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2화 〉06. 삼파전 (1) (22/40)



〈 22화 〉06. 삼파전 (1)

청주 전선은 움직인다.
선수를 잡은 것은 전해가 이끄는 청주 방위군.
그들은 하북에서접근하는 원소군의 본대를 저지하기 위해 움직였고, 이에 원소군도 대치 과정을 거침과 동시에 아군에 전령을 보내 후방을 교란할 것을 요청했다.

본대끼리의 싸움에 직접 관여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청주자사 전해라고 하여 후방의 경비에 소홀할 리가 없었다.
하여 서주군도 그 전쟁의 효시를 올리게 되었으니.


아군의 목적은 북해 일대의 교란.

청주에서 가장 중요한 요지라고 한다면 제국과 북해국.
제국에 자리한 청주자사의 치소를 포함해 청주성 일대는 전해가 지키고 있었지만, 북해성 인근으로는 확실히 주력이 아니라 전력이 다소 떨어졌다.
물론 전력이 미흡하다고 해도 방위군은 방위군.


저 멀리 장비의 전열 부대가 전진하는 게 보였다.

“아저씨. 아군은 우회.”
“정확한 위치는?”
“적 포진 자체가 우측으로 늘어져 있음. 아군 피해를 최소화하려면 전열의 끝자락 일대를덧대어줄 필요 존재.”

 잠깐으로 상대의 배치까지 읽었나.
고개를 끄덕이고 북을 두드리며 소리쳤다.

“전군 우향!! 우회하며 아군 전열로 붙어라!”

북해국 남부에 자리한 고밀현.
이쪽으로 배치된 병력은 아군의 절반도  되는 숫자였지만, 나름 기민하게 움직이며 착실하게 시간을 벌려는 게 보였다.
지금도 꼬맹이의 말을 빌려 병력을 움직이니 천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대열을 흩트리지 않으며 흥분하지 않는다.

“추격할 거냐?”
“전열도 발을 멈췄음.”


확실히 장비의 전열은 움직임을 멈췄다.
물러나는 군을 쭉 추격하면 대승으로 이어지지 않을까 싶었지만, 아군 또한 무리하지 않는 선에서 구태여 위험을 감수할 이유가 없었다.


“뭐야, 이게. 진짜 아무 일도 안 벌어지잖아.”

덕분에 내 옆에서 한껏 주인이는내가 지켜줄게! 라며 어깨 으쓱이던 여포만 불쌍하게도 어깨 축 늘어뜨리고 있었다.
여전히 주인이라고 부르는 건 어색했지만, 하지 말라고 해봐도 들어먹질 않으니 어쩔 도리도 없다.
물론 그 천하무쌍의 무인이 곁을 지켜주는  든든하다만.

“아무 일도 없는 게 제일이지. 우린 어차피 용병 같은 거니까.”


원소군이 강하게 요청하지 않는 이상에야 피를 볼 이유가 없다.
청주 방위군 또한 그 관계를 대충이나마 파악했는지 아군에게 일정 선을 긋듯 거리를 두며접근하지 못하게 하는 방향으로만 군을 운용하고 있었다.
눈치가 빠르다고 해야 할까.


“그래도 언제까지 이럴  같진 않은데.”
“소수임에도 물러서지 않으며 대열을 지킴. 상대 장수가 누구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군의 한계를 잘 파고들어 목적을 달성하고 있음.”
“유비 양반은 어떻게 할 생각이려나.”
“이대로만 유지해도 괜찮음. 단지 변수가 있다면 공손찬.”

공손찬?
그 양반은 아직 유주에 있지 않은가.
유주에서 청주로 오려면 기주를 반드시 거쳐야 했다. 물론 배편으로 바다를 건너온다는 방법도 있다던데, 솔직히 그 먼 거리를 배로 움직인다는  불가능하지 않은가.

“분명 당하고만 있지 않을 것.”


물론  자신도 공손찬이란 인물이 허망하게 맞고 있을 것 같진 않았다.


무려 북방의 공손찬이다.
특히 병주 일대에 기거하며 이민족과도 몇 번 만날 기회가 있어 들은  있었다. 그 이름은 적어도 이민족 사이에서는 죽음  자체로도 통하는 바가 있다던가.
그게 아니더라도 하북에 살며 공손찬의 이름을 모르는 이가 있을 것 같지도 않다만.


전장의 귀신.
제국 변경의 파수꾼.

자고로 천하에 그만큼 위명을 떨친다면 그게 헛것일 리도 없었다.
원소라는 이에게 계속 밀려났다고는 하지만, 한 번을 뒤집을 저력 없이 그 자리에 오른 인물은 아닐 터.


“움직인다면 하북 내에서의 대전.”
“그야 원소 시선을 끌려면 그게 최고겠지만.”

