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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바라기-14화 (14/223)

< --  1. 이게 웬 날벼락인 줄 알았더니!  -- >

사람의 몇 배는 되어 보이는 덩치에 흉물스러운 피부에 머리통에는 날카로운 뿔이 돋아있다. 길다란 팔다리에는 날카로운 돌기가 가득하고 거의 사람 키만한 도끼를 들고 있는 모습이 자못 흉악스럽다.

"돗가비?"

재수가 없으려니 걸려도 성가신 놈이 걸려버렸다. 5등급에 속하는 몬스터지만, 교활한데다가 포악스럽기까지 한 놈이라 상대하기 쉬운 놈은 아니다. 게다가 더욱 성가신 건...

"크아아악!"

놈은 암, 수 한 쌍이 함께 움직인다는 거지.

복도를 사이에 두고 앞뒤로 놈들에게 둘러싸인 형세다. 뒤늦게 나타난 놈이 암놈인지 역겹게도 사람 머리통보다 커다란 가슴을 덜렁거리며 괴성을 지르고 있다.

제길. 원래대로라면 각 몬스터의 등급은 동급의 능력자가 1:1로 상대할 수 없다. 5등급의 몬스터라면 최소 4등급은 되어야 단신으로 상대가 가능한데 재수 없게도 동시에 두 마리를 만나버리다니. 정말 꼬여도 된통 꼬였다.

"저기. 한 마리씩 상대하면 안 될까?"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여보지만 놈들은 한층 사나운 괴성으로 대답을 대신한다. 원래대로라면 물러서는 게 맞지만 지금 놈들을 놓치면 사람들의 피해가 한층 커질 거라는 생각에 차마 자리를 뜨지 못 했다.

그나마 기대를 해볼 만한 게 날렵한 놈들이 하필이면 좁디좁은 복도를 전장으로 삼았다는 거지. 이 정도 공간이라면 놈들의 행동반경에도 제약이 제법 생길 테니 단기전에 승부를 걸어본다.

괴성을 질러대던 놈들이 움직이려는 찰나, 한발 앞서 내가 먼저 행동을 개시했다. 뒤늦게 나타난 암놈에게 몸을 날린다. 내 행동에 당황한 놈들이 우왕좌왕하고 내가 암놈을 먼저 공격해가자 수컷이 괴성을 질러댄다.

그래. 못생긴 것들이지만 그래도 커플이라는 거지?

어느새 닿을 듯 가까워진 암놈에게 주먹을 내지른다. 예상외의 일격을 당한 탓인지 제대로 대처 하지 못하고 팔을 뻗어 공격을 막으려는 놈을 보며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힘껏 뻗어가던 주먹 끝에 날카로운 가시가 솟아 나온다. 애초에 좁은 공간에서 근접박투를 염두에 두고 있었던지라 작정하고 내지른 주먹이다. 어설프게 팔로 막았다가는 그대로 송곳 같은 찌르기에 꿰뚫리고 말테지.

교활하기 그지없는 놈답지 않게 허무하게 한쪽 팔을 잃는다. 기세를 몰아 주먹을 빼냄과 동시에 회전한다. 몸을 한 바퀴 돌리며 반대쪽 팔꿈치에 길게 칼날을 뽑아낸다. 이번에는 베어간다.

하지만 놈이 재빠르게 뒤로 물러서는 바람에 내 공격은 그저 허공만 가르고 말았다. 나는 개의치 않고 한번 탄 기세를 놓치지 않기 위해 재빠르게 한발을 내딛음과 동시에 양손을 모아 쭉 뻗어낸다. 다시금 마주 잡은 손바닥 사이에 형성된 단창이 놈의 가슴팍을 막바로 찔러간다.

너무 섣부르게 결정타를 날리려 한 탓인지 어느새 높이 치켜진 놈의 방망이를 보지 못했다. 그 대가로 나는 그 강맹한 공격에 휘말려 반대쪽 벽으로 나뒹군다.

"크윽!"

내장이 흔들리는 충격에 눈앞이 아찔하지만 나는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놈은 바닥을 나뒹구는 나를 밟을 듯이 달려들다가 자세를 바로잡은 나를 보고 잠시 주춤한다.

그리고 쿵쾅거리는 수컷의 발소리가 어느새 바로 등 뒤까지 다가왔다.

쳇. 한 놈이라도 처리하고 시작하려 했더니 글렀나.

