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1화 〉05. 당신의 이름 (4) (21/40)



〈 21화 〉05. 당신의 이름 (4)

원소의 대군이 황하를 넘어 청주 내륙에 상륙한다.
이에 대비하는 전해의 군이 2만.
청주까지 원소의 손에 넘어간다면 후방을 견제할 방법이 상실되는 것이기에 공손찬도 청주 공방전은 촉각을 세울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전해 장군이라면 분명 괜찮을 것입니다.”
“서주가 돌아섰다고 들었다.”

공손찬은 침울하니 고개를 떨궜다.

유비.
그녀와는 청년기부터 정이 있었다.
가난한 집안 사정과는 별개로 인간 자체가 활발하고 의지가 엿보였다. 물론 그 사이사이 세상을 염세적으로 바라보는 것이 흠이었지만, 출신으로는 서자 출신이기에 마찬가지로 사정이 좋지 않았던 자신과는 잘 어울릴 수 있었다.


재회했을 때의 유비는 어땠던가.

청년기의 유비는 성격 자체야 활발하지만, 그와 별개로 세상 따위 어차피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인식을 전제에 깔고 있는  같았다.
하지만 황건적의  등을 거치며 그녀는 한층 성장했다.
진심으로 천하에  뜻을 펼치고자 하는 게 보였다.

그렇기에 손을 뻗었다.
재능 있는 이가 의지의 불씨를 되살렸다면, 분명 그것은 자신에게 도움될 거로 생각했다. 천하를 진심으로 우려하는 모습에, 그러면 본인을 지지해주기를바랐다.

“유비 그 은혜도 모르는 년. 장군께서 얼마나 아끼고 키워주셨는데.”
“되었다.”

공손찬은 유비를 알고 있었다.
과거와 달리 현재의 그녀는 한때의 연으로 움직이는 이가 아니다. 올바른 것을 추구하여 대의를 따르고자 하는 모습은 썩 달갑기도 했다.
그렇기에 자신이라면 다룰 수 있으리라 여겼다.

“사매의 눈에는 썩 차지 않았는가 보군.”


힘으로 천하를 헤쳐나가는 것이 마음에 안 들었던가.
생각해보면 그녀는 자신이 유주자사 유우를 죽인 이후로 어딘가 서먹서먹한 태도를 보였다. 어쩌면 그게 인의를 저버린 행위라고 여겼을까.

이미 떠난 이를 탓한다고 바뀔 건 없었다.


사매.
 공손찬이 천하를 무대로 싸울 인재는 아니라고 보았는가.
원소의 길이 조금 더 옳다고 보았느냐.

공손찬은 작게 웃으며 머리에 투구를 고쳐 썼다.


그러면  증명할 때가 왔구나.

이어 고개를 든다.
한 점의 망설임 없는 눈.
평생의 숙원이던 역경이 무너졌고, 그에게 있어 더는 뒤로 물러날 곳도 없었다. 틀어박힐 보금자리도 잃었으니 이제 남은 것은 오로지 앞만 보고 전진하는 것뿐.


“이곳에서 직접 청주를 지원할 수는 없다.”

그는 말을 이어가며 창을 쥐었다.

“그러니 이쪽은 원소를 친다.”


본토의 원소를 격파할 수 있다면 청주의 저항도 무의미하게 끝나지는 않을 터.
하북 정세가 소란스러워진다면 청주로 향했던 원소의 군도 회군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았다.

원소의 기습으로 역경이 떨어졌고, 이후 하북에서 공손찬의 입지와 영향력은 천천히 원소에게 이양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것이 전투의 향방을 가를 정도는 아니다.
그에게는 아직 저 너른 북방을 누비며 이민족과의 숱한전투로 단련된 정예가 남았다. 그에게 있어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최고의 보물이자 지고의 병기가.

“창을 들어라.”


공손찬은 자리에서 일어나 말에 올랐다.


“우리가 지켜온 한을 내부에서 어지럽힌다면 국경을 백날 사수해야 무엇하랴.외부의 불안은 이미 아군의 적수가 되니, 이제 남은 것은 내환을 처리하는 일뿐.”


 백마장군은 아직 죽지 않았다.
천하에 그것을 증명하리라.

“전군에 명하라.”

그는 고개를 살짝 내리깔며 말을 이었다.

“오랜기다림은 끝났다.”




