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 이게 뭔 난리야. -- >
요즘 어린 것들은 발육이 참으로 훌륭해.
흐뭇하게 아빠 미소를 지은 채 녀석들을 바라보던 나는 문득 고개를 갸웃거렸다. 내가 몇호 사는지는 어떻게 알았지?
막 녀석들에게 물으려는 찰나 지영이가 먼저 선수를 친다.
"우웩. 오빠 지금 엄청 음흉한 얼굴인거 알아요? 완전 변태!"
아직까지 좀 불편한 기색이 있는 선아와는 달리 그세 몇 번 더 얼굴을 봤다고 농담을 해오는 녀석이다. 내 사심 없는 아빠 미소를 변태라고 매도하다니.
"씁. 오빠한테 못하는 말이 없어. 그보다 내가 여기 사는 줄은 어떻게 알았어? 내가 말해줬던가?"
내 말에 지영이가 혀를 낼름거리며 겸연쩍은 얼굴을 해보인다.
"사실은 저번에 오빠, 이쁜언니랑 있을 때 편의점에서 산 아이스크림이라도 주려고 다시 내려왔는데 오빠하고 언니가 금방 들어가서 못 줬거든요. 그때 오빠 어디 사는
지 알았음. 헤헤."
애교스럽게 입을 삐죽이는 녀석의 말에 헛 웃음을 쳤다.
이거 스토커 끼가 좀 있는데?
내가 속으로 무슨 생각을 하는지도 모르는 채 지영이와 선아가 텔레비전을 켜도 되는지 물어온다. 뉴스라도 보려나 싶어 시선을 돌리니 녀석들이 케이블의 쇼프로그램을 틀어댄다.
아. 이 위기감 없는 아가씨들아.
세상이 어떻든지 간에 흥청망청 대는 버라이어티 프로그램과 금세 진정되어 깔깔거리는 두 아가씨들. 갑작스러운 방문이라지만 딱히 손이 가는 손님들도 아니고 저들끼리 잘 노니 별로 귀찮거나 하진 않았다.
오히려 무방비한 복장 탓에 꽤나 눈이 즐겁다고나 할까. 어리다 어리다 하지만 엄연히 스무살이 넘은 다 큰 처자들이 저렇게도 경계심이 없다니. 에잉. 뭔가 어린 아가씨들의 미래가 걱정되면서도 눈이 즐거운 복잡한 감정이다.
잠시 박장대소하는 아가씨들을 쳐다보던 나는 다시 인터넷을 검색하기 시작했다. 역시나 포털사이트의 뉴스는 사상자 집계와 갖은 추측성 기사들만이 난무하고 있을 뿐 쓸만한 건 없다.
BOB(Beyond of the beyond-이능력자간의 커뮤니티)사이트에 접속한다.
이쪽도 별다른 정보는 없지만 하단부를 보니 커뮤니티 채팅이 활성화 되어있다.
'똥강아지님이 채팅 서버에 접속 중입니다.'
잠시간의 로딩을 거쳐 채팅방에 들어가니 참여인원 수가 거의 오백명에 육박한다. 열심히 타이핑을 하는 사람은 너댓명정도인 거 같은데 인원수가 전에 없이 어마어마하다.'영혼의맞다이는탑에서 : 그러니까 당신이 말한 게 근거가 있는거 냐고요. ㅎㅎㅎ''부쉬는처음이야 : 아니. 지금 상황에서 어떻게 입증해요. 그냥 제가 전에 본 거라니까요;;'
'영혼의맞다이는탑에서 : 확실하지도 않은 일로 사람들 불안에 떨게 만들 필요 없잖아요!'
'꼴픽하면손목아지날라가는거라배웠음 : 자. 님들 진정 좀 하시고. 저 부쉬님이 이야기 하는 게 혹시 맞을 지도 모르잖아요;;;'
'영혼의맞다이는탑에서 : 아니 꼴픽님까지 왜 그래요. 알만한 분이. 지금 유니온에서 정체를 밝히는데 최선을 다 하고 있다는 데 괜스레 이렇게 분위기 흉흉하게 만들어야겠음?'
무슨 일인지는 모르지만 채팅창이 과열되어 있다. 누군가가 저 괴물의 정체에 대한 추측을 말한 거 같은데 한명이 꽤나 격하게 반응하고 있다.'똥강아지 : 저기 중간에 들어와서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겠는데 누가 설명 좀.
