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이게 웬 날벼락인 줄 알았더니! -- >
긴장으로 잠이 오질 않는다. 수십 수백 번은 드나들었던 D섹터.
일반인들에게 절대 공개 되지 않았던 금지다. 이능력자들만이 출입 가능한 이 공간은 세상을 이루는 법칙과 진리들이 무시 되는 곳.
그곳에서 하려는 모든 일은 왜곡되고 비틀려 늘 의지와 다른 결말이 도출된다. 그런 비논리의 세계에서 통용되는 것은 오직 이능력 하나. 이능력만이 그 비틀린 세상에서 올곧게 의지를 관철할 수 있다.
그 비틀린 세계에서 튀어나오는 왜곡된 의지들을 처리하는 게 우리들의 유일한 의무이다. 우리는 그것들을 몬스터라고 부르며, 그들이 이쪽 세계로 넘어오지 못하도록 아주 오래 전부터 싸워 오고 있었다.
그런 그곳에 갑작스럽게 민간인들을 데리고 간다니 긴장이 되는 것도 당연하다. 아무리 유니온의 조치가 만반을 기하고 있다 하더라도, 어떤 일이 벌어지더라도 이상하지 않은 곳이 D섹터다.
수 없이 치러온 전투에도 불구하고 부담감이 상당하다. 마치 첫 임무를 맡았을 즈음의 기분이랄까. 그리고 그간 마냥 유명세를 즐기던 때와는 달리, 이번 일정만은 탐탁치않다. 유니온의 계획이야 능력자들의 필요성과 그들의 헌신을 부각시켜 단숨에 긍정적인 이미지로 자리매김을 하겠다는 것이겠지만, 쓸데없이 이런 리스크를 감당할 필요가 있을까?
차라리 그간의 전투기록을 공개하는 것이 훨씬 안전할 텐데.
만약 이번 촬영에서 불미스러운 일이라도 생겼다가는 이제껏 만들어낸 이미지를 지키기는커녕 도리어 사회에 혼란만 초래할 게 분명하다.
수 많은 잡생각 속에서 뒤척이다 이내 눈을 감았다.
언제부터 이런 고민을 했다고. 그냥 까라면 까야지 뭐.
날이 밝았다. 언제나 찾아오던 스타일리스트 아가씨 대신 우락부락한 인물들이 집으로 찾아왔다. 나와 같은 유니온 특제 전투복을 입은 걸 보니 아마도 저쪽 세계의 사람이리라.
별로 대화를 나눌 컨디션도 아니고, 기분도 아니라 묵묵히 그들의 안내를 따라 차량으로 이동했다.
따.. 딱히 남자라서 그러는 건 아니라능!
그러고 보니 민아년은 오지도 않았구만. 평소에는 그렇게 잘난 척을 하더니, 정작 이런 중대한 일에는 나오지도 않다니. 역시 나쁜 년... 에잉. 약은 년.
답답한 심정에 괜히 애꿎은 사람을 욕하고 있다 보니 어느새 저쪽세상의 경계에 도착했다. 일반인들에게는 비무장지대라고 알려진 그곳, DMZ가 바로 D섹터의 정체다.
민통선의 경계에서 대기하고 있던 촬영 팀이 보인다. 수십은 되 보이는 사람들의 얼굴들이 하나 같이 긴장감이 가득하다.
비무장지대든, D섹터든 그들에게는 매한가지로 살벌하고 위험한 곳일 테니 그들의 굳은 표정도 이해가 간다. 당장 나조차도 그리 편한 얼굴은 아니리라.
으으. 이렇게 바리바리 데리고 들어가서 무사할 수 있을까.
"김형준씨. 저희는 먼저 들어가서 대기하고 있는 팀과 합류하겠습니다."
여태 단 한마디도 하지 않던 유니온의 능력자가 낮게 이야기하곤 몸을 돌렸다. 그가 저 경계선 너머로 사라지는 걸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새된 고함소리가 들린다.
"아니 새벽부터 불러놓고 이제 나타나면 어쩌자는 거야!
핸드폰도 뺏어가고 짜증 나 죽겠네."
꽤나 앙칼진 음성이었던지라 나도 모르게 시선을 옮겼다.
긴 생머리에 도발적인 외모를 지닌 여자 한명이 촬영스텝들 사이에서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이쪽을 힐끔거리며 말하는 모양새가 늦게 도착한 우리가 꽤나 마음에 안 드는 듯 하다.
