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1. 이게 웬 날벼락인 줄 알았더니! -- >
"단 1원도 더 못 쳐드려요."
단호하게 말했다. 흥정이라도 할 생각이었는지 다소 당황한 얼굴을 해 보인 남자가 다급하게 말을 잇는다.
"아니 세상에 이런 경우가 어디..."
"여기 있으니 그럼 다른 데로 가보시던가요."
어리숙한 남자의 말을 자르는 내 말이 정나미가 떨어질 정도로 가차 없다. 그런 얼굴 해봐야 소용없어. 당신은 이미 나한테 호구로 찍혔거든.
우물쭈물 하는 남자가 당장이라도 뛰쳐나가고 싶은 얼굴로 갈등을 하다가 이내 울상을 짓는다. 그래. 차라리 동정심에 호소해 봐. 그러면 조금은 더 나을 거야.
내 속마음이라도 읽었는지 남자가 가뜩이나 빈티 나는 얼굴을 더욱 찡그린다.
"그러지 말고 좀 봐주시면 안 될까요? 저 이번에도 공치면 정말 랭크 다운이란 말이에요."
볼수록 어리버리한 남자일세. 이런 사람이 어떻게 여기까지 흘러들어왔는지 모르겠네.
"안 됐네요. 다시 랭크 올리려면 고생 좀 하시겠네."
속으로는 회심의 미소를 짓는다. 너무 단호한 태도를 일관되게 유지했던 탓에 그가 거래를 포기할 수도 있지만 뭐 그럴 가능성은 희박하다. 아쉬운 건 내가 아니거든.
역시나 내 예상대로 갈등하던 남자가 인상을 와락 쓰며 품을 뒤진다. 거친 동작으로 꺼낸 조그만 무언가를 내 앞에 소리가 나게 올려놓는다.
어따. 깨지면 어쩌려고. 남자가 뭐라 입을 오물거리는 게 욕인 거 같지만, 나는 그런 그보다 탁상 위에 올려진 조그만 알 같은 것을 살피는데 집중한다.
마치 달걀과도 같은 그것은 구리빛의 묘한 색을 발하며 영롱하게 빛나고 있다. 아 저 빛이야 말로 내 삶의 낙이라니까.
"세상에 해도 해도 너무 하네요. 아무리 최하급이라지만 크기가 이 정돈데 고작 40만원이라뇨."
거래를 받아들인 자신이 너무 분에 차는지 투덜거리는 남자의 모습이 마치 골난 애 같다.
"40만원? 노, 노. 38만원."
다시 한 번 매입가를 내리자 남자가 어리둥절해 한다. 호구 같으니. 화를 내야지 거기서 당신이 당황하면 어쩌자는 거야.
"왜. 또...."
"아니 몬스터 에그를 그렇게 거칠게 다루는 사람이 어딨어요. 코어가 망가졌을 수도 있으니 가격은 38만원. 음. 더 내려야 하나."
짐짓 고민하는 기색을 해보이자 남자가 으악하고 히스테리컬한 고함을 지른다. 넌덜머리 난다는 표정으로 질색을 한 남자가 부들부들 떨며 말했다.
"38만원 빨리 줘요."
이를 악다문 남자의 말에 놀리는 것도 그만 두고 친절한 미소를 입가에 둘렀다.
"여기 있습니다. 고객님. 랭크 다운 되지 않게 조심하시고, 앞으로도 승승장구하세요."
누가 봐도 흠 잡을 데 없는 내 영업용 미소를 본 남자가 잠시 어이없는 표정을 해보이곤 고개를 절레 절레 흔들었다.
도망치듯 가게를 빠져나가는 남자를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데 왠 여자 목소리가 들렸다.
"아아. 너 그렇게 하다 보면 언젠가 등에 칼침 맞는다."
돌아보니 낯익은 여인이 바에 앉아있다. 언제부터 그 자리에 있었는지 모르겠지만 별로 신경 쓸 만한 존재가 아니라 무시했다.
흐흐흐 내 몬스터 에그. 아 이 맛에 내가 산다니까.
"야. 무시하는 거야?"
다소 앙칼진 어조로 바뀐 음성에 난 마지못해 그녀에게 다가섰다.
"아. 이쪽 일로 온 거야, 아니면 저쪽 일로 온 거야?"
불만스러운 내 음성에 그녀의 눈썹이 치켜 올라간다. 잠시 나를 노려보다가 체념한 듯 말하는 그녀, 김도연이다.
