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3화 〉06. 삼파전 (2)
원소와 공손찬의 격돌.
그것과 별개로 청주 내에서도 드디어 세 세력이 마주하게 되었다.
청주성을 기점으로 하여 강 대 강으로 대치한 청주 방위군과 원담의 원정군. 반면 북해 일대에서도 청주자사 전해의 부관으로 근무하는 전예의 군과 유비의 군이 서로 마주했다.
“진짜 안끌려 나오네요.”
벌써 상대의 움직임을 유도한 지 일주일.
유비는 혀를 내두르며 적장의 참을성에 감탄을 표했다.
“이만하면 화가 나서라도 한 번쯤은 출진할 법도 한데요.”
“잘 모르겠다만, 병력 숫자는 비슷한 거지?”
“예. 상대도 저희도 약 오천 정도니까요.”
그러면 한 번 움직여도 괜찮지 않나.
북해 일대의 방어도 중요하지만, 서주군을 물리칠 수만 있다면 청주성 일대에서 원소군을 상대할 청주자사에게 군을 돌릴 수 있는 게 아닐까.
하지만 적은 그 어떠한 움직임도 보이지 않았다.
“시간만 끌어도 괜찮은 거 아니야?”
“그렇다고 아예 전투 없이 시간만 보내면 차후 원소에게 꼬투리를 잡힐 수 있으니까요. 전쟁은 하지 않는 게 정답이지만, 이 경우에는 어쩔 수 없이 몇 번은 다퉈야 할 상황이에요.”
그녀는 입맛이 쓰다는 듯 미간을 찡그렸다.
이미 하북에서 진출한 원소의 군과 청주자사의 군이 맞붙었다고 들었다. 당분간은 그 방면에서 결판이 날 때까지 기다려도 괜찮겠지만, 이후 책임 요지로 붉어진다면 원소와의 연결점이 흐려질 수도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건 결국 유비가 판단해야 할 것.
“결정은 군주의 몫.”
제갈량도 나와 같은 생각이었는지 평소의 무표정 그대로, 하지만 정확히 그녀를 겨냥하며 선택권을 강요하고 있었다.
“싸우기는 해야 해.”
유비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을 빛냈다.
필연적인 전쟁.
개인적으로 인간이 가장 추해지고 덧없이 지는 전장을 선호하지는 않았지만, 이런 일련의 과정까지 부정할 생각은 없었다.
그것에 말려들고 싶은 마음은 없었지만, 조력할 수 있는 선이라면 할 수도 있다. 제갈량 요 꼬맹이는 말수가 적고 목소리가 작아 병력을 지휘하기에는 아직 모자란 부분이 많으니까.
그런 식으로 자신을 합리화한다.
그러는 사이 제갈량은 지도 한편을 가리키며 유비를 돌아봤다.
“전쟁을 강요할 방법은 있음.”
소녀가 가리킨 곳은 청주성과 북해군의 사이, 극현이라고 표기된 지명이었다. 우측으로는 산이 있고, 아군의 시선으로 보자면 북해의거점을 빙 둘러 나아가야 하는 곳.
유비는 그것에 잠시 침음을 흘렸다.
“여기를 점거하자고?”
“북해도 움직일 수밖에 없을 것. 청주 일대의 원소군과 공손찬의 세력은 평행선. 전력으로는 수평선을 그리고있는데, 후방을 아군에게 잡힌다면 그 평행선도 깨질 것.”
물론 간단하며 효과적으로 보이는 방법이었다.
설령 아군이 청주성을 공략할 의향이 없더라도, 적은 단 일말의 가능성도 무시할 수 없다. 청주성이 넘어가고 그 주력 부대가 대파된다면 사실상 청주의 지배권은 원소에게 넘어간다.
하지만 그걸 실행하기에는….
“보급선이 너무 길어지지 않을까?”
유비 또한 내가 우려했던 부분을 지적했다.
전방의 군을 상대하지 않으려면 우회해 돌아가야 한다.
그동안 늘어지는 보급선은어떻게 유지할 것이며, 또한 그 부분을적이 끊고자 했을 때 아군이 저지할 방법이 뚜렷하지 않았다.
착각하지 말아야 하는 게, 아군이 싸움을 원한다고 해서 적에 비해 뚜렷하게 전력 우위를 가진 게 아니었던 만큼, 스스로 불리함으로 몰아넣을 필요가 있던가.
“그러니까 선택임.”
꼬맹이는 여전히 속 모를표정으로 유비를 바라본다.
“이대로 대치만 하면 아무 일도없을 것. 이후 원소에게 끌려다닐 수는 있지만, 당장 있을 위협은 피해갈 수 있음.”
안 그래도 서주는 입지가 약하다.
지리적으로는 중요한 요지였지만, 어차피 조조 아니면 원소 중 하나를 선택해야 했고, 또한 조조와 척을 진 이상 원소와의 공존은 필수불가결로 다가온 것.
원소에게도 서주는 중요하겠지만, 서주 또한 원소가 절박한 상황이었다.
