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5화 (15/223)

< --  1. 이게 웬 날벼락인 줄 알았더니!  -- >

"형준씨가 잡은 놈들이 돗가비라는 몬스터라지요? 그 놈 말고도 몇 놈이 더 출현했어요. 다행스럽게도 유니온의 능력자들이 어떻게 처리를 한 것 같지만 아직까지 동기화된 지역은 원상복구가 안 되고 있어요. 게다가 그런 곳이 전국적으로 한 두곳이 아니라 거의 전국의 모든 이능력자들이 정신없이 사태를 수습하고 있는 거 같아요."

그런가. 역시 그 두놈을 잡은걸로는 상황이 종결되지 않았구나. 한번 왜곡이 시작된 지역이라 그런지 쉽게 복구가 안 된다는 희선씨의 설명에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간 한 번도 이런 일이 없었건만 갑자기 벌어진 사태에 유니온도 정신이 없는 듯 하다. 게다가 우리나라뿐만이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동시에 벌어진 일이라니 단기간에 수습될 사건이 아닌 듯 하다.

"덕분에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난리가 났어요. 하필 이능력자가 공개된 시점에서 벌어진 사건이라 말들도 많고, 게다가 워낙에 일이 크게 벌어져서 언론 통제도 전혀 안 되는 것 같고요. 형준씨의 모습도 또 찍혔어요."

이제는 새삼스럽지도 않다. 그렇게 난리통이 벌어지고 희생자가 속출했는데 보안유지가 되면 그게 이상하지.

"당분간은 유니온도 정부도 정신이 없겠군요."

계속해서 유니온의 계획이 망가진다. 이대로라면 잔 수작 부리지 않고 바로 양지로 이능력자들을 내보내는 건 순식간이겠지. 뭐 그러고 말고 할 것도 없이 잔뜩 찍히고 보인 듯 하지만.

"그나저나 형준씨 4등급 능력자가 5등급 몬스터를 한 번에 두 마리나 상대한 건 처음이라고 꽤나 시끄러워요."

그녀의 말에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나로서도 조금 놀라운 일이었다. 돗가비 암수 한쌍을 혼자 처리하다니. 거의 3등급 능력자들에게나 가능한 일이 아닌가. 물론 무언가 어벙벙한 놈들이긴 했지만 꽤나 까다롭다고 알려진 놈들인데 생각보다 쉽게 처리했다.

"글쎄요. 왠지 모르게 D섹터에서 봤던 놈들보다 허약하던데요. 다른 곳에서는 그런 보고 없었나요?"

내 말에 그녀가 잠시 생각하는 표정을 지어 보이다가 고개를 번쩍 든다.

"아! 있어요! 있어요! 이번에 투입된 이능력자들 중에 그런 말을 하시는 분들이 제법 있어요."

역시나 예상대로다. 이번에 병원에서 튀어나온 몬스터들은 뭔가 결핍된 반편이들이었다. 다른 놈들은 마주치질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그런 이야기가 나올 정도면 어느 정도는 근거가 있는 추측일 것이다.

한참 상황을 머릿속으로 정리하는데 문득 의문점이 생겼다.

"근데 희선씨는 왜 여기 있어요?"

치유계열 능력자라면 일이 종결되고 나서야 더 바뻐질 텐데 그녀는 한가로워 보이기만 한다.

"아. 아시잖아요. 제 이능의 대가. 벌써 두분 치료하고 엥꼬났어요."

하긴 그녀는 내 부상을 치료하고도 한동안 맥을 못 썼었지. 꽤나 효과가 좋은 이능이던데 유니온의 입장에서도 아쉬운 부분이리라.

생각보다 부상자가 많지 않다는 말을 하는 그녀의 말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능력자들이야 그렇다고 치지만 아마 일반인들은 이번 참사에서 부상자는커녕 생존자도 찾기 힘들었다고 한다. 희생자의 수가 전국적으로 수백은 된다는 말에 나도 모르게 침음성을 내뱉는다.

그 뒤로도 한참이나 말동무를 해주던 그녀가 유니온의 호출로 자리를 뜬다. 나 역시 딱히 할 일도 없는지라 그녀가 떠난 병실에서 그대로 잠을 청한다.

'전국적으로 벌어진 괴현상의 희생자는 현재 400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그 수는 더욱 늘어날 것으로 보입니다. 국민들 사이에서 이번 현상과 얼마 전에 공개된 이능력자들 사이에 연관이 있지 않나 하는 의혹이 증폭되고 있으며, 당분간 이 의혹은 더욱 거세질 것으로 예상됩...'

