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화 〉08. 서주 공방전 (2)
그렇게 북해 방위군과 관련된 문제를 정리했고, 이제는 진군할 경로를 지정해야 할 때.
전방에서 아군을 저지하고자 나선 하후연과 5천의 병력. 그들을 꺾고 나아갈 수 있겠으나, 그러기에는 내부로 침입한 군이 이미 존재하는 상황이라 너무 늦어진다.
그 부분에서 그녀는 살짝 고개를 돌려 장비를 바라보았다.
“익덕. 너에게는 미안하지만…….”
“알고 있어. 저 하후연이라는 년을 쳐부수면 되는 거지?”
“병력을 많이 줄 수가 없어서.”
장비는 침울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호탕하게 웃었다.
“그깟 병력이 뭐 중요할까. 누이의 명령이라면 설령 홀로 싸우라고 해도 웃으며 저놈들을 하나라도 더 저승으로 보낼 수 있지.”
“삼천.”
“그거라면 더 바랄 나위 없어.”
5천을 상대로 하여 3천.
그 또한 부족한 숫자였지만, 장비는 자신감 넘치게 가슴팍을 두드렸다. 과거에는 3백 언저리로 수만을 상대한 경험이 있었는데, 그에 비하면 이런 전력 열세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이쪽은 괜찮으니 누이나 신경 쓰는 게 맞지 않나.”
“제갈근 선생님.장비의 보좌를 맡길 수 있을까요.”
유비의 말에 그녀는 말없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좌중을 정리한 그녀는 동완현 일대로 장비와 제갈근을 필두로 하여 3천의 병력을 남겼고, 기존 서주군 2천에 항복한 전예와 그 휘하로 참전한 청주군 3천을 이끌고 남하했다.
그 방면으로 주둔하고 있는 것은 하후돈과 사마의의 군.
그렇게 장이 정리되어 모두가 각자 맡은 일에 전념하고자 할 때.
여포는 뒷머리 긁적이던 전호의 옷깃을 붙잡았다.
“……주인아.”
“왜?”
“우리, 지금이라도 그냥 떠나면 안 될까?”
조조군과 적대하는 것은 달갑지 않다.
물론 여포 개인으로 보아 그들을 상대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았지만, 적어도 전호가 조조군과 대립하는 광경을 보고 싶지 않았다.
그녀의 말에 전호는 살짝 고민하듯 미간을 찌푸렸다.
물론 대뜸 옛 과거와 적대하듯 마주하는 것이 달갑진 않았다.
하지만 현 서주의 상황은 이미 피폐하기 그지없었고, 누가 보아도 침공하는 조조군의 행보가 너무 과했다.
오는 길마다 보았던 서주 일대의 풍경은 말 그대로 전쟁의 처참함을 유감없이 잘 보여주었다. 백성들은 전부 이주당한 것인지 인영 하나 보이지 않았고, 그 생의 터전은 처참하게 불타 파괴되었다.
“유비에게는 받은 은혜가 남았으니까.”
“그건 저번 걸로 다 갚은 거잖아. 그게 뭐가 중요하다고. 게다가 조조가 본격적으로 행동했으면 서주만으로는 버거울 거야.”
“그렇겠지.”
그는 여전히 뒷머리를 긁적였다.
솔직히 말해 이렇게까지 할 생각은 없었다. 전쟁이라는 것에 참전할 생각도 없었고, 이렇게 군에 밀접하게 관계될 생각조차 없었다.
어쩌다 이렇게 깊게 얽혔을까.
생각해보면 본인이 생각하던 것 이상으로 관여하고 말았다. 유비와도 이런저런 대화를 쌓아 정이 들었고, 당장 본인이 보좌해야 할 제갈량을 포함하여 서주의 여럿과도 안면을 너무 깊게 터버렸다.
그렇게 정이 들었는데 어떻게 쉬이 버리고 떠날까.
“그래도 은인이 가장 힘들다는데 버리고 도망가는 건 싫다. 적어도 이들이 안정권에 접어들면 떠나려고 했는데, 이런 일이 생겨버렸네.”
떠날 시기를 잘못 잡았을까.
그는 여포와 대화를 통해 조조군과의 관계를 다소 알았고, 그렇기에 청주에서의 일이 끝나면 서주를 떠나려고 했다.
물론 조조군으로 돌아갈 생각도 없었고, 그대로 천하를 유람하듯 적당히 돌아다니며 여비나 벌어 적당히 느긋하게 살 생각이었다.
“기억이 없어서 그런 거면, 그래서 고민하는 거면 그냥 도망가자. 응? 우리가 구태여 그 귀 큰 년을 위해 이렇게 싸워줄 필요가 없잖아.”
“내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야.”
