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2. 이게 뭔 난리야. -- >
나를 바라보는 그녀의 눈빛이 몽롱하다. 마치 내가 아닌 저편의 무언가를 보듯 잔뜩 풀려있는 그녀의 눈동자, 아직도 쾌감의 여운이 남은 듯 움찔대는 몸짓이 유치한 성취감을 채워준다.
사정 뒤의 허탈함마저 채워주는 그 유아틱한 정복욕 속에서 그녀를 내려다본다.
잔뜩 붉어진 얼굴에 땀방울이 송글송글 맺혀있다. 반쯤 가려져있던 이마가 드러나고 그 사랑스러운 곡선에 입을 맞춘다.
그리고 아직도 그녀의 안에 들어있던 존슨을 빼낸다. '아'하는 야릇한 신음소리와 그녀의 눈빛이 선명해진다. 그 선연한 검정 눈동자를 바로 보고 있자니 말로 형언할 수 없는 감정이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가 손을 뻗어 내 목을 감싼다.
"형준씨. 사랑해요."
갑작스러운 그녀의 고백. 만난 지 불과 며칠 되지도 않았건만 벌써 사랑을 말하는 그녀의 모습에 식은땀이 흐른다. 그런 내 기색을 눈치 챘는지 그녀가 재차 입을 연다.
"형준씨마저 저를 사랑해달라는 이야기가 아니에요. 벌써부터 부담 주려는 건 아니니 오해 말아요. 그냥 지금의 제 심정이 그렇다고요."
서운한 기색 하나 없는 그녀의 얼굴에 죄책감이 조금씩 커진다.
제길. 존슨! 왜 참지를 못해! 왜 참지를 못해! 아! 슬픈 남자의 본능이여.
"저도 희선씨가 좋아요."
차마 그녀와 같이 사랑한다는 말은 하지 못하고 애매한 표현을 하니 그녀가 눈매가 보기 좋게 휜다.
"고마워요. 지금은 그정도에 만족할게요."
그늘 하나 없는 그 멋들어진 미소에 덩달아 입매를 치켜 올렸다.
"어? 이게 뭐에요?"
끄응. 주책 맞게 다시금 일어나는 존슨의 기지개에 그녀가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이능력자로 각성하면서 가장 크게 득 본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지치지 않는 체력.
"음. 그게 말이죠. 희선씨가 너무 매력적이라."
되도 않을 변명을 하며 다시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한다. 그 같지도 않은 말에 기뻐하는 표정을 지어보인 그녀가 곧 열락의 신음소리를 내뱉는다.
그렇게 서로간의 체온을 나누기를 얼마나 했을까. 그녀도 나도 수도 없는 절정을 맞이했다. 이능력자랑 해보기는 처음인데 내가 체력이 좋아진 만큼 그녀 역시 어느 정도 체력의 보정이 있었는지 정말 밤이 꼴딱 지나가도록 뒹굴었다.
그런 그녀가 지금 무방비하게 침대에 늘어져서 기절한 듯 자고 있을 정도면 나는 오죽 하겠나. 일반인과 할 때는 한 번도 느끼지 못했던 피로감이 찾아온다. 정신적 피로가 아닌 순전히 육체적 피로다.
대충 하의만 두르고 책상에 앉아 담배를 입에 문다. 찰칵거리는 라이터 부싯돌 튕기는 소리와 함께 불꽃이 확 타오른다. 그리고 폐 깊숙이 들어오는 담배의 맛. 깊게 들이킨 만큼 길게 뱉어낸 담배연기가 뿌옇게 날아오르다가 창을 통해 빨려나간다.
가만히 눈동자만 움직여 천사 같은 표정으로 자고 있는 희선씨를 바라본다.
이불 밖으로 삐져나온 그 길다란 다리는 잡티 하나 없고, 반쯤 드러난 가슴은 뽀얗고 커다랗다. 그리고 얼굴은 또 어떤가. 깨끗한 피부에 단정한 이목구비. 정말 연예인이 와도 명함도 못내밀 미모다.
그런 그녀를 가만히 보고 있자니 또다시 주책을 떠는 존슨.
참어라 존슨. 형 먼저 죽겠다.