채널의 어디를 돌려도 죄다 이번 사건에 관한 이야기들뿐이다. 참사에 가까운 이번 일은 어마어마한 희생자들을 동반하고 있어 그 후폭풍이 드세기만 하다.

'하와이에서 발생한 이번 사건의 희생자는 관광객을 포함해 약 2,000명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으며....'

'일본 역시 전에 없는 사건으로 사건을 수습하는데 여념이...'

전 세계가 비슷한 시기에 벌어진 사건들로 들끓고 있다. 뉴스를 보던 나는 TV의 전원을 껐다. 보다보니 나까지 우울해지는 기사 일색이

라 차마 더는 TV를 볼 엄두가 안 난다.

대체 왜 이런 현상이 일어났는지 도저히 알 수가 없는지라 갑갑하기만 할 뿐이다.

그때 휴대폰이 시끄럽게 울려댔다. 발신자는... 엄마다.

눈앞이 깜깜해진다. 분명 찾아오라는 아버지의 말씀이 있으셨지.

도저히 수습할 수 없는 상황에 눈을 질끈 감고 전화를 받았다. 미처 입을 뻥긋거리기도 전에 호된 꾸지람이 날아온다.

'이놈 새키야! 정신이 있어 없어? 어? 네 아버지가 들리라고 안하디?

"과연 예상대로의 반응이라 진땀을 흘렸다.

"어머니, 진정하시고 제 말을 좀...

"어렵사리 말을 꺼내보지만 단박에 입을 다물게 하시는 엄마의 말이 걸쭉하다.'

지금 진정하게 생겼어! 열 달동안 내 배 아파서 난 자식이 듣도 보도 못한 초능력자 나부랭이라니! 게다가 뭐? D섹턴지 뭔지 나발인지? 네놈이 내 새끼가 맞는지 모르겠다.

'거칠게 고함으로 시작한 어머니의 말이 끝에 가서는 잦아들며 흐느낌으로 바뀐다. 죄스러운 마음에 차마 대답조차 못하고 고개를 숙이고 있는다.'

나라가 괴물이니 뭐니로 난리통인데 내 새끼는 초능력자라고 앞에서 싸운단다. 그걸 뉴스에서 보는 애미 심정을 알긴 아니?'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다.

"죄송합니다. 엄마."

잔뜩 억눌린 음성으로 말하니 수화기 너머로 엄마의 흐느낌이 거세진다. 한참을 말없이 흐느끼기만 하던 엄마가 떨리는 음성으로 묻는

다.

'이놈아. 네 몸이 건강해야 엄마, 아빠도 살지. 이게 웬 날벼락이냐. 몸은 괜찮고? 이번에 또 난리 났을 때 싸우고 다치고 한건 아니지?'

이번에도 가장 앞에서 싸웠다는 사실을 아시기라도 했다가는 정말 쓰러지실 지도 모른다. 어쩔 수 없이 거짓으로 고한다.

"멀쩡해요. 저는 저번 일로 쉬고 있던 중이라 뉴스에서나 봐서 알았는걸요. 걱정 마세요. 엄마."

먹먹한 가슴으로 말하는 내 음성이 잔뜩 떨린다. 엄마. 미안해요.

그 뒤로도 한참이나 이어진 엄마의 잔소리를 애틋한 마음으로 듣는다. 구구절절히 몸 건사하라는 말씀이시라 그저 고개를 주억거릴 뿐.

한참을 이야기 하시던 엄마가 아버지를 바꿔준다.

"어디 또 다친 건 아니지?"

대뜸 안부부터 묻는 아버지의 말에 눈시울이 붉어진다. 아버지에게까지 차마 거짓말은 못하고 말없이 있는데 아버지가 한숨을 쉬신다.

'사실 네놈이 싸우는 영상 봤다. 엄마야 드라마 아니면 보질 않으니 아직 모르지만.'

아버지의 말에 더욱 고개를 숙인다. 전화기 너머의 아버지가 지금 네 모습을 볼 수 있을리 없지만 그래도 죄송한 마음에 고개를 들 수가 없다.

'그렇게 위험하게 싸워야 하냐? 얘기 들어보니 너 말고도 능력잔지 뭔지가 많다더만 왜 하필 자꾸 네가 나서냐.'

일전의 통화에서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셨던 탓에 더욱 마음이 안 좋으신지 아버지의 음성이 침통하기만 하다.

다음부터는 몸조심 하겠다는 지키지도 못할 약속으로 통화를 끝마친다.

통화를 끊고나니 머리가 멍하다.

가족, D섹터, 유니온, 이능력, 몬스터.

