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10화 (10/223)

< --  1. 이게 웬 날벼락인 줄 알았더니!  -- >

"너 지금 바깥이 난리 난 건 알고 있어?"

병문안 온 주제에 빈손으로 온 것도 뻔뻔한데 냉장고에 있던 사과 하나를 천연덕스럽게 먹는 꼴이 가관이다.

"뭐, 난리겠지. 대충 인터넷만 봐도 반응을 알겠더만."

어지간한 기사는 금방 파묻힐 정도로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아니. 그거 말고, 정말 저 바깥. 네 이능에 대해 말이 엄청 많어. 4등급 능력자라더니 용아병을 상대로 제법 선전했잖아."

아. 이능력자들의 커뮤니티 말인가.

"고랭커들은 자기 이능 별로 공개 안하잖아? 근데 이번에 네가 싸우는 장면히 고스란히 유출됐으니, 등급이 낮은 사람들은 드물게 고랭커의 전투를 구경한 거지."

4등급이면 등급이 높지도 낮지도 않은 애매한 위치지만, 하급의 이능력자들에게는 쉽게 볼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아니다.

우리나라에 존재하는 이능력자는 5천만 중에 만명이 채 되지 않는다. 얼핏 얼마 안 되는 것 같은 이 숫자는 다른 국가의 인구대비 능력자 각성률을 생각해봤을 때 어마어마한 숫자다. 능력자가 가장 많은 중국이 3만명에 한명 꼴이었던가. 그에 비하면 우리나라의 능력자들은 5천명 중에 한명 꼴이니 사기와 같은 숫자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5등급 이상의 능력자는 특별히 관리대상이 될 정도로 드문 게 현실이다. 만명의 능력자 중에 1000명도 채 안돼는 5등급 이상의 능력자. 그중에서 다시 4등급이상은 500명도 되지 않으니 희귀한 랭크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현실이다.

그런 내 이능이 고스란히 방송을 통해 공개되었고 게다가 상대가 용아병이라니. 작정하고 만들려고 해도 만들기 힘든 그림이 나와 버렸다.

"그나저나 용아병이라니. 잘도 살아왔네? 알지? 몇 년 전에 유니온이 소집한 5급 이상 능력자들로만 이뤄진 타격대, 아주 박살이 났었잖아. 간신히 잡긴 했는데 그때 유니온이 입은 타격도 어마어마했지. 그에 비하면 이번 일이 차라리 생존자가 많다고. 그러니 그렇게 풀 죽어있지 마."

별로 드러내진 않았다고 생각했는데 정곡을 찌르는 그녀의 말이 평소의 광녀 같지 않다. 사실  쓸데없이 우쭐대는 마음으로 헛짓거리를 했던 내 자신에게 자괴감에 빠져 있었다. 유니온의 장단에 맞추어 춤을 췄던 나 역시 이번 참사의 책임이 없다고 할 순 없으니.

"어차피 D섹터에 스러져간 능력자들이 한둘이야? 그러니 그렇게 세상 다 산 얼굴 집어치우라고."

그녀의 말이 맞다. 어차피 D섹터에 발을 들일 때부터 각오 했던 일이 아닌가. 다른 이의 죽음이던 아니, 설령 내게 찾아올 운명이 죽음이라 하더라도 진즉부터 각오하고 있던 일이다. 이제 와서 새삼 쳐져 있을 필요는 없겠지. 정말 거짓말처럼 의기소침했던 기분이 일소된다.

"그건 그렇고 병문안 온 주제에 빈손으로 온 거야?"

금세 활기차게 말하니 그녀의 눈가에 웃음이 서린다. 서로에게 으르렁 거리고 막말을 할지언정 우리는 같은 저쪽 세계의 주민. 아무도 이해해줄 수 없는 상처를 서로 핥아주는 버림받은 고양이 같은 인생.

미친개 김도연에게 도움을 받는 일이 생기다니. 세상 살고 볼일이구만.

그 뒤로 기운을 차린 나와 한참을 투닥거리던 그녀는 일이 있다며 병실을 나섰다.

