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0화 〉09. 눈발 흩날리는 서주 (2)
살아남은 병력은 얼마나 될까.
전부 확인할 수는 없었고, 애당초 퇴각하는 과정에서 뿔뿔이 흩어져 그저 하염없이 서주성을 목표로 진군하고 있었기에 당장은 알아낼 방도도 없었다.
우선 나와 유비 인근에 주둔한 병력이 약 이백 언저리.
“정신이 좀 드나?”
“……여기는 어디죠…?”
“서주성 방면으로 향하고는 있는데, 잘은 모르겠어.”
막 깨어난 환자에게 답할 말도 아니었지만, 이건 사실이었다.
눈발은 폭설로 변해 한 치 앞도 알아보기 힘들었다. 패주하는 아군에게는 적이 추격하기 곤란한 환경이라 다행일 수 있겠으나 부상자인 유비를 데리고 퇴각해야 하는 내게는 영 껄끄러운 상황.
이런 추위는 부상자에게 좋지 않은데.
어쩔 수 없이 눈발을 피할 곳을 찾아 그곳에 잠시 주둔했고, 그녀 주변에 어떻게든 해서 모닥불을 피우고는 그 상처에 약을 발랐다.
혹시 몰라 상비약을 조금 들고 다녔는데, 설마 그걸 다른 누구도 아니고 서주의 목인 유비에게 쓰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유비는 내처치를 받는 동안에도 눈을 감았다.
그렇게 응급처치가 전부 끝났을 무렵에야 그녀는 입을 열었다.
“……참패네요.”
“그러게.”
어떻게든 잘 버텼다고 생각했지만, 전력의 차이는 어쩔 수 없었다. 게다가 예상치 못한 추가 병력의 합류까지 감당할 정도로 상황이 넉넉한 것도 아니었으니까.
지금 가장 우선시할 목표는 서주성으로의 귀환.
생각할 것은 많았지만, 우선 가장 중요한 것은 그것이라 자신에게 다짐하며 우선 모포를 둘러 그녀를 덮어주었다.
“우선 눈발이 너무 거세니까 잠시 쉬자고.”
“다른 이들은 어찌 됐을까요.”
“……이 눈보라야. 분명 다들 어떻게든 몸을 피했겠지.”
확신할 수는 없었다.
당장 괜찮을 거라는 거짓말로 안심시킨다는 선택지도 있었지만, 그런 무의미한 짓으로 그녀를 우롱하고 싶지는 않다.
무엇보다 유비도 바보가 아니라 이런 상황에서 그런 태평한 말을믿을 리 없었다.
“나름 이래저래 노력했는데 말이죠….”
그녀는 통증에 표정을 찌푸렸으나 눈물을 보이지는 않았다. 겨우 내가 등 돌렸던 상황에서 잠깐 흘렸을 따름.
누군가가 보고 있을때는 약한 모습을 보이지 않겠다는 걸까.
대단하다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것이 왠지 억지로 참고 있는 듯하여 다소 미련하게도 보였다. 이만한 참패라면 조금은 슬퍼해도 좋을 것을.
“분하면 화내도 괜찮고, 슬프면 울어도 괜찮아.”
“……지금 감정을 소모할 수는 없잖아요.”
유비는 꿋꿋하게 억지로 상체를 일으켰다.
옆구리를 베여 피가 터질 수 있어 만류하려 했지만, 그녀는 살짝 웃으며 내 손을 치우고는 상체를 일으켜 벽에 등을 기대었다.
“이러면 장비나 제갈 선생님도 돌아오기 힘들 텐데.”
“일단 이쪽 걱정을 먼저 하쇼.”
“제 쪽에는 호세 씨가 있잖아요?”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지만, 억지로나마 웃어 보였다.
그녀와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을 시간을 보내며 느낀 것이 이 여자가 웃는 건 아마 포기하지 않았음을 암시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이런 상황에서도 마지막 끈을 놓지 않았다.
“일단 조금 쉬쇼. 움직이는 건 눈보라가 그치면 해야할 것 같고, 그동안 체온을 잘 유지해야 해. 아무리 눈이 그쳐도 겨울은 추우니까.”
“호세 씨.”
“응?”
유비는 살짝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고마워요.”
“뭘 이런 걸 가지고.”
“제가 당신에게 해드린 것은 지금 당신이 제게 해주는 것보다 약소하다는 걸 알아요. 이렇게까지 해주실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거든요.”
그 말에 농담이라도 하나 지껄여줄까 싶었지만, 그녀의 표정이 워낙 진지하여 그 말을 잠시 속에 담아두고는 어깨를 으쓱였다.
“난 언제나 내 원하는 식으로 움직였어.”
“……당장은 답례해드릴 방법이 없어 곤란하네요.”
“됐어. 뭔가를 바라고 움직인 건 아니니까.”
