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2화 〉08. 서주 공방전 (4) (32/40)



〈 32화 〉08. 서주 공방전 (4)

전쟁이 이상하게 흘러간다.
구태여 고지에서 전장 전체를 시야에 담지 않아도 알  있었다. 교전하는 단계에서 그 강도가 강해지는가 하면, 갑자기 적 병력의 압박이 느슨해진다.
그렇게 생각하면 또 강해질 때가 있고, 반대로 다른 쪽에서 지원요청을 보내는 경우도 허다한 상황.

“물러서지 마라, 우선 대열을 유지하라!!”

목소리를 크게 높여 소리쳤지만, 사방에서 지원요청이 번갈아 전해지는 과정에서 이렇다  선택을 내리기 어려웠다.
이미 고개를 돌려보니 아군 전열이 조금씩 대열을 흐트러뜨리며 이리저리 딸려가는 듯한 움직임이 드러났다. 게다가 대열이 무너진 곳으로는 적군의 기병이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는 상황.

분명 공세의 강도가 강약을 조절하고 있음에도 제대로 쉬는 느낌도 들지 않는다. 이건 아마 전선에서 직접 뛰고 있을 병사들이 더욱 절실히 느끼겠지.
마치 적 전열은 살아있는 생물처럼 움직였다.
자연스럽게 대열을 번갈아 바꾸며 교차하듯, 그렇게 발을 멈추지 않으며 휘두른다.
아군이 휘둘리는 만큼 적 또한 대열을 계속 바꾸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는데, 그들은 전투로 이어지고 줄곧  과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아군이 밀리고 있음.”
“그건 안 봐도 안다, 요 꼬맹아.”
“그게 아님.”

소녀는 손을 뻗어 전방을 가리켰다.

“단순히 병력과 병력의 싸움에서 밀리는 것이 아님. 전장 전체가, 아군의 기세 자체가 잘게 썰리고 있음.”
“방법은?”

그런 거라면 이미 나도 절실히 느끼고 있었다.
설마 전면전을 가장하여 이런 방식으로 공략해올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 살면서 이렇게 기이한 전장은   번도 겪어본 적이 없는데, 그 과정에서 아군이 점차 대열을 지키지 못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적의 북이 울릴 때마다 적 병력은 배치를 바꾼다.
그때마다 주공이 바뀌고, 한 번 기세를 빼앗겨 수동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아군은 그것에 계속 딸려 나가게 된다.
생각해보면 처음 기병을 양면으로 배치하며 군을 살짝 딸려오게 한 것도 그 일환일까. 기병의 존재는 아무래도 신경 쓰일 수밖에 없었는데, 덕분에 초전 보병 간의 격돌에서 기세를 빼앗겼다.

“병력의 질이 다름.”
“전투력에서 뒤지는 것 같지는 않다만.”
“조직력. 군대의 강함은 잘 싸우는 것도 있겠지만, 무엇보다 어떻게 신속하고 정확하게 움직이느냐에서 나오는 조직력이 제일로 꼽힘.”

그거라면 적과 비교해 아군이 밀릴 수밖에 없었다.
청주 소속의 군과 연계한 것도 있지만, 그 이전에 조조군은 여러 전장을 거쳐 전장 경험이 풍부한정예라고 들었다.
그에 비해 서주군은 물론 이런저런 전장에도 낀 적이 있고, 관우나 장비 같은 수준급의 장군이 조련하였다고는 해도 기본적인 경험에서 모자란 것.

“방법은 아예 없겠냐?”
“……한 번. 적의 흐름을 끊어내야 함.”

제갈량은 눈을 바쁘게 움직이며 주변을 살폈다.

“저 멀리 깃발에 올라옴에 따라 적 병력이 어떻게 움직이는가는 파악했음. 이제 그 흐름을 한 번. 딱  번만 깰 수 있다면 세밀하게 움직여야 할 적 움직임에 지장을 초래할 수 있음.”
“그걸 벌써 알아냈다고?”