그러니 원소에게 한 번 밀리기 시작하면 그저 착취당할 처지에 놓일 수 있다는 것도 분명한 사실이었다.
“……량이도 정말. 나한테 힘든 것만 주문하네.”
“군주의 업. 그 자리에 오르고자 한 이상, 받아들여야 함.”
“그러네.”
이건 내가 말참견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유비는 한 번 이쪽을 바라봤지만,나는 알아서 하라는 뜻으로 손을 내밀었다. 이들의 목숨을 짊어진 것은 유비였고, 그 책임 또한 그녀에게 달린 것.
게다가 나 자신도 판단이 서질 않았다.
이런 정치적인 부분으로는 단 한 번도 고려해본 적이 없고, 익숙지 않은 일에 괜한 조언으로 일을 그르칠 우려도 있었다.
“진군하자.”
“괜찮겠음?”
“병사의 숫자는 호각. 하지만 서주의 백성들은 약하지 않아. 또 장비가 앞을 든든히 지키고 있고, 안쪽으로는 제갈근 선생님과 량이 너도 있잖아? 게다가….”
아니, 나는 왜 봐?
시선 치워라. 이쪽은 그냥….
“쯧, 그렇게 보지 말라니까는.”
“량이를 부탁할게요.”
그것만이라면 못 할 것도 아니었다.
꼬맹이 하나 지켜주고 말을 전하는 것. 직접 전장에 나서라는 것도 아닌데 이것마저 거절할 이유는 없었다.
게다가 유비의 시선은 한 차례 여포에게도 쏠렸다.
여포는 이 일에 있어 아무런 말도 꺼내지 않았다. 그저 내 뒤를 지키며 옷깃을 살짝 붙잡고 있을 뿐.
도망가지 않는다고 하는데도 그녀는 뭐가 그리 불안했는지, 언제나 습관처럼 내 옷깃을 꼭 붙잡고는 했다.
이래서야 제갈량 요 것이 꼬맹이인지, 여포가 꼬맹이인지 모르겠다.
“그러면 진군은 이틀 뒤로 할게요. 내일 정식 군의에 회부하겠지만, 미리 준비해주세요. 필요한 사안이 있다면 미리 말씀하시고요.”
“보급선은 어떻게 유지하게?”
“포기해야죠.”
그녀는 너무 당연하게 말을 이었다.
“이만한 전선에서 보급을 유지할 방법이 없잖아요?”
“이어지는 가도로 병력이 없는 이상 상대도 눈치챌 텐데.”
“그건 괜찮음.”
제갈량이 그 말을 받으며 고개를 돌렸다.
“상대의 움직임은 기민함. 그만큼 유능하다는 뜻. 아군의 보급이 불확실하다는 것은 파악 당하겠지만, 그걸 고려하더라도 움직일 수밖에 없음.”
“가만히 두면 알아서 말라죽을 건데?”
“청주성의 위협을 간과할 수 없음. 게다가 현지에서 원소군과의 합류도 염두에 두어야 하는 이상, 적은 반드시 딸려 나옴.”
참, 이걸 뭐라고 해야 할까.
폭력적이지만 단순하다. 위험을 자초하는 전략임에도 상대가 움직일 것을 확신한다. 그것은 어떤 의미에서 굉장히 효율적이었지만, 실패하면 뒤가 없었다.
이 소녀는 그런 것을 전부 고려하면서도 전장으로 이어갈 방법을 제안했고, 상대의 움직임을 확신했다.
그 멍한 표정은 당최 읽을 수가 없었다.
그렇게 개별적으로 유비와의 회담이 끝난 이후.
막사로 돌아가던 길, 여포는 내게 말했다.
“주인아, 여기도 뭔가 좀 이상한 것 같아.”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동의할 수밖에 없었다.
아군의 위험을 초래하며 도박을 거는 유비. 제갈량은 상대가 분명 움직이리라는 확신에 가까운 것을 내걸었고, 유비는 아무렇지도 않게 그 제안을 수락한다.
재능이 있는 이들의 생각은 그런 법일까.
“난 사마의 그 재수 없는 계집애나 저럴 거라고 생각했는데, 원래 저 나이 또래는 다 저렇게 정신이 이상한 걸까?”
“사마의가 누군지는 몰라도, 확실히 제갈량 저 꼬맹이가 이상하기는 하지.”
만약 아군이 필수 보급을 최대한 챙겨 출병하였을 때, 적이 딸려 움직이지 않으면 그 이후의 움직임은 어떻게 하려고.
노림수가 통하지 않으면 청주와 북해 사이로 고립되는 것은 아군이었다.
넓게 보면 청주를 앞뒤로 포위하는 포진이었지만, 또반대로 말하면 청주성과 북해군 사이로 끼게 되는 셈.
상대는 움직일 수밖에 없다고 했던가.
“여기에 쭉 있을 거야?”
“그건 왜?”
“그야… 여기 있으면 언젠가는 조조네랑 부딪칠 건데.”
그녀는 아무래도 조조군과의 충돌을 걱정하는 것 같았다.
