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24화 (24/223)

< --  2. 이게 뭔 난리야.  -- >

그날의 일은 그대로 끝나고 각자 도연과는 바로 헤어졌다. 희선씨가 만나자는 연락이 왔지만 생각할 것이 한 가득인지라 조심스럽게 거절을 했다. 서운한 기색을 감추지 못한 그녀지만 만난지 얼마 되지도 않은 그녀에게 벌써부터 휘둘리고 싶은 마음은 없다.

물론 무책임하게 말하기에는 조금 깊은 관계를 가지기는 했었지만. 어른들의 일이라는 게 다 그런 거 아니겠는가.

인터넷으로 정보가 될 만한 것을 찾아보지만 단서가 너무 부족하다. 전 세계에 일어난 이변과 이번 몬스터 출몰 건까지 뭐 하나 제대로 된 정보가 없다. 이능력자들의 커뮤니티에 접속해보아도 온통 기존의 왜곡에 대한 건과 시위에 대한 글들이 가득할 뿐 어디 하나 쓸 만한 단서는 보이지 않았다.

단지 어느 정신나간 인사의 '이능력자 특별법' 이라는 글만이 잠시 시선을 끌었을 뿐. 이능력자에게 전자발찌를 채워 나라에서 통제해야 한다는 같지도 않은 의견을 낸 모 국회의원. 미친 놈이 하다 하다 이제는 성범죄자에게조차 인권이니 뭐니로 말이 많은 목줄을 우리에게 씌우려 한다. 일고의 가치도 없는 글이라 무시했지만 커뮤니티는 한창 그걸로 씨끄러운 듯 했다.

한참이나 더 인터넷과 씨름을 하던 나는 결국 포기하고 자리에 눕는다. 이능의 피드백이 그제야 몸을 감싸온다. 소소한 통증과 나른함. 눈을 감고 회복에 전념했다.

어느새 날이 밝았다. 찌뿌둥한 몸을 스트레칭으로 풀고 간단하게 샤워를 한다. 그리고 언제나처럼 담배 한 대를 입에 물고 창을 연다. 담배를 깊게 빨고 가벼운 어지러움을 즐기고 있는데 문득 창밖이 지나치게 흐릿하다라는 사실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서울에 이렇게 안개가 낀 적이 있었던가?

그때까지만 해도 여느 때와 같은 아침이었다. 적당히 찌뿌둥하고 적당히 나른한 평소와 같은 아침. 단지 그 광경을 보지 못했다면 말이다.

저 안개 너머로 흐릿한 뭔가가 아른거린다. 이 근처에 우리 집보다 높은 빌딩이 있었나 싶지만 요즘이야 잠깐만 정신 놓고 있다 보면 금세 올려진 건물이 다반사니 그러려니 했다. 그 빌딩이라고 생각했던 그림자가 움직이지만 않았다면 아마 그냥 대수롭지 않게 넘겼을 것이다.

"저런 말도 안 돼는!"

수십층의 고층빌딩보다 더 거대한 무언가가 움직인다. 때마침 들려오는 지축을 흔드는 굉음과 진동에 내 몸이 휘청거린다.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툭 하고 떨어지는데도 불구하고 어떤 행동조차 하지 못했다. 그저 입을 어버버 거릴 뿐.

쿵, 쿵?

아니다 차라리 그런 소리라면 귀엽게 들릴 것이다. 뭐라 표현하지 못할 거대한 진동음. 훨씬 장중하고 훨씬 거대한 굉음이 온 사방에 울려퍼진다. 생각보다 먼 곳에 있었는지 이내 사라지는 거대한 그림자.

대체 저게 뭐지?

산전수전 다 겪었다고 자부하던 나조차도 보지 못한 엄청난 광경이었다. 마치 수십 층짜리 빌딩이 통째로 움직이듯 거대한 그림자의 이동. 아침부터 몽롱한 중에 꿈이라도 꿨나 싶을 만큼 비현실적인 광경이었다.

"앗뜨뜨!"

무의식중에 바닥에 떨어진 담배를 밟고는 그제야 정신이 좀 돌아온다. 까맣게 탄 장판을 보다가 TV를 켰다.

'서울 시내를 가로지르는 미확인의 거대한 생물체는 현재 마포구를 지나 강변북로를 따라 이동중입니다. 생명체의 이동경로에 위치했던 지역의 피해보고가 잇따르는 가운데 정부는 국가 비상사태를 선포하고 군부대를 집결하고 있습니다. 이번 사태에 동원되는 군의 전력은 ....'

방금 전에 내가 보았던 것이 꿈이 아니라는 듯 화면을 가득채운 괴 생명체의 모습이다. 헬기를 이용해 상공에서 찍었는지 안개 따위 없이 선명한 화면은 몇 번이나 눈을 비비게 만든다.