쭉 빠진 몸매에 섹시한 얼굴, 남자라면 누구나 혹할만한 외모의 그녀지만 나는 그저 귀찮다는 듯 건성으로 그녀를 대한다.
저 잘 빠진 외모에 휘둘렸다가는 잡아먹히기 십상이지.
"오늘은 그냥 마시러 온 거야. 네 칵테일 제법 맛있거든."
방금 전까지의 탐탁찮은 모습은 어디 갔는지 아양이라도 떨 듯 말하는 모습이 꼭 고양이 같다. 그런 그녀의 태도에 나는 한숨을 쉬었다.
"꺄악! 뭐하는 거야!"
문밖에 내동댕이쳐진 그녀가 비명을 질렀다. 나는 담배에 불을 붙이며 가게 문을 등지고 섰다.
"나가. 아직 영업 시작 안 했어."
한손으로 영업시간이 적힌 부분을 톡톡 치는데 그녀의 얼굴이 일그러진다.
"아 정말 이럴 거야?"
이러거나 말거나 그녀가 저런 태도를 취할 때는 뭔가 아쉬운 소리를 할 때뿐이다. 저 여자는 자기가 매력적인 여자란 것을 끔찍하게도 잘 알고 있거든. 덕분에 예전에는 꽤나 험한 꼴을 많이 봤었지.
"15분만 있으면 오픈이잖아! 우리 사이에 빡빡하게 굴지 좀 마!"
가증스럽게도 지껄이는 폼이 꼭 남자친구한테 버림받은 모양새라 기도 안 찬다. 이 사마귀 같은 아줌마가 누구를 엮으려고.
"가. 이따가 애들 오면 애들한테 만들어 달래고. 난 좀 쉴 거야."
그녀를 버리고 가게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등 뒤로 한기가 느껴졌다. 설마 설마 해서 뒤를 바라보니 그 윤기나는 머리를 미친년처럼 펄럭이는 김도연이 있다.
그녀 주위로 불어대는 바람이 심상치가 않은데 등 뒤로 식은땀이 흘러내렸다.
"김.형.준. 이런 식으로 나온다 이거지?"
그녀의 주변에 불어오는 바람이 용솟음 치듯이 말려 올라간다. 정말 더도 말고 덜도 말고 딱 미친년의 모습이라 놀려주고 싶지만, 지금 입을 함부로 놀렸다가는 초상 치를 판이다.
"어이. 지금 여기서 능력을 개방하겠다는 거야?"
농담이 아니라 정말 술식을 개방한 듯 눈에 보이는 선홍색 기류가 그녀를 휘감았다.
어쩔 수 없이 체념하고 그녀에게 문을 열어보였다. 물론 진짜로 이쪽 세계에서 저쪽 세계의 능력을 발휘하진 않겠지만 더 이상 홀대 했다가는 깽값 물겠다고 난리 치고도 남는 여자다.
새삼 '미친개' 김도연이라는 그녀의 별명, 누가 지었는지 참 잘 지었다는 생각이 든다.
금세 기운을 갈무리한 그녀가 아무 일도 없었던 듯 상큼한 미소를 짓는다. 저 매력적인 웃음만 보자면 방금 전의 일이 거짓이라 해도 믿겠다.
단 한 가지 방금 전 기류에 휩쓸려 올라갔던 머리가 미친년 널뛴 듯 잔뜩 산발이라는 게 흠 일뿐.
"진작 그러지."
샐쭉허니 눈을 흘긴 그녀가 가게로 들어가자마자 화장실로 들어갔다. 생각지 못했던 방해꾼 탓에 오픈 전의 휴식을 망친 나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마침 할 일도 없는지라 가게의 한 켠에 매달린 액정패널을 킨다.
"... 미친!"
입에 물고 있던 담배가 떨어지는 것도 모르고 턱을 빼놓는다. 티비에 나오는 영상은 그만큼 충격적이었다.
40인치 액정을 가득 채운 화면에는 마치 초능력 전대물이라도 되는 냥, 화려한 이펙트의 액션활극이 벌어지고 있다. 꽤나 박진감 넘치는 화면이라 평소라면 감탄을 하고 시청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수가 없다. 뉴스였거든.
일반인들은 절대 몰라야 할 저쪽 경계의 능력자들의 전투가 티비를 통해 흘러나온다. 나 또한 저쪽 세계의 주민인지라 위쪽에서 얼마나 매스컴을 통제하는 지 익히 알고 있건만, 티비에서는 현실감 없는 장면들이 계속해서 이어진다.
"뭐야? 영화 봐?"
