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9화 (9/223)

< --  1. 이게 웬 날벼락인 줄 알았더니!  -- >

전투의 현장 멀찌감치 도착한 두 사람의 턱이 떡하고 벌어진다.

팔다리가 솟구치고 피가 흩뿌려진다.

단지 보는 것만으로도 공포에 질려버리는 그 광경에 이한나와 카메라맨은 질려버렸다. 그들이 상상했던 것과는 너무도 달랐다.

사정을 모르는 그들이 보기에도 능력자라는 사람들이 압도적으로 불리해 보였다. 솟아오르는 피보라는 전부 능력자들의 것이다. 거대한 위용을 뽐내는 괴물이 팔다리를 휘적댈 때마다 능력자들이 나가 떨어진다.

"뭐야. 저거 위험한 거 아냐?"

카메라맨이 떨리는 어조로 말하자 이한나 그녀 역시 입을 열었다.

"잘난 척은 실컷 해놓고, 저게 뭐야!"

능력자랍시고 한껏 건방을 떨던 남자의 모습이 떠오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떠오르는 그의 외침.

'우리는 태어나서 이능을 각성하는 순간부터! 평생을 이 땅에 얽매어 살아야 해. 바로 이곳에서! 무수히 많은 능력자들이 스러지고, 피를 흘려! 바로 당신이 딛고 있는 그 땅에 스며든 우리의 피가 얼만지 알기나 해?'

갑자기 죄책감이 눈덩이처럼 불어난다. 자긴들 알았으랴. 이 땅이 저런 전투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는 그런 곳이라는 것을. 생각 없이 함부로 주둥이를 나불거린 자신이 너무 한심하게 느껴졌다. 또 피투성이가 되어 나가떨어지면서도 끝없이 저 끔찍한 괴물에게 달려드는 능력자라는 사람들을 보고 있는 그녀의 눈에 눈물이 고인다.

"뭐야. 왜 아무도 안 도망가! 도망가라고!"

이들이 화면에 담으려 했던 것은 이런 것이 아니었다. 영화 속 주인공처럼 화려한 기술들을 써가며 멋들어지게 괴물을 처리하는 능력자들의 모습, 그게 이들이 생각했던 모습이었다. 지금처럼 처절하게 사람들이 죽어가는 것을 찍으려던 게 아니다.

비명은 지를지언정 자의로 물러나는 이는 단 하나도 없다. 동료가 바로 곁에서 쓰러져도 아랑곳하지 않고 괴물에게 달려든다. 팔 하나쯤이 날라가버려도 상관없다는 듯 무모하기만 한 공격이 이어지고, 그에 비례해 쓰러지는 능력자들 또한 늘어난다.

"우.. 우리 때문 아니야? 아까 민간인들을 대피시키고 어쩌고 그랬잖아."

카메라맨이 비통한 음성으로 말하고 한나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마 자신들 때문일 거라는 거, 진즉부터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번 촬영만 마치면 스타가 될 거라는 욕심에 무리하게 차에서 내려서 이곳까지 와버렸다.

자신들의 경솔한 행동을 후회하는 둘이다.

이제는 제대로 서 있는 능력자들이 열명도 채 안 된다. 성한 몸 하나 없는 그들 사이에 붉은 갑옷을 걸친 김형준 역시 갑옷의 이곳저곳이 우그러지고 뜯겨진 모습이 위태위태해 보인다.

전투가 시작되고 처음으로 소강상태가 이어진다. 그리고 능력자들이 처음으로 물러설 기미를 보인다. 괴물 역시 온몸에 선혈이 낭자하다. 여덟 개나 되던 팔은 이미 세 개밖에 남지 않았고, 머리도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크고 작은 상처들이 그 거대한 몸에 가득하다. 하지만 처음의 그 흉폭한 기세는 수그러들 기미조차 없다.

급박했던 전투의 양상 탓에 제대로 살펴보지 못했던 괴물의 모습에 이한나와 카메라맨이 비명을 질렀다. 꽤나 소리가 컸던지라 깜짝 놀라 입을 막고 저 멀리를 살펴본다.

그때 괴물이 처음으로 능력자들에게서 시선을 돌린다. 그리고 이한나는 몸이 굳어버렸다. 마치 두사람의 존재를 눈치 챈듯한 모습이라 순식간에 소스라쳤다.

괴물이 쿵쿵거리며 움직이기 시작했다. 갑작스러운 상황의 변화에 능력자들이 당황해서 우왕좌왕한다. 그들도 곧 괴물이 향하는 곳을 바라보고 몸이 굳어버린다.

퇴각허가가 떨어진 차라 막 물러서려던 참인데, 이미 안전지대에 도달했어야 할 두명의 민간인이 여기에 왜? 그들의 얼굴에 공통되게 떠오른 의문이다.

그들이 뭐라고 소리치는 게 보인다.

괴물이 발걸음이 빨라진다. 쿵쿵 거리는 발소리가 조금씩 작아지고, 그 육중한 덩치에 어울리지 않는 속도로 두 사람에게 달려든다.

"꺄악!"

단지 달려들 뿐인 괴물의 박력에 카메라맨과 이한나가 겁에 질려 주저앉아버린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공포스러운 존재감과 마주 한 그들은 이미 패닉 상태였다.

이대로 끝인가 하는 생각에 눈조차 감지 못한 그들의 앞에 불쑥 튀어나온 붉고 검은 그림자들이 있다.

두 사람의 눈이 커진다. 어느새 다가온 이름 모를 능력자와 김형준이 그들을 들어올린다.

"꺄악!"