유비군에서의 내 신분은 다소 모호한 구석이 있어도 우선 객장. 그렇기에 나는 내 원하는 대로 움직였다고 생각했고, 그 부분에서는 적어도 후회하지 않았다.
그것이 설사 내가 잊었던과거와 대치하는 한이 있더라도, 하여 기억을 되찾은 이후에는 후회하게 될지라도.
적어도 지금만큼은 후회하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속인 적이 없다.
물론 확신할 증거도 없을뿐더러 단순한 직감에 불과했지만, 기억을 잃은 나를 상대로 그녀는 많은 배려를 베풀었다.
그것을 갚으려던 것이 여기까지 진행됐다.
이 전쟁을 끝으로 나는 그녀에게서 떠날생각이었다.
그러니 적어도 그때까지만이라도 이 여인의 안녕을 빌어주고자 했다.
여포, 그리고 내가 아직 기억하지 못하는 이들에게는 미안하지만, 조금만 더 시간을 줄 수는 없을까.
“고맙고, 또 미안해요.”
“몸이나 추슬러.”
쓸데없는 소리를.
혀를 차고는 그녀에게 등 돌려 밖으로 나가려던 때.
“서주성으로 돌아가면 할 말이 있어요.”
그녀의 힘없는 말에 살짝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녀는 고개를 돌리고 있어 그 표정을 확인할 수 없었고, 무슨 말인지는 모르겠으나 일단 안정을 취해야 할 환자였기에 픽 웃어주었다.
“도착하면 듣지. 일단 쉬어.”
그 말을 마치고 바깥으로 나왔다.
아직 눈보라가 거세게 몰아쳐 시야가 선명하질 못했다. 이 정도면 조조군이 퇴각하는 유비군을 추격하는 데 어려움을 겪겠지.
고작 하루아침 만에 바로 이렇게 눈보라가 몰아치는 것 또한 천명일까.
나는 운명이나 천명 같은 단어를 좋아하지 않았지만,너무나도 시기적절하게 조조군과 아군의 사이를 갈라놓아 이런저런 생각이들었다.
매섭게 몰아치는 눈발.
세계 전체를 새하얗게 물들일 기세로 몰아치는 그것이었지만, 그 또한 언젠가는 멎는다. 하늘의 기상 또한 그러할 진데, 인간과 인간 사이의 갈등은 그 주체를 달리할 뿐 멎어들 기미가 보이지 않는 것은 어째서인가.
세계는 언제나 혹독한 겨울이었다.
시간이 지나며 계절을 바꾸는데, 정작 세계의 본모습은 바뀌지 않는다. 마치 굳어져 세계의 섭리와도 같아진 그것을 바꿀 수 있다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언제까지 그렇게 살 거야?’
‘나를 따라. 그러면 천하 만민, 그 누구 하나 배 굶주리지 않고 등 따듯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줄 테니까.’
하면 그것은 봄인가.
예전부터 계속 내 귓가에 맴도는 이명의 주인.
문득 이 목소리의 주인을 만나고싶어졌다.
* * *
이후의 퇴각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내 예상과는 달리 조조군에서는 별도로 추격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는데, 그것이 악천후의 영향인지는 잘 모르겠다.
확실한 것은 주변으로 모인 군을 어떻게든 추스르며 서주성에 도착했다는 것.
하지만 그걸로 끝은 아니었다.
기존 유비가 이끌던 병력은 청주 소속의 군단과 기존 서주의 군단을 합쳐 오천이었는데, 요 며칠 사이로 서주성으로 돌아온 병력은 천 남짓한 병력밖에 되지 않았다.
서주성의 방위군이 있다지만, 당장 성 바깥으로 2만을 훌쩍 넘기는 군단이 포위하고 있는 상황에서 병력의 충족을 말하기란 어려움이 있었다.
그나마 다행이라고 한다면 기존 지휘관급 인물들이 전부 살아 돌아온 것일까.
여포는 제갈량과 그 인근의 지휘부의 이들을 성공적으로 호위하여 돌아왔고, 장패를 비롯하여 심지어 전예조차 이 서주성으로 돌아왔다.
솔직히 항장 출신인 전예는 도망치지 않을까 싶었는데.
물론 다행인 것은 딱 거기까지였다.
“……유비는 좀 어떠냐.”
“기력이 많이 상했음. 회복하고는 있지만, 아직 몽롱한 상태일 것.”
제갈량의 말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조조군은 이미 턱밑까지 쫓아와 이 성을 포위하고 나섰다. 듣기로는 이미 팽성은 함락당하고, 관우의 분전으로 병력을 겨우 퇴각시켜 하비 일대에서 수성에 전념한다고.
요컨대 당장 서주성으로 지원 나올 병력이 없는 셈이었다.
원소와는 협정을 맺었지만, 그쪽 또한 이제 겨우 청주를 점령하고 그 일대를 안정시키는 단계에서 그들이 그걸 포기하고 서주로 구원병을 보낼 것으로는 생각되지 않았다.
