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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9화 〉09. 눈발 흩날리는 서주 (1) (39/40)



〈 39화 〉09. 눈발 흩날리는 서주 (1)

서주 북부로 장비, 유비 등이 고전하고 있던 때.
서부에서는 결국 팽성이 함락당했고, 관우 휘하의 병력은 하비로 퇴각하여 그곳의 하천과 견고한 성을 바탕으로 하여 농성을 준비하고자 했다.

물론 조인이 지휘하는 조조군이 그것을 용납할 리도 만무.
팽성이 함락당함과 동시에 조조의 추격대는 매우 빠른 속도로 퇴각하는 서주군을 추격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관우는 양자택일의 갈림길에 섰다.

“이대로면 금세 추격당합니다.”

미축의 말을 들으며 그녀는 고민했다.
확실히 조조 휘하 정예라고 평가받는 조인의 군단은 강했다. 팽성 또한 수성하기 위해 이것저것 준비했음에도 그리 길게 버티지 못한 것.
하비성은 분명 수성에 최적화된 곳인 만큼팽성처럼 쉬이 떨어질 리는 없었지만, 문제는 그곳으로 향하기까지의 거리가 제법 있었다.

“부상병은 어떻게 됐습니까.”
“최대한 전진시키고 있습니다만, 아무래도 아군의 전진에 따라오지 못해 점차 뒤처지고 있습니다. 이대로면 언제 따라잡혀도 이상할 것이 없는데….”

이들을 전부 수용할 수는 없다.
미축은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패전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그들까지 전부 거두기에는 조조군의 기세가 만만치 않다고 여겼다.
그 부분에서 관우는 입을 가린 면사포를 매만지며 고민했다.

“조조군과의 거리는?”
“가깝겠죠. 추격대를  번 물리친 것은 좋지만, 조인이 이끄는 본대가 직접 추격한다면 얘기는 별개일 테고요.”

선택을 강요받은 상황.
이러한 양자택일은 패전을 처리해야 하는 장군에게는 언제나 따르는 법. 그녀는 샛노란 눈동자를 빛내며 전방을 주시했다.

“기마전력을 모으세요.”
“네?”
“받아칩니다.”

이에 미축이 필사적으로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미친 선택입니다.”
“저의 무능으로 성을 잃었습니다. 적어도  수습이라도 하지 않으면 언니를 뵐 면목이 없어요. 어서 준비하세요.”
“아군 기병이라고 해도 삼백 기가 겨우 될까 말까인데….”

관우는 그런 미축의 반발에도 물러서지 않았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조인의 군이라고 해도 우선 팽성 일대를 완전히 점거하기 전까지는 총력을 동원해 추격할 리가 없었다.
추격대로 발 빠른 이들을 보낸다고 하면 기병 전력을 위시한 경장의 부대일 텐데, 공성전을 치르던 과정에서 그런 이들을 바로 준비했을 리도 만무하다.

“적 추격대도 그 숫자가 많지 않을 겁니다.”

게다가 조인 또한 직접 군을 이끌고 추격하지는 않을 테고, 그것만 아니라면 충분히 해봄직 하다고 여겼다.

“많지 않아도 천은 넘깁니다. 삼백이라는 숫자로….”
“군령입니다.”
“……저는 참군입니다. 장군의 잘못된 군령에는 저항할 수 있는 권한이 있음을 잊으시면 곤란해요.”

관우는 그녀의 말에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게다가 그와 별개로 미축은 이 전장, 더 나아가 유비가 서주목으로 부임하기에 있어 가장 큰 조력자  하나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실제로 그녀가 곳간을 열었기에 지금의 유비군이 있음을 알고 있던 관우는 그녀를 섭섭하게 대할 생각은 없었다.

“알고 있습니다.”
“그러면…!!”
“이 자리는 절 믿어주시지요. 참군이 언니를 믿고 지원해주셨고, 언니는 절 믿고 이 자리를 맡겼습니다. 그러니 언니가 믿는 저를 믿으시죠.”

