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5화 〉08. 서주 공방전 (7) (35/40)



〈 35화 〉08. 서주 공방전 (7)

회담이 결렬되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애당초 이미 서주 전역으로 침공을 개시한 조조군이 회담을 열었다는 소식에 조금 의아한 부분도 있었는데, 그것은 아무래도 이 전장에서의 휴전 관련된 회담은 아니었나 보다.
유비는 회담이 끝난 밤, 홀연 내 숙소로 찾아왔다.

“밤부터 실례한 건 아닐까 싶네요.”
“뭘, 어차피 불청객은 하나 더 있는데.”
“……혹시 나 말하는 거야?”
“농담이니까 그렇게 울상 짓지 마라.”

뭔 말을  하겠네.
솔직히 말해 몇 번이나 다른 막사를 내어준다고 해도 거절하고 여기 붙어있는 시점에서 나한테는 다소 불청객이긴 하거든?
물론 이렇게 말하면  진짜로 내 손목부터 붙잡을 것을 알기에 입을 다물고 우선 유비를 자리 한편으로 안내하고는 나도 맞은편에 앉았다.

“그래서, 이 야심한 밤에 무슨 일이요?”
“조조군과의 일 때문이에요.”

왠지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던 것이 현실로 드러났다.
여포 또한 조조군과의 전투에서 내가 유비군 소속으로 서는 것에 우려를 표했고, 나 또한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와의 맞물림에 솔직히 꺼림칙한 부분을 느끼기도 하였다.
아마  시기에 조조군이 공격해오지 않았더라면 나도 이렇게 싸울 일이 없었겠지. 유비와 짧다면 짧은 연이지만, 적어도 이들이 가장 어려울 때 떠나는 짓을 하고싶지 않아서 남았을 뿐이었다.

“얘기가 길어질  같은데 괜찮으세요?”
“내일부터 전쟁 아닌가. 나는 상관없는데….”
“저는 괜찮아요. 그리고 이건 당신의 앞날, 그리고 저희의 관계에 있어 정리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녀는 제법 단호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평소 유한 표정만 짓고 있어 잊을 때가 있지만, 그녀는 밑바닥에서부터 천천히 기어 올라온 자수성가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그런 사람의 표정이 어떻게 웃는 얼굴 하나뿐이겠나.

“진지한 얘기라면 여포는….”
“아니, 나는 또 왜. 그냥 있으면 안 돼?”
“괜찮아요. 이건 여포 장군께서도 함께 의견을 내주셔야 할 문제라고 생각하니까.”

유비가 빙긋 웃으며 손가락을 비볐다.
최근 알게 된 습관이었는데, 그녀는 망설여지거나 고민되는 일이 있으면 언제나 오른손 엄지와 검지를 비비고는 했다.
물론 그 회담이 평화를 논하는 회담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아마 항복하라는 뜻을 표하거나 별도의 다른 내용으로 진행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정작 누구하나 내게 그 회담의 내용을 말해주는 이가 없었다.

유비는 살포시 미소를 지었다.
평소와는 다른 느낌. 그것에는 조금 망설임이 있었다.

“호세 씨를 만나게 해달라고 하더라고요.”
“나를?”

왠지 그러지 않을까 싶었지만, 그건 너무 자의식과잉이 아닐까 싶어 접어두었던 추측이었다. 솔직히 군과 군 사이에서의 전쟁 도중에 일개 인물을 언급한다는 것은 너무 자의적인 해석이아닌가.
하지만 유비는  추측을 현실이노라고 말했다.

“제 예상보다 당신은 조조군 내에서, 조조 본인까지는 몰라도  주변에서는 제법 사랑받는 사람이었던 것 같네요.”
“이건 좀 당황스럽네.”

조조와 황가의 대립.
그리고 그사이에 황실의 직속 작위인 중랑장으로 부임했다던 나. 그런 것을 고려해보았을 때, 어딘가 마찰이 있지 않을까 생각하였다.
나도 모를 내 의문의 죽음과 기억상실.
그런 것을 하나로 표현할 방법도 없고, 그리하여 어차피 기억도 날아간 거 저쪽과의 연은 없는 것으로 생각하고  생각이었는데.