이후 공손찬의 군은 오랜 침묵을 깨고 전면전에 들어섰다.
상정하지 못한 갑작스러운 기습.
총력전의 양상을 보이며 갑작스러운 공세로 전환한 공손찬의 군은 확실히 강했다.
원소 또한 국경을 필두로 방비를 두터이 하고 있었지만, 한  기동력을 살린 그들을 상대로 단지 지키는 것만으로는 의미가 없다는 것을 증명하는 꼴에 지나지 않았으니.

공손찬이 군을 일으키고 일주일.
 사이로 원소의 성채 셋이 함락되었고, 요새는 열 곳을 잃었다.


* * *


장수군은 연이은 패배로 남양의 완까지  물러났다.

조조군은 분명 강했다.
그러나 형주의지원을 받는 장수군 또한 규모로 보아 충분히 상대해볼 법도 했는데, 정면으로 부딪칠 때마다 패전에 패전을 기록했다.
아직 장수군에 남아 그들을 보좌하던 가후가 이것저것 책략을 짰고, 그 부분에서 일정 성과를거뒀음에도 연이어 패배한 것이기에  패배는 더욱 쓰라렸다.
이것은 그저 조조군의 전력이 너무 강한 탓일까.


반면 완까지 쭉 들이쳐 포위하기에 이른 조조군은 침묵만이 감돌았다.
마치 그 분위기 전체가 날이 선 듯한 느낌이었다. 잘 갈리어 예리함이 감도는 비수와도 같이 비유할 수 있을 정도로.
잘 갈고 닦인 비수가 그대로 완을 겨냥하고 있는 상황.


“장군, 실례하겠습니다.”


우금은 천막을 걷어 내부로 들어가며 고개를 들었다.
그런 그를 바라보는 여인.


“무슨 일이죠.”
“그것이, 이번에 조인 장군께서 따로 전언이 있어….”

말하는 와중에도 긴장이 감돈다.
같은 군에 속해 벌써 2년이나 지났지만, 우금은 여전히 이 여인이 어렵기만 했다.
언제나 북풍 몰아치듯 차가운 표정과 시선.
분위기는 싸늘하기 그지없다. 언행도 무뚝뚝했고, 무엇보다 군청색으로 빛나는 눈동자가 너무나도 차가워무기질적으로 느껴졌다.


“이번 공략을 앞두고 사기진작을 겸해 자리를 만드신다고 하셨습니다.”
“됐다고 전하세요.”
“하지만….”


우금이 살짝 물고 늘어지려 했지만, 그녀의 반응은 쌀쌀했다.


“저는 전쟁을 하러  것이지 친목을 다지러 온 게 아닙니다.”
“그래도 서로 잘 아는 것이….”
“알면 무언가가 달라지나요?”


그녀의 대꾸에 우금은 어깨를 떨궜다.
언제나 이랬다.
전장에서의 그녀는 믿을 수 있는 아군이며 형주 방면 최강의 무장으로 손꼽혔지만, 사적으로는 언제나 일말의 재고도 없이곁을 주지 않는다.

과거에는 저렇지 않았다고 들었지만, 지금 모습을 오래 보아 그런지 저 얼음장 같은여인이 나긋나긋하게 구는 것을 감히 상상할 수도 없었다.
그는 어쩔 수 없이 고개 숙여 인사했다.

“그러면 조운 장군님, 실례했습니다.”
“다음 출격 때 사전에 보고하세요.”
“예.”

그렇게 우금이 물러간 이후, 조운은 의자에 등을 기대어 몸을 축 늘어뜨렸다.


지쳐간다.
침울하게 가라앉은 듯한 기분을 느끼며, 애써 그것에 저항하지 않고 탈력감에 몸을 맡기며 눈을 감았다.
이렇게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는 시간이 싫었다.


“오라버니.”

전장을.
그곳에 서면 다른 잡생각이 전부 사라졌다.
분명 그녀는 과거 전쟁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이었지만, 역설적이게도 이제는  전장에서만 탈력감과 무기력함을 느끼지 않게 되었다.

그녀는 오늘도 눈을 감았다.
재차 벌어질 전장을 기다리며, 누군가를 추억하며.


북형주의 판도는 조조군이 주도하기 시작했다.
이제 조금만 더 노력하면 된다.
주변의 위협을 전부 제거하고, 북으로 원소를 깨부순다. 그러면 한때 본인들의 곁에서 실없이 웃던 남자가 바랐던 미래가 그려지지 않을까.

“저 열심히 하고 있죠?”

그녀는 대답 돌아오지 않을 말을 꺼내며 눈을 감았다.

* * *




장비는 다소 아니꼬운 표정을 지었다.