아직 봄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큰 규모로 전쟁을 벌일 수 있을까?
겨울도 슬슬  무렵이라고는 하지만, 오히려그렇기에 겨우내 소비했던 식량 등으로 인해 이맘때가 가장 식량난으로 시달릴 때였다.


“난 모르겠다. 서주야 그동안 차곡차곡 모은 게 있었다지만, 그쪽 사정은 모르겠네. 겨울이라 식량이 모자라거나 하지 않을까?”
“공손찬이라면 아마 움직일 것.”

꼬맹이는 정리되어가는 전장으로 시선을 돌렸다.
아군과  모두가 약속한 것처럼 회군하기 시작한 상황. 소녀는 그것을 지긋이 바라보며 특유의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왜 그렇게 단언하는 거냐?”
“공손찬의 행보는 유능한 장군이기 때문.”


소녀는 고개를 살짝 돌려 이쪽을 올려다봤다.
멍하니 있는 가운데 그 청록색 눈동자가 빛을 발한다.


“장군은 유능하면 유능할수록 민중의 마음을 모름.”


유능한 장군은 민중의 마음을 모른다.
제갈량은 그렇게 단언하고는 입을 꾹 다물었다.

무슨 의도인지 이해할 수는 있을 것 같았다.

장군의 유능함은 얼마나 전쟁을 잘 수행했는지.
하여 얼마나  병력을 많이 죽였고, 그 과정에서 실속과 효율이 있었는지로 판단한다.


인간의 목숨을 어찌 실속과 효율만 따지겠냐만, 유능한 장군이라면 인명의 존중과 전쟁의 효율을 저울질하지 않겠지.
확실한 효율을 따져 가장 최적의 상황에서 최적의 전술을 꺼낼 터.
애당초 희생을 돌아보는 이는  저울질의 무게를 견디지 못한다. 그런 이는 분명 유능한 장군이라고 부르기에는 거리가 있는 인물이겠지.

무슨 말인지는 이해할 수 있었다.


“유능한 장군이라.”
“아저씨는 어떤 인간이 되고 싶음?”

소녀는 과거 물었던 질문을 재차 꺼냈다.
 상황에서 그걸 묻는다는 게  얄밉기도 해서 꿀밤을 살짝 놔주고는 씩 웃었다.

“그 유능하신 장군님이라는 건 사양이다. 됐냐?”

같은 인간을 짓밟고 위로 올라가 봐야 그 위로 보이는 것은 본인이 쌓은 시체의 산이다.
죽음으로 쌓아 올린 시체 더미의 좌.
그런 자리에는 앉고 싶지 않았다.

제갈량은 내 대답이 제법 마음에 들었는지 살짝이나마 표정에 변화를 주었다.
언제 어느 때나 무표정에 가까운 꼬맹이라 그 변화는 보기 힘들었는데, 이렇게 입꼬리를 살짝이나마 올리고웃는 건 특히 희귀한 모습이었다.

“아저씨는 그런 소시민으로 사는 게  어울림.”
“말은 그렇게 했다지만, 뭔가 약 올리는 거 같은데.”


요 망측한 계집애가.

머리를 한  쥐어박고는 전차에서 내려왔다.
어차피 이번 전장도 전부 수습됐다면 본영으로 회군하겠지. 그러면 앞서 먼저 유비를 만나 앞으로의 일을 상담하고 싶었다.


“아, 주인아! 나도같이 가.”
“안 데려가면 빽빽 울 거잖아.”
“안 울었거든.”

거짓말하긴.

최근에도 밤에 소피 보러 나간 사이에 침상에서 엉엉 울고 있었으면서.
심적인 부담인지는 모르겠지만, 여포는 내가 시야에서 조금이라도 떠나면 금방이라도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이름을 불러댔다.
덕분에 나는 기억도 못 하는 사람을 막사에 들여 같이 생활하기에 이르렀다.

게다가 가끔 유비가 이쪽 바라보는 시선이 무섭다고.
밤에 무슨  있지 않았냐고. 최근 군에서 성교하는 이들이 늘어난 것에대해 혹시 지분이 있느냐고 물었을 때는 솔직히 심장 떨어지는  알았다.

이건 굉장히 억울한 사안이었는데, 정작 이 여인을 다른 막사로 보내려고 해도 이 악물고 절대 안 떨어지겠다는데 어떡하나.
게다가 이 여자가 나보다 힘이 세서 어떻게  수도 없다.

“히히, 이런 것도 좋다. 그치?”
“무슨 전쟁터에서 좋고 말고가 있나.”

이 여자, 아무래도 감성이 좀 망가진 것 같다.




