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1화 〉08. 서주 공방전 (3)
북부 일대로 침공해온 조조군과의 전투가 시작됐다.
먼저 움직임을 가져간 건 조조군.
그들은 기병 무리를 움직이며 아군의 좌우를 찢기 시작했는데, 이에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본대가 천천히 전진하여 아군의 행보를 압박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어떡하냐?”
“대기임.”
나와 여포는 제갈량 휘하로 아직 군 지휘가 미숙할 꼬맹이를 대신하여 그 부분에서 보좌함에 중시했는데, 제갈량은 아군이 좌우로 휘둘리고 있는 상황에도 침착하게 전장을 살폈다.
아군 전력에 기병은 확실히 열세였고, 기껏해야 있던 기병도 전부 장비에게딸려 준 상황이라 더더욱 기병 전력을 맞상대하기 부족함이 있었다.
“좌와 우. 각 진영은 유비와 전예의 직속. 어쩌면 따로 상대하는 게 더 상대하기 편할 수 있음.”
확실히 유비의 지배력은 청주군에 뻗지 못했다.
그러기에는 시간이 너무 모자랐고, 결국에는 전예를 통해 명령을 전해야 하는 상황이었던지라 어쩌면 각자 판단하고 생각하는 부분이 더 빠를 수 있을 터.
실제로 유비는 어지간한 상황이라면 전예에게 개별적으로 행동하고 전략을 수행할 수 있는 권한까지 넘겨주었다.
그것이 해로 다가오지 않았으면 좋겠는데.
“유비가 우리에게 내린 명령은 전장의 판도를 읽고, 그 사이에서 빈틈을 메워주는 것. 아직 아군은 움직이지 않아도 됨.”
“적이 압박해오는데?”
“그렇다고 하기에는 공세가 강하지 않음. 정말 아군을 섬멸할 생각이었으면본대를 더 가까이 붙인 시점에서 기병을 운용했을 거고, 아군이 보병끼리 묶인 시점에서 기병으로 난도질했을 것.”
그런 걸까.
살짝 고개를 돌렸는데, 나보다 전쟁 경험이 더 많을 것으로 보이는 여포도 진지한 표정으로 전방을 살피며 입술을 이죽거렸다.
“확실히 뭔가 노리는 게 있는 움직임인데.”
“어떻게 생각해?”
“……난 그냥 직감으로 느낄 뿐이라서.”
그런 육감적인 장수도 더러 있는 법이지.
고개를 끄덕이고는 나 또한 시선을 돌렸다. 적은 확실히 본대를 가까이붙이기도 전부터 기병 전력을 먼저 꺼내 들었다.
그건 마치 아군에게 기병 전력의 움직임에 어떻게 대처할 것이냐고 먼저 던져본 것과도 같았는데, 저래서는 기병의 원래 파괴력을 끌어낼 수 없다.
지휘관으로의 기억이 없는 나라도 아는 상식이었다.
기병이라고 하면 소위 파괴력 넘치고 기동력으로 모든 것 짓밟는 것을 상상하고는 하는데, 그것을 효과적으로 끌어내기 위해서는생각보다 많은 조건이 필요한 법.
적어도 미리 대비하고 있는 보병을 상대로 기병 전술은 돌파력이 많이 깎여나가는 법이었고, 발이 멈추어 기동력을 잃은 기병은 보병의 숫자를 당해낼 수 없다.
그때 조조군 기병대의 움직임이 변했다.
아군 진영 좌우를 잡고 거리를 유지. 천천히 전진과 퇴각을 반복하며 그 진영을 지키고, 반대로 적 본대가 점차 진군을 개시한다.
“이러면…….”
누가 보아도 보병끼리의 전투가 시작되면 기병을 움직이겠다는 속셈이 빤히 보이지 않는가. 실제로 유비와 전예의 본대에서도 각자 마주한 기병을 향해 병력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직 적 본대와 거리가 있으니,그사이에 미리 기병을 뿌리치겠다는 생각이겠지.
“조잡함.”
“그야 그러네.”
질서가 흐트러진 듯한 움직임.
물론 당연하다면 당연한 판단이었지만, 그 일련의 과정에서 당위성이라고는 찾아볼 수도 없다. 구태여 기병을 먼저 꺼낸 이유도, 그 뒤에 보병으로 구성된 본대를 전진시키는 이유도 모르겠다.
마지 지식만 있는 신예 지휘관이 군을 움직이는 것만 같다.
“상대 지휘관이 누구랬지?”
“하후돈.”
떠오르는 게 없는 인물이네.
하지만 얘기를 듣기로 하후 남매라고 하여 조조 휘하에서 오랜 기간을 전장에 나서 전공을 쌓은 이들이라고 들었다.
이게 경험 풍부한 장군이 지휘하는 전장이라고?
“여포. 하후돈이라는 이에 대해 알아?”
“내가 하후돈이라는 양반이랑 자주 접한 건 아니지만, 좀 고지식한 면이 있다고 들었는데. 적어도 이렇게 판을 이상하게 끌고 갈 것 같지는 않아.”