혼자 남은 나는 여태껏 느끼지 못한 심심함이 한꺼번에 몰려온 듯 지루함에 발버둥을 쳤다. 성치 않은 몸을 이리저리 뒤틀며 발광을 하고 있는데 노크소리가 들려온다.

미처 대답을 하기도 전에 들어서는 인물, 윤민아다. 평소와 같은 냉담한 표정이지만 검은색의 음울한 복장 탓인지 어두워 보인다.

"몸은 좀 어떤가?"

드물게 안부부터 물어오는 그녀의 태도에 눈을 크게 떴다.

"전부터 말했지만 당신은 가끔 이상한 눈으로 사람을 쳐다볼 때가 있다. 매우 기분이 나쁘니 그런 습관은 고치도록."

왠지 모르게 수줍어 한다는 느낌이 드는 그녀의 태도에 나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흘렸다.

"뭐, 보다시피 멀쩡한 구석은 없지만 살아는 있네요."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지만, 이능력자로 각성하면서 강화된 신체가 아니었다면 죽었어도 이미 골백번은 더 죽었을 만큼 위중한 상태였다. 게다가 내 이능이 강대한 만큼 돌아오는 반동도 상당한 터라 성한 구석이 한 군데도 없다.

"입은 살아있는 거 같군."

그녀가 살짝 웃었다고 생각했다면 내 착각일까. 다시 바라본 그녀의 얼굴은 언제나처럼 얼음장 같다.

"누워서 들어라. 이번 일로 유니온의 계획이 전체적으로 수정됐다. 더 이상 당신 하나에게 연연할 필요가 없어졌지. 아. 오해는 말아라. 유니온도 이번 일에 꽤나 감사를 느끼고 있으니까. 용아병씩이나 만나서 민간인들을 잘 보호한 것도, 그리고 유니온의 능력자들을 그만큼이라도 살려서 데려온 것도 전부 감사하고 있다."

말뿐만 아니라 실제로 고개까지 숙여보이는 그녀 탓에 일순 말을 잊는다.

"용아병의 출몰 보고를 들었을 땐 유니온에서도 다 틀렸다고 생각 했었으니까. 조금이라도 공세를 느슨하게 했거나 몸을 사렸다면 용아병은 민간인들에게 달려들었을테지. 그만큼 흉폭한 놈이라는 건 유니온도 알고 있다. 다른 놈이었다면 차라리 지금보다는 희생이 덜했겠지. 그 점 유니온도 알고 있고, 그래서 더욱 놀라고 있다. 당신의 지휘력과 능력이 예상보다 뛰어났음을 인정하고 보상을 준비 중이다."

입 발린 소리 같지만 3등급으로 조정된 놈의 등급을 생각하면 이만큼이나 생존자들이 존재한다는 건 사실 기적에 가깝다. 유니온이 대체 왜 놈을 4등급으로 책정했었는지 알 수 없지만 어쨋건 D섹터의 놈들 중에서 까다롭기로 유명한 놈이 용아병이다.

가만히 누워서 그녀의 설명을 듣다보니, 이번 일의 희생이 뼈 아프긴 했지만 덕분에 이능력자들을 양지로 오려보내는 일이 생각보다 빨라질 거라 한다. 이번 전투가 꽤나 헌신적인 영웅으로 능력자들을 그려냈기 때문이리라.

덕분에 내 일정도 당분간 몸이 나을 때까지는 취소란다. 언론에서는 죽어라 달려들고 있지만 그쯤은 유니온이 아닌 윤민아 개인의 입장에서도 막을 수 있으니 푹 쉬라는 명령 아닌 명령을 받았다.

그녀조차 돌아가고 잠시 상념에 젖어있던 나는 이내 심심함에 몸부림친다.

"어라? 아직 안 주무시고 계셨네요."

노크도 없이 들어선 이는 묘령의 간호사다. 꽤나 굴곡진 몸매를 한 그녀의 모습에 나는 반색을 했다.

가뜩이나 심심하던 차에 아름다운 여성이 방문하다니. 이런 횡재가 있나. 게다가 간호사라니.

간호사, 스튜어디스, 메이드.

남자의 3대 로망 아니겠어?

음흉하게 웃으며 간호사에게 인사를 건넨다.

"아. 심심한 것만 빼면 쌩쌩합니다."

