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7화 〉08. 서주 공방전 (9) (37/40)



〈 37화 〉08. 서주 공방전 (9)

전선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나와 여포는 아군 진영의 좌측을 담당하고 있었는데, 그런 아군과 대치하던 병력이 갑자기 우회를 시작. 본진의 명령에 따라 후방을 지원하고자 했지만, 그들은 그 또한 지나쳐 한 바퀴를 크게 돌았다.
여기서 더 움직이다가는 아예 부대 구성 자체가 엉켜버린다.

“이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는 거지?”
“그럼 이제 우리는 어떡해?”
“대기한다. 이대로 더 움직이다가는 아예 후방의 군과 뒤섞일 우려가 있어. 중앙을 거쳐 지원하고자 해도 그 방면으로도 군이 있으니까.”

분리된 군이 서로 겹쳐 뒤섞이면 그때부터는 정말 간신히 잡아두었던 대열과 구성이 무의미하게 변한다.
물론 정말 급하다면 그렇게 움직여도 괜찮겠지만, 그 순간부터 명령체계는 의미를 잃고 부대에 내릴 수 있는 명령이 단조롭고 단순한 것으로 한정되어버린다.
제갈량 말하길 이번 전장은 세밀하게 유지될 거라고 들었다.

“이대로면 적 병력이 전부 우측으로 집중되는데.”
“본진에서의 명령이 있을 거야.”

그게 아니더라도 섣부르게 움직일수는 없다.
지금에야 내가 병력을 이끌고 있다지만, 우리가 객장이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된다. 돌발적인 행동은 자칫 내부적으로 불만을 불러올 수 있었고, 그건 유비의 상황을 곤란하게 만들 뿐이다.

이런 것이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떠오르는 걸 봐서는 내가 진짜 장군인지 뭔지를 하긴 했었나 보네.
물론 그와 별개로  상황 자체는 달갑지 않았다.

군의 움직임을 크게 가져가면 그것에 대처하려는 아군이 딸려 나갈 우려가 있다. 그걸 진정시킨다고 해도  곳으로 병력이 집중된다면, 아군 또한 대처에 나서야 할 때.
물론 그렇게 움직이고자 설계한 배치겠지만, 적의 의도대로 움직여지는 것은 전장에서 가장 삼가야 할 것이 아니던가.

우선은 사태의 진정을 기다린다.
그렇게 판단하고 대기하려던 차, 우측 진영으로 한바탕 소란이 이는 것을 확인했다. 기마의 말발굽 소리와 함께 대대적인 기병 전력의 투입이 눈에 보였다.

이러면 아군도 움직여야 한다.
문제는 어디로 움직이느냐는 것인데, 여전히 전열을 틀어막고 움직이는 군의 움직임 또한 거세어 저것을 뚫고 지나갈 수는 없었다.
그렇다면후방의 군과 연계하여 진입하는 방식도 떠올렸지만, 아군의 후방을 담당하는 군은 기본적으로 급조한 편재로 구성되어 그 움직임이 둔하고 신속하질 못했다.

“본진에서의 명령은?”
“아직 없는 것 같아.”

이대로 시간을 끌어도 되나?
잠시 의문이 생겼지만, 일단 사태를 파악하는 중이라고 생각해 우선은 조금  지켜보기로 했다.

* *

조조군이 유비군보다 압도적으로 우위를 가진 것은 둘.
하나는 군의 조직력이요, 다른 하나는 기동력.
그 기동력을 담당하는 것에는 유비군의 기병 전력보다 훨씬 압도적으로 숫자와 질적인 측면에서 우위를 점하는 기병대의 존재 또한 포함되어 있었다.

장료는 말의 고삐를 잡고 전방을 주시했다.
신호가  떨어질 터.
언월도를 잡은 손아귀를 타고 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전장에 설 때마다 이런 긴장감을 느끼고는 했는데, 등골이 서늘해지는 이 감각을 그는 싫어하지 않았다.

그렇게 기다리고,  기다리던차.

“왔다.”

나팔이 재차 울림과 동시에 장료는 말에 박차를 가했고, 그렇게 오백 규모의 기병이 고지를 기점으로 내달리기 시작했다.
과거 여포와 함께 병주를, 동탁 휘하에서는 사예주를 누비던 때도 장료는 보통 기병을 전담하여 군을 이끌었다.
물론 여포 본인 또한 기병에 장기가 있었고, 그녀의 휘하 군세의 편재는 대부분 정예 기병을 필두로 적을 분쇄하는 것에 특기가 있었기에 그것이 당연하기도 했지만, 요는 그만큼 장료는 기병을 다루는 것에 익숙하다는 뜻이었다.

