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4화 〉06. 삼파전 (3) (24/40)



〈 24화 〉06. 삼파전 (3)

서주군의 진격에 맞춰 북해의 방위군 또한 진격을 개시했다.
이대로 순조로이 진격하면 서주군은 청주성의 배후까지 진격한다. 제갈량의 예상대로 제아무리 방위군이라 할지라도 그것을  뜨고 관망할 수는 없는 노릇.

그것까지는 괜찮았다.

애당초 서주의 군단은 조조와의 전면전을 대비하여 육성한 강병.
전방으로는 맹장 장비를 앞세웠고, 그것을 총괄할 유비 또한 다수의 전장을 겪어 경험 많은 지휘관이었다.
전면적으로는 고작 청주의 방위군에게 밀릴 리 없을 터.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가지 변수가 발생했다.

“저건  뭐야.”

북해의 방위군은 아군과 거리를 두고 일정 이상 다가오지 않았다.
아군이 다가가고자 하면 뒤로 물러섰고, 전진하려고 하면 다가온다. 그렇게 일정한 거리를 두고는 제지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없었다.

무엇보다 어마어마한 양의 수레.
그들은 항상 이동하며 수레를 끌고다녔는데, 그것은보급부대의 수레라고 하기에는 숫자가 너무 많았고, 무엇보다 빈 수레에 불과했다.
그런 것을 전장을 움직이는 내내 끌고 다니며, 아군과 대치하는 과정에서는 항상전열로 수레를 즐비하게 늘어놓는다.

“어이가 없네.”
“……설마 저렇게까지 할 거로는 생각지도 못했네요.”

유비도 그것을 바라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압도적인 숫자의 수레.
그런 것을 계속 끌고 다니려면 기동력이 압도적으로 죽을 것인데, 그들은 그것에 개의치 않고 어떻게든 그것을 건사하여 우리의 앞에 늘어놓고 있었다.

“저 모습을 보니 싸울 생각은 없나 보네.”

그럴 거면 북해에서 왜 뛰쳐나왔을까.
도대체가 영문을 모르겠다. 싸우기 싫다면 그냥 북해에 틀어박히면 된다. 구태여 저런 거추장스러운 것을 즐비하게 챙겨다니면서 따라다닐 필요가 어디 있던가.

여포는 내 옷깃을 당기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주인아, 그냥 저거 무시하면 되는 거 아냐?”
“그건 곤란합니다.”

내가 채 답하기도 전, 제갈근 선생이 먼저 말을 받았다.

“아군의 목적은 청주성 공방의 합류가 아닌북해 방위군의 섬멸이었어요. 서주에서청주성까지는 청주를 길게 거쳐야 하는데, 그 보급선을 유지할 수도 없어요.”
“단지 끌어내기 위함이었음.”

제갈량까지 말을 받아 자매는 동시에 부정적인 의사를 표출했다.
확실히 청주성을 공략할 원소군에 합류한다고 하여 뚜렷하게 호전되는 것은 없다.
물론 이대로 서주 방면으로 재차 회군한다는 선택지도 있겠으나, 전방에서 대치하는 북해의 방위군이 거슬렸다.

“저 수레는 전면전을 피하려고 세운 거겠지?”
“아군에게 강요하고 있는 것.”

소녀는 손을 뻗어 저 멀리 가리킨다.
넓게 늘어선 수레의 벽.  줄로도 모자란 듯, 두세 겹에 걸쳐  전방을 넓게 에워싸고 있는 모양새는 마치 하나의 요새를 보는 듯했다.

“평야에서의 공성전. 적은 이 자리로 왔음에도 수성한다는 의사를 포기하지 않은 것으로 보임.”
“우회해서 측면을 치는 방법은?”
“아군이 방향을 전환하는 것보다 상대의 대응이 더 기민할 것. 방진으로 두터이 지키는 것이 적의 가장 큰 무기.”

평지로 끌어내었으나 상대 또한 녹록히 아군의 의사에 맞춰줄 생각은 없는 듯하다.
어이가 없지.
생각해보면 간단한 사고였지만, 이것만을 위해 저 많은 수레를 어디서 발주했으며, 또 수천의 병력을 이동시키며 수레까지 전부 끌고 나오기란 쉬운 게 아닐 텐데.
그것을 직접 실행에 옮겼으니, 정작 그 간단한 방법을 파훼하라고 하니 생각보다 훨씬 까다롭게 보였다.

