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1화 (11/223)

< --  1. 이게 웬 날벼락인 줄 알았더니!  -- >

"킥. 과연 소문대로 '피바라기'가 바람둥이라는 게 정말이군요."

"바람둥이라뇨. 저는 그런 게 아닙.."

순간 벙쪘다. '피바라기'라니. 내 콜싸인을 어떻게?

"소개가 늦었네요. 유니온 소속 5등급 능력자. 콜싸인 '치유하는 손' 김희선이에요. 잘 부탁드려요."

순간 멍하니 있다가 얼굴에 화악 하고 열기가 올라왔다. 일반인인줄 알고 수작질을 부렸더니 능력자라니.

왠지 놀림당한 기분이라 얼굴이 와락 일그러진다.

"킥. 과연 소문대로였습니다. 김형준씨."

아직까지도 웃음을 멈추지 못하는 그녀의 모습에 나도 모르게 궁시렁거렸다.

"처음부터 능력자라고 말씀하시지. 아, 얼굴 팔려."

내 볼멘소리에 그녀가 여전히 매력적인 눈웃음을 보인다.

"어머. 김형준씨. 능력자라는 걸 알고 나니 나에 대한 흥미가 사라진 거? 실망인데요."

좀 전과 같은 태도지만 받아들이는 내 입장에서는 하늘과 땅 차이다. 같은 능력자라는 걸 알았더니 왠지 모르게 입맛이 싹 가신달까.

금세 흥미를 잃어버린 표정으로 시큰둥하게 있자, 그녀 쪽에서 수작을 부려온다.

"능력자는 뭐 여자 아닌가요? 저 조금은 흥미가 있었는데... 너무 빨리 포기하시네요.

살살 눈웃음을 치는 모습에 입맛을 다신다. 아서라. 아서. 괜히 능력자들하고 얽혔다가는 험한 꼴 보기 십상이지. 그런 건 미친개 김도연 하나면 족하다.

"하하하. 능력자라고 하시면 왠지 가족 같아서. 가족끼리 그럴 순 없잖아요. 하하하."

갑자기 태도가 바뀌어 노골적으로 들이대는 그녀의 행동에 같지도 않은 소리를 지껄여댄다.

하나같이 괴팍한 성격을 가진 이능력자들의 틈바구니에서 시달려서인지 여자 이능력자들은 성격이 다들 드세다. 천사 같은 외모에 천사 같은 성격의 이능력자? 그런 건 환상에서나 있지. 실제로는 구경도 못 했다.

내 반응이 미적지근하자 그녀도 더는 추근대지 않는다.

"아쉽지만 장난은 그만 할게요. 그래도 흥미가 있는 건 사실이니까. 언제든지 형준씨라면."

끝까지 입맛을 다시는 그녀의 모습에 나는 딴청을 피운다. 천장이의 무늬가 기하학적이군. 보고 있다보면 빨려들어갈 것 같아.

"저는 나가볼 테니 필요한 게 있으면 언제든지 불러요. 어느 쪽이 필요하든지간에. 킥."

그녀가 그 풍만한 몸매를 자랑하듯 씰룩거리다가 사라진다. 다시 혼자만 남은 병실에서 한숨을 쉰다.

오랜만에 매력적인 여자라고 신나했더니 재미없게 됐구만.

별 달리 할 것도 없는지라 그대로 잠을 청한다. 하루 종일 잠만 잤기에 다시 잠이 올까 했지만 이능을 사용한 까닭인지 바로 수마가 찾아온다.

"에이. 더러운 세상. 퉷!"

야심한 시각 취객이 비칠대는 걸음으로 골목길에 들어선다. 연신 침을 뱉으며 두리번 거리는 꼴이 노상방뇨라도 할 모양새다.

"망할 과장새끼. 지깟 게 잘났으면 얼마나 잘났다고! 나는 이래뵈도 서울대출신이라고!"

상사에게 호되게 꾸지람이라도 들었는지 끊임없이 욕을 해댄다. 마침 구석자리에 위치한 전신주에 다가선 남자가 꾸미적 거리다가 이내 허리를 세운다.

"아. 제길. 오줌빨도 시원찮네. 망할."

꼴꼴대며 나오는 소변이 마음에 안 드는지 욕을 해대는 취객의 모습은 유흥가라면 흔히 보이는 모습이다. 짜증을 부리다가도 금세 헤실거리면서 웃음을 흘린다.

그런 남자의 뒤편의 그림자가 일렁거리다가 이내 거대해져간다. 취객의 키를 한참 넘도록 자란 그림자가 슬며시 남자의 뒤에 다가간다. 가뜩이나 어두운 골목길이 거대해진 그림자탓에 더욱 어두워진다.

몸은 흔들며 마무리에 한창이던 취객이 고개를 갸우뚱거린다.

"뭐야. 왜 이렇게 어두워졌어."

바지의 지퍼를 치켜 올리던 남자가 이내 심상치 않은 분위기를 느끼고 돌아보는 찰나, 그림자가 덮쳐간다.

"악! 이게 뭐..."

단발마의 외침만을 남긴 채 취객은 그림자에게 먹혀버린다. 마치 집어 삼킨 남자를 소화라도 시키듯 한참을 꿀렁이던 그림자도 이내 골목의 어둠 속에 스며들고, 골목길에 벌어진 괴기스러운 사건의 흔적은 무엇 하나 남지 않는다.

같은 시각 도심의 한가운데에 위치한 유니온의 지부, 전일의 희생자들을 기리듯 검은 옷 일색인 인물들이 분주하게 움직인다.