지금만 해도 허리가 뻑적지근할 지경이다. 더 이상 했다가는 나도 그녀도 쓰러지겠지. 처음일게 분명한 그녀지만 역시 이능력자라 그런지 정말이지 굉장한 밤이었다. 마구 몸부림치며 소리를 질러대는 통에 진땀 꽤나 흘려야 했으니까. 게다가 강화된 육체 탓인지 그 탄력과 압박이라니. 한번 여성 능력자랑 밤을 보내고 나면 그 개떡 같은 성격을 참고라도 이능력자만 찾는다는 말이 괜한 말이 아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행운아인가?
그녀는 이능력자지만 아름다운 외모에 더해 천사 같은 성격까지 지니고 있으니. 새삼 아기처럼 자고 있는 그녀가 사랑스러워 보인다.
담배를 재떨이에 비비곤 몸을 일으켰다. 대충 손을 헹구고 그녀의 곁에 몸을 눕힌다. 보드라운 그녀의 몸을 끌어안고는 잠을 청했다.
으아. 각성하고 처음으로 체력의 한계를 느끼는구먼.
자신의 가슴을 만지작거리는 내 손길에 그녀가 몸을 뒤척이다가 내게 안겨온다. 그리고 나도 곧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깨어난 그녀는 유니온으로 돌아갔다. 무기한 대기상태인 이능력자들이지만 그녀는 유니온 소속. 어디까지나 행선지를 밝힐 의무가 있다고 한다. 다시 연락한다는 그녀의 말에 기다리겠노라 고개를 끄덕인 나는 다시 그녀의 키스를 받고는 다시 몸을 눕혔다.
그리고 다시 깨어난 건 핸드폰이 미친 듯이 벨을 울려대는 탓이었다.
"여보세요."
잔뜩 잠긴 목소리로 전화를 받으니 저편에서 대뜸 욕이 날라온다.
"이 새끼야! 왜 이렇게 전화를 안 쳐받고 지랄이야!"
상큼하게 욕을 날려주는 김도연의 음성이 잔뜩 골이 나 있다. 이럴 때는 무슨 말을 해도 들리지 않는 그녀인지라 언제나처럼 전화기에서 귀를 뗀다.
여기까지 들려오는 욕 잔치에 다소 어이가 없다. 이 아줌마는 생긴 건 곱게 생겨서 입은 걸레를 물었나.
한참이 지나서야 잠잠해진 전화기에 귀를 가져다 된다.
"됐어?"
"응."
언제나와 같은 패턴이다. 그녀는 한번 성질이 나면 일단 욕으로 어느 정도 풀지 않으면 가라앉질 않는 성격이라 그녀도 나도 이런 패턴에 익숙해져 있다.
"그저께 얘기했잖아. 부탁 들어달라고."
아. 그 얘기. 대충 듣고 흘려들었던지라 제대로 기억이 날 리가 없다.
"뭐라고 했었지?"
"....."
전혀 기억조차 못 한다는 듯한 내 태도에 그녀가 잠시 침묵을 지킨다. 다시 욕세례를 받는 건 사양이라 재빨리 말했다.
"아. 내가 어떻게 하길 바라는데?"
어차피 일전에 신세진 정보값이라 생각하고 들어줄 요량으로 물으니 그녀가 반색을 하고 말한다.
"들어줄 거지?"
"일단 들어보고. 나 엄청 피곤하니까 조금이라도 번잡하거나 한 부탁이면 안 들어줄 거야."
아닌 게 아니라 희선씨와 보낸 밤의 여파가 아직까지 가시지 않았던지라 죽는 소리를 했다.
"전에 말했잖아. 절대 피곤한 거 아니고 번거로운 것도 아니야. 잠깐 누구 만나러 가는데 동행만 해줘."
아. 그래? 그러면 간단한 일이니까 들어줄게. 는 개뿔. 그녀의 말을 곧이 곧대로 믿었다가는 영혼까지 탈탈 털리고도 남는다.
"제대로 말해봐. 뭉뚱그려서 말하지 말고. 육하원칙을 지켜서 다시 설명해봐."
수화기 저편에서 잠시 말이 없다. 이년 분명히 대충 넘어가려다가 찔끔 했겠지.
"아잉. 우리 사이에. 그냥 들어주면 안 돼?"
되먹잖은 애교질을 부리는 그녀에게는 단호하게 대응해야 한다. 안 그러면 휘둘리게 마련이지.
"꺼져. 미친개 김도연이랑 얽히면 피곤한 일만 생긴다는 거 대한민국의 온 능력자가 다 알어. 같잖은 수작 부리지 말고. 자. 육하원칙."