“형아는 어디에서 왔어요?”
“나? 그러네. 일단은 서주? 그나저나 어른들이 갑옷 입은 사람이랑 놀지 말라고 안 가르치디?”
“아, 엄마가 그랬어요!”
“그런데  나한테 들러붙어.”

전호는 귀찮다는 표정을 지으면서도 주변에 모인 아이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뒤로 쭈뼛거리며 자리 지키는 여포.

장비에게는 이해할  없는 광경이었다.
전호가 아군의 점령지인 동무현 인근으로 자주 시찰을 나온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어차피 곧 떠날 곳에서 뭐하러 이것저것 살피고 조사하는가.

어린아이들에게 저리 묶여서 상대하고 있는 것도 그렇다.
왜 구태여 애들 근처에 다가가나.  그래도 겨울이라 식량이 부족한 상황에서, 점령지의 아이들이 군인에게 접근한다면 그 이유는 불 보듯 뻔했다.

“이렇게 들러붙어도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시무룩한 표정을 짓는 아이들.
이에 전호는 한숨을  내쉬고는 품 안에 손을 넣었다.

“아, 곰곰이 생각했는데 아무것도 없진 않네.”

그의 손안으로  움큼 나오는 다과.
다과처럼 취급하기 귀찮은 것을 우연히 준비했을  없었다. 게다가 설령 본인들이 먹고자 준비했다고 쳐도 그 양이 너무 많다.
그런데도 전호는 태연하니 아이들에게 건네며 웃는다.


“다 사이좋게 나눠 먹어라. 알겠냐?”
“네!!”

원하는 것을 얻었으니 빠르게 사라지는 아이들을 보며 그는 어이없다는 듯 헛웃음을 터뜨린다.


“거참, 진짜 먹을 것만 받고는 바로 가버리네.”
“역시 이런 건 예전 그대로야.”
“뭐가?”
“……아무것도 아냐.”


장비는 그 둘을 바라보며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들에게 다가갔다.
우선 여포는 장비를 보자마자 눈썹을 움찔거렸다. 그녀와는 잠시 다툼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런 사소한 것을 집고자 온 게 아니었다.

“뭐하러 이렇게까지 하나.”
“장비 어르신 아니유.”
“어르신은 개뿔.”

장비는 손을 가로저으며 아이들을 가리켰다.


“어차피 이곳에서 장기로 주둔할 것도 아닌데. 게다가 공손찬의 군을 몰아내면 이 지역은 원소에게 돌아갈 땅이다.”
“그야 그렇겠지.”
“너, 이번에 누이한테 구휼을 제의했다며.”

그것도 알고 있었냐며 전호가 너스레를 떤다.
이에 장비는 한숨을  내쉬었다.


“구태여 이 지역의 민심을 산다고 좋을 게 어디 있나. 어차피  거쳐 갈 땅이고, 우리의 영토도 아닌 걸 왜 사서 고생인지 모르겠다.”
“그야 이쪽 사는 꼬락서니가  빡빡해 보였으니까.”
“효율적이지 않다.”

그 말에 전호는 픽 웃었다.
사람 사는 일에 효율이 어디에 있나.
물론 구휼 자체야 유비가 알아서 판단할 일이었고, 아군의 사정이 넉넉하지 못하다면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있었다.
그는 어디까지나 제안했을 뿐.

“인간 효율이라는 단어 하나로 전부 끝나면 얼마나 좋을까.”
“저들이 불쌍하다는  알고 있다만.”


그래도 사서 고생할 필요도 없다.

청주는 아직 황건적의 여파를 전부 이겨내지 못한 땅.
그렇기에 사람들의생계가 여전히 궁핍하다는 건 장비도 알고 있었지만, 아군의 백성도 아닌 이들에게 힘을 기울일 필요가 어디 있느냐고 생각했다.
이건 사람의인정을 논하기 이전, 조금 더 원초적인 문제였다.

“뭐, 그 부분은 유비 님이 알아서 판단하시겠지.”
“누이는 네 의견을 받아들이실 모양이다.”


안 그래도 본진에서는 따로 구휼 물자를 구별하며 준비에 한창이었다.
물론 아군 숫자보다 군량미를 넉넉히 마련했기에 이 정도라면 베풀지 못할 것도 아니었지만, 비축하는 것이 낫지 않느냐는 의견도 다수 있었다.
하여 장비는 이 안건의 발언자인 그를 찾았다.


“아니, 뭐야. 그럼 왜 나한테 쓸데없는 소리 했느냐고 따지러 온 거요? 장비 어르신. 내 그렇게 안 봤는데….”
“그런 게 아니라 그냥 물어보러 온 거다.”