거대한 덩어리에 촉수와 같은 것들을 수 없이 늘어트린 놈이 마치 허공에 부유하는 해파리처럼 느리게 움직이고 있다. 느린 이동속도지만 지축을 흔드는 굉음이 이곳까지 들려오는 듯 하다.

그 비현실적인 광경에 수 없이도 고개를 털어보지만 마치 깨지 않는 악몽처럼 현실은 변하지 않는다.

재빠르게 인터넷에 접속하여 이능력자커뮤니티와 포탈사이트의 뉴스들을 재빨리 클릭해댄다.

포탈사이트의 뉴스는 일반 시민과 방송사에서 촬영한 괴 생명체의 사진들이 넘치고 있다. 워낙에 거대한 덩치였으니 만큼 그만큼 많은 사람들에게 목격되었으리라. 이능력자들의 커뮤니티 역시 게시글이 미친 듯이 올라오고 있다.

듣도 보도 못한 괴 생명체에 대한 추측과 목격담들이 주를 잇는다. 하지만 생명체의 정체에 대한 단서나 정보는 전혀 찾을 수 없다.

나는 뒤 늦게 유니온을 떠올리고 핸드폰을 찾는다. 충전기에 꽂혀있던 핸드폰의 액정을 켜보니 문자가 한 가득이다.

먼저 지인들과 가족의 문자들은 염려와 안부가 주를 이룬다. 그중 빠르게 가까운 사람들에게 답신을 보내고 유니온과 김도연, 그리고 희선씨에게 온 몬자를 확인한다.

'야! 밖에 봐봐! 난리다! 웬 집체만한 놈이 시내를 쏘다녀! 확인해봐!'

이건 김도연이고.

'유니온에서 소집이 떨어졌어요. 당분간 보기 힘들거 같아요. 어제 보고 싶었는데. 히잉.'

이건 희선씨. 그리고 유니온의 문자를 확인한다.

'공지. 대기중이던 모든 능력자에게 알린다. 현재 서울 시내를 가로지르는 괴 생명체에게서 왜곡의 파장이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상태임. 가급적이면 유니온의 비상 집결지에 모일 것을 권하지만 혹시 모를 사태를 대비 해 이동은 삼가길 바람.'

역시 유니온 역시 듣도 보도 못한 괴물의 등장에 비상인 듯 하다. 가뜩이나 요즘 일들이 연달아 터지는 바람에 정신없을 텐데 아주 제대로 난리다. 그 외에 잡다한 문자를 보는데 별 대수로운 건 없다. 저 괴물의 등장이 워낙에 임팩트가 강해서 말이지. 나 역시도 아직까지 꿈을 꾸는 기분이다. 아무리 내가 무수한 괴물들을 봐 왔다지만 저건 급수가 다르잖아. 재빠르게 최근 통화기록을 검색해 전화를 건다.

'안 그래도 전화 하려던 참이다.'

민아다. 유니온 소속인 그녀라면 뭔가 더 제대로 된 정보를 알려주지 않을까 해서 연락해보니 그녀 역시 내게 연락하려던 참이란다.

'당신도 뉴스를 봤으니 알겠지만...'

뉴스로? 천만에. 난 실사로 봤다고.

그녀가 사정을 설명한다. 갑자기 등장한 괴 생명체는 끊임없이 왜곡을 일으키고 있으며 그 패턴으로 보아 몬스터로 구분 짓기로 했단다.

"어이. 저런 무지막지한 게 몬스터라고? 용아병은 귀여울 지경이라고."

비아냥거리는 기색이 다분한 내 음성에도 그녀가 흔들리지 않고 마저 설명을 한다. 전에 없이 거대한 놈의 위용에 유니온에서 현재 정체를 파악하는데 전력을 다하고 있단다. 혹시 몰라 유니온 직속의 능력자를 모으긴 했지만 정부에서 일차적으로 유니온의 움직임에 제약을 건 상태라 따로 행동으로 옮기진 못하고 있다는 말에 혀를 찼다.

이 빌어먹을 정부라는 놈들은 지금 이 상황이 되어서도 주도권 싸움인가?

단순히 놈의 이동경로에 있었을 뿐인데도 거의 천재지변에 준하는 참사가 일어났다. 아니 참사라는 말도 부족하다. 이미 뉴스에서 보도된 인명피해만 해도 수천 명 이상의 부상자와 사망자가 나왔다. 실종자와 사망자는 더욱 늘어나고 있으니 앞으로 얼마나 더 되는 피해가 생길지 모른다.