물론 나도 뿔 나팔과 북을 울리며 깃발 움직이는 것을 보기는 했지만, 그 색상이나 종류가 천차만별이라 전부 기억하기도 힘들었다.
소녀는 그게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정도는 누구나 가능. 아마 상대도 어느 정도 대처할 것을 예상했을 것. 그러니까 지금 필요한 것은 대비했을 적의 방비도 깰 압도적인 힘.”

그러면서 시선을 살짝 돌려 여포를 바라본다.
압도적인 힘이라.
그런 소리구만.

“나보고 나서라는 거냐?”

그 질문에 소녀는 작게고개를끄덕였다.

여포는 유비군 소속이 아니다.
구태여 전선에 나설 이유도 없고, 의미도 없다. 그녀가 이곳에 붙어있는 가장 큰 이유는 결국  곁에 남기 위해서였는데, 내가 움직인다면 그녀 또한 전장으로 나설 수밖에 없다.

소녀는 불안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물론 내 입장은 여전히 변하지 않았다.
전장에 나서지 않고 제갈량을 보좌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는 것. 원래라면 제갈량 또한 내게 이런 부탁을 하지는 않았을 터.

“그러면 이길  있냐?”
“그래도 반반.”

그 뜻은 움직이지 않으면 필패라는 소리잖아.

확실히 여포가 가진 힘은 강력했다.
일개 개인이 전장의 승리를 가져올 수는 없지만, 적어도 그 분위기를 한  바꿀 수는 있다.
이렇게 아군이 계속 일사불란한 적의 기동에 당해 무너지기 시작한 지금, 그 분위기를 상쇄하는 것은 더할 나위 없는 기회라는 것을 안다.

“물론 여포가대단하기는 한데, 그래도 여포 하나로 반반이라는 건 너무하지 않냐?”
“여포만이 아님.”

소녀는 손가락으로  가슴팍을 꾹 눌렀다.

“아저씨가 있으니까.”
“나?”
“비록 기억을 잃었어도 병력을 운용하는 것을 몸으로 기억하는 듯함. 여포 단독으로는 이 대치를 깰 수 없지만, 그것을 병력으로 지원하여 단위의 병력이 일제히 돌출한다면 가능함.”

어차피 병력으로는 백중세.
그것을 깰 수 없던 것은 오롯이 그들의 유기적인 움직임과 기동력, 하여 자연스럽게 행할  있는 조직력에서 오는 것이었다.
그렇다면 대열을  번이라도  수 있다면.

“그런데 천이라면 네가 맡은 모든 병력이잖아.”
“나는 이대로 유비에게 갈 생각.”

그 말을 들으니 요 꼬맹이의 생각을 어렴풋이 이해할 수 있었다.
본인은 전장을 조율하며 유비와 함께 병력의 조율을 맡고, 이쪽에 적을 찌를 단 한 번의 쐐기와 같은 역할을 부탁한다는 소리 아닌가.

위험부담은 있다.
하지만 여기까지  이상 못 할 것도 없지만, 문제는 이 과정에서 내 단독으로 승낙할 수 없다는 것도 사실이었다.
 과정에서는 여포의 조력이 꼭 필요했다.

“기다려. 여포한테도  물어보고….”
“뭘 물어봐?”

아니, 시발 깜짝이야.
기척은  내고 다니면 안 될까?

“내가 있을 곳은 주인이가 있을 곳이라고 했잖아.”
“이번에는 직접 선두에 서야 하는 건데.”
“문제없어. 그게 내 평생 직업이기도 했고….”

그 부분에서 여포는 잠시 말을 흐리고는 이쪽을 응시했다.
누가 보아도 할 말이 있는 듯한 표정. 하여 그녀는 천천히 내게 다가오고서는 머리를 맞대고는 귓가에 입술을 가져왔다.

“괜찮겠어?”

그녀는 속삭이듯 내게 말했다.

“유비를 위해 이렇게까지 하는 거야 그렇다고 처도, 정말로 조조군과 적대할 준비가 끝난 거야? 주인이는 기억하지 못하겠지만, 쟤들도 주인이를 소중하게 생각했는데.”