“어쩔 수 없죠.”

유비는 손뼉을 치며 좌중의 이목을 모았다.

“적은 저희를 청주성으로 몰아가던, 아니면 서주로 회군시키건. 정면으로 싸운다면 저 수레의 벽을 중심으로 계속 버텨나갈 속셈인  같네요.”
“어떻게 할 생각이야?”
“불을 지르면 간단하겠지만, 쉽게 당해주진 않겠죠.”

늦겨울의 끝자락.
기후는 건조하여 불을 붙이면 잘 붙겠지만, 아마  수레의 벽에 다가가기도 전에 화살을 비처럼 마구 퍼부을 터.
그러면 아군도 화살에 불을 붙일까.
그런 생각도 해봤지만,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대뜸 화시로 불을 붙이려면 얼마나 많은 양의 기름과 화살이 필요한지를 깨닫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보급을 다시 잇고, 당분간 상황을 지켜보죠. 지연전으로 몰고 간 이상, 상대도 쉽사리 움직이지는 않을 거예요.”
“우리 분명 대치상황 깨려고 나온  아니던가?”

의도를 봉쇄당했다.
그것만으로 상대에게 한 점 내어준 것이 아닐까.
단기 결전을 원하는 유비군을 상대로 효과적으로 시간을 지연한다. 확실한 병력의 우위도 없는 상황에서 저렇게끈질기게 버티려는 군을 상대하는 건 껄끄럽다.


마땅한 해결책 없이 우선 상황을 지켜보는 것으로 마무리를 지으려던 차, 여포가 재차  어깨를 톡톡 두드렸다.


“저런 건 그냥 깨부수면 되는 거잖아.”
“그게 쉽지 않으니까 그렇지.”
“왜?”

그녀는 정말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책만큼은 아니겠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목책보다 껄끄러워. 차라리 전방위적으로 포위할 수 있으면 모르겠는데 병력이 백중세잖아.”
“그러면 소수로 뒤를 찌르면 되잖아.”
“아군이 호응할 수도 없는데?”

물론 뒤에서 휘저으면 자연스레 전방의 방비도 풀리겠지만,  사이 후방을 공략하는 부대는 말 그대로  병력을 정면으로 상대해야 했다.
말이 쉽지, 그게가능할 리가 없다.

하지만 여전히 여포는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저런 거, 매번 겪었던 거잖아.”
“매번?”
“아, 매번은 아니겠네. 그래도 내가 주로 전선에 나설 때는 보통 그렇게 움직였는데. 잘 훈련된 병사만 준다면 그 정도야 나도 가능하고, 아마 그 키 작은 놈도 가능할걸?”


키 작은 놈이라면 장비를 가리킬까.
그녀는 정말 당연하다는  말을 이었다.


한편 유비는 우리의 대화를 묵묵히 듣고 있었다.
장비를 후방으로? 하지만 아군 전열을 통괄하는 부사령관이 장비인 이상, 그를 쉽게 제외할 수 없었다.
하지만 여포에게 병력을  수도 없는 것.
그녀는 유비군에서 아무것도 아닌인물이었다. 그저  곁에 머물 뿐이었지, 그녀를 신용하고 있는지도 의문.
게다가 여포 본인에게도 그럴 의무가 없었다.


“장비, 가능하겠니?”
“……솔직히 불가능한 아닌데.”

그는 생각보다 시원하게 답했다.
그러면전열은 누가 맡지? 현 서주군의 강점이라고 하면 장비 필두로 하여이끄는 강력한 전열을 가장 먼저 꼽을 수 있었다.


“그러면 유공, 전열은 누가….”
“제가 맡으면 돼요.”


제갈근의 의문에 유비가 시원하게 답하며 허리춤을 가리켰다. 나야 그녀가 싸우는 걸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듣기로는 썩 약하지 않다고 들었다.


유비 현덕 ]

통솔력 – 82
무력 – 78
지력 – 84
정치력 – 88
매력 – 99




이 숫자로 드러나는 부분을 봐도 크게 강하지도, 그렇다고 약하지도 않은 모호한 수준으로 보였다.
실제로 유비와 합을 겨뤄본 게 아니라 자세히 설명할 수는 없다. 그냥 관우, 장비의 수치와 합을 맞추었던 장패 정도와 비교하면 어렴풋이 알  있는 정도.