“그런데  만나서 뭘 하려고 그랬대?”
“그것까지는 모르죠.”

그녀는 제법 깔끔하게 웃으며어깨를 으쓱였다.

“먼저 서주를 침공한 것은 저쪽이에요. 설령 그게 선의건, 그게 아니건 제가 그들이 시키는 대로 해야 할 의리가 있던가요?”
“그건 없지.”

전쟁이란 그런 것이었다.
힘으로 타인의 것을 빼앗는다. 그것에 정의라는 단어가 통용될 리도 없었지만, 인도적인 수단과 대화로 무언가를 해결하는 단계를 넘어선 것이 폭력과 전쟁.
그런 상황에서 유비가 조조군의말에 수긍해야 할 이유가 없었다.

“그래도 신경은 쓰이더라고요. 제가 예상했던 것과 호세 씨가 걱정하던 것. 그런 것과 다르게  내부에서도 당신을 여전히 그리워하는 사람들이 남은  보여서요.”
“그건 당연하지.”

그런 유비의 말에 대꾸한 것은 여포였다.
그녀는 내가 유비군의 인물과만날 때는 언제나 입을 닫고 침묵을 지켰는데, 이번에는 예외적으로 입을 열고 먼저 말을 꺼냈다.

“여전히 주인이를 그리워할 애들이 많아. 대표적으로 사마의 그 꼬맹이가 그렇겠고, 조운  싹수 노란 계집애라던가 진소연 그 아가씨도 마찬가지겠지. ……그리고 아마, 잘은 몰라도 조조 본인도 그러지 않을까.”

마지막은  의문형이냐.
그러나 평소 여포는 내가 물어보지 않으면 말을 꺼내지 않았기에 몰랐던 내용이다. 정확히는 현재에 충실하여 살고 싶다고 했던 시점부터 그녀는 과거와 관련된 얘기를 꺼내지 않게 되었다.

여포 개인은 내 의견을 존중하겠다고 했다.
어떻게 살고 싶으냐고. 물었고, 그 삶을 존중하겠다고도 했다. 단지 그 옆자리를, 하다못해 뒤라도 비워달라고 말했던 것이 그녀였다.
그녀는 여전히 내가 어디론가 떠날 것을 우려하고 걱정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면 구태여 과거의 인연에 대해 입을 열지 않은 것도 그 일환이 아닐까.

한편 유비는 여포의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사실 회담 자리에서 그것만을 요구해왔을 때는 조금 놀랐거든요. 그래서 조금 망설이기는 했지만, 숨기는 건 도리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말하는 거요? 혹시라도 내가 탈주하면 어쩌려고.”
“그때는 어쩔 수 없는 거죠, 뭐.”

하여간 저 요망하게 웃는 건 어떻게 해야 한다.
표정에는 어딘가 모를 확신이 있었다. 적어도 내가 이 내용을 꺼낸다고 하여 금새 도망치거나 배신하지는 않을 거라는 확신.
정말 슬프게도 그것은 분명 사실이었다.

“그럴 생각은 없으니까 안심하고.”
“물론 선택지는 호세 씨에게 있어요. 제 개인으로는 저를 조금 더 도와주셨으면 좋겠지만, 저는 당신의 선택을 존중할  있어요.”

우습게도 기억을 잃고 만난 이들중 누구 하나 내게 강압적으로 나서는 이가 없었다. 유비는물론이고, 제갈량 그 꼬마 또한 초면부터 내 의사를 물어보았다.
거기에 잃어버린 과거였을 여포 또한.
자율성을 부여한다는 것은 좋지만, 정작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해 이것이 옳은 선택인지 고민하기를 반복하는 건 내 몫이 되어버렸다.

“자꾸 고민되게 선택하라는 말 좀 그만하면 안 되나? 그냥 따라오라고 할 수도 있는 거고, 군법으로 처벌할 수도 있는 거잖아.”
“정식으로 군문에 드시지도 않은 분을 어찌 억제할까요. 지금 신분을 잊으신 것 같은데, 호세 씨는 아직 객장이거든요? 제가 언제든 해고할 수 있는 상황이라는 걸 잊으면 곤란해요.”