ㅎㅎㅎ'설명을 부탁하니 한 번에 채팅창이 주르륵 올라간다. '영혼의맞다이는탑에서 : 아 들을 필요도 없어요. 괜히 확실하지도 않은 이야기 들어봐야 머리만 아프죠. ㅡ,.
ㅡ;''꼴픽하면손목아지날라가는거라배웠음 : 똥강아지님 ㅎㅇ 다른 게 아니라 부쉬님이 전에 서적에서 본 적 있는데 지금 서울 아작 낸 괴물이 1등급 몬스터래요. '영혼의맞다이는탑에서 : 부쉬님 자꾸 유언비어 퍼뜨리면 유니온에 신고합니다.''똥강아지 : 네? 1등급 몬스터요?
'부쉬는처음이야 : 아 님 자꾸 왜 그래요. 사람이 그냥 말 할 수도 있는거지! 되게 피곤한 사람이네.'
'꼴픽하면손목아지날라가는거라배웠음 : 네. 1등급 몬스터 '천개의 눈동자'가 아닌가 말씀하셨는데 영혼님이 자꾸 저렇게 과민하게 반응하셔서.
ㅎㅎㅎ''영혼의맞다이는탑에서 : 아니 상황을 봐가면서 말해야지. ㅡ,.
ㅡ 지금 사람들 가뜩이나 불안한데 그런 확실치도 않은 말을 지껄여서 뭘 주워 먹을게 있다고. ㅗㅗㅗㅗㅗㅗ''똥강아지 : 헐;;'황당하게도 '천개의 눈동자'라니. 채팅창에서 분란이 일어날 만도 하다. 당장 2등급만 해도 국가적인 재앙 이상이구만 1등급 몬스터. 그것도 '천개의 눈동자'라니.
언젠가 유니온의 데이터베이스에서 본 적 있는 이 괴수의 다른 이름은 '멸망을 지켜보는 눈'이다. 역사적으로 단 한번 목격됐다는 이 괴수가 등장했을 때는 고조선이 멸망하던 그 무렵이다. 놈의 등장과 함께 온갖 재해와 괴물들이 나타나 세상을 어지럽히고 마지막에는 선인들이 통치하던 고조선을 멸망시키고 홀연히 사라졌다는, 그 신화 속의 괴수가 지금 다시 챗방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가만히 챗방을 보던 나는 어쩌면 일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 유니온에서도 알지 모르지만 나는 바로 전화기의 발신 버튼을 누른다. 신호가 가는 사이 지영이에게 볼륨을 낮출 것을 부탁하는데 민아의 음성이 들려온다.
"새로 밝혀진 거 뭐 없어?"
그녀를 따라 인사도 생략한 내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아니. 이쪽도 추측만 난무한데 워낙에 황당한 의견들이 많아서.'
황당한 의견이라... 혹시?
"멸망을 지켜보는 눈?"
내 말에 수화기 저편에서 의아한 음성으로 대꾸하는 민아.
'어떻게 알았나. 지금 내부적으로 놈의 정체를 밝혀내려고 하고 있는데 가장 신빙성이 있는 추측이 그거다.'
끄응. 나도 모르게 신음성이 잇새로 비어져 나온다. 아니. 우주로 위성도 펑펑 쏘아대는 21세기에 갑자기 웬 신화 속의 괴물. 황당하지만 또 그게 어쩌면 하는 생각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아. 잠깐만 기다려라. 지금 다른 나라에서 새로운 정보가 입수되고 있다. 연락하겠다.'
통화를 마치고 여전히 투닥대는 채팅창을 보는데 이상한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TV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나를 바라보고 있는 두 아가씨가 보인다.
아. 사람이 있었다는 걸 깜박했다.
"'멸망을 지켜보는 눈'이 뭐에요?"
살벌한 그 단어를 말하는 지영이의 표정이 천진난만하다. 그게 어떤 건지도 모르고 저리 서슴없이 말하는 녀석이 도리어 섬짓하다.
"아. 니들은 신경 안 써도 돼."
내 말에 그녀들이 더 눈을 반짝인다. 아아. 안 봐도 알겠다. 지금 머릿속에서 괴수와 싸우는 이능력자들의 스토리를 마음껏 그려내고 있겠지.
핸드폰을 막 꺼내는 그녀들에게 나직하게 경고했다.
"스톱. 지영, 선아. 방금 들은 단어는 절대 다른 사람에게 말해선 안 돼. 함부로 말했다가는 너희들 정부의 블랙리스트에 오른다. 그러니 절대 비밀 지켜."