기억이 돌아오면 후회할  있겠지.
하지만 여전히 현실에 집중하기로 다짐했다. 게다가 뭐 아예 그들과 끝장내는 것도 아니고 잠시 조력한 것뿐인데, 그걸로 내 모가지를 치겠다고 덤빈다면야 그 또한 어쩔 없는 일이지.
애초에 지금까지 들은 정보로는 조조군 내에서의 황제 측 인사의 배척 등, 나와 조조군 사이의 정보 또한 모호하게 엇나가는 부분이 있으니까.

“괜찮아.”

그래서 빙긋 웃어주었다.
그녀의 걱정은 익히 알고 있었지만, 당장  자리에서 도망가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나중에 기억이 돌아온다는 가정하에 겪을 후회가 낫다.
애당초 기억이라는 게 돌아올지도 모를 일이고.

“그러면 나는 아무 말 안 할게.”

여포는 내게 한 발짝 물러서며 방천화극을 쥐었다.
그렇게 우리 사이에서 할 얘기는 끝났고, 여전히 우리를 응시하며 그 특유의 멍한 표정으로 기다리던 제갈량에게 다가가 어깨를 두드렸다.

“이쪽은 내가 맡지. 그럼 꼬마야, 너도 잘 해보라고.”
“적군의 지휘부에서 붉은 기와 녹색의 기가 동시에 올라올 때. 그때 앞뒤 생각하지 말고 전방으로 진격하면 됨.”
“알았다, 알았어.”

쓰게 웃으며  회색빛 머리칼을 잔뜩 헝클어버릴 기세로 쓰다듬었는데, 꼬맹이는 아무  없이 내 손길에 맞춰고개를 움직이며 그것을 받아들였다.
그렇게 대화를 끝내고 준비하고자 떠나려던 차.

“……분전 희망. 살아서 보길 바람.”
“당연한 말을.”

이런 곳에서 죽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 * *

사마의는 검은 깃털로 장식한 부채를 저으며 전장을 살폈다.
조금 전까지는 분명 아군의 예상대로.
사실 이렇게 보병, 기병 구분할 것 없이 기동력을 살려 적을 뒤흔드는 판에서 적이 대처하기 요원한 것도 당연했다.

그랬을 적의 움직임이 조금씩 바뀐다.
아군의 움직임에 따라온다? 사마의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그것이 아니라는것을 깨달았다.
수동적으로 움직이기만 해서는 어떻게 해서든 한  뒤처진다. 그것을 따라오기란 요원한 일인데, 적은 예상 이상으로 아군의 움직임을 미리 대처하듯 움직이고 있었다.

이것은 따라오는  아니다.

“이걸 예상한다고?”

다음 수를?
사마의는 어이가 없어 웃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수동적으로 대처하던 것들이 고개 쳐들고는 공격적으로 대응하는가. 도박에 가까운 수였지만, 애당초 아군의 움직임에 따라올 수 없는 상황에서는 효과적일 수 있을까.
하지만 그건 사마의 본인의 수를 전부 읽었을 때 가능한 일이었다.

“움직임을 전환합니다. 홍기를 들고 흑기를 내리세요. 좌군 3번 부대의 돌출과 1번 부대는 정지.”

그렇다면 지금까지의 움직임에서 전환한다.
구태여 상대가 지금까지의 흐름을 읽었다면 그 흐름을 계속 유지할 이유도 없었다. 이미 아군은 지휘부의 지시대로 움직일 수 있는 결속력으로 다져진 군.

사마의의 손짓에 따라 전장이 변한다.
그런데그것을 곧장 유비군이  따라오는 것을 바라보며 사마의가 재차 미간을 와락 찌푸리고는 입가를 흑우선으로 가렸다.

“이것도 따라온다고?”

전까지의 적의 대응을 보아 상상하기 힘든 일이었다.
이것은 사실상 지휘관이 바뀌었다고 보아 무방한 일. 지금까지는 그저 굳세게 견디며 틈을 노리는 듯한 움직임이었다면, 이제는 아군보다 한 걸음 앞서 대응하고자 하는 공격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무엇보다 적 병력이 오백 단위로 뭉쳐 움직이기 시작한  보였다.
지금까지의 적은 그저 하나로 뭉쳐 어떻게든 공세에 집결해 버티겠다는 모습이었는데, 갑자기 오백 단위로 하여 큼직하게 움직이며 대열을 무시하고는 그저 병력을 가져다 붙여 대응하는 방식이었다.
저래서는 오래 버틸  없을 텐데.