어느새 화장실에서 나온 김도연이 끼어든다. 바의 의자를 꺼내 티비를 바라보던 그녀 역시 얼빠진 소리를 냈다.
"... 미친!"
그녀 역시 충격을 받은 듯 더 말을 잇지 못한다.
"정부에서는 저런 능력자들의 세계가 따로 있으며, 그들은 사회의 음지에서 보이지 않게 사회의 규범과 정의를 파괴하고 있다고 발표했습니다. 도저히 사람이라고 할 수 없는 그들의 능력은 지금의 사회에 충분히 위협적이며 반사회적인 그들의 사상이 심히 우려된다는...."
갈수록 가관인지라 정부의 주도 하에 밝혀진 저 충격적인 사실에 어안이 벙벙한데, 더욱 충격적인 화면이 나온다.
상투라도 튼 듯 머리를 틀어 올린 샤프한 인상의 남자의 모습이 화면을 통해 흘러나온다. 꽤나 맵시 있는 차림에 배우라도 나온 건가 싶지만 저 남자가 배우가 아니라는 건 내가 가장 잘 안다.
"저거, 너 아니야?"
김도연의 얼빠진 음성이 들리고 나는 패닉에 빠진다.
마치 머리를 한 대 후려 맞은 듯 정신이 쏙 빠진다. 나도 모르게 손가락으로 나를 가리키니 그녀가 고개를 끄덕인다.
"아무리 봐도 넌데?"
사실 물어보고 확인 할 것도 없는 게 평생을 봐온 저 얼굴이 나라는 것을 내가 모를까. 하도 어이가 없는 일이 벌어지니 하는 짓도 이리 어벙하게 나온다.
"............ 화면에 나온 김씨는 현재 홍대 모 주점을 운영 중이며, 그들간의 계급으로 4급에 해당되는 인지도 있는 능력자인 걸로 보입니다...."
맙소사. 우리나라가 언제부터 이렇게 개인정보를 마구 뿌렸단 말인가. 성폭행범 같은 쓰레기들조차도 인권이니 뭐니 보호한다고 떠들어대는 얼빠진 나라가 우리나라 아닌가?
게다가 저쪽 세계에 대한 저런 자세한 설명이라니, 우리간의 등급제도는 물론 내 등급까지 정확하게 알고 있다. 내부에 밀고자가 있지 않는 이상 절대 불가능한 일이다.
아니. 그 전에 저쪽의 높으신 분들이 손을 댄 건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들이 겁도 없이 저쪽세계를 까발린단 말인가.
머리가 복잡하다. 채널을 다른 곳으로 돌려보지만 보이는 것은 매한가지. 내 면상과 어느 병신 같은 이능력자간의 배틀이 연속해서 흘러나오고 있다.
그 시끄러운 아나운서의 보도에 머리가 아퍼 티비를 꺼버렸다.
순식간에 적막이 찾아들고, 나와 김도연 그녀만이 서로를 멀뚱 멀뚱 바라본다. 침묵을 먼저 깬건 그녀다.
"큰일 난거 같은데?"
염장지르냐! 지금 이 상황에서 큰일 난거 누가 모를까봐! 내 편치 않은 기색을 읽었는지 그녀가 드물게 눈치를 본다.
"아. 아무래도 윗분들이 손을 쓴 거 같지?"
그녀 역시 나와 마찬가지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했다. 아무리 양지와 음지가 나눠져 있다고 하나, 엄연히 이쪽과 저쪽의 룰이 있는데 저렇게 대대적으로 까발리다니. 그들이 마음만 먹는다면 방송국 관계자들 따위는 하루아침에 소리 소문 없이 증발 할 거다.
아니 애초에 저렇게 대대적으로 방송을 때리기 전에 뭔가 조치를 취했겠지.
생각하면 할수록 머리가 아플지경이다.
"너 아무래도 윗분들 파워게임에 휘말려 든거 같은데."
이제는 넋을 놓고 있다시피 하는데 그녀가 낮은 어조로 말한다. 그녀의 말대로 골치 아픈 일에 휘말린 것 같다. 오늘은 도저히 가게에 있을 수 없겠다 싶어 외투를 걸치고 가게를 나선다. 그 뒤편에서 김도연 그녀가 나를 부르는 소리가 들리길래 대충 대답한다.
"애들 올 때까지만 봐줘! 돈 안 받을 테니 먹고 싶은 거 먹고!"
============================ 작품 후기 ============================
이능물 연재 시작합니다.
가볍게 읽으실 글이니 다들 부담 없이 선작 팍팍 추천 팍팍 코멘트 팍팍 부탁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