미축은 그 말에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조조군이 어디 일개 잡병이던가.
당장 그들의 질서정연한 공세가 연일 이어졌고, 결과 팽성을 빼앗긴 상황에서 수적 열세를 감당하고 재차 전투를 벌인다는 것은 다소 위험한 발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굳은 의지를 꺾을 수도 없었다.

“……믿겠습니다.”
“예.”

관우는 미축을 돌려보냈고, 곧이어 삼백 가량의 기병이 준비된 것을 확인하고는 그들을 이끌고 후방으로 돌아 그곳을 가로막았다.
부상병까지 전부 퇴각시키기 위해서는 누군가가 그 후미를 지키고 막아 세워야 한다.
버리는 말로 삼아 병력을 희생시키기에는 이미 서주와 조조의 전력 차는 절대적. 그런 병사 하나조차 아껴야 하는 서주군에게 있어 선택지란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관우에게는 자신감이 있었다.

“후우….”

그녀는 자신의 청룡언월도를 붙잡고 전방을 주시했다.
이어 저 멀리서부터 조조군의 추격대가 몰려오는 것을 확인한다.  규모로만 보아 족히 천은 넘어 보였고, 그 뒤를 잇는 병력까지 하면 얼마일지 감도 안 오는 상황.
그렇지만 관우의 뒤로 이어지는 가도는 제법  폭이 좁은 편이었고, 수적인 열세를 어느 정도로 제한할 수만 있다면 충분히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기분 좋은 고양.
그 샛노란 눈을 빛내며 언월도를 치켜든다.
망설임 따위는 필요치 않다.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감과 기백. 적병에게 있어 감히 아군을, 관우라는 존재를 감히 대적할  없는 상대로 여기게 한다.

그러기에 필요한 것은 오직 적을 압도하는 것뿐.
무력으로도 좋고, 기세로도 좋다.

“두려운가?”

그녀는 문득 고개를 들어 아군 기병을 살폈다.
과연 저 전방으로 몰아치는 병력의 숫자를 보면 기가 질릴 법도 했고, 실제로도 몇몇 병사가 입을  다물고 있는 게 보였다.

“만약 적이 두렵거든 너희의 장군을 믿어라.”

그들의 앞에는 자신이 있다.
관우 운장.
천하무쌍이라는 여포를 필두로 조조군의 상장인 조인, 하북의 맹자 공손찬과 원소의 상장인 안량, 문추에 비해 이름값이 다소 부족할 수는 있겠지만, 실력으로 그들에게 밀린다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오늘부로 저들은 관우라는 이름을, 이어 서주라는 땅을 두려워할 것이다. 이 내가 그렇게 만든다.”

그 청룡언월도의 날이 시퍼렇게 빛난다.

“의심을 버려라.”

좁은 가도로 기동력을 살린 기병 전술에서 적을 상대하고자 한다면, 요는 선봉으로부터의 기세로 승부가 결정된다.
그녀는 그런 승부라면   같질 않았다.
그것은 실력에서부터 오는 자신감.

“너희가 바라보는 것은 오직 내 등만으로 충분하다.”

그렇게 관우가 추격군과 대치하는 상황.
서주의 하늘에서는 눈발이 점차 흩날리기 시작했다.

* * *

갑작스러운 조조군의 증원.
기병으로만 수천은  듯한 규모. 안 그래도 잘 쳐줘야 팽팽하던 싸움, 사실상은 아군이 적에 밀리고 있던 상황에서 그만한 숫자의 증원은 최악의 상황으로 이어졌다.

“……호세 씨.”
“말하지 마쇼.”

시간이 지나며 하늘에서는 눈꽃이 흩날렸다.

최악의 패전.
그것으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었다.
기존의 모든 전략은 폐지. 이제부터 현 서주군에 남은 것이라고는 그저 한결같이 남쪽으로, 서주성을 향해 도망치는 패전처리만이 기다리고 있었다.

장패의 군을 중심으로 전열을 뚫어내는 게 보였다.
아무래도 아군의 전력은 전부 전방으로 집약됐고, 그 과정에서 측면을 향한 공세가 빡빡하게 이어졌기에 그나마 여유로웠던 곳이 장패의 전열이었다.
게다가 조조군, 그것도 조조의 대장기를 걸고 있던 기병대는 아군의 후면을 그대로 강타하여 그 중심으로 휘젓고 있었으니 전열에서 뚫어내는 것밖에 방법이 없기도 했다.

