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바라기-5화 (5/223)

< --  1. 이게 웬 날벼락인 줄 알았더니!  -- >

"으아! 정신없다 정말!"

어떻게 지났는지도 모를 기자회견을 마치고 돌아가는 차에서 푸념을 한다. 끊임없이 나를 따라다니던 기자들의 눈에서 이제야 벗어났다는 안도감 탓인지, 온몸이 녹초가 된 기분이다.

"곧 익숙해질 거다."

으아. 저 인간미 없는! 퉤!

퉤!

가만히 무언가를 적고 있는 그녀를 향해 침 뱉는 시늉을 하고 있는데, 누군가의 시선이 느껴졌다. 고개를 돌리니 운전기사가 룸미러를 통해 나를 어이없다는 듯 바라보고 있다. 아. 워낙에 큰 차라 운전석에 누군가 타고 있을 거란 생각을 못 했다.

뻘줌해져서 조신하게 다리를 모으고 가만히 고개를 숙였다. 아. 쪽팔려. 그렇게 오는 내내 얌전히 있으니 민아년이 신기하게 바라본다.

처음에 유니온에서 나온 사람이라는 타이틀 때문에 거부감을 가진 것도 잠시, 이제는 저년 자체에 거부감이 든다. 당최 찾아볼라 해도 뭐 마음에 드는 게 있어야지. 이쁜 얼굴 빼고는 뭐 봐줄 구석이 없다. 말투는 괴상하고 성격도 지 멋대로다. 처음에 가졌던 호감마저 이제는 눈꼽 만큼도 기억이 나지 않는다.

미친개 김도연보다 더 괴팍한 년. 석녀 같은 년.

입을 비죽이고 있는데, 그런 내 표정이 꼴불견이었던지 그녀가 어이없다는 표정을 짓는다.

그러는 와중에도 시간은 흘러, 어느새 집에 도착했다.

"오늘 기자회견은 생방송이 아니라, 유니온의 검열을 거쳐 오늘 저녁 뉴스에나 올라올 거다. 앞으로 자주 할 일이니 모니터링이라도 해두도록. 그럼 다시 연락하지."

또다시 인사도 제대로 안하고 사라지는 그녀. 아 정말 싸가지 없는 년일세. 생각해 보니 나이도 나보다 어린 거 같은데.

투덜대며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데 왠 아가씨들이 나를 흘끔거린다. 불편한 심기지만 영업용 미소로 입가를 슬며시 치켜드니, 금세 얼굴이 붉어진다.

귀여운 것들. 오빠가 오늘 좀 근사하지?

엘리베이터가 띵 하는 상쾌한 소리와 함께 도착한다. 괜히 흐뭇한 마음에 자꾸만 방정맞은 웃음이 튀어나오려는데 뒤에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야. 쩔어. 연예인 아니야?"

"그러게 내 스타일인데 완전, 전화번호 달랠까?"

지들 딴에는 소리를 낮춘다고 하지만 이능력자의 신체는 일반인보다 월등하다는 것! 다 들린다 이 귀요미들아!

"근데 어디서 본 거 같은데... 진짜 연예인 아니야?"

어디서 보긴 뉴스에서 봤겠... 얼굴에 드리우고 있던 미소가 싹 사라진다. 제길. 난 지금 테러리스트에 준하는 위험인자로 찍힌 상태다. 그녀들이 내 얼굴을 알아봐야 좋을 게 없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새삼 유니온의 짓거리에 다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래서야 맘대로 돌아다니지도 못하잖아. 라고 투덜대는 찰나.

"야. 저 사람 그 사람이야."

"누구?"

제길. 정체를 들킨 거냐! 라고 말하니 내가 마치 악당이라도 된 기분이네.

"그 뉴스에 나온 초능력잔가 그거."

다른 한쪽의 말에 잠시 엘리베이터에 침묵이 감돈다. 그래. 무섭지? 오빠 빨리 내릴 테니 걱정 마라. 눈동자만 떼굴 굴려 몇 층이나 남았는지 확인한다. 하루아침에 무너진 내 일상 탓에 입맛이 쓴데, 수근거림이 이어진다.

".... 꺄악!"

역시나 예상대로 아가씨들 중 한명이 비명을 지르고 당황스러워진 나는 바로 다음 층을 누르고 내릴 준비를 한다.

그런데 예상과는 다른 전개가 벌어졌다.

"꺄악! 오빠 저 팬이에요! 뉴스에 나온 능력자 오빠죠? 맞죠?"

갑작스러운 그녀의 육탄 공세에 정신이 없다. 테러리스트로 소개 된 탓에 무서워 할 줄 알았는데? 의외의 반응인지라 순간 어안이 벙벙하다.

그녀의 일행조차도 주춤주춤 다가오더니 내게 다가온다.

"저.. 저도 팬이에요."

노심초사 마음 졸였던 것이 무색하게도 그 뒤로는 소녀 팬들과 만난 연예인 같은 상황이 흘러가고 지금 이렇게 친근하게 인사하는 사이가 되어버렸다.

"지영이. 선아. 조심히 들어가고, 이따 오빠 9시에 기자회견 나오니까 꼭 봐!"

엘리베이터 문이 닫힐 때까지 열렬하게 손을 흔드는 그녀들이 알았노라하고 동시에 외친다.