저쪽에서 이가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지만 나는 코웃음 쳤다.
"오늘 저녁 8시에. 일산에서. 너 하고 내가. 사람을 만나. 비즈니스야."
곱지 않은 음성으로 한자한자 씹어뱉듯 말하는 그녀의 말에 귀가 솔깃하다.
"비즈니스?"
일 이야기라면서 어물쩡 날 끌고 나가려고 했던 걸 보면 분명히 복잡한 일일 테지만, 일단 들어나 봐야겠다는 심보로 물었다.
"응. 개인 의뢰야."
단답형으로 대답하는 그녀, 뭔가 숨기는 게 있다. 그냥 흘려버리고 부탁따위 거절하면 되지만 그녀가 이렇게 나올 때는 큰 이득이 걸려있다.
"자세하게 말해봐."
내 말에 포기했다는 듯이 그녀가 모든 사실을 털어놓기 시작했다.
"집요한 새끼. 한번만 말해줄 테니 잘들어. 일산에 땅이 있어. 의뢰자가 선대부터 물려받은 선산인가 그런데 이번에 다른 쪽의 투자금을 받아서 그쪽에 공장이라도 지을 생각인가봐. 근데 그게 문제가 생겼다나봐."
오오. 난다. 난다. 돈냄새가!
"근데 그게 보통 문제가 아니라 우리 쪽 세계의 뭔가가 개입된 거 같아. 그래서 그 이유를 밝히고 처리해달라는 거야."
이능력자가 양지로 공개된 건 얼마 안되는 시간이지만, 이런 식의 의뢰는 전부터 꾸준히 있어왔다. 게다가 이 아줌마는 일반인들에게 용한 점쟁이 내지는 퇴마사정도로 알려져 있으니 어떤 경로를 통해서든 이런 일이 들어온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그래서. 그런 일인데 맨입으로 털겠다고?"
내 말에 그녀가 다시 애교질을 떤다. 아. 진짜 짜증나게 자꾸 코맹맹이 소리야.
"아잉. 그러지 말고. 의뢰금도 얼마 안 돼는데 같이 가자. 내가 밥 제대로 살게. 응?"
꼴깝 떤다 김도연. 이쪽 일이라는 게 남한테 알리기 어려운 일이라 한번 일을 맡으면 못해도 큰거 세,네장은 그냥 들어온다.
"아? 뭐라고? 의뢰금도 얼마 안 돼는 일 그냥 때려치면 되겠네. 마침 나도 어어어엄처어엉 피곤해서 도저히 못 나가겠거든."
끝까지 저따위로 나오면 정말 끊어버릴 생각으로 말했다.
"반띵. 의뢰금 속이기 없고. 바로 현찰 박치기. 아니면 안가."
잠시 입을 닫고 있던 그녀가 치를 떤다.
"에이. 더러운 새끼. 그지 똥꼬에서 부추를 빼먹어라. 에이 지독한 놈. 고추에 털도 안자랄 놈."
오케이. 넘어왔다. 그녀가 저렇게 말한다는 건 내가 꼭 필요하다는 거다. 거래란 모름지기 상대방이 필요한 뭔가를 내가 쥐고 있으면 반드시 유리하게 성사되는 법.
"의뢰금은 9천만원이야. 성사되는 데로 바로 계좌로 쏠게. 이 지독한 새퀴야."
이런 오라질년을 봤나! 9천만원이나 되는 돈을 혼자 꿀꺽하고 나는 밥한끼로 때울라고 했단 말이야. 강도 같은 년.
"이런 날 강도같은 년을 봤나. 혼자 그 많은 돈을 다 쳐먹을라고 했어?"
내가 자신을 비난하자 그녀가 볼멘 소리로 자신을 변호한다.
"어차피 그 돈 들어와도 나는 재료비나 그런 걸로 다 써야 한단 말이야. 너도 알잖아! 요즘 술법에 필요한 도구가 얼마나 비싼지. 벼락맞은 대추나무 1미터에 천만원이 넘는다고."
이능력이 이상한 쪽으로 개발된 그녀는 보통의 이능력자와는 다르게 술법이라는 생소한 힘을 사용한다. 하는 짓거리가 꼭 무당이나 무속인 같아서 놀림도 많이 받는 그녀지만 능력 하나의 활용은 최고다. 다만 재료비가 꼬박 꼬박 들어가는 능력이라 그렇지.