자고로 경험이 많은 이들일수록 정석을 고집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것이 가장 변수를 차단하기 좋으며 효과적이었으니까. 정석이라고 불리는 것들은 괜히 정석이라고 이름 붙여진 것이 아니다.
편법 따위에 의존해야 기본을 잘 지켜 충실한 것에는 이기지 못한다.
그 부분에서 이 주변을 한 번 둘러보았다.
서쪽으로 우거진 산이 있으나, 기본적으로 전장은 평지. 조조군이 선점한 곳이 다소 고지에 속한다고는 해도, 그것이 유의미한 차이를 보이지 않을 정도로 완만한 지역이었다.
병력을 숨길 곳도 없으며, 그렇다고 전장이 좁은 것도 아니다.
이런 전장에서 무엇을 추구하기에.
“아군도 전진. 본대와 합을 맞춤.”
“전군 전진!! 대열을 유지하며 주변을 살펴라!”
제갈량의 말에 곧바로 깃발을 들어 아군 전령에게 말을 전했다.
이대로면 머지않아 적 본대와 충돌한다.
아군은 유비군과 청주 전예군 사이에 속했는데, 이들 중앙을 조율하며 여차할 때 어느 한 곳에 가세할 것을 명 받은바.
천천히 그들과 합을 맞추며 진격하려던 찰나.
“저건 또 무슨….”
어이가 없어 말이 흐려졌다.
그것은 내 옆자리를 지키던 여포나 그것을 관찰하던 제갈량도 마찬가지. 아군 전원이 아마 그 광경에 잠시 할 말을 잃지 않았을까.
적 본진이 갑자기 좌우로 크게 병력을 산개하기 시작했다.
* * *
“이러면 대열이 약해질 수 있소.”
“하지만 어디를 노려 뚫어낼지도 명확하지 않죠.”
하후돈의 말에 사마의가 빙긋 웃는다.
아직 적 본대와는 거리를 둔 지금. 미리 산개하도록 명한 상황에서 사마의는 흑우선으로 얼굴을 가리며 적 본대를 살폈다.
기병을 향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을 제외하고는 평이하게 교전을 준비하던 적 본대는 이 움직임에 어떻게 대처하겠는가.
“적의 목표는 아군을 피해 돌파하는 게아니라 아군을 패퇴시키고자 하니까요. 그러니 저지선이 뚫릴 것을 염려하지 않으셔도 좋을걸요?”
“그러면 이대로….”
“예, 휘저어보죠.”
하후돈이 그간 경험하지 못한 전장이었다.
이것은 어느 판단 하나하나를 놓고 보더라도 전부 정석에서 크게 엇나간 것들.
조조 말하기를 참군의 말은 잘 들어보라고 했던 것을 떠올렸기에 수긍하고는 있었지만, 이래서는 변수가 작용하기 너무 쉬워진다.
병력을 아끼는 게 좋다는 말에는 공감했지만, 구태여 아군의 전력이 다소 우위를 점한 상황에서 구태여 피아 구분 없이 변수를 창출해내기 좋은 판도로 구상할 필요가 있던가.
사마의는 이대로 적 전열을 사정없이 휘젓겠노라고 했다.
그 방식까지야 인정하겠으나, 그것이 잘 통하리라는 보장이 어디에 있는가. 적어도 하후돈은 그것을 느끼지 못했다.
한편 그녀는 고개를 살짝돌려 제 뒤에 서 있던 남자에게 시선을 보냈다.
“장료 장군? 오래 기다리셨죠.”
“뭘, 꼬마 아가씨가 말하는데 얼마든 못 기다리려고.”
이번 작전의 핵심.
기병대의 대장을 맡아야 할 장료가 그녀의 뒤에서 어깨를 으쓱인다.
장료라면 전략 이해도도 충분하고, 여차할 때는 스스로 판단하여 행동할 수 있는 지략도 겸비하고 있었다. 기병을 다스리는 것에 한해서라면 아군 최고의 상장이라는 조인보다도 나은 부분이 있는바.
사마의는 그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보병으로 최대한 적 방어를 두드려드릴게요. 육질을 다지고, 또 다지면 고기 연육이 부드럽게 녹는다고들 하죠? 딱 그렇게 만들어드리죠.”
“찢어버리는 맛은 있겠네.”
“그대로 휘저으세요. 기병 오백에 좌익으로 향한 기병의 권한까지 전부 드리죠. 목표는 유비군의 궤멸이에요.”
어차피 청주에서 합류한 병력이라고 해야 막 항복하고 얼마 지나지 않은 군단. 유비가 패배한다면 그들은 어차피 뿔뿔이 흩어질 것에 지나지 않았다.
목표는 유비의 목.
그것이 곤란하다면 그녀의 패퇴를 노린다.
“하여간, 누이 떠나고서는 이 꼬마 아가씨가 더 악랄하게 사람 부려 먹네.”
“여포가 떠났으니 그 몫은 장료 장군께서 맡으셔야죠.”
