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6화 〉08. 서주 공방전 (8) (36/40)



〈 36화 〉08. 서주 공방전 (8)

날이 밝고 조조군과 유비군은 재차 대치했다.
사마의가 진두지휘하는 조조군은 사백에서 오백 남짓한 단위로 나누어  가량의 부대를 산개 배치한 형태.
그에맞서는 유비군의 포진은 다소 독특한 것이었는데, 군영 자체는 방진에 가까우나 그 배치에서 중구난방으로 병력이 잘게 쪼개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이가 없네.”

사마의는 비교적 높은 곳으로 올라 그 배치를 확인하고는살짝 코웃음을 쳤다.
조조군은 상대보다 우위에 있는 조직력과 기동력을 바탕으로 아예 교차하듯 상대를 두드려 혼을 빼놓을 작정으로 나섰다.
이에 맞서는 유비군의 배치는 말 그대로 혼잡했다.

“저건 또 무슨.”

장료 또한 그녀의 옆에서 그 배치를 확인하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의 누이 격인 여포가 주둔한 군이기에 다소 흥미가 있었지만, 지금 저 형태는 무엇인가. 마치 대열이라는 것을 확인할  없을 정도로 뒤섞인 듯한 느낌마저 들었다.

“저건 기병으로 한 번 휘저으면 바로 무너지는 거 아니요?”
“아뇨. 그건 아닐 거에요.”

사마의는 이번 전장에서 적을 완전무결하게 꺾어버릴 생각이었지만, 그렇다고 하여 상대를 경시할 생각은없었다.
유비라면 전장에 이골이 난 장수.
그런 그녀가 이런 전장에 말도 되는 전술을 들고 나설 것으로 보이지 않았고, 실제로 잘 관찰하면 그 내부에서 모종의 질서를 찾을 수 있었다.

“저건 아마 휘둘리지 않으려고 한 거겠죠.”
“내가 보기엔  꾀에 제가 넘어간 꼬락서니인데.”
“아마 부대의 규모를 천 단위로 잡고, 그 내부에서의 흔들림만 없으면 된다는 식으로 배치한 것 같아요. 보기에는 대열이 모호하지만,  보면 다섯 정도로 뭉쳐서 그 중심이 잡힌 듯 보이니까요.”

조직력으로는 어차피 아군을 이길 수 없다.
그렇다면 아예 큼지막한 병력 단위로 즉각 대응할 수 있는 최대한의 병력을 잡아 아군의 조직력을 그 물량으로 깨부술 생각인가.
단순하다면 단순하지만, 아군의 조직력을 기반으로 한 기동전에 농락당한 직후 내린 판단으로는 과감한 결단이었노라고 판단할  있었다.

군이라는 것은 하루아침 사이로 조련되는 것이 아니다.
그 조직력과 결속력을 완성하려면 짧게는 반년 이상에서 길게는 수년 가까이 시간을축적하고 경험을 쌓아야 비로소 완성되는 것.
같은 방식으로는 이길  없으니 물량으로 대처하겠다는 뜻이 명백하다.

“저러면 분명 각 소규모부대 간의 결집력이나 대열은 다소 흐트러지겠지만, 적어도 아군의 움직임에 따라올 수는 있겠죠.”
“그러면 아군은 어떻게 할 생각이요?”
“전략에변경은 없습니다.”

나름 머리를  것이 보인다.
구태여 단위로 묶은 것도 아마 아군의 공세에 버티고, 여차할 때 역공에 나서 적어도 피해를 줄 수 있는 최소한의 단위를 계산하여 배치한 게 아닐까.
 정도의 부대가 일제히 돌격한다면 분명아군 사이의 연계를 잠시나마 끊을 수는 있었다. 어차피 조직력으로 아군을 이길 수 없다면 저런 판단이 사마의가 보기에도 가장 최선으로 보이기는 했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임시방편.

“저희가 왜 중원을 지배했는지, 조조군의 군단이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라는  서주 촌뜨기들한테 보여줘야죠?”
“누이나 형씨는 어떻게 할 생각이고.”