물론 이대로 전장에 끼면 후회할 것 같았지만, 위기에 처한 유비를 저버리고 도망간다면. 그래서 유비가 패해 죽었다는 소식을 들으면 더 후회할 것 같았다.
그는 선택했다.
기억하지 못하는 과거와 현재의 삶.
적어도 전호에게 있어 그것은 고민할 거리도 되지 못했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어. 물론 기억이 돌아온다면 얘기는 별개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나는 유비가 죽거나 한다면 제법 후회할 것 같거든.”
“……멍청이.”
“그래, 그래. 나 좀 멍청한 구석이 있어.”
정에 약하다.
그것은 그 본인도 잘 알고 있는 일이었다.
고작 두어 달.
얼마 되지도 않는 기간을 같이 보냈지만, 그것만으로도 그 사람들을 안에 품었다. 적어도 그들이 죽는 것을상상하는 게 썩 달갑지 않게 되었다.
그게 설령 과거의 인연과마주하는 일이 되더라도.
“……주인이가 바라는 건 그거야?”
“일단 유비가 죽지 않는 선에서만? 그 뒤는 모르지. 유비가 좀 안정권에 접어들어 내가 필요하지 않게 되었을 때. 그때 여기를 떠날 생각이다.”
그이후에는 천명에 맡길 따름이다.
적어도 그에게 있어 유비의 말은 깊게 와닿은 구석이 있었기에. 그렇기에 그녀의 행보에 흥미가 갔고, 적어도 그녀가 이리 쉬이 패하여 스러지지 않기를 바랐다.
그러니 한 번.
앞으로 조금만 더 힘을 보탤 생각이었다.
“알았어. 그런 거라면….”
“그쪽은 괜찮겠나? 조조군에 있었다며.”
“그건 주인이도 마찬가지거든.”
여포는 입술을 삐죽 내밀고는 대꾸했다.
“괜찮아. 어차피 내 소속은 어느 쪽이냐고 하면 주인이 시종 같은 거였으니까.”
“그 주인이라는 말 굉장히 거슬리네. 시종? 천하무쌍을 시종으로 들인다고. 대체 얼마나 호화롭게 살아야 그런 인력 낭비가 가능한 거냐.”
심히 두렵다며 가슴을 쓸어내리는 전호.
그런 그를 바라보며 그녀는 다소 침울하니 고개를 떨궜다.
조조군에는 그와 관계된 이들이 많았다.
부디 이 앞으로 그들 중 한 명이라도 그가 마주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기도했다. 기억을 잃은 전호와 그런 그를 기억하는 이.
그렇게 서로 적대하게 된다면, 그건 너무 슬픈 일이었으니까.
* * *
행군 진로마다 보이는 전장의 참상.
전쟁이라는 것이 본디 이랬지만, 한동안 보아오지 않았던 것이라 그런지 새삼 인간다움과 전장이라는 것에대해 생각하게 만드는 풍경이었다.
“호세 씨, 괜찮으세요?”
“아니 뭐. 그냥 이렇게 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해서.”
“……혹시 조조군을 상대하는 게 껄끄러우시다면….”
그녀의 말에 손을 내저었다.
“그건 댁이 더 걱정해야지. 내가 조조군에 홀라당 넘어가면 어쩌려고. 난 괜찮으니까, 댁이 가장 최선으로 할 수 있는 일을 해. 적어도 같은 배에 탄 동안 배신하는 그런 짓은안 할 테니까.”
기억나지 않는 과거보다는 지금이 더 소중하다.
물론 기억이 돌아온다면 어떻게 될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살아가는 시간은 과거가 아닌 현재다. 나만 모르는 과거에 집착할 바에는 후련하니 지금을 사는 게 옳지 않은가.
“그냥 떠나셔도 뭐라고 안 할게요.”
“왜. 내가 필요 없어?”
“아뇨!! 그건 아니에요! 그게 아니라….”
“그럼 됐지.”
구태여 길게 생각할 필요도 없다.
현재에 충실하게 사는 것이 인간의 도리. 적어도 지금의 나는 이 선택에 일말의 후회도 없으니 그걸로 된 게 아닌가.
“그러면 난 제갈량 꼬맹이 보좌로?”
“예. 부탁할게요.”
픽 웃으며 그녀에게 등을 돌렸다.
곧 낭야군 일대로 접근한다.
그곳에는 하후돈이라는 장군이 이끄는 군이 주둔하고 있다고 들었으니 조만간 교전도 벌어질 게 뻔했다.
각 군의 숫자는 백중세.
하지만 이쪽은 기존 청주군이 절반 이상을 차지하고 있었기에 명령 체계나 훈련 과정에서 맞물리지 않는 부분이 있어 전력으로는 열세라고 보아 무방했다.