배시시 웃으며 말하는 유비.
짓궂게 말하고는 있지만, 결국 선택지를 내게 유보하겠다는 것이니 그녀의 말에서 배려를 느낄  있었다.

“아직은 안 떠나. 아무것도 기억 안 나는데 과거가 다 무슨 소용이야. 게다가 은인이 가장 힘들 때 훌쩍 도망치는 짓도 찜찜하기만 할 뿐이고.”
“괜찮으시겠어요?”

그 질문에는 여러 의미가 내포된 것처럼 느껴졌다.
설령 내가 잊었다고 해도 과거의 연이 있다. 분명 친밀하게 지냈을 이들과 적대하게 되는 꼴인데, 그것이 괜찮냐는. 혹은 전쟁 자체에 계속 가담하는 게 괜찮겠냐는 질문으로도 해석할  있었다.

솔직히 잘은 모르겠다.
나는 전쟁이라면 질색이었다. 물론 살기 위해서라면 무기를 들 수밖에 없음을 알고 있었고, 또한 내가 결국 잘하는 일이라고는 같은 인간을 베는 인간 백정 짓이라는 것도 이해하고 있었다.
어려서부터 배워먹은 게 칼질밖에 없는 남자.
그것을 전부 이해하고 있었지만, 그래도 전쟁이라면 이제 질색이었다. 적어도 수많은 사람이 죽어 나가는 곳을 배경으로 내 목숨을 내놓고 누군가와 칼부림을 하는 것은 사양하고 싶었다.

그러니 지금이라도 훌쩍 떠나는 것이 옳을 수도 있다.
이제부터 하려는 일은 과거와 대치하는 찜찜한 일이며, 질색하는 전장을 누비는 일이된다. 어쩌면 가장 기피했을 일이 동시에 벌어지는 셈.

하지만 도망치고 싶지도 않았다.

“백성을 위하고자 한다며. 그러면 조금 욕심을 부려서라도 기를 써봐. 한 인간에 구애되어 구태여 전력을 깎기보다는 있는 힘, 없는 힘까지 다 끌어다가 써야  때가 아닌가?”

자화자찬하고 싶지는 않다만, 나 정도면 훌륭한 전력이었다.
장비와 제갈근을 후방 조조군을 상대로 돌린 상황에서 현 서주군에 지휘관으로 전장을 통솔할  있는 장수는 그리 많지 않았다.

게다가 내가 있는 곳에는 여포도 함께한다.
이게 얼마나 큰 전력인지는 그녀 본인이 더  알 것인데, 그런데도 이리 홀가분하게 선택지를 유보한다는 것을 이해할  없었다.

“……그러네요.”
“아무것도 모르는  엄동설한에 서주 한복판을 떠돌던 것을 거둬준 건 당신이야. 그 부분에서 당신을 은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는데, 그 은인이 가장 힘들  도망치는 비겁한 놈이 되고 싶지 않을 뿐이고.”

유비는 내 말에 잠시 눈을 감았다.
그 표정은 안도일까? 잘 모르겠다. 언제 생각해도 그녀의 표정은  애매하기 짝이 없어  본심을 알아내기 어려운 면이 있었다.
그러거나 저러거나 내  말을 잇는다.

“난 내가 때다 싶으면 훌쩍 떠날 거니까  부분은 걱정하지 마.”
“그게 걱정  해도 되는 건가요?”
“적어도 댁들이 근심 걱정  덜었다 싶을 때쯤에는 나도 내 살길 찾아 떠나야지. 언제까지 전장을 전전하는   성미에 안 맞거든?”
“예전 호세 씨의 느낌이랑은  딴판이네요.”

그건 내가 알 일이 아니지.
만약 과거 기억 잃기 전 내가 전장에 서는 걸 선호하는 것처럼 보였다면, 그건 그때의 내가 다소 어떻게 된 것이 아니겠는가.
전쟁 따위 뭐가 좋다고 구태여 찾아 들어가나.