'정부에서는 군을 동원하기로 한 듯 하니 유니온에서도 일단 사태의 추이를 지켜보고 있다. 솔직하게 저런 괴물은 유니온에도 정보가 없는 놈이라 대응책을 구상할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그저 군의 무력이 놈을 처리할 수 있기를 바랄뿐이다.'

하긴 저정도 사이즈라면 별다른 능력이 없어도 단지 존재 자체로 재앙 급의 몬스터다. 날고 기어봐야 이능력자도 사람인데 저런 무지막지한 놈을 상대할 방법이 있을 리가 없다. 그러니 군에서 충분한 화력을 사용하여 놈을 처리하길 기다리는 유니온의 입장도 이해가 간다.

"근데 과연 통할까? 북한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이용할 수 있는 화력에 한계가 있을 텐데?"

내 말에 그녀는 그저 추가 정보가 들어온다면 연락하겠노라며 통화를 종료한다. 나는 다시 발신을 눌러 희선씨에게 전화했다.

"희선씨? 괜찮아요?"

전화기 저 너머에서 희선씨가 호들갑을 떤다.

"몰라요. 형준씨. 지금 분위기가 장난 아니에요. 저는 일단 비전투계열이라 괜찮은데 직접 전투에 나설 비상 타격조는 지금 초상집 분위기라 통화 하기도 뭐해요."

작게 속삭이듯 말하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리 충성도 높기로 유명한 유니온 직속의 능력자들이라도 저런 어마어마한 녀석을 보고 사기가 떨어지지 않을리 없다.

"직접 전투에 동원 되는 건 아니죠?"

그래도 하룻밤사이 치고는 꽤 많은 교감을 나눈 그녀인지라 걱정을 담아 물었다. 자신은 후방 대기조와 예비대에 속할 거 같다는 말을 한 그녀가 다급하게 말한다.

"지금 준 전시태세라 외부와의 연락을 이 시간부로 금한데요. 이제 연락도 못할 텐데 몸 조심해요."

그녀의 말에 희선씨도 몸 건사하라 말하고는 통화를 종료했다. 부디 아무 일도 없어야 할 텐데. 어차피 치유계열 능력자인 그녀를 전장에 내몰리는 없지만 워낙에 사태가 심각해야지.

대체 일이 어떻게 돌아가는 거야.

뉴스를 틀어 봐도 아까의 화면을 재탕하며 이동에 대한 보도만이 있을 뿐 새로운 사실은 나오지 않는다. 군에서 작전 전에 민간 방송국에 제재를 가한 것인지 모든 방송사의 사정이 마찬가지다. 그 와중에도 사상자의 수는 천대를 넘어 이제 만 명이 넘어가고 있다.

워낙에 인구가 밀집된 서울 도심지역이니 놈의 이동경로에 있던 건물들은 죄다 참사에 휩쓸렸으리라. 하루아침에 수도가 폐허가 될 상황인데 괴물 놈은 느릿하게 움직여 이제 서울 외곽지를 지나고 있단다. 느려보여도 워낙에 거대하다 보니 이동속도가 마냥 세월아 네월아는 아닌 듯 하다.

바깥의 안개가 신경 쓰여 집을 나설 수도 없는데 누군가 초인종을 누른다. 연달아 누르는 것이 꽤나 급박한 기색이라 확인할 것도 없이 바로 문을 여니 지영이와 선아, 예의 그 팬을 자처하던 아가씨들이다.

집에서 입던 복장 그대로 달려왔는지 꽤나 무방비한 모습인 그녀들이 허락도 구하지 않고 방으로 냉큼 들어선다. 너무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그저 그녀들을 바라만 보고 있는데 당장이라도 울 듯한 표정의 지영이가 말해온다.

"오빠. 미안해요. 아까 그 괴물 보고 너무 무서워서. 오빠가 생각나서 달려왔어요."

이제 갓 스무살짜리 여린 아가씨들이 보기에는 지나치게 공포스러운 광경이었으리라. 수 많은 괴물을 보았다고 생각했던 나조차도 넋이 나갈 정도였으니 더 말 할 필요도 없다.

선아를 바라보니 그녀 역시 울상인 얼굴로 고개를 열렬히 끄덕거린다.

"일단 들어왔으니 저쪽에 앉어."

그녀들을 쇼파에 앉혀놓고는 나는 담배를 다시 입가에 문다. 왠지 창문을 활짝 열기가 뭐해서 반만 열어놓은 상태로 담배에 불을 부치는데 지영이와 선아의 대화가 들린다.

"흑. 다행이야. 그래도 형준이 오빠가 같은 건물 살아서."

"그래. 오빠라면 저런 괴물이라도 끄떡없겠지?"