그리고 난 방문에 들어서자마자 문을 잠그고 큭큭거리기 시작했다. 키득거리던 웃음은 이내 낄낄대는 방정맞은 웃음으로 바뀐다.

"낄낄! 팬이라니! 팬이라니!"

이거 유니온의 장난질에 좀 맞춰줄 맛이 나는데? 이제는 하도 웃어서 꺽꺽 대느라 고통스러울 지경이지만 나는 여전히 신나게 웃어재꼈다.

유니온이 외모로 나를 결정했다고 말 할 정도로 제법 준수한 얼굴이라 살아오면서 여자들에게 인기가 없진 않았다, 하지만 이런 연예인이라도 된 듯한 기분이라니!

한참을 꺽꺽 거리며 웃어대던 나는 정색을 하고 일어섰다. 그리고 옷장에 달린 전신 거울 앞에서 몸을 이리저리 비틀었다.

흠. 원래부터 출중하긴 했지만, 오늘은 군계일학이로구나!

다시 터지기 시작한 웃음에 나는 아예 침대에 드러누워 깔깔거렸다.

얼마나 시간이 지났을까. 갑자기 혼자서 낄낄대던 내 스스로가 병신같이 느껴져 뻘줌해져 버렸다.

"밥이나 먹을까."

배달이라도 시킬 요량으로 핸드폰의 전화번호부를 뒤지는데, 방금 전에 딴, 아니 그들이 가져다 바친 지영이와 선아라는 아가씨들의 전화번호가 눈에 들어온다.

다시 웃음이 터져 나오려는 걸 간신히 참았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나는 유니온의 계획에 완전히 익숙해져버렸다.

처음에는 그렇게 오글거리던 'Star'라는 작전명도 입에 착착 감기고, 유니온의 지령이라면 적극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기자회견 이후로 대한민국은 완전히 난리통이 됐다. 마치 테러리스트라도 되는 냥 몰아세웠던 매스컴도 유니온의 입김인지 고소의 압박 탓인지,. 금세 사과문을 올리고 이제는 연일 자극적인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그 기사라는 게 온통 저쪽세계에 대한 긍정적인 것들 투성이다. 물론 소수의 조심스러운 우려와 음모론 따위도 연일 기사로 나오고 있지만, 우호적인 기사에 금방 파묻혀버렸다.

지금의 나는 소위 대중들이 말하는 스타다.

이능력을 가진 채로 일반인들 사이에 숨어서 사는 정의의 히어로. 그게 대중들이 만들어낸 나라는 존재다. 저쪽 세계에서는 그런 나에 대해 말들이 많은 거 같지만, 나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저 나는 꿀 빨고 있을 뿐. 말로만 듣던 연예인병이 뭔지 직접 체험하고 즐기는 중이다.

팬 까페라는 것이 생겼고, 각종 커뮤니티에는 내가 사진이 떠돌고 있다. 그런 곳을 싸돌아다니다 보면 하루가 너무 너무 짧다.

댓글이나 게시글 확인하는 게 생각보다 일이거든. 악플에는 단호하게 대응한다. 물론 아버지의 주민번호로 가입한 다른 아이디로. 얼굴 팔리게 스스로를 옹호하긴 뭐하니까. 이런 저런 소소한 일상을 즐기며 기분 좋은 나날들을 보내고 있는데 오늘 연락이 왔다.

며칠 뒤의 촬영에 관한 이야기였는데, 그간 치뤘던 간단한 인터뷰와는 다르게 꽤나 본격적인 촬영이다.

대충 이능력자의 하루라는 플롯의 프로그램이었는데, 유니온에서도 꽤나 이번 방송을 신경  는지 그동안 배일에 가려졌던 저쪽 세계를 일부나마 공개하는 자리다.

지난 인터뷰에서는 그 부분에 관한 질문은 일절 노코멘트로 일관했었는데, 이번엔 작정하고 보여주라니 나로서도 부담이 크다.

게다가 유니온이 부여한 이능력자의 유일한 의무인 D섹터에 관련 된 촬영이라니, 꽤나 수고스러운 촬영이 될 게 분명했다.

평소보다 더 정성스럽게 장비들을 점검한다.

유니온에서 지급한 특제 전투복과, 각종 무기들. 긴박감과 비장미를 더 하기 위해, 조금 더 화려하고 살벌하게 준비한 각종 장구류들을 살펴보던 나는 한숨을 내쉰다.

아무리 D섹터중에서도 저랭크의 이능력자들이 담당하던 구역에서 이뤄질 촬영이라 하더라도, 민간인이 함께이니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물론 유니온에서 촬영장 부근에 고랭크의 능력자들을 보이지 않게 배치 한다 하지만, 걱정이 태산 같다.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기도 하고, 어차피 결정된 사안이긴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그런 만큼 장구류를 점검하는 내 손길은 꼼꼼하기 그지없었다. 제발 아무 일도 없기를. 간절히 바라고 바란다.

내 속마음이 타들어가던 어떻던 간에 시간은 흘러 어느덧 촬영하는 날이 어느덧 하루를 남기고 성큼 다가왔다.

============================ 작품 후기 ============================

너무 짧아서 용량 재분배하였습니다.

죄송할 따름입니다.

하고, 어차피 결정된 사안이긴 하지만 그래도 걱정이 가시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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