그렇게 몇 마디를 더 주고받았다.
내일부터 다시 열릴 전쟁에 관련된 일.
제갈량은 아무래도 전장전체를 바라보며 유비와 함께 지휘부에 속하게 될 관계로 지금의 부대를 나와 여포가 맡아줄  있겠느냐는 질문에는 바로 수긍했다.

점점 시간은 야심한 밤으로 다가간다.
모든 얘기를 정리하고 유비가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나는 그녀의 뒷모습을 보며 하지 않으려 했던 말을 기어이 꺼냈다.

“왜 나한테 잘해주는 거요?”

저번에도 했을 질문.
그러나 이번에는 의미가 다소 달랐다.

“구태여 이럴 필요가 없잖아. 조조군과의 회담이 어떤 방향으로 진행했건, 내게 입만 다문다면 된  아냐? 아니면 내게 선택지를 떠넘기지 않고 그냥 부려 먹었어도 된 거잖아.”

물론 인간적으로는 그녀의 배려가 감사한 면도 있었지만, 그와 별개로 군주 된 유비의 처지에 전쟁까지 벌어진 상황에서 그 판단은 이해할  없는 면이 있었다.
 질문에 유비는 살포시 웃으며 등을 돌려 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그거 아세요? 저는 사람 보는 눈이나 감이 예민해요.”
“그래서?”
“호세 씨는 진심으로 대해야만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요. 당신이 앞으로 제 곁에 둥지를 틀던, 아니면 떠나시건. 그 과정과 별개로 이 사람은 진심으로 대해야 마찬가지로 진심을 받을 수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그녀는 한 발짝 내게 다가와서는 손을 뻗었다.

“사람이 원하는 건 여럿 있고, 군주  이는 자고로 그 욕망을 충족시켜주며 그들의 충성을 얻는 법이죠.”

손가락이 하나,  어깨에 닿았다.

“그리고 당신이 바라여 군주에게 요구하는 것은 여럿 있겠지만, 대표적으로는 아마 진심이 아닐까 생각했어요.”

구태여 답하지는 않았다.
욕망이라. 나 자신도 잘 모르겠는 것을 언급하며 그녀는 웃었다.  손가락이 닿은 어깨가 마치 화상이라도 입을 것처럼 뜨겁게 달아오른다.

“그거 아세요? 저, 비교적 진심으로 욕심내고 있어요.”
“내가 그렇게 대단한 인물이었나?”
“음…. 사실 실력으로 보면 운장이나 익덕이 더 대단하기는 한데요.”

나도 얼추 느끼고는 있었지만, 그것을 상대 앞에서 바로 말하면 조금 주눅이 들지 않겠나. 그와 별개로 그 둘이 말도 안 되는 이들이라는 것은 알고 있다마는.
그녀는 빙긋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제가 당신에게 매력을 느낀  다른 부분이거든요.”
“그게 뭔데?”
“그건  안 해요.”

어이가 없네.
유비는 짓궂게 웃으며 자리를 떠났다.
그저 착한 사람으로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저런 식으로 사람을 뒤흔드는 면도 있다는 걸 새삼 깨닫고는 나 또한 자리에 몸을 뉘었다.

“주인아, 진짜 괜찮은  맞아?”
“그야 모르지. 기억이 돌아오면 조조군과 맞선 걸 후회할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이게 옳은 선택이라고 받아들였을 따름이고.”

후회하고 싶지 않다.
그렇기에 지금은 이런 선택을 했다.

“일단 자자. 밤이 깊다.”

내일이면 재차 전쟁이 벌어진다.
최적의 상태도 덤벼도 만만치 않을 전장에서 졸음 탓에 손이라도 꼬여 죽는다면 지나가던 똥개도 비웃지 않겠나.

조조군과 유비군.
조조와 유비.
아직 완전히 정리되지 않은 상태에서 복잡한 머릿속을 애써 비우고는 억지로나마 잠자리에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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