“생존자는 불필요. 전원, 말발굽으로 짓이겨라!!”

오백 남짓이라고 해도 이 전장에서 적과 아군의 숫자 또한 오천정도로 그 숫자가 크지 않았다. 그런 상황이라면 오백의 기병이라도 상황의 여하 따라서는 전장의 판도를 뒤바꿀 있는 것.
사마의가 장료에게 주문한 것은 오직 하나였다.

“자비는 없다. 가로막는 것은 모두 짓밟아 분쇄한다!!”

측면을 파고들어 그대로 짓밟는다.
이미 보병끼리의 교전에서는 조조군이 우위를 점했다. 사마의는  방점으로 장료를 내세웠고, 그는 자신의 역할에 충실할 준비를 끝마친 지 오래.

군마의 움직임과 그 흐름.
장료는 그대로 달리고 달려, 기동력을 그대로 살리며 적진을 향해 나아갔다. 그곳으로 적과 대치하던 조조군의 보병이 아군 소속 기병의 움직임에 맞춰 일사불란하게 갈라져 그 진로를내어줬다.

한편 그것을 지켜보던 제갈량은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기병 전력은 저 후방에서 대치하던 하후연의 군과 다투어야 할 장비에게 전부 몰아주었다. 적에게 정예 기병이 있는 순간부터 적에게 한  뒤지고 들어가는 셈인데, 병력의 질적인 차이로 또 한 수 뒤처졌다.

만회할 수 있을까.
소녀는 주변을 살피며 이런저런 재료를, 이 전세를 뒤엎을  있는 요소를 골똘히 궁리했지만 이렇다 할 것이 떠오르지 않았다.
애당초 조조군은 유비군을 상대로 일말의 방심 없이 허점을노출하지 않고 차근차근 지공으로부터 풀어낸 감이 있었다.

신중하며 철두철미한 적.
그런 적에게 두 수나 밀렸다면 그것을 완전히 극복하기란 어려움이 있었고, 지금으로서는 아군이 그 기병 돌격에 잘 대처해주기를 바라며 천천히 후미의 군을 움직여 대처할 수밖에 없다.

“좌익 후미부터 천천히 펼침.”

어떻게든 대응해야 한다.
다행히도 전열의 장패는 그 성치 않은 몸을 이끌고도 하후돈을 상대로 분전하고 있었다. 좌익의 군을 전진시켜 그것에 대응하며,  후미의 군을 돌려 우익으로 돌파해오는 기병을 막는  최선.

그렇게 판단하고 군을 움직이려 했을 때, 기병의 진로를 피해 좌우로 갈라졌던 조조군의 군세 중 일부가 위로 북진했다.
후미의 군이 돌아 나올 진로를 차단하는 한 수.

이런 난전에서도 저렇게 규칙적인 지휘가 과연 가능한 것인가. 기병의 돌격과 잦은 위치의 변경은 그들이 기존 작전대로 움직이는 것이 아닌 임기응변에 가까운 움직임이라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원래라면 그런 즉각적인 명령이 전선까지 전해지려면 제법 긴 시간이 걸릴 터. 그런데도 조조군의 움직임은 너무 긴밀했다.
순식간에 돌아 나오는 군을 차단하는 움직임.
저것이 사전에 약속된 움직임이 아니라면, 그것은 저 순간적인 명령과 그것을 즉각적으로 하달받을 수 있는 명령체계에서 나오는 조직력이라는 뜻.

유비 또한 그것을 보며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군대는 진짜 오랜만이네.”

과거 황건적 토벌 당시의 금군이 저러했던가.
대장군 휘하로 황제 폐하의 직속 병력이자 대륙 최고의 정예 수준의 움직임을 조조군의 부대가 실현해냈다.
마치 군대의 움직임이 살아 움직이는 생물처럼 유기적인 모습.

“후미의 병력을 돌리는 것도 막고 일방적으로 두드리겠다는 소리네. 상대 지휘관이 누구인지는 몰라도 정말 악질이지 않니?”
“농담할 때가 아님. 지금은….”
“언니도 알아.”

유비라고 모를 리가 없었다.
애당초 병력의 질적으로 보아 정예라고 부를 수준의 병력은 장비에게 맡겼다.
그렇다고 유비가대동한 부대가 오합지졸이라는 것은 아니었지만, 청주 소속의 병력을 급하게 받아들인 것도 있어 조조군과 비교해 아무래도 차이가 날 수밖에 없었다.

