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화 〉08. 서주 공방전 (6)
장료가 여포와 직접 마주하기 얼마 전.
사마의는 떨리는 손으로 전호를 바라보았다.
눈을 의심했고, 다음으로는 정신을 의심했다. 너무바라여 마지않아 이제는 헛것까지 본 게 아닐까 하는 착각마저 들었을 정도로.
하지만 그것은 뚜렷한 진실이었다.
“아저씨가 왜.”
거기에 있으면 안 되는 거잖아요.
우리가, 내가 여기에 있는데.
그녀는천천히 한 걸음 앞으로 나아갔다.
평생을꿈에서만 그릴 것으로 생각했던사람이 지금 눈앞에 있다. 비슷한 이를 착각한 게 아닐까 자기 자신에게 질문을 던졌지만, 사마의가 그를 착각할 리가 없었다.
그 목소리, 얼굴의 형태와 생김새 하나하나가 전부.
어느 것하나 빼놓지 않고 그와 판박이였다.
“……여기 있어요.”
나는 여기에 있어요.
그렇게 사마의가 한 발짝 더 나아가려던 차.
“참군.”
그녀의 가녀린 어깨를 붙잡는 손.
고개를 돌렸는데, 그곳에서는 장료가 단호한 얼굴로 고개를 가로젓고 있었다.
조금만 더. 그가 바로 눈앞에 있는데 그곳으로 다가갈 수 없다는 생각에 그녀는 눈살을찌푸리고는 대뜸 그 손을 쳐내고자 했다.
하지만 장료도 물러서지 않는다.
“놔요!! 지금, 아저씨가! 저기에, ……있잖아요.”
“그러게. 딱 봐도 형씨네.”
“그러면 나 좀 놔줘요. 지금 가야 해요. 할 말이, 지금 가슴 한쪽에 쌓인 말이 너무 많은데. 물어볼 것이, 나눠야 할 게 너무 많다고요.”
간절한애원에도 그는 고개를 가로저을 뿐.
이에 사마의가 결국 이를꽉 깨물고는 그 손목을 붙잡았다.
“놔요. 참군 명령이니까.”
“못 놓소.”
“이러다가 또, 다시 헤어지면? 어떻게 만난 건데…. 놔요. 난 분명히 말했어요.”
“지금은 전쟁 중이요.”
이미 참군이자 아군의 대열을 조정할 사마의의 부재로 아군 포진은 무너졌다. 이번 한 번의 전투는 아군의 패배로 끝나겠지만, 전쟁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놔요, 제발! 이러다가, 다시… 또 떠나기라도 하면!!”
“전쟁이란 본디 원하는 것을 무력으로 얻고자하는 것 아니었소?”
장료 또한 사마의에게 있어 전호가 어떤 의미인지 알고 있었고, 또한 여포가 저곳에 있었기에 그의 마음도 심란하기는 매한가지였지만, 이것은 국가의 일이었다.
사사로운 감정으로 움직일 수는 없는 일.
그런데도 그 감정을 꺼내고자 한다면 방법은 하나였다.
“이기면 됩니다.”
그는 존대로 말을 바꾸어 그녀의 양어깨를 꽉 붙잡았다.
“전쟁에서 승리하십시오. 형씨와 누님, 둘 다 이유는 몰라도 유비의 손을 들고 있으니 이 전쟁에서 이겨 당당하게 포로로 붙잡으면 되는 거 아닙니까.”
“……제가, 아저씨를요?”
“참군이라면 가능하지 않습니까.”
우선 전선의 대열이 무너진 지금, 여포와 전호가 이끄는 별동대는 빠른 기세로 이곳으로밀려오고 있었다.
지금은 우선 지휘부를 퇴각시킨다.
그다음 제대로 붙어 그들을 사로잡아도 늦지는 않는다.
“그 똑똑한 머리로 뭐하자는 겁니까. 냉정하게 생각하고 분석한다. 그게 참군의 가장 큰 재능 아니었습니까?”
“장료.”
“우선 뒤는 제가 맡을 터이니, 먼저 퇴각하시지요. 전장에서 대화란 불필요. 구태여 그들과 대화하고 싶다면 그 자리를 마련하면 그만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그는 주변 병사들을 시켜 사마의를 뒤로 끌어내라 지시했다.