소리만으로 놈의 위치를 가늠해 반대쪽으로 몸을 날렸다. 앞뒤로 동시에 공격당했다가는 낭패인지라 암놈이 있는 곳으로 냅다 내달린다. 놈을 지나쳐 벽을 등지고 싸운다면 그나마 수월한 싸움이 되겠지.

암놈은 수컷의 가세에 용기가 백배했는지 피투성이 팔을 횡으로 휘둘러 온다. 그 커다란 덩치만큼이나 긴 손끝에 쥐어진 방망이까지. 아직 채 다가가지도 않았음에도 놈의 공격이 주는 박력이 느껴진다.

허리어림을 쓸어오는 놈의 방망이를 피해 슬라이딩 하듯 몸을 낮추고 놈을 통과한다. 물론 지나치는 와중에 뽑아낸 칼날로 놈의 허리를 베어간 건 덤이다.

복도의 끝 벽을 등지고 돌아서서 놈들을 노려봤다.

당장 한 마리만 만나도 낭패스러운 놈을 두 놈이나 만났지만 왠지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D섹터에서 상대해봤던 놈들보다 어딘가 조금 부족한 듯한 모습을 보이는 돗가비들. 원래대로라면 타격대단위의 팀이 구성되어 잡을 놈이지만 나는 한번 호기를 부려 보기로 했다.

지난 전투에서 워낙 용아병에게 당해서 그렇지. 나도 전투라면 이골이 난 몸이다. 등급상으로도 상대 못할 이유가 없을 놈들이니 쉽게 당하진 않는다.

수컷이 상처 입은 암놈에게 다가가 상처를 살펴본다. 암놈이 그 흉악한 몰골에도 불구하고 애처롭게 끙끙거리며 수컷에게 애교라고 생각되는 수작을 부린다.

보기 참 역하구만.

속으로 못난이 커플의 애정행각을 욕하며 나는 방패와 단창을 생성했다. 평소보다 짧고 또 작은 사이즈의 창과 방패. 좁은 실내에서의 전투에 걸맞게 무기의 길이와 크기를 조절했다.

원래 계획은 단기전으로 놈들 중 하나를 빠르게 처리하고 나머지 한 놈을 상대하는 것이었으나 이미 글러버렸으니 포기한다. 그나마 암놈의 팔뚝에 커다란 상처를 남겼으니 위안이 된달까.

이렇게 된 이상 시간을 끌다가 유니온의 지원대가 오면 조력을 구하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조금이라도 시간을 벌 요량으로 온몸의 기세를 북돋운다. 기세에 겁먹고 잠시간 대치상태를 유지해준다면 감사할 뿐이고.

하지만 놈들은 내 기세가 공격의 기미라고 생각했는지 도리어 나에게 달려든다. 내심 얄팍한 잔머리를 굴린 나를 자책하며 놈들의 공격을 맞받아간다.

먼저 수컷의 방망이를 피해 허리를 숙인다. 연이어 날아온 암놈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비껴내며 훤하게 드러낸 수컷의 옆구리를 찔러간다. 창두가 놈의 옆구리를 파고들 듯 다가서다가 거대한 방망이에 튕겨져 나온다. 공격을 하느라 몸이 굳은 잠시간의 허점을 파고드는 암컷의 방망이질을 피해 몸을 튕겨낸다. 연신 폭음이 터져 나오고 나는 정신없이 놈들의 공격을 피하고 막으며 반격을 해댄다.

귀가 먹먹해질 정도로 시끄러운 굉음 사이에서 나는 온 힘을 다해 움직였다. 잠깐이라도 멈췄다간 잘 다진 고깃덩이가 될 판이니 움직이는 동작 하나하나에 신중을 기했다.

얼마나 그렇게 살벌한 공방을 주고받았을까. 역시 반편이들답게 몇 번이고 서로의 방망이끼리 얽히며 빈틈을 보이던 놈들의 이번에야말로 심하게 말려버렸다. 나를 향해 쓸어오는 암놈의 방망이를 수컷의 방망이가 내리쳐버린다.

괴력의 소유자들끼리 서로 방망이가 부딪혔기 때문인지 암놈의 방망이가 바닥에 파고든다.

그래. 너희들 사랑하는 만큼 서로 잘 맞진 않는구나.

예상치 못하게 찾아온 기회에 나는 쾌재를 부르며 암놈을 공격해간다. 훤하게 비어버린 암놈의 가슴팍으로 힘차게 창을 뻗어간다.