“이런 염병. 내가 누님 다시 붙잡아올까?”
“할 수 있다면요.”
가능할 리도 없다.
한숨을 푹 내쉰 장료가 언월도를 손에 쥐고는 말에 올랐다.
목표는 단순. 그는 이제부터 별도의 기병을 이끌고 천천히 진군하며 적의 빈틈 한 곳을 노리고, 그대로 물어뜯으면 그만이었다.
하여 장료가 준비하여 떠나려는 차.
“아, 맞아요. 장료 장군님?”
“응?”
“그 아가씨라는 말. 두 번 다신 꺼내지 말아 주시겠어요?”
사마의는 평소 웃는 낯에서 눈살만을 찌푸렸다.
“저, 아가씨라는 단어는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요.”
“하여간. 알겠소이다.”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여전히 진소연과의 사이는 영 좋지 못한가. 예전에는 이렇지 않았는데, 중랑장 전호의 죽음 이후로 내부에서의 관계도 다소 미묘하게 어긋난 부분이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게 사마의와 진소연의 갈등.
일방적으로 사마의가 그녀를 껄끄럽게 여기는 것이지만, 그 또한 갈등이라면 갈등이라고 붙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고 보니 호세 형씨가 상서령을 소연 아가씨라고 불렀던가.
이거 참, 인생이라는 게 뭔지.
장료는 쓰게 웃으며 자리에서 떠났고, 하후돈 또한중앙을 기점으로 전장 전역을 관장하기 위해 자리에서 벗어나 지휘부에는 사마의와 명령을 전달하기 위한 일련의 장병들만이 남았다.
“하여간 쓸데없는 소리를.”
살짝 기분을 해친 그녀가 미간을 찌푸렸지만, 그 또한 머지않아 풀렸고 이내 그녀는 전장 전체를 관찰하며 적의 동태를 살폈다.
아직은 그녀의 예상대로.
적은 움직임을 멈추고 산개한 아군과 대치하며 더욱 응집했다.
병력이 비슷한 전장에서 구태여 전력을산개해 전투력을 떨구는 것은 하수의 선택. 그들의 대응은 당연한 정석이었지만, 그것은 조직력과 대응으로 대처할 수 있다.
“자, 시작해보죠.”
슬슬 산개한 아군 병력은 모든 구역이 고르게 분포하여 적과 마주할 준비를 마쳤다. 좌우로 배치한 기병의 준비도 끝났고, 주공이 될 장료의 배치도 완료.
이제 남은 것은 오직 그녀의 한 마디.
그녀는 전선을 넓게, 시야 끝까지 채우고는 깃발을 흔들었다.
음률을 타 콧노래를 부르며 고개를 끄덕인다.
전쟁이라는 것은 곧 흐름이요, 그렇게 따지자면 하나의 음률과도 같은 것. 천천히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피고서는 손가락을 하나.
“우군의 3번 부대, 전진.”
그녀는 부대를 삼백 단위로 나누어 명령 체계를 수립했고, 그 과정에서 깃발과 북의 흐름만으로 명령을 전달하기 위해 3개월 이상을 조련했다.
천천히 흐름을 느낀다.
“좌군 4번 부대는 후퇴. 1번 부대는 전진.”
그때마다 깃발이 번갈아 올라가거나 내려가기를 반복,명령이 하달될 때마다 나팔 기수는 크게 소리를울렸고, 교전이 시작된 전장 전역으로 퍼져나간다.
흐름이 바뀐다.
적의 대응에 맞춰 주공을 번갈아 나누었고, 하후돈은 사령관 직접 전선에 나서 아군을 독려, 어떤 때는 또 직접 부족한 곳으로 지원을 나가며 그 흐름에 맞춰주었다.
이것은 하나의 음률이요, 선율이었다.
그렇다면 사마의 본인은 그것을 조율하는 연주가가 된다.
전선의 전진과 후퇴를 자유자재로 조작한다.
현 유비군에게는 없을 조직력과 명령 체계.
아군과 적의 차이 중에서도 가장 유의미한 차이가 이것이었고, 그러면 조조군은 구태여 적과 정면으로 싸워 이 차이를 없애기보다는 계속 움직이며 적극적으로 활용할 필요가 있었다.
병력을 크게 넓히고, 각 지역마다 주공을 번갈아가며 치고 빠지기를 반복.
어떤 때는 우군에 힘을 싣는가 하면, 곧장 그곳이 물러남과 동시에 좌군에 힘을 싣는다. 우군과 좌군 내에서도 주공을 계속 바꿔주며 상대의 손속을 흐리게 하는 것.
움직여라, 움직여.
꾸준하게 움직이며그 발걸음을 멈추지 않는다면 분명 수동적으로 대처할 수밖에 없는 적의 대열에서부터 균열이 가기 시작할 터.
사마의는 빙긋 웃으며 흑우선으로 입가를 가렸다.
“자자, 더 크게 가보자고요.”
아군의 주공이 될 장료의 준비는 만전.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