저번 전투에서의 양상을 생각하면 분명 저 다섯 부대 중 한 곳에 전호와 여포가 주둔했을 것은 명백했다.
왜 그들이 그곳에 있는지는 알 수 없다.
사마의는 미간을 찌푸리며 이를  깨물었다.

“……전략의 수정은 없어요.”
“괜찮겠나?”
“아저씨나 여포가 이런 전장에서 죽을 리 없어요. 일단 아저씨의 위치가 파악되는 대로 보고는 받겠지만, 기존 전략은 이대로 가죠.”

만약 그들이 있는 부대로 공세를 약하게 건다면 유비 측에서도 눈치채지 못할 리가 없었다. 그것은 곧 아군의 약점을 노출하는 것과 다름없는 일.
이번 전장에서의 전략은 단 한 차례의 끊김 없이 상대를 두드리고 또 두드리는 것을 전제로 한 기동전이었다.
아군끼리도 자주 교대를 이루고 대치와 퇴각, 진격을 반복해야 하는 섬세한 작전에서 한 방면으로 아예 공세를 이어가지 않는다면 전제 자체가 틀어지게 된다.

“뭐, 우리 누이가 붙어있으면 형씨도 무사하겠지. 차후 지휘부를 파악하게 된다면 보고를 올리도록 했으니  부분은 걱정하지 말고.”
“전선은 하후돈 장군께서 지휘하는 게 아닌가요?”
“그 양반도 형씨가 죽지 않기를 바라고 있으니까. 어찌나 호들갑을 떨던지. 반드시 살려 자초지종을 파악하고, 그대로 허도로 이송할 생각이라던데.”

하후돈에게도 그는 제법 중요한 인사였다.
적어도  군주이자 사촌, 그러면서도 과거부터 동생처럼 여겼던 조조의 중요한 사람이자 그녀의 제동장치 역할을 해왔던 전호를 이런 전장에서 죽일 수 없던 것.
그런 장료의 대답에 사마의가 겨우 안심하여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슬슬 신호를 보내죠.”

전쟁의 시작이다.
사랑하는 이가 적으로 돌아선 전장. 그 연유를 알지 못하는 사마의의 입장에서는 미쳐버릴 지경이었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당장에라도 뛰쳐나가 그와 만나고 싶었지만, 이곳은 전장이었다. 해야  일은 명백하고, 그가 어떤 이유에서 유비의 손을 들었건  전장이 끝나면 그와 만날 수 있었다.

“전열 삼군을 앞으로. 장료 장군께는 지금부터 기병의 전권을 드릴게요. 신호가 오면 즉시 움직여주세요.”
“물론이지.”

장료는 고개 끄덕이며 말에 올라 자리를 떠났고, 그녀의 말에 나팔수는 나팔을 불어 전장에 울리게 하였고 북은 연신 두들겨지며 진격의 신호를 알렸다.
올라가는 깃발과 움직이는 병력.
이곳은 사마의 본인이 오롯이 지배하는 전장이었다.

이에 유비군에서도 응수에 나섰다.
제갈량은 유비를 바라보며 흰 깃털로 장식한 부채를 꺼내 가리키며 전방으로 다가오는 적의 삼군을 가리켰고, 고개를 살짝 돌려유비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전열의 부대, 총원 앞으로.”
“그러면 측면으로의 간격이 벌어지지 않니?”
“괜찮을 것.”

소녀가 보기에 이 전장은 단순히 힘과 힘으로 겨루는 전장이 아니었다.
상대는 철저하게 아군을 조금씩 물어뜯을 계획으로 병력을 짜고 나왔고, 열 갈래로 나뉜 부대는 조직적으로 아군에 달려들 것이 뻔했다.
이런 전장은 한 번의 판단이 승패를 좌우한다.

“아군은 크게 뭉치듯 다섯 부대로 나눔. 전열과 측면의 틈이 빈다고 해서 측면의 부대는 놀지 않을 거고, 적이  틈을 찌르고자 한다면 그대로 짓누를 뿐.”

어떤 의미에서는 상대를 살살 꼬드기는 형국이었다.
만약 적이  빈틈을 노리고 병력을 투입한다면 충분히 그 틈새를 벌려줄 용의가 있었다. 그렇게 그 일말의 틈을 노려 병력을 계속 투입한다면, 이쪽은 큰 군체로 나서 그것을 압살한다.