그만큼 조조의 행동이 빨랐고, 서주 또한 충분히 방비했음에도 그 저력을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이었다는 것이었다.
단순한 사실이지만, 단순한 것은 본디 단순하기에 지독했다.
“방법이 없네.”
“우선은 수성에 전념.”
“그 수성을 진두지휘할 서주목이 쓰러진 거잖아. 내가 외부인이라 잘은 모르겠다마는 이미 성 내부에서도 잡음이 들려도 이상하지 않은데.”
제갈량은 답하지 않았지만, 평소 무표정하니 멍한 표정을 고수하던 소녀의 미간이 살짝이나마 찌푸려진 것으로 대답이 되었다.
그만큼 현 서주의 상황은 최악이라는 거겠지.
북부에 주둔한 장비와 제갈근이라도 돌아온다면 상황이 호전될 여지는 있겠지만, 이미 서주성이 조조 본대에 포위당한 시점에서 그것을 뚫고 성내로 진입한다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게다가 하비의 관우 또한 위급하기는 매한가지.
적어도 떠나기 전에 이들이 다시 자립하는 것까지는 보고 싶었는데, 이래서야 영 요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나마 손건과 진등이라는 이가 내부를 잘 수습하고는 있다지만, 그게 아무렴 지도자가 직접 지휘하는 것보다 나을 리 없는 거니까.
그렇게 또 하루가 지났고, 다음날 조조군의 전령이 성문 앞에 도착했다는 소식을 들었다.
제갈량은 이번만큼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며 이를 꽉 깨물었다.
“그래서, 그들이 바라는 게 뭐라든?”
소녀는 내 질문에 입을 꾹 닫고 침묵했다.
그래 봐야 조조군의 전령이도착한 시점에서 날 호출했다면 그게 무슨 내용일지는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데 말이지.
“……그게….”
“당신을 본인들 진영으로 보내라고 하더군요.”
그런 그녀를 대신하여 답하는 것이 진등.
“그럴 것 같았어.”
제갈량은 눈을 매섭게 뜨고 진등을 노려봤지만, 그는 당연한 일을 했다는 것처럼 고개를 돌려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전쟁이 한창임에도 구태여 나를 지목한 조조군.
그 점에서 과거 그들과 얼마나 밀접한 연이었을지 상상조차 가질 않았다. 조조군도 목적이 있으니까 서주를 공격한 것일 텐데, 어느 순간부터 그들은 내 존재에 집착했다.
어쩌면 내가 상상하던 것보다 과거가 더 복잡하게 엮였을지도 모르겠다 싶었지만, 우선 그 소식에 답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그럼 만나주지 뭐.”
“……아저씨.”
“원래 그러려고 했어. 슬슬 나도 눈 돌리는 건 그만두고, 그게 어떤 형태로 이어지건 내 행적과 정면으로 마주할 준비를 해야겠지.”
복잡한 일을 회피하는 건 여기까지.
이대로 서주성을 떠난다면 다시 이곳으로 돌아올 수 있을지 확신은 없었지만, 그래도 현 상황에서 문을 닫고 버틴다고 하여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다.
“……미안함.”
“네가 뭐 미안한데.”
“나는 아저씨가, ……당신이 스스로 원하는 삶을 사는 것을 바랐음. 전장에 나서기에는 다정한 사람이라고 생각했으니까.”
그러고 보면 요 꼬맹이와도 과거에 일면식이 있다고 했던가. 하면 그녀는 과거의 내게서 그런 부분을 느꼈던 것일까.
하여간 말 하나는 어른 못지않은 계집애다.
“내가 바라는 게 이거니까 됐어.”
손을 휘적휘적 저어주고는 등을 돌렸다.
그 뒤를 돌아보지 않는다.
앞으로 나아간다. 이제부터는 내가 지금까지 외면했던 것들을 마주할 시간이었다.
나를 대하는 유비의 태도가 편했고, 그 주변 이들이 편해서.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를 구태여 떠올리지 않으려 했다. 장군이 되어 정치에도 엮였다는 다소 복잡하고 기피할 법한 일밖에 없으니 일부러 눈을 돌리고 현재에안주하려도 했다.
유비는 이쪽을 배려해주었고, 그것이 나름 아늑했으니까.
잠시였지만 그 호의에 감사한다.
“그대여, 드디어 왔는가.”
“예, 대장군 어르신.”
그 붉은 눈동자와 정확히 시선을 마주했다.
다소 왜소한 체구인 그녀가 가장 상석으로, 그 밑으로 조조군 소속 제장이 나열한 것을 살피고는 천천히 그 중앙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대는 본인을 너무 오래 기다리게 하는구나.”
“본의는 아니었습니다.”
그 부담스러운 상황에 애써 태연함을 가장하여 그녀와 마주했다.
조조는 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짓는다.
하는 수 없이 나도 따라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