폰을 만지작거리는 모양새가 팬 까페라든지 그것도 아니면 누구에겐가 방금 들은 이름을 말하려는 것 같아서 미리 당부했다. 꽤나 거창한 내 경고에 그녀들이 어깨를 움츠린다. 역시 내 예상대로 그세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려다가 딱 걸린 모습이다. 혹시 몰라 다시 한 번 그녀들에게 말했다.
"지영아. 선아야. 오빠가 하는 말 절대 장난 아니야. 지금 말하는 일들은 나라에서도 공개 안하는 일급비밀이야. 알았지? 그러니 절대 말해선 안...."
막 그녀들에게 다짐을 받고 있는데 선아가 떨떠름한 표정으로 내 말을 끊는다.
"오빠. 벌써 나오는데요?"
황당하게도 내가 그토록 그녀들에게 비밀엄수를 당부하던 내용이 TV를 통해 흘러나오고 있다.'속보입니다. 막 들어온 제보에 의하면 도심가를 초토화시킨 괴 생명체의 정체는 '천개의 눈동자
'라는 이름을 가진 괴수로. 고조선의 멸망에도 관련 있는 신화 속의 괴수라.....'
이런 병신 같은! 아직 확실하지도 않은 정보를 왜!
나는 반사적으로 컴퓨터의 모니터를 바라본다. 역시나 난리가 났다. 영혼어쩌구 하던 사람은 근거 없는 유언비어를 퍼뜨리냐며 부쉬 어쩌고를 몰아붙이고 있다. 소문의 근원지는 아마 채팅방이리라. 누군가 이들의 대화를 눈팅하다가 발 빠르게 방송사에 정보를 팔아 넘긴 듯 하다. 9등급의 능력자는 사실상 일반인과 크게 차이가 없는지라 고등급과는 다르게 영세하게 살아가는 사람들도 많다. 그런 이들 중 하나가 돈을 목적으로 일을 터뜨린 것 같다.
전화기를 들고 급하게 통화버튼을 누른다. 미우니 고우니 해도 이럴 때 의지할만한 건 유니온밖에 없다.
"뉴스 봤어?"
대뜸 던지는 말에 민아가 대답이 한참 없다.
'... 봤다. 지금 유니온에서 정보를 넘긴 사람을 추적중이다. 아마 전에 없던 제재가 가해질 거다.'
역시 유니온에서도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리라. 아직 뭐 하나 확실한 것도 없는 상황에서 저런 뉴스가 나오면 괜한 사회분란을 일으켰다는 덤터기는 능력자들 몫이 될 거다.
"제길. 어떤 병신 같은 놈 때문에. 이제 일반인들은 난리 나겠구만. 이름도 하필 '멸망을 지켜보는 눈'이 뭐야."
한숨을 쉬며 투덜거리는 데 민아가 전혀 의외의 말을 해온다.'곤란하게 됐다. 알다시피 우리나라에는 고문서나 자료가 별로 없다. 아까 온 연락은 영국의 '템플러
'들에서 온 건데, 안타깝게도 지금 언론에서 떠들어대는 이야기가 맞는 것 같다.'
미친! 뭔 개소리야! 그럼 지금이 멸망의 때라는 말이야 뭐야!
말도 안 돼는 소리에 머리가 멍해진다.
'천개의 눈동자, 멸망을 지켜보는 눈과 모든 데이터가 90프로 이상 일치한다.'
민아가 확인 사살을 한다. 나도 모르게 힘이 풀려 다리에 주저앉는다. 신화니 뭐니 현실과 동떨어진 이야기 같지만 조금만 바꿔서 생각해보면 우리 이능력자들에게 그다지 먼 이야기도 아니다.
돗가비니 용아병이니 구미호니. 전부 실존하는 몬스터들 아닌가. 거기에 더해 신화 속의 괴수가 갑자기 툭 튀어나온다고 해서 놀라운 것도 아니다. 다만 하필이면 튀어나온 놈이 지나치게 끔찍한 놈이라 그렇지.
수화기 건너편에서 민아의 이야기가 계속 된다.
'영국에서 전해준 정보에 의하면 저 괴수 자체로는 그다지 해가 되지 않는다고 한다. 다만 저 괴수의 출현과 함께 나타날 이변과 재난들, 몬스터들이 문제지.'
나도 모르게 비명 같은 고함이 터져 나온다.
"미친 영국새끼들! 그걸 말이라고 해? 사상자가 만명이 넘어가는 데 저놈만으로는 큰 해가 아니라고? 병신 같은 새끼들 단체로 약이라도 빤 거 아냐!"