"하고 싶은 말이 많지만 일단 둘 다 무사하다면 그때 하죠."

비명을 지르는 이한나를 거침없이 옆구리에 낀 김형준의 음성이 사뭇 사납다. 절그럭 거리는 갑주에 끼어 아프다고 소리치려던 그녀는 문득 따뜻한 무언가에 옷이 젖는 것을 느꼈다.

"피?"

아닌 게 아니라 조금씩 자신의 상의를 적시던 붉은 액체가 금세 흘러내린다. 그 절그럭 거리며 흔들릴 때마다 온몸이 아퍼왔지만 그녀는 이를 악물고 참아낸다.

자신이 여기서 투정을 부리면, 피투성이가 되어서 이제껏 싸워온 이들에게 너무 큰 죄를 짓는 느낌이라 입을 꾹 다문다. 그렇게 필사의 도주는 시작되고, 선두에서 자신을 안고 달리던 김형준은 이내 자신을 다른 이에게 넘기고는 가장 후미로 쳐진다.

그리고 잇따라 들려오는 폭음.

화면이 바뀐다. 정신없이 흔들리던 화면이 안정적으로 바뀌더니 안전지대를 비춘다.

"마흔한 명의 능력자중 살아남은 이들은 불과 여덟 명에 불과합니다. 민간인의 안전을 위해 단 한발도 물러서지 않던 그들의 모습이 아

직도 생생합니다. 그들이 지난 시간동안 이곳을 지키기 위해 흘려왔던 피가 얼마인지 짐작조차..."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을 한 이한나가 격앙된 음성으로 외친다. 피에 잔뜩 절은 상의를 채 갈아입지도 못한 그녀의 모습이 방금 전의 처절했던 상황을 나타내고 있다.

"살아남은 능력자들조차도 지금 생사의 경계에서 싸우고 있습니다. 시청자 여러분. 그들이 그 싸움에서 승리하여 부디 살아남기를 기도해주십시오..."

멍하니 침대에 누워 화면을 바라보고 있던 나는 이내 고개를 돌린다.

용케 유니온이 허가를 해줬네. 저런 장면 유니온의 계획에 없었을 텐데.

화면 가득한 부상자들의 모습을 보는 입맛이 쓰다. 그날의 광대놀음은 서른세명의 희생으로 막을 내렸다. 대체 어떻게 그 끔찍한 용아병에게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 제대로 기억도 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병원인지라 어안이 벙벙하다.

온 나라가 저 방송으로 들끓고 있다. 채널을 돌려도 돌려도 나오는 것은 용아병과 우리의 전투장면 뿐. 얼핏 사정 모르는 이가 보면 좀 하드코어한 액션영화로 오해할 그것은 지금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이슈가 되고 있다.

유튜브니 뭐니 하는 사이트에서는 연일 새롭게 편집한 동영상들이 업로드 되고 있다.

원래 의도했던 것보다 좋은 결과인지라 기분이 좋아야 하지만 내 기분은 지금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다. 어떤 결과든지 간에 그 광대놀음에 희생된 서른세명의 희생자. 저 영상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회의적이다.

D섹터의 죽음 수없이 봐왔고 이제는 무감각해졌다 생각했건만, 아직 멀었구나.

스스로를 자조하고 있는데 누군가가 병실에 들어선다.

"여어! 멀쩡해 보이는데?"

온몸에 붕대를 감고 있는 이 모습이 어디가 멀쩡해 보이냐!

역시 광녀 김도연다운 인사다. 답지 않게 병문안이라도 온 모양세로 그녀가 쾌활하게 말한다.

"정말 죽을 뻔 했던데?"

내용과 어울리지 않는 말투지만 이제는 그러려니 한다.

"왜 왔냐?"

대뜸 면박을 날리자 그녀의 눈썹이 꿈틀거린다. 하지만 내가 환자라는 점을 떠올렸는지 금세 표정을 푼다.

"뭐, 부탁 들어줄 사람이 죽으면 곤란하잖아. 근데 재수도 오지게 없지. 하필이면 용아병이냐?"

그녀의 말에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든다. 뭔 말을 해도 개의치 않는 그녀의 모습에 도리어 안도감이 들었달까. 이럴 때는 신나게 그녀와 투닥 거리기라도 하고 싶은 기분이다.

"용아병 4등급에서 3등급으로 재조정된다던데? 안 그래도 조우할 때마다 피해가 만만치 않았던 놈이라 유니온에서 공지를 했더라고."

3등급이라. 정말 고랭크의 능력자들로 이뤄진 정예타격대가 아니면 상대 못할 놈이었구나.

"그보다 언론에 공개되자마자 진전이 꽤나 빠르네. 너 하나만 던져주고 당분간은 죽어지낼 것 같더니, 잘도 유니온에서 저런 영상을 공개를 하게 내버려 뒀어."

벽에 걸린 액정TV로 고개를 돌린 그녀가 의외라는 듯 말했다. 당분간은 이미지 메이킹에 주력하겠다던 유니온의 계획은 이번 일을 계기로 전면 수정이 불가피하다. 희생적인 전투장면이 언론에 노출되자 이미 더 이상 손 쓸 필요도 없이 이능력자들에게 호의적인 여론이 들끓는다.

더 이상 나라는 존재를 내세워 이 뻔한 광대 짓거리를 할 필요가 없어졌다는 말이지.

============================ 작품 후기 ============================자 중2력 돋는 한편 투척합니다!

저와 같이 중2력을 즐기시죠 ㅋㅋㅋ선추코는 덤이라죠?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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