과장되게 말하는 나를 보며 그녀가 웃는다. 어디보자. 그녀의 봉긋한 가슴 위에 매달린 명찰을 확인한다. 김희선이라. 얼굴만큼 고운 이름이구먼.

"역시 능력자라 그러신지 회복력이 어마어마 하네요? 보통의 환자라면 12주는 누워있어야 할 환잔데."

그녀의 봉긋한 가슴과 풍만한 허리가 자꾸 눈에 들어온다. 오우. 간호사복이 이렇게 섹시하다니. 타고난 몸매야.

속으로 음흉한 생각을 하며 그녀에게 죽는 소리를 한다.

"아. 그래요? 지금도 지루해 죽겠는데 12주나 이렇게 있으라고 하면 심심해서 죽어버릴 거 같은데요?"

짐짓 울상을 해보이니 그녀가 까르르 웃는다. 아흥. 귀여운 것.

"사실 고통이 심하실까봐 진통제와 수면제를 놔드렸는데 딱 보니 소용없는 것 같군요."

아. 능력자에게는 어지간한 약물은 통하지 않으니까. 그리고 애초에 괴물 같은 회복력을 지닌 몸인지라 어지간한 치명상만 아니면 스스로 알아서 치유되는 편리한 몸이기도 하다.

"아. 몸이 좀 특이체질이라서요. 잠들었으면 큰일날 뻔 했는데요?"

내가 정말 큰일이라는 듯 호들갑스럽게 말하자 그녀가 눈을 동그랗게 뜬다.

"왜요?"

그녀의 반문에 난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이렇게 예쁜 희선씨를 못 볼뻔 했잖아요."

아. 손발이 오그라든다. 내가 말했지만 정말 느끼하다. 그래도 저 정도 외모면 이런 수고정도는 감수해야지. 게다가 간호사라는 가산점이 있잖은가!

"꺄하하하. 그게 뭐에요. 느끼해요. 웩."

짐짓 내 농담을 자연스럽게 받아넘기는 모습이 영 쑥맥은 아닌 것 같다. 싫지 않은 표정을 지어보인 그녀가 눈웃음을 쳐댄다. 이거 봐라? 금방 넘어오겠는데?

마침 VIP병실인지라 단둘만이 있는 공간이 내 흑심을 부추킨다. 그녀도 내 은근한 눈빛을 알아차렸는지 볼을 붉혔지만 눈을 피하진 않는다.

어디 한번 떠볼까?

"저 심심해서 죽어버리는 꼴 보기 싫으면 희선씨가 좀 놀아주다 가요. 환자가 죽어버리면 큰일이잖아요?"

되도 않는 소리를 지껄이지만, 왠지 그녀는 내 수작질에 호의적인듯 하다.

"하긴 면회시간도 끝났고, 찾아올 사람도 없으니 심심하긴 하시겠네요."

어라? 대답하는 그녀의 표정이 은근하다. 살짝 아무도 찾아오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내비추는 그녀의 말에 신나서 입을 나불댄다.

"그러니까요. 아무도 안 오고 하루 종일 잠만 잤더니 지금 기운이 넘쳐서 도무지 잠이 올 것 같진 않거든요. 그러니까 좀 놀아주다 가세요."

요."

일반 병실의 환자였다면 씨알도 안 먹힐 뻘 소리들이 먹혀든다. 일단 내 유명세도 있지만 VIP병동이라는 거 한 두푼 드는 게 아니거든. 유니온에서 낼 돈이긴 하지만 이 여자가 그런 것 까지 알 리가 없지. 지금의 나는 능력이면 능력, 돈이면 돈, 외모면 외모 꿀릴 게 하나 없는 왕자님(?)으로 보여도 이상하지 않을 것이다. 비록 붕대를 칭칭 감은 상태긴 하지만.

나는 기대하는 심정으로 그녀의 대답을 기다린다. ============================ 작품 후기 ============================선추코는 저의 힘! 제 글을 읽어주시는 모든 독자님들!

복받으실거에요 ㅋㅋㅋㅋ선추코는 여캐가 단추 한칸 푸를때 더러는 두세칸 더 풀게 하기도 합지요 ㅋㅋ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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