“상황은, 어떻게 되어가죠?”
“……졌소.”

너무 깔끔하게 졌다.
그 보랏빛 머리칼의 여인과 조조.
그들과 관련하여 한 번쯤은 대화를 나눌 필요를 느꼈지만, 그것도 어디까지나 목숨 부지하고 난 뒤의 일. 아마 그들의 반응으로 보아 손을 들고 항복한다면 나 정도야 살려줄 것 같기도 했지만, 유비는 그렇지 못했다.

“제갈량 그 계집애는 여포가 챙기기로 했어.”
“……저는….”
“거참, 말하지 말랬지.”

그녀의 상태는 정상은 아니었다.
장료에게 당한 곳은 옆구리 부근이었는데, 그곳으로 계속 피가 울컥거리며 배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어떻게든 응급처치로 천을 감아두기는 했지만, 제대로 된 치료가 아니다 보니 한계가 명백하다.
하지만 급히 몸을 피해야 하는 상황에서 그 상처를 치료할 방법이 없었다.

“……또, 졌네요….”
“서주성으로 갈 거요.”

그녀의 몸을 나와 천으로 묶어 뒤에 앉혀두었다.
하늘에서 내리는 눈발이 점점세지고 있었고, 날도 저물기 시작하였다. 우선 이 자리만 어떻게든 피한다면 목숨 정도는 부지할 수 있지 않을까.
환자를 데리고 있기에 전장에서는 한시라도 빨리 빠져나가는 게 좋았다. 아무래도 싸늘한 온도는 중상을 입은 환자에게 있어 좋을 게 하나 없을 테니까.

“저, 지고 싶지 않았어요.”
“아직 다 끝난 것은 아니니 정신 똑바로 차리쇼.”

말을 몰고 나아가는 길.
주변의 병력을 취합하여 적 포위망을 뚫고는 있지만, 아직 완전히 빠져나갈 수 있노라 장담할 수도 없었다.
아군을 전부 살리기란 요원한 일. 이제부터는 최대한 살릴 수 있는 이들만 추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한 퇴각에 임해야만 했다.

적 병력은 어디까지 밀려왔는가.
그것을 살피며 주변을 둘러보던 차, 저 멀리 바람에 은발 나부끼며 이쪽을 바라보는 한 여인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은발을 흩날리며 전장을 누비는 여인.
어린 시절 마주했던 조조의 특징과도 일치한다. 게다가 그 주변으로 주둔한 병력 하며, 그녀의 주변에 내걸린 대장기로 보아 저 여인이 바로 조조일 터.

하지만 그녀를 비롯하여 적군은 일정 거리를 두고 우리를 추격하고자 하는 의사를 보이지 않았다. 상세한 것까지는 모르겠지만, 적어도 곧장 우리를추격하지 않을 듯한 모습.
이미해는 지평선 반쯤 걸려 해가 뉘엿뉘엿 떨어지고 있었다.
무슨 속셈인지 궁리하는 건  전장을 벗어난 이후로 해도 충분하다. 우선은 최대한 이 전장에서 유비만을 살려 도망친다.

문득 어깨 주변이 축축해졌다.
눈송이가 닿아 녹았을까. 그렇다기에는 어깨 한쪽만 젖고 있었고, 무엇보다 눈이 닿아 녹았다고 하기에 그 물방울은 너무 따듯했다.

이 전쟁이 끝나면 나는 아마 유비를 떠나게 된다.
그렇다면  전쟁까지만이라도.

“꽉 잡아. 아파도 참으시고.”
“……예.”

말을 몰고 병력을 취합하며 그대로 전장을 빠져나간다.
그동안 유비는 숨죽여 몸을 떨었다.
어깨를적시는 그녀의 눈물.

“……포기하지 않을 생각인데, 그래도 많이 분하네요….”