전호 호세 ]

통솔력 - 87
무력 - 90
지력 - 82
정치력 - 75
매력 – 89

[ 여포 봉선 ]


통솔력- 93
무력 - 100
지력 - 52
정치력 - 21
매력  56

나는 물론이거니와 여포와 비교하자면 조족지혈.
물론 유비가 전열을 통솔한다고 해도 일선에 직접 나서지는 않겠지만,  군의 군주가 중앙에서 사령관으로 나서는 것과 전선을 누비는 것은 얘기가 달랐다.
그나저나 무력 100은 진짜 뭐하자는 거냐.
관우나 장비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중앙은 제갈 선생님께 부탁할게요. 량아, 너도 중앙에 있으렴.”


장비를 별동대로 후방에 돌린다.
그 사이 유비가 직접 전열을 이끌겠다는 소리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다소 불안한 얘기였다. 실제로 제갈근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는 다른 방법도 있을 거라고 말한다.

하지만 내가 보아도 그게 가장 효율적이었다.
상대는 아군과 제대로 싸워줄 생각이 없는 상황.그러지 않고서야 뭐하러 귀찮게 빈 수레를 잔뜩 끌고서는 벽을 세웠겠나.


“거 너무 걱정하지 마쇼.”


혀를 차고는 손을 들었다.

“유비 나으리한테는 내가 붙을 테니까.”
“주인아?”
“내 몸 하나는 지킬  알고, 덤으로 하나 더 지킨다고 생각하면 그만이지.”

모르긴 몰라도, 이 여포라는 여인도 여차하면 우리를 지켜주지 않겠나. 뭐, 그런 적당한 계산 섞인 것이었지만, 그래도 유비 홀로 부담을 짊어지게 두고 싶지 않았다.
여포는 표정을 잔뜩 찡그리긴 했지만, 딱히 반대하거나 하진 않았다. 덤으로 내 곁에서 떠날 생각도 없는 거로 보아, 아마 전장에서도 내 옆에 붙어있지 않을까.
과거의 나는 어쩌다가 최강의 무인을 길들였을까.

“……괜찮으시겠어요?”
“물론 나야 괜찮은데….”

살짝 시선을 돌려 여포를 바라봤다.
그녀는 여전히 싫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내 옷깃은  붙잡은 상태였다.그걸로도 대답이 됐겠지만, 여포는 끝끝내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이 남자가 있는 곳이 내가 있을 곳이니까.”

거참, 알다가도 모르겠는 게, 이 여인은 내가 뭐라고 이렇게까지 하나.
분명 날 짝사랑했노라고 하긴 했지만, 그것만으로는 설명되지 않았다. 그녀의 행동은 헌신을 넘어 헌신적이기까지 했고, 다른 말로는 집착이라고도 부를 수 있었다.


모르겠다.
나란 놈이 그렇게 매력이 넘치나?


물론 지금까지 본 사람 중에서야 가장 매력 수치가 높긴 했는데, 그나마도 유비와 비교하면 다소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조만간  과거 행적에 대해 자세히 알 필요가 있겠는데.

“그러면 이렇게 준비하죠. 호세 씨는 제 보좌를 부탁할게요. ……여포 장군께서는 하고 싶은 대로 하셔도 좋아요.”
“말안 해도 알거든.요. 귀 큰… 으읍!!”
“예이, 예이. 준비하겠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한 세력의 군주한테   년은 아니지.

* * *

자신보다 강자를 상대하는 방법은 무엇이 있겠는가.
전예는 여럿 손꼽을 수 있었지만, 그중 가장 대표적인 것은 상대의 의도를 읽어 정석을 지키는 것으로 생각했다.
적에게 흔들리지 않고 순리대로 일을 풀어낸다.
상대의 노림수를 미리 파악할 수만 있다면, 그 대응책으로는 여럿 구상할 수 있었다.


가령이번 전장의 경우 상대의 목표는 아군과의 전면전.
그렇다면 싸워주지 않으면 그만이었다.

그는 길게 늘어선 수레의 행렬을 보고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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