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7화 〉07. 이름을 부른다 (2) (27/40)



〈 27화 〉07. 이름을 부른다 (2)

청주에서 유비군이 할 수 있는 거의 모든  끝났다.
전예라는 장수는 아군에 항복했고, 이제 남은 건 청주성에서의 원소군과 공손찬군의 결판. 그것까지 도우러 갈 의리는 없다고 하던 제갈량의 말을 기억했다.


아군은 북해 일대에 상주하며 상황을 주시한다.
사실 말이 주시지, 그곳에 끼어들 생각이 없는 이상에야 단순히 시간 죽이기  이상도 이하도 아닌 셈.
오늘도 그저 느긋하게 북해 시가지를 어슬렁거렸다.

“주인아, 저거! 저거 봐!”


……사실 막사에서 조금 쉬고 싶었는데, 여포  여자가 자꾸 바깥도 좀 돌아다니고 해야 기운이 난다고 해서 어쩔 수 없이 끌려 나온 부분이 있다.

“뭔데.”
“저거 가면이잖아? 봄철에 축제가 있는 것 같더라구.”

겨울은 민생에 있어 가장 혹독한 계절이었다.
그 계절을 성공적으로 보내고 또다시 시작될 한해를 기리며 축제를 여는 건 지역마다 제법 흔한 풍습이기도 했다.
물론 병주 일대는 너무 혼잡하여 그런 것도 없었지만, 당장 기주만 보아도 그런 게 흔한 편이었으니까.


단지 안타까운 건 축제를 하기에는 청주 내에서 벌어지는 전쟁 탓에 제대로 된 축제를 즐기기엔 어렵지 않을까 싶은 것.
실제로 그런 축제 물품을 늘어놓은 곳은 한두 곳밖에 보이지 않는다.

“보고 갈래?”
“응!!”

이럴 때 보면 천생 아이와 같은 부분이 있다.
해맑게 웃는 얼굴에는 나 또한 살짝 웃게 된다. 자고로 감정이란 사람  전염도 된다 일렀던가. 이 여인을 보고 누가 천하무쌍의 여포를 떠올리겠나.
어깨를 으쓱이며 그녀의 뒤를 따랐다.

가면이라고 해도 종류가  많지는 않았다.
이런 건 지역 풍습과 전승, 혹은 민간신앙에서부터 비롯되어 만들어지는 게 대다수.
이곳 같은 경우에는 보통 장군의 느낌이 나는 가면과 호랑이 가면, 그 외에는 도깨비 가면이나 어린아이를 위한 동물 가면도 조금 있다.

“아하하! 이거 뭐야,이상하게 생겼어.”
“……그건 공자 선생을 본뜬 것인데….”
“이봐, 이게 뭐가 이상해. 덕 있게 생기셨구만.”


솔직히 이상하게 생기긴 했는데, 청주 일대를 포함하여 이 근방이 공자라는 유학자 양반의 출신지라고 알고 있었기에 바로 여포를 구박하여 제지했다.
실제로 상인 양반 표정이 와락 구겨진  보였다.

“……이상한  이상한….”
“안 이상하니까 쉿. 그것보다 이건 어때.”


바로 말을 돌려 여우 가면 하나를 들었다.
물론 이런 시장에서 파는 게 깔끔한 마감일 리도 없었지만, 이것 같은 경우에는 나름 동물의 느낌도  살리면서 여자에게 어울릴 것처럼도 보였다.

“엥? 그건 너무 어린애들이 좋아할  아냐?”
“그런가.”

물론 그밖에도 축제용 물품이 여럿 놓여있긴 했지만, 아무래도 축제가 열릴지도 모를 판국에 그런 것보다는 이런 간단한 것에  흥미가 쏠렸다.
이런 동물 가면은 애들이 좋아할거 같다고?
그럼 이건 제갈량 그 꼬맹이나 줘볼까.

“사마의 그 계집애한테는 잘 어울릴 것 같네.”


여포는 슬쩍 말하면서도 그 가면을 손에서 놓지 못했다.
사마의라.
얘기만 살짝 들어보면 나름 어린아이처럼 느껴졌는데, 과거의 나와 제법 가까웠던 꼬마로도 보였다.
물론 하나도 기억 안 나는 지금에야 의미도 없다마는.

그렇게 시장을 둘러보며 여러 가지를 접했다.
가면도 선물용으로 몇 사긴 했는데, 이게  의미가 있을지는 모르겠네. 솔직히 축제가 아니고서야 이런 가면이 어디 쓸모있는 것도 아니니까.