정확하게 나를 겨냥한 불평들이지만 나는 그저 어깨를 으쓱 해 보인다.
아아. 지금 그렇게 떠들어 대라고. 조금 있으면 떠들고 싶어도 못 할 테니.
괜스레 힘 빼기 싫어 그들을 무시하는데 좀 전까지는 안보이던 민아년이 눈에 들어왔다. 쳇. 오늘은 안 보고 넘어가나 했더니. 징한 년.
와도 불만이고 안 와도 불만, 저년은 내게 그런 존재다. 흥!
"준비 단단히 해라. 6급 이상의 능력자들만 촬영장 부근에 서른 명 이상 배치했지만 여기선 언제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역시나 오늘도 인사도 없이 바로 본론부터 말하는 그녀다. 6급 이상 능력자로 서른 이상이라 평소라면 넘치는 전력이겠지만 오늘은 떨거지들이 워낙 많이 딸려 있으니.
"그 외에 별도로 팀을 이룬 5급 이상 능력자 셋이 몰이사냥으로 한 두 마리만 촬영장소로 보낼 거다. 딱히 위험할 일은 없겠지만 주의 하도록."
이미 숙지하고 있던 계획을 다시금 상기시켜주는 그녀다. 그러고 보니 말투가 별로 이번 촬영을 반기는 것 같지 않았다. 의왼데? 그녀라면 유니온의 의견에 무조건 찬동하는 줄 알았더니.
그녀의 설명을 듣는 와중에도 촬영 팀 사이에서의 소란은 가라앉질 않는다. 꽤나 안하무인인 성격인지 시끄럽게 떠드는 여자를 달래느라 촬영팀이 진땀을 빼고 있다.
저 여자가 나랑 같이 출연할 연예인인가. 이쁘장 하긴 하지만 듣보잡이라 내심 실망했다. 그런 주제에 성격도 별로인 것 같아서 다시 한 번 실망.
"오늘은 당신의 컨디션 유지를 위해 별도의 인터뷰나 그런 건 없을거다. 어지간한 내용은 나레이션이나 저치들이 설명할테니, 당신은 사고가 나지 않도록 조심하는 데 전력을 다하도록."
나를 신경 써주는 듯한 그녀의 말에 눈을 크게 뜨니 그녀가 얼굴을 찌푸린다.
"이상한 눈으로 쳐다보지 말아라. 기분이 나빠지려 하니까."
헤에. 뭐야. 당신 그... 그... 츤데레?
"그 시선 굉장히 기분 나쁘군. 자 시간 됐으니 출발해라."
안 그래도 부산을 떠는 촬영 팀이 이쪽 눈치를 보고 있다. 그들 중 한명이 내게 접근하자 윤민아 그녀가 막아선다.
"저기.. 이제 출발해야 할 것 같은데요..."
차가운 얼굴의 그녀에게 주눅이 든 스텝의 말에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촬영장으로 이동하는 차량 안에서 나는 마지막으로 컨디션을 조절한다. 바로 앞을 달리는 촬영팀의 차량 후미에서는 연신 카메라가 돌고 있다. 이미 언질을 받아서인지 곧 전투를 앞둔 나를 귀찮게 하는 사람은 없다.
그저 멀찍이에서 간간히 카메라를 돌릴 뿐 내게 접근하거나 하진 않았다. 대신 분량을 채우기 위해서인지 좀 전의 그 여자가 연신 쫑알 쫑알 거리며 카메라를 향해 뭔가를 설명하고 있다.
그래봐야 D섹터의 위치는 알리지 못할 테니 긴장감을 고조시키기 위한 설명 따위일 테지.
그렇게 한참을 들어가다가 어느새 차량이 멈추어 선다. 여기서부터는 차량으로 이동할 수 없는 지역이니 도보로 이동해야 한다.
말 없이 장비를 점검하고 차량에서 내리는데 예의 그 여자가 다가온다.
뭐지? 오늘 촬영에서는 일체의 인터뷰도 없을 거라 했는데. 영문을 몰라 스텝들을 살펴보니 그들도 당황한 눈치다.
돌발행동인가? 꽤나 골치 아픈 성격의 아가씨구만.
"김형준씨? 오늘 촬영을 맡게 된 이한나에요."