미안하다. 니 마누라 찌찌는 내가 가져간다.

회심의 일격이 암놈의 왼쪽 가슴을 파고든다. 소름끼치는 파육음과 함께 느껴지는 손끝의 감촉. 이번에는 제대로 들어갔다.

"끼에에엑!"

듣기 싫은 괴성을 지르며 나자빠지는 암놈. 하지만 돗가비들은 심장이 두 개다. 이대로 안심했다가는 금세 일어난 놈과 다시 박 터지게 싸워야 하겠지. 나는 손에 쥐고 있던 단창을 놓으며 속으로 뇌까린다.

터져라.

놈의 가슴에 박힌 단창이 꿀렁거리다가 펑 터져버린다. 피보라가 피어올랐다가 이내 사라지고 난 자리에는 상반신이 통째로 날아가 버린 암놈이 있다.

갑작스럽게 자신의 반려를 잃은 수컷이 한창 싸우는 도중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방망이를 놓고 암컷을 부둥켜안았다. 복부 위로 통째로 날아가 버린 흉물스러운 시체를 부여잡고 울부짖는 놈이 흉악한 몬스터라고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비통해 보인다.

그래봐야 결국은 몬스터는 몬스터. 나는 새롭게 생성한 창을 치켜세우고 놈의 등 뒤에 냅다 꽂아버렸다.

비명도 지르지 않고 창에 꿰뚫린 수컷이 암놈의 시체를 더욱 세게 끌어안는다. 그 모습에 조금 측은지심이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지만 나는 다시 한 번 창을 폭발 시킨다.

또다시 산산 조각나는 돗가비의 시신.

왠지 모르게 입맛이 쓴 전투의 마지막을 생각하며 나는 자리에 주저앉았다. 때마침 피의 갑옷도 해제되어 바닥에 낭자한 피에 엉덩이가 금세 축축해진다. 아. 아슬아슬했구만.

제기랄. 용아병에, 돗가비 커플에. 요즘 지랄도 풍년이야.

유니온에 얽히면 꼭 끝이 이렇다니까. 속으로 되도 않을 유니온의 욕을 하며 숨을 고른다.

병원에 가득하던 무거운 공기가 점차 희미해져간다. 여전히 왜곡된 의지의 끈적거림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방금 전에 비하면 훨씬 가벼운 공기가 주변을 채워간다. 그리고 선혈이 가득한 벽에 기대어 복도를 바라본다. 곧게 뻗은 복도를 넘치도록 칠한 선혈과 육체의 파편들. 그 끔찍한 광경은 대체 얼마나 되는 사람이 희생되어야 가능한 걸까. 이유도 모르고 공포 속에서 살해됐을 희생자들에게 애도를 표한다.

이능의 대가로 점차 의식이 흐려진다. 이번에 꽤나 연성을 해댔지.

"끔찍하군."

갑자기 들려온 말소리에 고개를 들었다. 지나친 이능의 사용으로 둔감해진 감각을 뚫고 접근한 누군가가 바로 앞에 서 있다.

"누구?"

마침 시야가 침침해지던 차라 흐릿한 그림자만이 보인다. 제길. 퇴원한지 얼마나 됐다고.

"유니온 소속 3등급 능력자 '하얀 송곳니' 민영모. 보아하니 한바탕 한 것 같은데 간략하게라도 사정을 설명해주기를 바랍니다."

3등급 능력자라니. 꽤나 높은 분께서 나섰구만. 점차 희미해져가는 의식을 부여잡고 간신히 입을 연다.

"돗가비 암수한쌍 출현, 격퇴했...."

시야가 흐려지다가 마침내 꺼멓게 바래고 이내 아무것도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다.

그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 보이는 익숙한 무늬. 병원의 천장이다. 며칠사이에 벌써 두 번이나 병원신세를 지는구만. 아직 의식이 완전히 깨어나지 않은 탓에 몽롱하다. 가만히 눈만 껌벅거리고 있는데 낮익은 음성이 들린다.

"정신이 들어요?"

고개를 돌리니 입매를 곱게 올린 희선씨가 보인다. 전에 봤을 때와 달리 간호복이 아닌 유니온의 정복을 입고 있다. 왠지 모르게 뭔가를 뺐긴 기분이라 입맛을 다신다.

"아. 네. 지금 얼마나 지난 거죠?"