이번 전장에서의 패배는 뼈저렸다.
그것을 알고 있었기에 입을 다물었다.

나는 분명 언젠가 유비의 곁을 떠난다.
조조군으로 재차 돌아갈지는 의문이었지만,적어도 언젠가 그 곁을 떠나야 한다는 것은 명백했다.
 과정에서 그녀는 이 전쟁을 끝으로 어떤 판단을 내리게 될 것이고, 또한 어떤 처지가 되어있을 것인가.

조조와 유비.
그 둘을 생각하면 여전히 머리가 복잡했다.

우선 이 전장을 벗어난다.
당장 패전을 앞두고 한가하게 고민할 시간은 없었고, 유비의 부상이 걱정됐다. 이런 생각은 전부 끝난 이후에 해도 충분했기에 우선 앞만 바라보고 말을 몰았다.

전장에는 점차 거세지는 눈발이 흩날렸다.
그것은 이 전장에서 죽어간 이들을 덮고, 그 붉은 피마저도 덮을 기세로 펑펑 내렸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그 순백으로 지상을 가릴 생각인가.

그런다고 하여 전쟁의 여파는 지워지지 않는다.
고작 새하얀 색으로 덮일 정도로 전장의 색채는 옅지 않으니까.

* * *

조조는 저 멀리 떠나는 전호를 바라보며 씁쓸히 웃었다.

“살아있었군.”

보고는 받았지만, 그래도 혹시나 하는 마음이 있었다. 적어도 본인의 눈으로 확인하기 전까지는 믿기 힘든 정보이기도 했지만, 그 모습을 보니 안도감과 함께 약간의 부정적인 감정이 함께 몰려왔다.
그는 등 뒤로 유비를 부축하고 있었다.
본인을 저버리고 유비에게 가담한 이유가 무엇인가.

그녀는 떠나는 남자의 등을 쭉 바라보았다.
그러는 사이 사마의는 조조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대장군.”
“왔는가, 사마 참군.”
“태평하시네요. 덕분에 아저씨가, ……중랑장은 벌써 포위망을 뚫고 도망쳐버렸는데.”
“혹여 본인을 책망하는가?”

사마의는 답하지 않았지만, 조조의 난입으로 전호가 퇴각을 선택하여 그대로 도주한 것은 명백했다.
게다가 그들을 추격하지 않은 것도 의문이었다. 유비와 함께 포박했다면 이 전쟁을 끝낼  있었기에 그녀는 의구심을 감추지 않았다.

“본인이 이끌고 온 기병은 강행군 직후의 전투로 심히 지친 상황이다. 게다가 곧장 추격했다면 그이도 심히 저항했겠지.”

조조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그는 포기를 모르는 이다. 이대로 유비를 추적하겠다고 그를 몰아세웠다면 그 어리석은 이가 어떻게 나올지 모르는 것이 아닐 텐데?”
“……그건 알지만….”

전호는 필요하다면 제 목숨까지 불태워 싸우는 남자였다.
과거 그와 함께하던 동안에도 몇 번이나 다치는 것을 보았던 사마의였기에 그 부분에서는 반박하지 않았다.
그저 아랫입술만을 꽉 깨물 뿐.

“조급해하지 마라. 어차피 유비가 갈 곳은 서주성밖에없다. 그곳을포위한다면 진득하게 얘기할 기회도 있지 않겠는가?”

어차피 주도권은 조조가 쥐었다.
이대로 유비가 퇴각한다고 하여 문제  것은 없다.
이미 서주 팽성을 함락시켰고, 그 뒤로 하비성으로 진격할 일만 남은 상황에서 서주성까지 포위할 수 있다면 그대로 유비를 앞뒤로 압박하는 구도로 이어졌다.

“그이가 왜 유비의 손을 들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우선 서주성을 포위한 뒤에 천천히 들어도 늦지 않는다.”
“……그거 말인데요.”

사마의는 이를 꽉 깨물었다.

“기억을 잃었다고. 본인한테 직접 들었어요.”
“그건…… 참으로 놀라운 일이군.”

조조는 저 멀리 떠나가는 그를 바라보며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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