“중앙의 병력을 움직이자.”
“그러면 유비, 당신이 노출됨.”
“모두가 목숨을 걸고 싸우는데, 내 목숨 하나가 아쉬워 이 전쟁을 패전으로 돌릴 수는 없잖아?”

전장에 선 이상 누구나가 목숨을 걸었다.
여전히 눈을 감으면 전선에서 들려오는 비명과 병장기가 교차하는 소리, 거기에 덧붙여 말발굽 두드리는 소리가 선명하게 전해진다.
당장 움직일  있는 부대는 지휘부로 전담했던 유비 직속의 부대밖에 없었다.

그렇게 유비의 본대가전선으로 나섰고, 그것을 지켜보던 사마의는 픽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그렇게 움직이나.

“지휘부도  시각을 기점으로 전선에 나섭니다.”

이것으로 모든 조건은 갖추어졌다.
그동안 사마의는 유비라는 존재의 이력을 조사했고,  과정에서 그녀가 열악한 환경에서부터 전선에 직접 나서 병사와 싸우며 세를 불렸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성향의 장군은 여차할 때 직접 전선으로 나설 것을 이해했고, 그렇기에 구태여 각 방면으로 군을 벌리며 그녀가 움직일 수밖에 없는 환경을 조성했다.

여기서 유비만 잡으면 모든 끝난다.
서주목으로 취임한 이후 이런저런 전장을 거치며 서주 일대를 평정한 그녀였지만, 서주 토박이가 아니라는 한계 탓에 지지기반 자체는 약했다.
그렇기에 유비의 목만 칠  있다면 서주의 저항군의 기세를 약화하며 이 지역을 송두리째 손아귀에 거머쥘  있는 것.

“아군 기병대의 뒤를 따르죠.”

그것을 위해 구태여 어느 방면으로도 움직일 수 있는 곳에지휘부를 편성했고, 오백 가량의 병사도 남겨두었다.
이제부터는 힘과 힘의 싸움.
적 대장을 끌어냈고, 반대로 적이 움직일  있는 모든 길목을 차단하여 길을 열었다.

가로막을 적은 아무도 없다.
적이 움직일 수 있는 진로는 전부 차단한 지 오래. 그 결과 슬슬 해가 떨어질 때까지 탐색전과 교전을 반복했지만, 그 효과는 분명하게 드러났다.

사마의는 직접 군을 이끌고 진격했다.
곧 유비의 목이 바로 코앞에 놓인 것. 이것만 끝나면 적을 와해시킬 수 있었고, 그렇게 그리워 기다리던 그와 조우할 수 있었다.
그렇게 진격을 반복하여 장료가 진로를 뚫은 곳으로 병력을 투입했고, 머지않아 저 멀리 유비가 이끌며 분투하는 중앙의 군단과 조우할 수 있었다.

이걸로 끝.
사마의가 그렇게 흑우선으로 적을 가리키려던 바로 그때.

“밀어내라! 이곳은 죽어도 사수한다!!”

몹시나 그리워하던 목소리가 바로 코앞에서 들려왔다.


* * *


나는 예전부터 배워먹기를 칼질밖에 배우지 못했다.
머리를 쓰는 일이라고는 봉급으로 받은 것을 계산할 때나 간간이 쓰던 것이지, 이런 전장에서 실질적으로 머리를 굴릴 일이 얼마나 있었겠나.
그렇기에  사태를 제대로 파악할 길은 없었다.

하지만 전장에서부터 느껴지는 분위기는 읽을 줄 알았다.

“장료 저놈, 작정했네.”
“우익 방면으로는 완전히 뚫렸어.”

수평선을 그리던 대치 구도에  파문이 일었다.
내가 이끄는 군을 포함해 우측 방면에 있던 군은 방진을 짜고 밀집대형을 갖춘탓에 섣부르게 군 내부로 진입할 수 없었고, 돌아서 진격하자니 적이 모든 진로를 차단한 상황.
선택할 길이 많지는 않았다.

“이대로면 중앙까지 뚫린다.”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해?”

그녀의 질문은 무언가 다른 의미도 함축한 것 같았지만, 그런 것을 고민하기에는 사태가 너무 긴급하게 흘러가고 있었다.
우선은 이 전장에 전력을 다한다.

“여포, 출격이다.”