“적은 조직적. 그러면 아군은 물량으로 대처.”

유비는 잠시 고민했지만, 확실히 적은 소수를 조직적으로 움직이고 있었기에 대처할 방안이 마땅치 않기도 했다.
오히려 큼직한 단위로 몰려 움직이는 게 나을  있다.

“전열, 전원 전진시킵니다.”

유비의 명령이 내려진 직후 유비군의 전열을 담당하는 천 가량의 부대는 적에 맞서 진군하기 시작했고, 이에 조조군은 전열로 전진시킨 군을뒤로 물렸다.
그리고는 양 날개를 담당하던 군이 좌우로 하여 전진하기 시작한다.

“아군은 진격을 멈추고 회군.”
“그러면 대열이 흐트러지지 않을까?”
“그 정도 시간은 벌 수 있음.”

적의 움직임은 천천히 아군의 결집을 깨뜨리려 하고 있었다.
그런 것에 구태여 놀아날 필요도 없었고, 지금 중요한 것은 천천히 대치하며 탐색전을 벌여 그 과정에서의 빈틈을 찾는 것.

제갈량은 멍한 시선으로 전장을 주시했다.

조조군은 꾸준히 병력 간의 교대를 이뤄내며 아군의 혼잡을 유도하고 있었다. 무엇이 주공이고 어디가 허수인지 전부 꿰뚫어 볼 수는 없었지만, 적의 유도에 넘어갈 이유도 없는 것.
그렇게  번인가 탐색전이 이뤄졌고, 제갈량은 묵묵히 대응하며 자리를 지키는 것을 우선하여 군을 움직였다.

이에 먼저 혀를 찬 것은 사마의.

“쯧, 이것도 안 넘어와?”

일부러 빈틈을 한 번 드러냈다.
아군이 교차하며 교집합이 되는 지점.
그곳을 찌른다면 분명 아군 간의 병력 이동에 차질을 빚을 수 있을 곳이었는데, 적은 아무 대응도 하지않으며 그저 대치를 유지한다.

분명 마음이 급할 건 서주군이었다.
서주성 방면으로 향하는 길이 뚫렸고, 팽성과 하비 일대로는 조조군의 공세에 계속 시달리며 이미 팽성 일대는 함락 직전이라는 보고도 받은 상황.
그런데도 적은 침착하게 움직일 뿐이다.

“대응도 침착하고 병력의 움직임도 간결해.”

사마의는 짧게 적의 움직임을 평가하며 코를 쓰다듬었다.
적은 딸려 나올 생각 없이 자리를 지켰다. 그건 아마 적의 혼란을 노리는 아군의 움직임에 맞춰 어지간한 수가 아니면 직접적인 공세는 없을 거라는 판단에서 비롯된 것일 터.
노림수는 읽었지만, 거기에  수를 더한다면 어떨까.

“탐색전은 이제 끝.”

적의 움직임은 대략 파악했다.
첫 번째 교전과 달리 제법 잘 움직이는 게 보였지만, 기본적으로 출신이 다른 청주 방면의 군과 서주군의 융화를 단시간에 이룰 리도 없는 법.
탐색하며적의 다섯 부대를 전부 움직이게 하는 데는 시간이 걸렸지만,  사이 각 부대의 반응속도와 움직임은 전부 해석이 끝났다.

“좌익의 군을 전부 투입하세요. 중앙 전열의 군은 천천히 적을 압박하는 형세로 압박하고, 우군은 적 후방을 향해 진군합니다.”

한 손으로  손을 따라올 수는 없는 법.
그녀가 파악한 바로 적의 부대 중 우군 후방을 맡은 부대의 움직임이 다른 부대에 비교해도 다소 떨어지는 것을 파악했다.
서주와 청주의 병력이 섞인 모양인지 대응하는 과정에서 같은 부대임에도 움직임에 혼선을 빚는느낌이 강했다.

좌군을 움직여 공격을 퍼부으며, 반대편으로는 적 우군의 후위를 노린다.