한참을 걸었다.
우리는 이것저것 바라봤고, 그동안 웃고 떠들기도 많이 했다. 북해는 확실히 병주의 다른 지역보다는 활기 있는 느낌도 들었다.

그러던 차, 문득 여포는 고개를 들며 말을 꺼냈다.


“곧 봄이네.”
“지긋지긋한 겨울도 빨리 지나가야지.”

특히 이런 겨울에 벌이는 전쟁은 지옥이었다.
그나마 관료 대접을 받아 막사내에 이것저것 방한 대책이 있었지만, 일반 병사들은 정말 두텁게 껴입고 가끔 불을 피우는 것으로밖에 추위를 피할 방법이 없었다.
실제로 가끔 손발의 동상이 너무 심해져 부상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허다하고, 무엇보다 그저 견딜 수밖에 없는 추위는 얼른 지나가는  낫다.


“그러네. 나도 그런 기분이야.”

그녀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빙긋 웃었다.


“그간  겨울이었어. 주인이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부터 언제나 참고 견딜 수밖에 없었으니까. 너무 추워서, 쓸쓸해서.”

여포는 내게 병적으로 집착했다.
조금이라도 시야에서 떨어지면 바로 몸을 떨며 눈물부터 흘렸고, 그저 하염없이 내 이름을 부르며 주변을 서성이기 시작한다.
그게 올바른 형태로 보이지는 않았다.


기억을 잃은 내게 있어 그것은 무상의 호의와도 같았다.
그녀가 왜 나를 사랑하는지,  내게 그런 관심을 표하는지 기억하지 못하니까. 그러니 무상, 이유도 모르지만 날 좋아한다고 하여 단순히 호의를 받아들일 수는 없었다.


이건 분명 어딘가 일그러졌다.


“원래는  물어보려고 했는데 말이야.”
“응?”
“왜 나를 좋아하는 거야?”


물론 천하에서 가장 강하다는 무인의 호의였다.
그녀는 전적으로 내게 의존했고, 말 한마디만 해도 무조건의 호의와 긍정을 표했다. 이런 세상에그런 강자의 호의와 애정은 이용하기 편하겠지.  강함이라면 분명 어디를 가도 쓸 곳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은 한 인간의 감정을 가지고 노는 것.
여전히 나는 그녀에게 진심이   없다.
적어도 왜 여포와 이런 관계로 이어졌는지, 그녀는 왜 나를 좋아하는지. 그런 관계성을 이해하지 못하고 그저일방적인 호의에 안주하여 마음 놓을 수는 없었다.


게다가 이런 관계는 그녀에게도 좋지 않다.
이건 누가 보아도 이질적인 현상이었다. 그녀의 집착은 불안감에서 기인하는 것. 그녀는 내가 언제라도 다시 없어지지 않을까 항상 두려움에 떠는  같았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는 정신적인 병이라고 판단한다.

“……예전에도 그런 거 물어봤었는데.”
“그랬나?”
“응. 그때도, 지금도. 내 대답은 언제나 같아.”


그녀는 내 손을 쥐어 본인의 가슴으로 옮겼다.

“사랑에 이유가 필요해? 처음에는 조금씩 눈길이 갔고,  눈길이 관심이 되어 이것저것 보였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이고, 이런 장점이 있고,  이런 단점이 있다던가.”
“그건 뭐, ……그렇긴 한데.”
“그러니까 그냥 주인이도 이런 써먹기 좋은 여자가 있다고 생각해주면 안 될까. 그냥 어려운 거 생각하지 말고, 당신을 너무너무 사랑하는 여자가 있다고. 그래서 가끔, 정말 힘들 때라도 기댈 수 있는 여자가 있다고 받아들여 주면….”
“그건 안 돼.”

미안하지만 그 말에는 동의할 수 없었다.

애당초 인간은 써먹기 좋고 나쁜가로 판단해서는 안 된다. 적어도 그 상대의 진심을 마주했노라면, 이쪽 또한 진심으로 대하는 게 인간 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그런 의미에서 그녀의 불안과는 정면으로 마주할 필요가 있었다.

“말을 할까 고민하기도 했는데, 언젠가는 해결해야  문제니까. 적어도 지금 그쪽 상태가, 그리고 나와의 관계도 평범한 건 아니잖아.”
“……그냥 이대로 있어도 괜찮잖아? 우리, 그냥….”

여포의 상태는 분명 이상하다.
과거의 일을 무시하고 현재에만 집중하려는 것처럼도 보였다. 내가 잃어버린 시간을 되찾기보다는 그저 지금에 집중하고, 이 관계에 집착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한다.