군법으로 따지자면 완벽한 월권행위였으나 사마의가 그것을 제지하지 않았고, 그들 또한 현 상황이 급박한 것을 알고 있었기에 그녀의 팔을 붙잡아 뒤로 모시려던 때.
“예전보다는 나아졌지 않소. 그래도 살아있다는 건 알았으니까.”
그 말에 그녀는 고개를 떨궜다.
이후 퇴각은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그녀는 전차 위에 올라 후방에서 벌어지는 전투 소리를 들으며 눈을 감았다.
그가 살아있다.
그렇다면 왜 연락하지 않았는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는지. 하면 왜 조조군으로 돌아오는 것이 아닌 유비군에 있었는지.
의문은 잔뜩 있었지만, 우선 죽은 줄로만 알았던 그가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그녀에게는 재차 한 줄기 빛이내리쬐는 느낌이었다.
“살아있어.”
그녀는 중얼거리며 고개를 들었다.
“살아있어, 살아있어, 살아있다고. 아저씨, 아저씨….”
궁금한 것과 그 이상으로 말하고 싶은 것.
쌓인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헤어지고 고작 3년도 안 되는 짧은 기간 동안, 그녀의 안에는 누적된 감정과 애환이 너무나도 커져 버렸다. 그것은 아주 찰나에 불과한 만남만으로도 부풀어 올라 터질 것처럼 그녀를 잠식해갔다.
얼마나그리워했던가.
그동안 밤잠 설쳐가며 얼마나 애타게.
처음에는 그저 호기심이었다.
하늘은 흐린 먹구름 드리웠고, 한이라는 제국은 이미 기능을 상실하여 만천하에 욕심을 드러낸 자들이 궐기하는 대륙.
인간다움이라는 말이 우습지도 않은 농담으로 치부되고, 남의 것을 탐하며 더 높은 자리로 오르겠다는 아귀들이 설쳐 그녀에게는 천하 모든 이들이 그저 걸어 다니는 시체로밖에 보이지 않던 나날.
그는 그녀가 생에 처음으로 본 가장 인간다운 이였다.
반동탁 연합군.
제국을 위하여 일어났다는 이들은 서로의 욕심과 욕망으로 더럽혀져 그저 명분을 사리사욕으로 탐할 따름이었는데, 그곳에 속한 그는 그녀에게 있어선 참으로 기이한 인간으로 보였더랬다.
“아저씨. 그거 알아요?”
그때는 그냥 이 인간이 어떻게 죽는지가 궁금했다.
잠시 거쳐 가는 이정표.
그렇게 생각했던 것이 동경이 되고 선망이 되어, 이윽고 그 가슴 한편에 애틋한 연심으로 자리 잡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와 함께했던 풍경.
거쳐왔던 장소. 나누었던 시간.
자신과는 정반대에 선 사람과 함께하며 느낀 그것이 큰 감정으로 자리 잡아, 그 남자만을 바라보는 자신으로 변모하게 했다.
제 목에 쇠사슬을 걸어서라도 그와 함께하고자 했다.
그것은 분명 그녀를 옥죄는 속박이었다.
천하를 뒤져도 둘 없을 재능.
사마의는 자신의 재능을 익히 알고 있었고,그 재능이 인간미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사마의는 그 재능을 그와 함께하고자 억눌렀다.
아직 어렸을 적 그녀는 그렇게 자유를 잃고 목걸이를 찼다.
누군가는 그것을 자유의 박탈이라고 부르겠지만, 사마의는 그것을 가리켜 사랑이었노라고 회고한다.
“오래 걸렸어요.”
몇 번을 부질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은 이다지도 끔찍한 시간을 보내고 있는데, 주변 그 어디를 둘러보아도 평소와 다를 것 없는 일상이 반복된다는 것이 참을 수 없는 혐오가 피어올랐다.
그 남자는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듯 살아가는 이들에게 증오를 불태웠다.
하지만 그런 상실의 시간도 끝.
살아만 있으면 된다.