설마 인사가 목적인가? 인사라면 이미 한참 늦었는데... 말없이 그녀를 바라보고 있으니 무안한지 그녀의 얼굴이 붉어진다.
"저기 그래도 촬영을 같이 할 사인데 인사는 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금세 불편한 감정을 숨기지 않고 드러내는 그녀의 모습을 보다가 갑자기 짜증이 와락 올라온다. D섹터에 들어간 능력자는 극도로 예민해진다. 일반인들은 느끼지 못하는 D섹터의 왜곡된 의지를 온몸으로 느끼던 차라, 그녀의 행동에 금방 분노가 치민다.
그녀 역시 들었을 텐데, 저런 행동을 하는 걸 보면 어지간히 성격 이상한 아가씨일세.
언짢은 기색을 그대로 내비치며 촬영 스텝을 바라보니, 그들 중 한명이 다가와 그녀를 끌고간다.
"한나씨. 이미 들었잖아요. 촬영이 끝날 때까지는 절대 말 걸지 말라고."
질책 어린 스텝의 말에도 그녀는 콧방귀를 친다.
"흥. 능력자면 다야. 기껏 해봐야 초능력자겠지. 이딴 서커스질에 무슨 컨디션 조절이야."
순간적으로 뚜껑이 확 날아간다.
저 여자는 알까. 우리가 능력자로 태어난 이상 평생을 시달려야 할 D섹터의 존재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인지? 지금 우리가 발 딛고 있는 이곳조차도 수많은 능력자들의 피와 살을 맞바꾸어 이뤄낸 안전지대라는 것을. 그리고 나조차도 이곳에서 흘린 피가 적지 않다는 걸 알고나 지껄이는 걸까.
스스로가 예민함을 느끼고 자제하려 하지만 마침내 분노가 실체화 될 지경이다.
이를 악물고 사납게 말했다.
"이한나라고 했나? 당신이 지금 딛고 있는 땅이 어떤 땅인지 알기나 해?"
마침 스텝과 돌아가던 그녀가 내 으르렁거림을 듣고 고개를 돌린다. 그리고 내 주변에 실체화되어 떠도는 분노의 빛에 하얗게 질린다.
"우리는 태어나서 이능을 각성하는 순간부터! 평생을 이 땅에 얽매어 살아야 해. 바로 이곳에서! 무수히 많은 능력자들이 스러지고, 피를 흘려! 바로 당신이 딛고 있는 그 땅에 스며든 우리의 피가 얼만지 알기나 해?"
그녀가 변명이라도 하려는 듯 입을 오물거리지만, 나는 가차 없이 그녀의 입을 막았다.
"우리는 남들과 다르게 태어났다는 이유 하나로 평생을 이 땅에 묶여 살아야 해. 그게 우리의 업보고 의무다. 근데 서커스질? 기가 차서 말이 안 나오는 구만. 거기 카메라 끄지 않으면 박살을 낼지도 모르니 바로 꺼요. 네. 당신. 그래 거기! 아닌 척 하지 말고 바로 끄라니까요!"
한참을 분노를 토하다보니 곁에서 돌아가는 카메라를 보고 바로 경고했다. 겁에 질려있는 사람들을 보니 분노가 가라앉고 머리가 차갑게 식었지만 한번 잡친 기분은 회복이 되지 않는다.
능력자간에도 D섹터에서 쓸데없는 말은 삼가는 판에 그녀가 제대로 내 역린을 건드려버렸다. 이번 일로 윤민아 그녀나 혹은 유니온의 질책을 받을지 모르지만, 내가 아닌 그 어느 능력자가 있었다 하더라도 나와 같은 행동을 했을 것이다.
그 이후 분위기 가라앉은 일행은 말 없이 내 뒤를 따라 걷기 시작했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지나치게 흥분을 했었나싶어 뒤늦게 자책도 하지만 그래도 후회는 하지 않는다.
제길. 안 그래도 이 끈적거리는 기운 때문에 짜증나 죽겠구만. 이런 기분이라니.
돌아가면 민아년에게 다 일러바치리라. 그 냉담한 얼굴로 어디 어떻게 구워 삶을지 기대가 된다. 다들 각오하라고. 그년은 진짜 장난 아니거든.
============================ 작품 후기 ============================
선추코는 일용한 양식!
저에게 단백질을 달라!!!!!
우오오오오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