* * *



원소군에도 한차례 비상이 걸렸다.
갑작스러운 공손찬의 진격.
그동안 첩자를 통해 간간이 받은 정보로는 당분간 공손찬 군이 대규모로 움직이기 위한 물자가 부족하다고 들었는데, 첩보로부터 불과 한  사이에 기습적인 진격을 당해버렸다.


전풍은 따로 원소에게 불려 그와 독대하고 있었다.

“전풍. 이번 사안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청주로 진군한 아군을 물리려는 것이 일차적인 요인이겠고,  과정에서 상대적으로 전력 누수가 생긴 아군에 타격을 줄 것이 두 번째 요인이겠지요.”
“유주에서 이만한 생산량이 갑작스레 나올  없다.”

원소의 말에 전풍은 입술을 꽉 깨물었다.
물론 정상적인 방법으로야 군수물자의 부족을 극복할 수는 없을 상황. 겨울이 끝나고 봄이 와, 여름 무렵까지는 되어야 최소한의 생산량이 복구되는 것은 지극히 상식이었다.
그 상식을 깨버릴 방법은 오직 하나.

“이 겨울을 기점으로 백성들을 수탈했다면 가능합니다.”
“나도 그럴것으로 생각은 했다만, 공손찬 그이도 안 되겠군. 그 원한을 어찌 다 청산하려고. 유주에는  한동안 아사자가 속출하겠군.”

겨우내를버틸 식량.
하여 봄이 되고 재차 생업에 매진하기 위한 비축분까지 전부 수탈하여 빼앗았다면 단시간에 물자를 확보할 수는 있었다.

“분명 효과적이긴 하지만, 장기적으로 보아 악수입니다. 공손찬은 이미 예전부터 유주 내에서의 지지를 잃었고, 민심의 이반이 속출하고 있습니다.”
“공손찬은 포악하기는 하나 바보가 아니다. 그 또한제 기반을 깎아 움직였다는 것을 알 것이고, 적어도 동등 그 이상의 피해를 강요해오겠지.”

저수와 장합은 청주로 떠났다.
당장 그들을 불러들일 수도 있겠지만, 그들이 돌아오는 것만을 기다리고 있을 수는 없었다. 공손찬은 이미 기주 국경으로 침입해 현재는 발해군 인근을 휩쓸고 다니는 상황.

“남피라면 성벽도 높아 그 공세를 붙들 수는 있겠으나, 업에서 이곳까지 병력을 이송하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살릴 필요가 있을  같습니다.”
“하면?”
“공손찬의 주력은 기병. 북방에서 남피로 넘어오기 위해서는 장수를 넘을 필요가 있는데, 저희는 그곳을 끼고 한 번 유인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지요.”
“그런가.”

원소는 지도를 펼쳐 한동안 그것을 바라보았다.
북방의 맹수.
 짐승은 지금 흐름을 타 기세를 끌어올리고 있었다.

“이보게, 전풍.”
“예.”
“짐승을 사냥하는 법을 아는가?”

짐승, 그것도 맹수를 잡는 법은 생각보다 까다로웠다.
여러 방법이 있겠지만, 그 맹수가 자신을 바라보며 일직선으로 달려올 때에 대처하는 방법은 따로 있었다.


“그대는 함정을 놓자고 했지.”


원소는 지도 한편을 가리키며 빙긋 웃었다.
그 특유의 황금색 눈이 빛을 발한다.

“맹수를 잡는 것은 꼭 한 가지 방법으로 귀결되진 않는다.”


그중원소가 가장 선호하는 방법은따로 있었다.
맹수가 가장 바라 마지않는 그것을 보여주고, 조금씩 조금씩 유인한다. 그렇게 닿을 듯 말  그것을 조련하여 진을 빼는 방법.


“함정을 치는 것은 좋으나, 아군에게도 시간이 별로 없다. 지금은 천천히 안으로 끌어들여 한 번에 일소하고 싶은데, 그대의 생각은 어떤가.”
“……위험부담이 클 것입니다.”
“부담이라. 그것도 나쁘지 않지.”


천하의 공손찬을 잡는 일이 쉽다면 그게 더 이상한 것.
그와의 전쟁만 이미 5년을 넘게 이어왔다.

“맹수에게 도전한다면  나름의 각오도 필요하겠지.”



공손찬의 약진 속, 원소도 본대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북방에서 몰려오는 공손찬의 군이 약 5만에 육박했으며 이를 맞상대하기 위해 업에서부터 출발하는 원소군의 총력이 약 4만에 달하는 대규모의 전장.
청주를 놓고 시작한 알력싸움은 그간 균형을 유지하고 있던 공손찬과 원소 사이의 대치 관계를 무너뜨렸고, 197년의 말미에 이르러 하북의 패권을 걸고 재차 대규모 회전이 펼쳐진다.


청주와 기주.


하북 패권을 놓고 겨루는 두 강자의 전장은 초읽기에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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