워낙에 충격적인 일의 연속이었던 데다가 황당한 말을 들어서인지 감정이 쉽게 격해진다. 저편에서 민아가 곤란하다는 투로 나를 타이른다.
'진정해라. 그들도 단지 정보를 전해줬을 뿐. 다른 뜻은 없었을 거다. 일단은 마음을 가다듬고 다음 연락을 기다려라. 아마 정보가 맞다면 군의 공격은 무소용일거다. 조만간 대대적인 소집이 떨어질 테니 몸 성히 대기하고 있어라. 고까워도 이번에는 유니온에게 협조하는 게 모두를 위해 나은 일이다.'
그렇게 말하고 통화가 종료된다.
머릿속이 잔뜩 헝클어진 기분이다. 갑작스레 튀어나온 신화속의 괴수와 여러 가지 일들이 혼란을 가중시킨다.
곁에서 철없는 두 아가씨들이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려오지만 나는 그저 망연자실할 뿐이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여전히 혼란스러운 상태지만 간신히 마음을 추스린 나는 담배를 찾는다. 불안하게 떨리는 손길로 담뱃불을 붙이고 있는데 겁에 질린 아가씨들이 보인다.
내 격한 반응에 그녀들이 겁에 질려있다. 그녀들이 지금 아무렇지 않아 보이지만 그 건 오직 내 덕이다. 상황을 제대로 모르는 그녀들 입장에서는 나라는 든든한 버팀목이 있는 이상 자신들은 안전할 거라는 생각에 그리 태연하게 있었을 테지. 근데 그런 내가 이렇게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줬으니 그녀들이 겁에 질린 것도 당연하다.
"아. 지영아. 선아야. 별 일 아니니 걱정하지 마. 오빠가 일하는 데 동료들끼리 문제가 좀 있어서."
뒤늦게 분위기를 수습하려 해보지만 한번 타오르기 시작한 두려움의 불꽃은 쉬이 사라지지 않는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그렇게 쾌활하던 그녀들이 단 한마디도 꺼내지 않는다. 내 말에도 불구하고 어깨를 움치고 멍하니 앉아 있을 뿐.
제길. 어른스럽지 못하게 이게 뭔 짓이냐.
스스로를 자책해보지만 변하는 것은 없다.
============================ 작품 후기 ============================짜잔~ 자 더 털어보세요. 아직 털릴 것이 남아 있습니다.
오늘의 저는 영혼까지 털릴 용의가 있당게요!!!
어서! 어서! 나를 털어보세요!
선추코쿠로 가.. 가버렷!!!!!
글구보니 오늘만 50키바 넘게 썼네요. ㅎㅎㅎ 선작과 추천 코멘트, 쿠폰 주신 분들과 읽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성십자 : 어느정도 궤도에 오른것 같아 더욱 재밌네요! 글에 긴장감이 슬슬 감도는게... 결론은 담편 주십쇼!!
-여기있습니다! 이제 본스토리 진행됩니다! 음하하하하!
tadis : 조아라 소설땜에 생활패턴이 파괴당함 ㅠ 언제 뜰지 모르는 소설들 보려고 하루종일 핸폰을 손에 내려놓을수가 읍다 으앙 -어익후 타디스님의 댓글 보고 고민하다가 결국 비축분 내놓습니다. ㅜㅜ 엉엉. 이거 보고 힘내세요 ㅜㅜ뿌잉뿌잉a : 뀨잉-끵끵 ㅋㅋㅋㅋㅋㅋㅋ긔염곰탱이 : TBW=The Best World ?! -오잉? 그게 뭐에요? 최고의 세계? 저 무시케서 잘 몰라연.
꼭봅시다잉 : 생각지도못한2편투척. 아침부테잘봤어연ㅋ-엄밀히 말하면 세편 올렸지요. 그리고 이제 네편째입니다 ㅋㅋㅋ민영모 : 급 흥미진진하네요. 건필하세요-ㅎㅎㅎ 스토리 본 궤도입죠. 데헷!
메카스타 : 아하핫 I'm come back -저도 다시 왔습니다. 음하하하하Zernik : 냠 -한상 더 차렸습니다. 맛있게 드세용. ka지매 : 재밌게 잘 읽고 갑니다.! 작가님의 소설은 묘한 매력과 제 취향이 담겨져있어요! ㅋㅋ;; 글 쓰시느라 수고 많으 셨구요. 좋은 하루 보내세요. -으아. 극찬해주시니 감사합니다! 방향 잃지 않게 정진하겠습니다. 카지매님도 읽어주셔서 감사하고 좋은 하루 보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