 움직임에 서주군도 대응을 시작했는데, 제갈량은 좌군의 병력은 그대로 두고 전방 우익을 담당하던 군을 후방의 군과 연계하도록 지시했다.
소녀에게 있어 그 후방의 병력은 언제나 마음에 걸리던 것.
실제로 몇  움직인 것만으로 상대는 그 부분에서의 약점을 꿰뚫고는 은근히 그쪽을 노리는 듯한 움직임을 취했다.

그렇게 병력이 교차하여 움직이던 중, 갑자기 조조군 중앙 전열의 부대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곳을 담당하던 것은 하후돈이었는데, 그가 전선에 직접 나서면서까지 대대적인공습을 가하기 시작했으니 그 또한 무시할 수 없었다.

“……후방 좌익 방면의 군은 그대로 좌익을 보좌.”

제갈량은 그것을 바라보며 아랫입술을 꽉 깨물었다.
확실히 부대 사이에서의 전투력에서도 차이를 보인다. 특히 하후돈이 직접 진두지휘를 시작했다면 방면의 군은 결코 얕볼 없는 상대.
아군 전열을 담당한 것은 장패로, 청주에서 입었던 부상을 어느 정도 털어내고 지휘봉을 쥐었다지만 아직 몸 상태가 온전히 회복한 게 아니었다.

“중앙은 이대로 버텨주길 바람.”

유비는 그 의견에 반박하지 않았다.
이번 전장에서 그녀는 제갈량의 전세를 읽는 시야를 높게 샀고, 그녀에게 병력 움직이는 과정에서의 참군으로 임명했기에 순순히  의견에 따랐다.
그러는 사이로도 계속 번갈아 교차하며 조조군은 부대를 교차하듯 움직이며 서주군을 두드렸다.

좌군을 공격하던 군  절반 가까이가 중앙으로 합류하는가 하면, 후방으로 돌아들어 가려던 군이 다시 회군하여 우익 방면으로 자리를 지킨다.
유비군의 대처가 실행됨과 동시에 즉각적인 반응으로 이어지는 군의 움직임.
그것은 분명현 유비군이 가지지 못한 조직력과 기동력이었다.

그렇게 장시간에 걸친 교전이 이어졌다.
사마의는 그 전방을 바라보며 입가에 미소를 드리운다.

“반응은민첩하고 판단도 빨라. 움직이는 과정에서 일련의 군더더기를 전부 배제하고 움직이려고 노력하는 것 같기는 한데….”

그녀는 흑우선을 한 번 휘젓고는 이를 드러냈다.

“경험이 일천해.”

현 전쟁의 양상은 조조군이 중앙을 크게 두드리며 좌군과 대체, 우군은 재차 적의 후방으로 돌아들어 가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다.
거기서 유비군은 미흡했던 후방을 측면 병력으로 보충하려는 듯한 움직임을 보였는데, 사마의라면 저런 선택을 하지 않았다.

“우익 군은 예정된 대로 그대로 적 후방을 크게 돌아 좌군과 합류합니다.”

적은 크게 다섯 뭉치로 하여 똘똘 뭉친 상태.
그리하여 다섯 갈래로 아군의 움직임에 대처하는 형세였는데, 그 과정에서  진영을 크게 돌아 한 부대로의 강공을 퍼부었을  과연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적은 본인들의 병력을 최대한 살려가며 움직이려는 것이 눈에 보였지만, 사마의 본인이었다면 아마 부대로서 모자란 후방의 군을 미끼로 삼아 적에게 던져주고 그 빈틈을 노렸을 것.
전쟁이란 애당초 희생을 전제로 깔고 가는 곳이다.
그런 곳에서 인명이 아까워 어떻게든 모자란 병사를 끌어안고 가려는 선택은 그다지 좋은 판단이 아니었다.

“이대로 짓뭉개면 어떻게 나올까.”

적의 병력은 크게 뭉쳐 움직이는 것으로 아군의 움직임에 대처하고자 했지만, 결정적으로 그들과 아군 사이에는 기동력에서부터 차이를 보였다.
사마의는 전장을 바라보며 살포시 웃었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아저씨, 내가 금방 갈게요.”

조금만 기다려요.

이윽고 그녀는 입이 찢어지라 웃으며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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