그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런 곳에 베풀 군량이 있다면 서주에 베푸는  응당 마땅한 조치가 아닌가. 하지만 유비는 그런 장비의 의견에도 고개 가로저으며 이게 옳다고 말했다.
그 연유를 물어도 답변 없는 누이를 대신하여 그를 찾았다.


“민심을 사는 건 좋지만, 청주는 어차피 공손찬 아니면 원소의 영역에 편입될 거다. 우리와는 하등 연도 없는 곳의 민심을 얻어 좋을 게….”
“그러니까, 그거야.”


그는 손가락 까닥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게  가르면서 도울 대상을 선정하는 거. 난 그런 거 별로 안 좋다고 보거든. 여유가 되고 도울  있으면 돕는 거지, 뭘 그리 따지나.”
“……누이도 그리 생각했을까.”
“난 모르지? 어차피 이 군의 물자는 전부 유비가 승인하고 안 하고에 따라 정해지는 거고, 내 것이 아니잖아?  그냥 건의했을 뿐이요.”

유비가 하겠다고 했으면 본인도 할 말이 없다며 너스레를 떤다.
장비는 그런 전호를 잠시 바라보다 이내 등을 돌렸다.


“누이와 반평생을 함께했다.”

그런데도 정작 유비의 진심을 이해한 건 본인이 아니었다.
그 뒷말을  삼키며 장비는 자리에서 떠났다.


“저 양반은   저래? 뭐 잘못 먹었나?”


홀로 질문하고, 홀로 납득하여 떠난다.
전호는  등을 바라보며 어깨를 으쓱였다.


“나는 저거 좀 알 것 같은데.”
“그래?”

여포는 그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인간의겉과 속.
그것을 구분하는 건 타인에게는 너무 어려운 문제일 테니까.

당장 이 남자만 해도 그랬다.

전호, 혹은 호세.
 남자는 자신을 자칭하는 이름을달리하였다.

아마 전호는 대외적인 이름.
관직에 오르기 시작하면서 이름을 붙이기 시작했는데, 전호라는 이름을 달고 활동하던 그는 어딘가 딱딱하게 굳어 이것저것 고민하는 게 많았다.

반면호세라고 자신을 자칭할 때의 그는 다소 편해 보였다.
신경  것 없이 자신이 하고 싶은 대로 산다.
어떤 의미에서 보면 조조군에서의 전호라는 인생보다는 그저 한 명의 인간 호세로 살 때, 그는 비로소 빛나는 것이 아닐까.


여포는  부분에서 잠시 고민할 수밖에없었다.
원래라면 사마의나 진소연에게 전통을 보내 그가 살아있음을 알려야 했다. 설령 기억을 잃었더라도 그를 기다리는 사람은 너무 많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의 그는 한껏 짐 덜어내어 편해 보였다.
어쩌면 이게 진정 자신답게 사는 것 아닐까.

“주인아.”
“왜 자꾸 불러?”
“당신은 이름이 뭐야?”

이에 전호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이건 또 무슨 쉰 소리인가. 이름이라면 본인도 알고 있을 거면서  되묻나.

“호세요, 호세. 알면서 뭘 물어봐.”
“……그래?”


그녀는  대답을 듣고는 빙긋 웃었다.
다른 사람들에게는 미안하지만, 항상 전장을 구르며 괴로웠을 남자가 겨우 본인다운 삶을 찾았다면 그것을 짓밟고 싶지 않았다.
그렇기에 여포는 고개를 끄덕인다.


“주인이의 이름은 호세. 그걸로 괜찮은 거야?”
“이건 또 뭔 헛소리요. 당연하잖아.”


어차피 그가 살아있는 이상, 또한 유비군에 잠시나마 의탁하고 있는 이상 조조군에 언젠가 소식은 전해진다.
그러면 그때까지는 조금이라도  자유를 누리게 하고 싶었다.

여포는 빙긋 웃으며 손을 뻗었다.


“주인아, 잠깐 같이 가자.”
“어딜 가. 나 이제 밥 먹으러  거야.”
“산책하러 가자. 응? 나 심심해.”

어이가 없네.
그는 이내 한숨을 푹 내쉬면서도 그 손을 거절하지 않았다.
여포는 말로는 싫다 해도 결국에는 응석을 받아주는그가 정말 좋았다.


그러니까 난 당신을 위해 살 거야.
미안하지만, 저쪽에는 조금 더 기다리라고 해야겠네.

그녀는 저편을 바라보며 잠시 고개를 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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