로 군작전지역으로 생각한 중대장이 소통을 막은거지요. 주인공이 중대장을 무시하고 그랬다기보다는 주인공 입장에서는 애초 위에서 그렇게 조율된 작전인데 중대장이 고
집을 피운 걸로 본겁니다. 그래서 최근편에 주인공이 말한 내용이 세밀한 조율이 끝나지 않은 헛점이 자꾸 드러난다라는 부분들이 나왔습죠. 부족한 글이 심기를 불편하게 하지 않았을까 우려돼는데 부디 기분 상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파카사리 : -ㅎㅎㅎ 오타 지적 감사드립니다. 아;; 앞으로 모르는 사이에 더 밀리도록 연참 꾸준히 합지요 ㅋㅋㅋ 무협소설광 : -ㅇㅇ. 그래도 코멘트 보는 재미에 무한 새로고침을 하는 글쟁이는 서글픕니다 ㅜㅜ 쟂빛 : -감사합니다^^ 사실 추천만 눌러주셔도 감사하죠. 제가 욕심이 많아서 죄송합니다 ㅜㅜ 엉엉 ㅜㅜ 바로스 : -ㅇㅇ 네임드의 굇수 작가님께서 왕림하셨습죠. 똘랭 : -한편 더 투척합니다 ㅋㅋㅋㅋ 아미슈 : -저도 나름 고심했던 이름이지요. 엣헴! 스스로도 무척 뿌듯합니다 ㅋㅋㅋ으악이 : -넴 건필 하겠습니다. 으악이님도 몸 건강하세요! -바쁘신 와중에도 짬짬이 와주시니 감사드릴 따름입니다. 으헤헤헤. 저도 열심히 연참해서 간만에 들리셨을 때 볼거리가 많도록 할게용.
참해서 간만에 들리셨을 때 볼거리가 많도록 할게용. 참해서 간만에 들리셨을 때 볼거리가 많도록 할게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