물론 왜 자신과 적대하는 위치에 서서 유비를 지원하는지는알 수 없었지만, 우선 그가 살아있다는 사실에 만족한다.
사마의는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당신이 나에게 남겨준 것.
그 모든 것은 아직도 이 안에 축적되어, 그것은 빛 바랄 일 없이 아직도 아름답게 빛나고 있다.
나를 안아주던 당신의 품, 그 안에서 올려다본 하늘.
그 손길 하나까지 전부.
그것은내게 바꿀 수 없는 소중한 보물로 남았다.
“아저씨.”
곧 다시 만날 수 있어요.
* * *
조조군과 유비군 모두가 제법 큰 타격을 입고 한 발짝 물러났다.
전투의 초반부터 크게 휘둘리던 것치고는 유비의 서주군도 선전했지만, 그 과정에서 입은 피해 탓에 완벽한 승전이라고 보기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던 차, 조조군에서 전령이 도착했다.
회담을 열자는 제의.
당장 마주한 조조군이 서주성으로 진격하는 것을 저지해야 했던 유비에겐 시간을 끌 수 있는 좋은 일이었고, 우선 상대의 말을 듣고자 했던 유비가 그것을 승낙했다.
하여 양 군영으로 중간 지점에 열린 회담의 장.
유비 진영에서는 유비와 전예, 제갈량이 함께했고 조조군의 진영에서는 하후돈과 장료, 사마의가 출석한 자리.
사마의는 도착하자마자 고개를 돌려 그의 모습을 찾았다.
“이 시기에 회담을 여셔서는 무슨 말씀을 하고 싶으신 거죠?”
유비의 질문에 우선 하후돈이 고개를 들었다.
“그대 진영에 있어서는 안 될 인물을 목격했다고 들어서 말이요.”
“무슨 말이신지.”
“중랑장.”
그 말에 그녀는 살짝 눈을 감았다.
언젠가는 조조군에게도 알려질거로 생각했지만, 막상 이렇게 들이닥치니 난감한 부분도 없잖아 있었다.
그런 그녀를 보며 하후돈을 대신해 사마의가 입을 열었다.
“무슨 연유인지는 모르지만, 한의 중랑장이신 그분이 그곳에 계신 걸 확인했어요. 얼굴을 뵙고 싶었는데 어째서 대동하지 않으셨는지요?”
“그는 이제 중랑장이 아니니까요.”
“헛소리는 그만 하세요.”
그가 죽었다고 생각하였을 뿐이지, 아직 한의 중랑장이라는 관직에서 그 이름을 제명하지 않았으니 여전히 한의 공식적인 중랑장의 작위는 그의 것이었다.
게다가 이리저리 말을 돌리는 것이 달갑지 않다.
사마의는 살짝 탁자를 두드렸다.
“무슨 연유가 있어 그분이 거기 계신지는 모르겠지만, 저희와 만나게 해주세요.”
“이미 죽었다고 공공연하게 선언하고 장례까치 치른 분을 재차 찾는 이유를 모르겠네요. 호세 씨가 그곳을 떠났다면 그만한 사정이 있는 건 아닌가요?”
“……저기요.”
“아아! 그러고 보니 조공께선 황제 폐하의 직속 신하들을 대거 숙청하셨다고 했죠? 혹시 그 일에 연관이 있어 호세 씨가 그곳을 떠났다면….”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탁자가 거세게 흔들렸다.
사마의는 얼굴에 분노를 숨기려는 척도 하지 않으며 주먹으로 탁자를 내리치고는 그대로 표독스러운 눈초리를 유비에게 향한다.
“헛소리 마. 진짜 그 살가죽을 전부 벗겨버리기 전에.”
“상스러움.”
제갈량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눈을 가늘게 떴다.
“내가 지금 제정신으로 보여?”
그녀는 필사적으로 참고 있었다.
이 회담 자리에 혹시라도 그가 올까 봐 어떻게든 눈물 자국을 지웠고, 평정심을 유지하여 못난 모습을 보이지 않고자 필사적으로 노력했다.
하지만 그 속까지 어떻게 그럴까.
“왜 너희가 그 남자를, ……아저씨를 데리고 있는 건데.”