"꺼져. 알 거 없고. 내 몫 4천5백만원 바로 쏴. 그거 확인되면 움직일테니."
"사고 싶은 가방이 잔뜩 있었는데. 히잉."
미친년. 지가 사치를 부리는 데 왜 나를 엮으려 들어. 흥이다 이년아.
약속장소와 시간을 머릿속에 기입하고는 통화를 마쳤다. 자세한 이야기는 만나서 듣기로 했다. 개인의뢰라.
이런 쪽 일이라는 게 헤프닝으로 끝날 때도 많지만 의외로 또 빈번하게 이상한 놈들이 얽혀 있는 경우가 많으니 마냥 쉽게 생각할 수가 없다. 전에도 몇 번인가 그녀를 통해 같이 해결했던 일중에는 원귀라던가 제법 끔찍한 존재들이 끼어있었거든.
미리 장비를 챙기려던 나는 핸드폰의 문자음에 다시 화면을 확인한다.
'형준씨. 뭐해요?'
그세를 못 참고 문자를 보낸 희선씨의 행동에 흐뭇한 미소를 지으며 답문을 한다.
'희선씨 생각.'
============================ 작품 후기 ============================고되기만 했던 붕가편이 지나고 다시 정상 스토리!
설문 조사에 누님캐릭터를 히로인으로 등장시키라는 게 가장 많군요.
저와 같은 누님연방 소속이 많으실 줄이야. ㅎㅎㅎ 반갑습니다.
누님연방 대령 노쓰우드입니다.
선추코는 글쟁이를 연참하게 하는 힘!!! 추천 어렵지 않아요! 코멘트 어렵지 않아요!
그냥 그렇다고요;;; 지성;;;오늘부터 리코멘트 들어갑니다!!!!
그간 써주신 코멘트들 몇번씩 곱씹으며 읽었으나 리코멘트 이제야 하는 것 이해해주시기를. 항상 읽어주시는 독자분들께 감사드립니다^^똘랭 : 나는 사운드가 과다하면은 너무 일본애니틱하고 가벼워보이던데 ... -ㅇㅇ. 뭔가 앙앙 거리기만 하면 망가스럽긴 하지요. 난행복해 : 전 스토리 위주로 읽으니 이런식으로 의미없이 나오는 씬은 그냥 패스합니다. -ㅇㅇ. 저도 개인적으로 의미없는 씬은 별로라. 이번편이 마냥 의미 없는 씬은 아닐겁니다. 소소한 코드를 몇개 집어넣었거든요. 메카스타 : 잘보고갑니다-넵! 담편에 또 뵈어요!
뱃살앙마 : 개인적으로 디테일한 묘사보다는 소리위주가... ㅎㅎ-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야메뗴! 기모찌! 요개소년호야 : 작가님 의외로 씬 묘사에 소질이 ㅋㅋㅋ 분량 늘려주세욬ㅋㅋㅋ -쓰는 저는 죽어나갑니다. 일부러 최대한 무미건조하게 썼읍죠. 행동위주로. ㅋㅋ니트로서 : 아예 생략히ㆍ거나 완저ㄴ 디태일하게 하는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애매한건 별로라... -음. 이번 건 좀 애매했나요? 더 디테일하게 가거나 아예 생략하는 쪽으로 갈게요!
지리산의늑대 : 가버렷 ㅋㅋ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ㅋ 붕가씬으로 가버렷!!!! 나미나미 : 붕가는 디테일한게 최고라고 들었습니다 ㅋㅋㅋ -ㅋㅋㅋㅋㅋㅋㅋㅋ 어디서 들으셨는지 출처가 심히 궁금합니다만 ㅋㅋㅋ이비앙 : ㅋㅋㅋㅋ 후깈ㅋㅋ -후기가 찰지죠? ㅋㅋㅋ 기모찌!!!!
ㅇㅅㅇ! : 아 오래 기다린 보람이있네, 안자길 잘했어 하하하하하하하하-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개인사가 너무 겹치다 보니 오늘은 늦었었습죠. 다음편은 이미 장전 완료! 잿빛나래 : 가.. 가버렷!!
-내가... 내가 아니게 되버렷!!!!
-기다려주셔서 감사해요^^ 개인사가 너무 겹치다 보니 오늘은 늦었었습죠. 다음편은 이미 장전 완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