“말해줘.”
“……주인아, 우리 그냥….”
“괜찮으니까.”


이미 지나간 일이었다.
물론 전부 받아들이기 힘들 수도 있다. 말로만 전해 듣는 것과 실제 겪으며 받아들이는 것에는 차이가 명백한바.
하지만 그녀가 내게 다가왔고, 나와 앞으로의 시간을 보내고자 한다면 이대로 우리의 관계를 그저 덮어두고 있을 수만은 없다고 생각한다.

상처는 덮으면 언젠가 곪기 마련.
이것은 그런 종류의 문제였다.

“우리가 어떤 관계였는지 들려줘.”
“……분명 싫어할 거야.”
“과거의 나는 이해했다며?”


그녀는 여전히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무엇이 그녀를 이리 불안하게 만드는지도 모르고 얘기할 것을 종용했고, 여포는 조금씩 손을 떨면서도 천천히 말을 이어갔다.


반동탁 연합군.
그곳에 나와 진소연이라는 사람은 함께 전쟁에 나섰다고.  과정에서 동탁군 소속이던 여포와도 겨뤘고, 그 과정에서 많은 피가 흘렀다고 언급했다.


얼마 전 꾸었던 꿈과 이어지는 부분이 있었다.
병주에서 거느리던 놈들이 여포의 손에 대거 죽었다는 말을 꺼낼 때, 그녀는 겁에 질려 벌벌 떨기에 이르렀다.

천천히 그 얘기를 전부 들었다.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이야기. 여전히  마지막 기억으로는 대장, 대장 불러대는 멍청한 것들이 존재했는데, 이들 중 대다수는 벌써 죽었단다.
그것도  여자의 손에.
물론 전쟁에 나선 이상 어쩔 수 없는 운명이었다. 그것을 알고는 있지만, 역시 받아들이기 힘든 부분도 있다.

그렇게 얘기는 이어졌다.

이후 복양성의 성주였던 나와, 그곳을 점령한 여포의 얘기로 다시 이어진다.
 과정에서 우리는 이것저것 얘기를 나누었고, 본인은 아마 그때부터 내게 관심이 생겼었노라고 담담히 고백하는 여포.
나는 그런 그녀를 내부에서 붙잡았고, 이후 그녀를 거두어 내 사람으로 만들었다던가.


“……나는, 그래서.”
“확실히 듣고 이해하기 힘든 내용이네.”

우리 애들이 이 여인의 손에 죽어 나갔다고.
내게 있어 그들은 다소 특별한 이들이었다. 서로가 갈 곳 없고, 기댈 곳이 없어 그저 의지하여 관계를 형성했다.
그렇게 몇 년을 보낸 이들이었다.
어려서 가족을 잃었기에, 그렇게 오래  부대끼며 산 이들도 없었고, 그런 관점에서 내게 그들은 가족이라고 불러 이상하지 않은 부분.


하지만 그들은 이미 죽었다.
내가 기억을 잃은 그 시간 동안, 전쟁에 휘말려서.

“……말하고 싶지 않았어.”
“무슨 느낌인지 이해는 돼.”

나는 그냥 간단한 치정 문제일 거로 생각했는데, 생각보다 훨씬 복잡하고 더 진득한 관계였다.
서로가 적이었고, 서로의 목에 칼을 겨누었다.
그런 관계로 시작한 게 나와 여포의 관계였는가.

“확실히 썩 기분 좋은 얘기는 아니야.”

기억을 잃은 시간은 공백과도 같다.
그렇기에 나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웃고 떠들던 놈들로 기억하는데, 그들은 이미 오래전 바닥에 쓰러져 그리 사그라졌다는 소리 아닌가.
솔직히 말해 실감도 잘 나지 않았다.

“……내가 싫어졌어?”
“지금처럼 순수하게 보기는 힘들  같긴 하네.”

이에 그녀는 눈을 질끈 감았다.


말이 조금 심하지 않은가 싶었지만, 그녀에게 들은 문제는 내게도 밀접하게 관계된 문제였다. 무엇보다 그 사안이  주변 사람들의 죽음과 관련된 것이니까.
앞으로 여포를 그냥 마음 편히 바라볼 수는 없을 것 같았다.
생각해보면 지금까지의 관계가 다소 이상했던 거다.

여포는 여전히 몸을 떨며 애처로이 고개를 떨궜다.
그런 그녀에게로 나는 한 발짝.


내가 잃어버렸던 과거로 다가갈 수 있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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