물론 여포 본인이야 유비군에 어떠한 애착이 있을 리도 없고, 결국에는 나와 그들이 대적하게 되는 것을 염려하는 것처럼도 보였다.
잠시 보며 느낀 게, 그녀는 내게 거짓말을 할 인물로는 보이지 않았다. 조조군과 내 관계가 썩 나쁘지는 않았다는 걸 암시하는 것이기도 하나, 아직 정해진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차피 여기서도 오래는 안 있을 거야.”
“진짜지?”
“미안하지만, 나도 목숨 소중한 줄 아니까.”
적당히 돈이나 모아 한적하게 살 거라고 말을 끝냈다.
사실은 잘 모르겠다.
조조군과의 나의 관계. 유비와 그 주변 사람들.
내게 있어 조조군은 잊어버린 옛 과거일 뿐이었고, 유비군 또한 현재 잠시 만났을 따름인 이들. 그렇기에 저울에 놓기에도 모호한 부분이 있었다.
여포라는 여자도 내게 간절히 다가오기에 어쩔 수 없이 곁에 두었지만, 그녀 본인을 기억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는 일정 부분 거리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앞으로의 일은 잠시 접어둔다.
지금은 유비와 약조했던 것만을 해주며 현재에 순응하는 것이 옳다고 보았다. 설령 그 앞에 무엇이 있건, 적당히 몸을 지키는 선이라면 괜찮겠지.
다소 안일할 수도 있겠으나, 지금의 내게 가능한 것은 그런 것밖에 없다.
그러니 이게 옳기를 바랄 뿐이었다.
* * *
전예는 유비군의 움직임을 바라보며 한숨을 쉬었다.
경계했던 일이 현실로 벌어진 지금, 북해를 지키던 방위군 또한 모종의 행동으로 옮겨 대처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도위, 적이 움직인 틈에 적 본진을 불사르는 것은 어떻습니까?”
“이미 다 싣고 떠났을 것이다.”
전예는 부관의 말을 일축하며 잠시 고민했다.
그는 기본적으로 원칙적인 행동을 선호하는 편이었는데, 적이 불확실성의 도박에 몸을 던진 이상에야 그 원칙만을 고수할 수도 없게 되었다.
이대로 곧장 직진하면 청주성을 포위하는 형국이 된다.
청주자사가 이끄는 군과 원담의 군은 현재 첨예한대치를 이어가고 있었고, 하여 작은 물방울 하나만 떨어져도 균형은 급격하게 무너질 것이 뻔했다.
전예가 청주자사 전해에게 맡은 임무는 오직 하나.
적을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것.
“출정한다.”
“네? 하지만 도위께서는.”
“상황이 바뀌었다.”
지금까지 전예는 적의 어떠한 도발에도 넘어가지 않았다.
허점을 보이더라도, 혹은 강압적으로 공세에 들어서더라도 오로지 북해군 일대를 수호하며 방어일변도로 버티고 버텼던 것.
그랬던 그가 적이 자초한 위기에 맞서 똑같이 달려드는 것을 선택했다.
“하지만 도위 어르신, 저들은 보급만 끊으면 알아서 흩어질 것이 아닙니까?”
“본론은 그렇겠으나, 이대로 적을 진군시킨다면 어떤 이유에서건 청주성에 부담을 안겨준다. 원소의 아들내미가 이끄는 군은 숫자가 많고 정예로 구성되었다고 들었다.”
“그러면 처음부터 공격했으면 된 것이 아닙니까?”
그것은 불확실함이다.
전면전에서 구태여 맹장이 이끄는 군과 맞상대할 필요는 없다.
하지만 적이 위험지역으로 스스로 몸을 던지며 아군을 끌어들였고, 그것이 위험한 도박임과 동시에 청주성을 포위할 수도 있는 선택지인 이상 전예도 방관할 수는 없었다.
“어쩌면 이게 더 나을 수도 있다.”
“네?”
“서주군이 청주성으로 진군하면 청주성은 앞뒤로 포위당하는 형국이나, 그들 또한 보급이 끊긴 상황에서 청주 깊숙이로 진군하는 처지. 반대로 청주성을 배후에 끼고 아군에게 포위당하는 것과도 마찬가지다.”
물론 전예가 이끄는 군은 방위를 전제로 하였기에정예라고 부르기는 힘들었고, 그간 훈련한 결과도 기껏해야 기존 명령체계의 수립에 그친 군이었다.
하지만 그것도 그 나름대로 쓸모는 있다.
전예는 지휘봉을 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전 병력을 집결시키고, 따로 수레를 잔뜩 마련해라.”
“네? 보급부대의 수레는 이미 충분히 모였습니다만.”
“그게 아니다.”
부관의 말에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을 이었다.
“적의 행동반경을 더욱 좁힐 생각이다. 적의의도야 안 봐도 뻔하지. 수성만 하는 아군을 끌어낼 속셈일 터. 그러면 아군은 그 평야에서도 수성을 이어가면 그만이다.”
수레는 그 평야에서의 수성을 위한 것.
전예는 씩 웃으며 고개를 돌렸다.
“도박을 걸었으면 패했을 때의 참상도 각오했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