“발상은 좋은데, 그 뒤가 어설프네.”

이대로 조금  끌어내면 적은 알아서 대열 자체가 와해한다.
그러면 더는 이런 번거로운 작업을 이어갈 것 없이 장료를 중심으로 하여 적 중단을 그대로 쪼개버릴 수 있었다.
밀집한 보병이라고 해도 대열을 갖추지 못하고 우왕좌왕하는 부대라면 기병의 적수는 못 된다.

그러면 조금  흔들까.
사마의는 번갈아 명령을 내리며 계속 군을 움직였고, 그럴 때마다  병력 또한 계속 움직임을 번갈아 반복하며 오히려 진격해 나서는 등으로 강수로 맞대응을 펼쳤다.

수와 수가 맞물리는 전장.
적 진영에 아직 참모가 남았던가?
그녀는 잠시 고민했지만, 이내 곧 끝날 일이라는 것을 알았기에 계속 병력을 진두지휘하며 군을 움직였다.

점차 적 본대가 와해하는 것이 보였다.
오백 단위로 이리저리 움직이는 게 보였지만, 아군과 달리 이런 훈련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데다가, 무엇보다 청주 소속의 군과 즉석에서 호흡을 맞춰야 했기에 병력끼리 섞여 개판이 된 것이 보였다.

이제 앞으로 한 번.
사마의가 재차 흑우선을 움직이려 했을 때.

“참군,  전열이….”
“말하지 않아도 알아요.”

어이가 없지.
이런 상황에서?

사마의가 이에 대응하려다, 문득 손이 멈췄다.

특이한 머리 장식에 붉은 머리카락.
손에는 다소 특이한 병장인 화극을 쥔 여인이 저 멀리에 있음에도 선명하게 보였다. 한때 같은 집에서 살았던 만큼 사마의가 그녀를 몰라볼 리가 없었다.

천하에 둘도 없는 명장이라 하여 인중여포 마중적토.
그 천하무쌍 여포를선두로 유비군의 돌출이 시작된다.

“왜, 당신이 거기에 있어?”

사마의는 어이가 없어잠시 움직임을 멈췄다.
대체 왜?
전호 사후 모든 것이 부질없다며 훌쩍 떠나지 않았던가. 그랬던 여인이 왜 지금은 유비군으로 돌아서서는 우리에게 창을 겨누는가.

그녀가 이해할 수 없는 현상에 잠시 손을 멈췄을 때.

“전군, 전지이이이이이인!!”

목소리가.
전장의 잡음에 섞여 잘 들리지 않을 것이었지만, 어째서인지 사마의는 그 목소리가 너무 선명하게 귀까지  닿는 것을 느꼈다.
언제나 그리워했던 목소리였다.
혹시나 착각했을까 하여 고개를 돌렸지만, 너무 거리가 멀어  중앙에서부터 움직이는 적장의 모습을 살필 없었다.

하지만  목소리는 분명.

“어깨를 맞대라. 서로 지지하며 걸음을 멈추지 마라!!”

또.
그 목소리가 자꾸만 귓가에 아른거렸다.

“설마, 아니. 하지만….”

여포가 유비군에 있는 이유가 혹시.
그거라면 이해할 수는 있지만, 정작 그 사실 자체가 이해가 가질 않았다. 그는 이미 죽었을 터. 그런데도 이 목소리는 왜 이렇게 낯익게 자신의 귀에 와닿을까.

그러는 사이 조조군의 중단은 여포를 중심으로  유비군의 돌격에 점차 뚫리기 시작하는 게 보였다.
거리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적 지휘관의 모습도 점차 선명하게 드러난다.

잊을  없는 얼굴.
잊어서는 안 되는, 그녀에게 있어 모든 것이었던 이의 모습.

“……아저씨.”

사마의는 흑우선을 바닥에 떨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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