미안. 이 오빠도 후달린단다. 지나친 과대평가였지만 불안한 감정을 부추킬 필요는 없으니 그저 말없이 담배만 핀다. 담배가 반쯤 타들어갈 때 즈음 지영이가 나를 부른다.

"오빠. 오빠는 저게 뭔지 알아요? 오빠는 막 괴물들이랑 싸우고 그러는 게 일이라면서요."

어느새 진정이 되었는지 당돌하게 묻는 지영이의 얼굴이 호기심 가득이다.

"아니. 저건 나도 처음 보는 거야. 일단 군대가 처리한다고 했으니 너무 겁먹지 마."

왜곡의 파장만 없다면 군대의 화력이면 충분히 처리가 가능한 놈이지 않을까 하지만 내심 회의적이다. D섹터를 군대가 아닌 우리 이능력자가 관리하는 게 괜한 이유가 아니다.

왜곡과 비틀림이 있는 곳에서는 세상의 법칙조차 어그러져 버린다. 기껏 총을 발사했더니 발사된 총알이 코앞에 떨어진다던가, 아니 재수가 없으면 불발로 총기 자체가 폭발하고도 남는다. 미사일이건 뭐건 예상대로 효과를 보기 어려우니 어쩔 수 없이 민간인이라고 할 수 있는 이능력자들이 도맡아 관리를 하는 수밖에.

그런데 괴물의 거대한 몸에서는 끊임없이 비틀림이 발생하고 있다는 유니온의 정보가 있다. 그 정도라면 거의 이동하는 D섹터 그 자체. 인간의 무기가 과연 효과가 있을까?

아니. 지금은 그저 효과가 있기를 간절히 바란다.

상황을 제대로 모르는 지영이와 선아는 내 존재가 꽤나 믿음직스러운지 금세 수다를 떨어댄다. 과연 스무살의 풋풋함이 가득한 피부와 외모의 그들이 있으니 방안이 화사해진다. 게다가 꽤나 흐트러진 옷차림, 가령 만들다 만 것 같은 짧은 반바지라던가 푹 파인 민 소매티. 분명 집에서 자다가 냉큼 달려왔음이 분명하다.

============================ 작품 후기 ============================원체 비축분을 못 가지고 있는 몹쓸 인내심이라 한편 더 투척합니다.

여러분의 선추코는 저를 빈털털이로 만들지요.

그리고 저에게 다음편이 이미 준비 되어 있다는 사실. 자. 독자님들 어서 절 털어보세요. 탈탈탈 영혼까지 털릴 준비가 되어있당게!!!

항상 읽어주신 독자님들께 감사드리며, 코멘트 추천 쿠폰 모두 감사드립니다 ㅜㅜasdasfasfsad : 유물하니 캔슬러가 떠오르네요 -아. 글고보니 캔슬러에서도 초반에 유물이라는 설정이 등장했었죠? ㅎㅎㅎㅎ 오해 마셈! 표절논란 야메룽다! 설정상 전혀 다른 물건이니. ㅎㅎㅎ천겁혈신천무존 : 아놔... 민아가조하요ㅠ.

ㅠ민아를냠냠합시다^-^건필하세여~ -오오! 민아의 편 드는 분 처음 봄. 초반에 죽이라는 코멘트도 많았었는데. 따.. 딱히 저도 민아가 좋아서 그러는 건 아니라능 ㅎㅎ

뿌잉뿌잉a : 뿌잉 -과연 아이디대로의 코멘트시군요. 저도 쀵쀵입니다. ㅋㅋㅋ 메카스타 : ㄱㄹㅎㄷ 잘보고갑니다 -ㅎㅎㅎㅎ 자 한편 더 드릴테니 다시 오셔야죠?

破天魔痕 : 투코넴 -으아! 한자 ㄴㄴ해! 교포인 저로써는 보는 것만 해도 머리가 아프지요 ㅜㅜ 하지만 코멘트 감사 ㅋㅋ 이비앙 : 으아아아아아아ㅏ아아아아아아 잡아먹어버리겠당 머릿속에 있는 뒷이야기를 다 알아낼 테당 -으아아아아앙! 저를 잡아먹다니! 한입에 먹어도 비리지 않는 저를! 저 시커먼 남자라고요! 일단 등짝부터 보여드릴까요? ㅋㅋㅋㅋ 농담인거 아시죠?

이비앙 : 으아아아아아아ㅏ아아아아아아 잡아먹어버리겠당 머릿속에 있는 뒷이야기를 다 알아낼 테당 를 다 알아낼 테당 -으아아아아앙! 저를 잡아먹다니! 한입에 먹어도 비리지 않는 저를! 저 시커먼 남자이비앙 : 으아아아아아아ㅏ아아아아아아 잡아먹어버리겠당 머릿속에 있는 뒷이야기를 다 알아낼 테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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