조조의 정예군을 상대로 연합군의 형세를 띈다.
분명 불리한 전장이었지만, 유비의 표정에서는 일말의 흐림도 느껴지지 않았다. 자신감이 느껴지는 표정에서는 안심을 느낄 수있었다.
저것이 지휘관이 가져야 할 덕목일까.
나는 여포와 함께 발걸음을 돌려 제갈량이 이끌 천 가량의 병력이 주둔한 군영으로 돌아왔다.
그녀는 그동안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내 옷깃을 붙잡고 걸을 따름.
“여포. 정말 괜찮겠나?”
“주인이가 있는 곳이 내가 있어야 할 곳이니까.”
그것참.
뭐라고 대꾸하기 힘든 대답이었다.
* * *
서주군과의 조우에서 사마의는 미소를 지었다.
“군을 나누죠.”
“군을?”
하후돈의 대꾸에 사마의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전에 모은 정보에 의하면 청주로 출정한 서주의 병력은 5천가량.
분명 하후연이 이끄는 부대와 마주할 병력을 남겨두었을 텐데도 저만한 병력을 유지하고 있다는 것은, 반대로 말해 청주에서 병력을 추가했다는 뜻이었다.
실제로 유비가 이끄는 군은 하나로 뭉친 듯 보였지만, 그 복장을 비롯하여 배치까지 은근히 두 부류로 나뉜 것을 똑똑히 확인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두 가지.
하나는 정면으로 뚫어내는 것인데, 그 부분에서는 아군의 피해도 무시할 수 없었고, 무엇보다 구태여 그렇게 싸워줄 필요도 없었다.
하나로 뭉치지 못하는 군이라면 상대하기는 간단.
사마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적의 병력은 두 부류로 나뉘어 있어요. 아마 청주에서 승전 이후 항복한 병력을 포섭한 게 아닐까 싶고요.”
“어떻게 확신하나?”
“제식도 미묘하게 차이가 있고, 무엇보다 배치 자체도 한 군영인 듯 보이지만, 중앙을 경계로 병사들이 잘 넘나들지 않으니까요.”
물론 다소 의아한 면은 있었지만, 설마 주둔한 병력의 사소한 움직임으로 그것을 유추하였는가.
간단하다면 간단했지만,적어도 하후돈은 그런 미묘한 차이를 잡아낼 정도로 적을 면밀하게 살피지 않았었다.
“그래서 군을 나누겠다고?”
“아예 뒤흔들어버리는 게 좋을 것 같아서요.”
그녀는 지도를 바라보며 세 곳을 가리켰다.
“하나로 뭉칠 수 없는 군이라면 기동전으로 상대하면 그만이에요. 아군은 기병 전력이 우위가 있으니, 그걸 살려 양 갈래로나누고, 그 과정에서 치고 빠지기를 반복하면.”
“아군의 피로 누적도 있을 것인데.”
“그것도 있겠지만, 적어도 제가 보기에는 적의 손발이 꼬이는 게 먼저일 것 같네요. 치고 빠지고, 그렇게 계속 뒤흔들며 아군 본대도 퇴각과 전진을 번갈아 반복하는 거에요.”
“……흐음.”
변칙적인 전장 운영이었다.
전술적으로 평가하자면 아군의 대열도 흐트러질 수 있는 기동전이었지만, 상대가 사마의의 말마따나 청주군과 서주군으로 구성된 것이라면 해봐나쁠 것 없는 전략이기도 했다.
“마침 이 방면으로서쪽에는 우거진 숲이 있으니, 그곳도 잘 살려보죠. 그곳에 경장으로 날랜 보병을 배치하고, 천천히 끌어내며 기병으로 들쑤신다. 어떻게 생각하세요?”
“……제대로 이행할 수만 있다면 적을 두 쪽 내버릴 수 있을 것 같긴 하다만.”
위험부담이 있는 전술이었다.
물론 정예로 구성된 조조군이었기에 그런 변칙적인 전술을 수행하지 못할 것도 아니었지만, 반대로 말해 이쪽의 손발이 먼저 꼬인다면 그대로 각개격파 당할 우려도 있을 전술.
하후돈의 망설임에 사마의가 방점을 찍는다.
“기동력으로는 아군이 우위. 게다가 조직력으로도 아군이 우위라면, 그것을 살릴 가장 최선의 전술이라고 생각하는데요.”
“……이 전략은 아마 아군의 동선 잡는 것이 핵심이 될 터. 잘 수행할 수 있겠나, 어린 참군.”
“물론이죠.”
하후돈은 잠시 고민했고, 이내 고개를 들었다.
“참군을 믿지.”
“실망하실 일은 없으실 거예요.”
그녀는 빙긋 웃으며 흑우선을 손에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