그런 사마의의 말을 유비 대신 받은 게 제갈량.
소녀는 고개만을 살짝 돌려 사마의의 눈초리와 정면으로 마주했다.
“그건 아저씨 본인의 선택.”
“……아저씨?”
네가 뭔데.
그건 내가 그를 부르는 호칭이었어.
나만 쓰던, 내게는 추억과도 같은 호칭이었고, 그를 그리는 내 나름의 애칭이라고.
사마의는 그 단어에 이를 꽉 깨물었다.
“나는 분명 헛소리하지 말라고 했어.”
“아저씨는 이곳을 선택함. 과거의 일은 모르겠고, 솔직히 우리로서는 알 필요도 없는 것. 그는 분명 우리를 돕겠다고 스스로 선언했음.”
“그러면 그 아저씨를 데려오라고!!”
“사마 참군.”
점점 격앙되는 분위기에 하후돈이 손을 들어 그녀를 만류했고, 이에 사마의는 이를 꽉 깨물고는 주먹을 쥐며 어떻게든 흥분을 가라앉히고자 했다.
탁자로핏물이 한 방울.
그녀의 손바닥은 이미 손톱으로 꽉 짓눌려 상처가 벌어지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손톱과 손가락을 타고 핏물이 조금씩 떨어지기 시작했다.
하후돈은 잠시 자리를 진정시키고는 입을 열었다.
“그는 아군에서도 중요한 인물이요.”
“그래서요?”
그것은 유비에게 있어 딱히 중요한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조조군이 서주로 침공한 상황에서, 그들이 자신에게 이래라저래라 할 수 있는 처지던가.
선공한 것은 조조군.
유비는 그들의 말을 들어줄 이유가 없었다.
오히려 앞으로 생사를 놓고 다투어야 할 이들이 저렇게 말하는 것도 우습기 짝이 없는 일로만 느껴지는 셈.
“저희 군사님의 말마따나, 호세 씨는 스스로 선택했어요. 저는 그에게 언제든 떠나도 좋다고 했고, 그는 제 곁에 남아 군을 이끌어 주었고요.”
“그것은….”
“할 말이 그것뿐이라면 저희는 돌아가겠습니다. 다음 만남은 전장에서. 그때는 서주를 군화로 짓밟은 대가를 치르게 해드릴게요.”
그 말을 끝으로 유비가 먼저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무나도 짧은 회담.
하지만 이미 양자 모두 나눠야 할 얘기를 모두 나누었고, 하여 유비가 일어남에 따라 전예와 제갈량도 자리에서 일어났을 때쯤.
“……후회할 거에요.”
사마의는 자리에 앉아 고개만 치켜들어 그들을 노려봤다.
“할 수 있다면.”
그런사마의와 정면으로 마주한 제갈량.
시선이 마주하며 그 둘은 서로를 인식했다.
“네가 그 군의 참모라고?”
“긍정.”
“……그러면 아저씨를 위험한 곳으로는 보내지 마.”
전장이란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는 곳이었다.
여포가 그의 곁에 있다면 어지간한 일 있지 않고서는 무사할 것으로 보았지만, 그날 허도가 불길에 타들어 가던 밤.
그때 그가 불길에 휩싸이리라고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했다.
세상일이란 한 치 앞도 모르는 법.
사마의의 말에 제갈량은 어깨를 으쓱이며 답을 대신했고, 그녀는 그런 소녀를 잔뜩 노려보며 이를 갈았다.
“그리고 감당할 수 있으면 어디 한번 해보고.”
“미친년 상대는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음.”
제갈량과 사마의.
어린 두 재능은 그렇게 서로 마주하게 되었다.
그렇게 전쟁 속 유일한 대화도 끝났다.
이제는 직접 창칼을 겨누어 자신의 의견을 관철해야 할 때.
조조군은 본인들의 견해를 전했고, 유비 또한 그것에 의견을 내어 대화가 결렬된 이상, 남은 것은 오직 피로 씻어내는 전쟁뿐이다.
유비군과 조조군.
그렇게 양군은 재차 대치하여 서로를 향해 창칼을 겨누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