여전히 타이트한 복장의 그녀인지라 풍만한 몸매가 여지 없이 드러난다. 오오. 일어나자마자 눈요기 제대로 하네.

"사건 발생 후로부터 반나절도 안 지났어요."

의외로 시간이 많이 흐르지 않아 의아하다. 마구 변형해댄 이능 탓에 제법 오래 누워있었을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일찍 깨어났다.

"처음 봤을 때 얼마나 놀랐다고요. 온몸에 피칠갑을 하고 있어서 어디 크게 다치기라도 한 줄 알았다고요."

선한 눈매 가득 염려를 담은 그녀의 말에 조금 어색한 기분이다. 누군가의 걱정을 받는 게 얼마만이던가.

"아. 제 이능이 좀 특이해서, 강제로 이능이 취소되면 좀 꼴이 말이 아니에요."

멋쩍게 웃으며 말하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 '피바라기'라고 했죠? 피를 대가로 이능을 실체화 한다던가? 아 미안해요. 전투계열 분들은 자기 이능에 대해 말하는 거 별로 안 좋아한다던데."

말하다가 혼자 제풀에 놀라 입을 막는 그녀를 보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든다. 그녀의 말대로 누군가의 이능을 함부로 입에 올리는 건 현명하지 못한 행동이다. 대부분의 이능력자들은 자신의 힘이 공개되는 것을 광적으로 꺼린다.

그런 나 또한 마찬가지.

조금 기분이 불편한 건 사실이다. 언짢은 속내가 그대로 표가 났는지 그녀가 다시 한 번 사과를 해온다.

"미안해요. 제가 그런 쪽으로는 아예 몰라서. 별다른 뜻이 있었던 건 아니니 기분 푸세요."

사실 별것도 아닌 일에 과민하게 반응하냐고 묻는다면 이쪽도 할 말이 있다. 이능을 함부로 언급하는 건 식당에 가서 그 집의 양념 비결을 마음대로 까발리는 것과 다름없는 행동이다.

언제 어떤 일이 생길지 모르는 우리 입장에서야 별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싶은 사항은 아니니까.

그러니 이번 매스컴에 공개된 영상에 내가 스트레스를 얼마나 받았겠는가. 모든 밑천을 털어보인 건 아니지만 별로 좋은 기분은 아니다. 하물며 촬영은 생각도 못하고 있던 용아병과의 전투에서는 본신의 능력이 상당히 노출되었던 탓에 유니온에게 단단히 보상을 청구할 예정이다.

"뭐, 몰랐으니 넘어가도록 하죠. 그보다 상황은 전부 마무리 된 겁니까?"

딱히 드잡이질 할 생각도 아니니 이쯤에서 넘어가기로 하고 현재 상황을 물었다. 상황이 별로 좋지가 않은지 그녀의 표정이 다소 어두워진다.

============================ 작품 후기 ============================먼저 부족한 글인데 과분하게도 노블란 1위를 했네요.

워낙에 쟁쟁한 분들이 많은 투베란인지라 사실 유지할 자신은 별로 없지만조금이라도 더 오래 상위권에 머물렀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ㅜㅜ사람 욕심이라는 게 끝이 없는지 전에는 투베 1위 한번이라도 해보고 싶을 뿐이었는데막상 하고나니 조금이라도 더 유지됐으면 하는 욕심이 ㅜㅜ하지만 조회수나 추천수만으로 1위를 유지하는 건 지난한 일 같네요.

다만 한가지 부탁드리고자 하는 건 가볍게 읽는 글이니 어디까지나 가볍게 읽어주시고읽으시는 동안 잠시라도 즐거우셨으면 하는 소망입니다.

그리고 글을 재밌게 읽으셨다면 포풍과 같은 코멘트와 추천으로 저에게 힘을 주소서!

선추코는 글쟁이를 마구 연참하게 한다죠. ㅎㅎㅎㅎ첨언. 그리고 요즘 즐겨보는 소설이 있는데 '네임드'라고. 민용모 작가님의 게임소설입니다.

글에 등장하는 캐릭터들도 살아있고 개인적으로 정말 재미있게 본 글인데 노블란에 볼게 없으셔서헤매시는 분들은 한번 읽어보세요. 정말 게임이구나 하고 리얼하게 즐기실만한 소설입니다.

저도 노블결제자지만 늘 보는 것만 봐서 정액제 묵혀두고 있습죠. 독자분들도 재미난 소설이있으면 코멘트나 추천 부탁드릴게요.

다들 즐거운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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