이대로면 유비가 있는 지휘부까지 한순간에 뚫릴 우려가 있다. 그렇게 된다면 설사 병력을 온존한다고 해도 아군의 패배.
조조군은 마치 끈끈하게 이어져 칼로 베어도 끊어지지 않는 줄로 연결된 느낌이었다. 이런 꺼림칙한 느낌을 주는 군과는 원래 상대조차 하지 말아야 한다고 배웠는데.
그래도 어쩔 수 있나.

“내부로 진입하려고 해도 아군에 가로막혀.”

이것이밀집대형의 한계였다.
물론 서로 어깨를 나란히 하고 지키기에는 안성맞춤이었지만, 정작 그것을 가로질러 진군하자니 아군에 길이 막혀 옴짝달싹도 할 수 없는 상황.
전장의 흐름은 이미 적에게 넘어갔고, 문득 고개를 드니 슬슬 해가 지평선에 걸려 다홍색의 노을이 하늘을 물들인 것이 보였다.

“아군 전력은 이제부터 지휘계통에서벗어나 아군 전열에 합류시킨다. 이후 명령은 못 내리겠지만, 어차피 그곳 또한 난전이니 어떻게든 합류할  있을 거야.”

 가량의 부대를 전부 움직일 방법은 없다.
그렇다면 군살을 덜어내고 움직이는 것이 최선. 곧 날이 저물면 싫어도 이번 전투는 마무리될 것이고, 아군은 그때까지만 적 기병을 막아 세우고 유비를 사수하면 그만이다.
뒷일은 나중에 생각한다.

“우리는  남짓의 병력만을 간추려 중앙으로 간다.”

백이라면 어떻게든 아군을 비집고 나아갈  있다.
정한 이상 행동은 신속하게.
그렇게 아군 전력의 태반을 전열에 합류시켜버리고 나와 여포는  가량의 병력만을 이끌고 아군 틈바구니로 비집고 들어가며 유비에게 다가갔다.

그렇게 중앙으로 접근하면 접근할수록 격전이 다가오는 것을 느꼈고, 그 자리에 도착했을 때는 유비가 직접 진두지휘하며 적 기병을 필사적으로 억누르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상황은 일촉즉발.
저번에 마주했던 장료라는 남성이 유비 바로 앞까지 다가섰고, 이에 그녀 또한 쌍검을 들고 어떻게든 분전하는 듯했으나 애당초 그와 그녀로는 무력에서 격이 달랐다.

“원망은 하지 마시오.”
“……이렇게…, 쉽게 죽어줄 것 같나요…?”

지면을 박차 내달린다.
여포 또한 뒤따라 달리기 시작했고, 저 앞에 보이는 장료와 유비의 분전이 점차 기울기 시작할 때쯤에는 겨우 그 근방으로 도착할 수 있었다.

“호세, 씨?”
“어떻게  늦었네.”

그러는 사이 여포는 장료와 대치하여 그를 가로막았다.

“……누님, 이런 자리에서 또 보네.”
“나도  지긋지긋한 면상은 이제 보기 싫었어.”
“아니, 왜 그렇게 야박하게 구시나?”

그들은 잠시 눈을 마주하며 서로의 무기를 들어 겨눈다.
이번에는 장료라는 남자도 쉽게 물러날 생각이 없어 보였고, 여포 또한 그를 마주함에 있어 분위기가 사뭇 진지했다.

“여포, 부탁한다.”

생각할 시간은 없다.
여포가 장료를 막아주는 사이, 나는 막 데리고 합류한 병력을 이끌고 저지선에 합류해 조조군의 병력을 몰아내야만 했다.

“주인이가 말하는 건 뭐든 들어줄게.”
“하여간. 진짜 조강지처 따로 없다니까.”

이죽거리는 장료와 대치하는 여포.
잠시 고개를 숙여 감사의 표시와 안녕을 빌어주고는 유비에게 손을 내밀어 그녀를 부축하고는 전열로 고개를 돌렸다.

“밀어내라! 이곳은 죽어도 사수한다!!”

여기서 밀리면 아군의 패배.
이제부터는 시간을 벌어 지켜내는 전장이었다.

해가 저물기까지 적을 막아낼 수 있다면 아군의 승리.
물론 그들이 해가 떨어지고서도 야전으로 이끌고  가능성이 없지는 않았지만, 그간 적의 움직임으로 보아 피아의 식별도 곤란해져 피해가 축적될 전장으로 이어갈  같지는 않았다.
그렇게 손에 청강을 들어 아군의 옆에 섰을까.

“드디어. 정말로, 드디어 만났어요.”

저 맞은편.
조조군 사이로 보라색 머리카락을 가진 여인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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