온갖 잡다한 생각들이 머릿속에 가득 들어차 마구 뒤섞이는 기분이다. 아무리 정리를 해보려 해도 어디부터 손대야 할지 모르는 방 정리처럼. 그저 복잡한 머리에 끙끙댈 뿐.

이번일은 갑작스럽게 언론에 노출된 저쪽 세계부터가 석연치 않다. 그렇게 호락호락하게 정보를 흘릴 유니온도 아닐뿐더러 기다렸다는 듯이 나를 지목해 신상을 노출시키다니.

어쩌면 처음부터 계획된 일들은 아닐까.

대한민국에 소속된 이능력자로써 어차피 유니온의 지령이라면 못이기는 척 따르는 수밖에 없으니 지저분한 현실에 입맛이 쓰다.

이능력의 발현과 그에 따른 피드백. 거듭될수록 몸은 점차 변질된다. 결국은 유니온에게 의지해서 그 변이를 늦출 뿐. 그리고 다시 유니온의 요청에 의해 이능의 발현. 반복되는 악순환의 고리.

새삼 가라앉아있던 분노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내 인생을 멋대로 좌지우지하는 유니온의 행사에 분기가 치솟는다. 하지만 반대편에서 떠오르는 또 다른 사실 하나. 애초 유니온이 아니었다면 나는 최초 각성 이후 이 자리에 존재하지 않았을 테지.

온통 피바다 한가운데 널부러져 울부짖는 소년이 보이는 듯 하다.

고개를 털어 생각을 접는다. 지금은 당면한 문제들만 생각하자. 쓸데없는 감상은 금물.

잡생각을 떨치고 TV의 스위치를 다시 올린다. 역시나 화면에 바로 나오는 참사의 소식들.

머리 복잡해지는 뉴스 말고 쇼프로그램이나 볼까 해서 채널을 돌려대던 내게 생각지도 못한 광경이 보인다.

'광화문의 광장에는 추모객들의 행렬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끝도 없이 이어지는 촛불의 바다가 국민들의 슬픔을 알려주고 있습니다.'

리포터의 뒤편으로 늘어선 추모객의 행렬. 거기까지라면 별 다를 것 없는 광경이지만 그들이 손에 쥐고 있는 피켓의 문구가 심상치 않다.

'괴물들은 물러가라!'

'양의 탈을 쓴 능력자들의 사과를 원한다!'

온갖 저주가 가득한 성토문구들이 쓰인 피켓들이 즐비하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광경이라 턱이 빠질 듯 벌어진다. 리포터의 설명이 이어진다.

'추모객들은 이번 참사가 이능력자들과 관련하여 일어난 것이라고 강하게 확신하고 그들에게 공개적인 사과와 사건의 설명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뒤로 이어진 설명은 줄줄이 이능력자들을 비난 하는 내용 일색이다. 마치 이번 참사를 일으킨 것이 우리들이라도 된냥 그 어조가 신랄하기 그지없다.

이 말도 안 돼는 상황에 어안이 벙벙할 뿐이라 입맛 벙긋거리고 있다.

갑작스럽게 이능력자들에 대한 반감정이 고조될 이유가 없다. 이미 그간의 방송으로 보이지 않는 곳에서 피를 흘리는 헌신적인 존재로 자리매김이 되가는가 싶었는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악마는 지옥으로 돌아가라.'

저게 과연 우리를 향한 메시지가 맞는지 의문이지만 자극적인 문구가 넘치는 피켓들이 끝도 없이 이어진다.

억울하다는 심정보다는 그저 어이가 없다.

우리가 저런 대우를 받기 위해 싸워왔던가. 고작 저런 취급을 받기 위해 그토록 피를 흘려가며 악귀처럼 싸운 건가. 차라리 음지에 있을 때는 아무도 몰라주지만 그래도 뭔가 공헌했다는 자부심이나 사명감이라도 약간이나마 있었다. 그 참여가 자의든 타의든 간에 우리들이 흘린 피가 저렇게 매도될 만큼 가치 없진 않다.

============================ 작품 후기 ============================역시 투베란 어찌 어찌 운으로 오른다 해도 지킬 수 있는 만만 한게 아니군요.

지구의 독자님들아! 나에게 힘을 빌려줘!!!!

그리고 공포물이나 생존물 좋아하시는 분은 제 다른 글, '아름다운세계' 읽어봐주세요.

참고로 밤에는 읽지 않는 게 좋다는 뭇 독자님들의 말씀이 계시니 참고해주시고요!

마지막으로 설문조사중이니 많은 참여 부탁드립니다!

참고로 저는 마지막 지문에 투표했음. 저 스스로를 고무한달까요 ㅋ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