"다른 나라에서도 마찬가지 상황이 일어나고 있다는 보고입니다!"

그중 한 남자가 비명을 지르듯 외친다.

"미국, 중국, 일본, 유럽까지! 모두 일급 경계를 선포하고 능력자들을 소집하고 있습니다!"

당혹스러움이 가득한 그 보고에 사람들이 침음성을 흘린다.

"아니 멀쩡하다가 이 야밤에 무슨 지랄이야!"

커다란 뿔테안경을 낀 40대 중반의 남성이 짜증스럽게 보고를 받는다. 어디서나 볼 수 있을 법한 평범한 그 남성은 신경질적인 동작으로 잠깐 사이에 가득 쌓인 서류들을 뒤적인다.

"다들 대기하고 있어. 일단 위에 보고하고 올 테니, 일단 비상연락망으로 경계 날려!"

책상에 가득한 서류더미에서 몇장의 서류를 찾아낸 남자가 이내 소란스러운 사무실을 빠져나간다.

남자가 향한 곳은 또 다른 사무실. 소란스러운 다른 곳과는 달리 조용한 그 곳의 문을 두들긴 남자가 문을 두들겼다.

"김상탭니다. 지부장님께 긴급 보고사항이 있어 왔습니다."

약간의 텀을 두고 중년여성의 음성이 남자의 말을 받는다.

"들어와."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사무실에 들어선 그가 주변을 둘러본다. 그리고 곧 자신이 찾던 인물을 발견하고는 다가선다.

"며칠 철야한 거 몰라? 이 야밤에 왠 소란이야."

검은 수트로 몸을 단정히 감싼 중년여인이 소파에 누운 채로 눈도 뜨지 않고 말한다.

"긴급보고사항입니다."

긴급보고라는 김상태의 말에 여인이 뒤늦게 몸을 일으킨다. 단정한 수트 차림임에도 불구하고 묘하게 퇴폐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여인이다.

"긴급?"

아무렇지도 않은 그녀의 말에 김상태가 바짝 몸을 굳히며 부동자세를 취했다.

"현재 서울을 비롯한 모든 대도시에 이상 징후가 감지되고 있습니다. 이는 대한민국에 국한된 일이 아니며, 미국, 중국, 일본, 영국, 독일등 전 세계 27개국에서 동시다발적으로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눈썹이 꿈틀대자 김상태는 눈에 뜨일 정도로 긴장한다. 겉보기에는 그냥 화려한 외모의 중년여성처럼 보일 뿐이지만, 그녀는 김상태 그의 입장에서 평소에 쳐다보지도 못할 위치에 있는 여인이다.

"이상 징후라니 자세하게 말해봐."

뒤늦게 진지한 얼굴을 해보인 그녀가 더 설명할 것을 종용한다.

"D섹터에서나 감지되었던 왜곡의 조각들이 대도시에 감지되고 있습니다."

품을 뒤져 담배 갑에서 한가치를 꺼내던 그녀가, 누워있던 탓에 부러져버린 담배를 보며 인상을 찡그린다.

"왜곡의 조각이 뜬금없이 왜? 그건 D섹터에서도 드물게 발생하는 거 아냐?"

김상태가 열렬히 고개를 끄덕인다.

"맞습니다. 가장 처음 감지된 건 2등급 능력자 '무당' 신민아의 발작에 의해서입니다. 이후 지속적으로 감지된 숫자만 해도 지금 백 단위를 넘어갑니다. 이 정도라면 다른 지역에서도 거의 D섹터에 준하는 왜곡이 일어날 겁니다."

재떨이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이내 꽁초를 뒤적이기 시작한 여성을 보며 김상태가 침을 꿀꺽 삼키고 말을 잇는다.

"영국에서는 '윗치', 미국에서는 '퓨쳐플라이어', 일본의 '심간', 중국 역시 '황룡'등이 모두 같은 상황을 감지하고 각 국가로 연락을 취해왔습니다. 이는 각 국가의 2등급 이상의 예지 또는 그에 준하는 능력을 지닌 인물들이 보고한 신뢰도 80퍼센트 이상의 정보입니다. 현재 대한민국을 제외한 모든 국가들이 경계 상태를 유지하고 있으며, 각 사태를 분석하는데 총력을 다 하고 있습니다. 이에 저 또한 지부장님께 유니온 산하의 모든 기관과 소속 능력자들에게 경계령을 내릴 것을 건의 드립니다."

할 말을 마친 김상태가 중년여성의 대답을 기다린다. 속이 꺼멓게 타들어가는 그의 내심도 모르는지 그녀는 꽁초더미의 장초 하나를 발견하고는 흐뭇한 표정을 짓고 있다.

"저기 지부장님?"

촌각을 다투는 일임에도 불구하고 관심도 없는 듯한 그녀의 태도에 애가 닳는 건 그 혼자다. 그녀는 여유로워 보이기만 하니, 하늘같은 지부장에게 독촉을 하는 수밖에 없다.

"음. 요즘 담배가 늘었어. 그래. 결국은 전 세계가 D섹터와 동기화 되고 있다는 말이지?"

조금은 관심을 보이는 그녀의 말에 김상태가 화색을 띈다.

"네. 또는 그에 준하는 이상 징후로 판단됩니다."

============================ 작품 후기 ============================다들 즐거운 주말들 되고 계신가요?

비축분도 이제 끝났네요.

다른 글들은 현재 중요분기점이라 고심하며 글을 쓰는 중인데 유일하게 술술 써지던 이놈마저도 비축분이 끝났으니 앞날이 깜깜합니다.

하루 날잡고 연재글들 전부 전개를 팍팍 해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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