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화 〉05. 당신의 이름 (3)
하염없이 우는 여인을 밖에 두기도 모호해 우선 내 막사로 데리고 들어왔다.
솔직히 아예 모르는 이로 보이지 않는 것도 있었고, 무엇보다 이 여인을 바라보는데 가슴 한편이 먹먹하여 요동치는 감정 탓도 있었다.
왜 그리 슬픈 표정을 짓는가.
나는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데.
그렇게 우리는 단둘이 되어 잠시 침묵했다.
그녀는 훌쩍이며 눈물을 닦았고, 내 경우에는 무슨 말을 꺼내야 좋을지 몰랐다는 게 가장 크지 않을까.
잠시 서로를 바라보았다.
붉은 머리카락.
갈색 눈동자는 눈물을잔뜩 머금었음에도 선명하게 빛난다. 복장은 가벼운 경갑을 두른 것처럼도 보였지만, 그건 어딜 보아도 유비군의 제식은 아니었다.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그녀는 겨우 울음을 멈추고 고개를들었다.
답하기 어려웠다.
여기라고 함이라면 청주를 지칭하는 것은 아니겠지. 아마 유비군을 통틀어 왜 그녀의 곁에 머무르냐고 해석하면 좋을 것 같았다.
그 질문은 참 곤란한 질문이었다.
마음에 들었으니까. 그런 대답으로 얼버무릴 수있겠으면 좋겠지만, 기억을 잃기 전. 그리고 아마 3년 정도 전쯤의 나는 조조군 소속이었다고 했던가.
그렇다면 내 과거를 아는 이에게 답할 말도 아니었다.
“상황이 상황이었어.”
“살아있었더라면, 말이라도 해주지….”
그녀는 살짝 손을 뻗었다.
그러더니 잠시 멈춘다. 무언가 두려운 듯, 혹은 아까운 듯.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부서질 무언가에 접하는 모양새로 이쪽을 향해 움찔거리는 그녀의 모습이 다소 애처롭게 느껴졌다.
하여 내가 먼저손을 뻗었다.
그녀의 손을 맞잡고는 안심하라는 의미로 웃어주었다.
“……아.”
“손 정도야 잡아줄 수 있는데, 이게 아니었나?”
뭐 이쪽을 향해 주인이라고도 하고, 내게 접하는 태도도 그래서 나쁜 관계는 아니라고 지레짐작했는데.
그녀는 그런 내 질문에 고개를 힘껏 가로저었다.
“아냐! 그게 아니라, 놀라서. 응! 그냥 좀 당황했을 뿐이야.”
“안 어지러워?”
난 뭐 목 부러지는 줄 알았네.
무슨 머리를 그렇게 세게 가로젓나.
“아무튼, 왜 연락 안 했냐는 얘기였지.”
“모두 걱정했어. 다들 그 시체라도 찾겠다고. 아니면 안 죽었을 거라고 확신하는 애들도 있었고. 다들 진짜, 정말로 걱정했단 말이야.”
그녀의 말을 얌전히 듣고는 고개를 들었다.
대화하기 전 명백하게 해야 할 것이 있다.
“그 다들이라는 건 누구지?”
“……응?”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
하지만 이 또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미안한데 내 머리가 맛이 가버렸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다들 중랑장 전호라는 이를 기억한다.
하지만 내 마지막 기억은 병주 산골에서 조그마한 산채 놓고 살던 호세로서의 나였다.
조조군의 무장, 황제 폐하의 직속 무관.
그런 수식어는 아무리 말해도 와닿는 부분이 없었고, 처음 유비를 만났을 적에도 이렇다 할 느낌은 오지 않았다.
“기억이 없어.”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197년?이제 곧 198년이겠네. 하지만 내가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건 189년이거든. 이마저도 최근, 그러니까 두 달 조금 더 됐나? 그때 정신 차린 거야.”
과거의 나는 연락하지 못해 미안하다고 할 수 있겠으나, 지금의 내게는 다소 동떨어진 얘기였다.
안타깝지만 떠올릴 수 없는 일은 사죄할 방도도 없다.
“그, 그러면….”
그녀는 애써 겨우 입을 열었다.
표정이 일그러져 그 예쁜 얼굴이 엉망이다.
기껏 울음을 멈췄는가 하였더니, 금방 또 눈물샘이 고장 난 듯 뺨을 타고 내려오는 눈물이 안쓰러웠다.
“정말 아무것도, 모르는 거야?”
“미안하지만.”
“우리가 만났던 거, 그런 것도? 정말… 전부 다 없던 일이 된 거야?”
“그런가 보더라고.”
너무 모질게도 담백한가.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그녀의 표정과 몸짓, 그 행동 하나하나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 떨리게 하는 슬픔이 있었지만, 그 이유에 공감할 수가 없었다.
설령 그게 진심 어린 행동일지라도.
“어쩌다가. 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미안. 진짜 아무것도 기억나는 게 없어.”
가끔 귓가에 내리 앉아 속삭이는 이명만이 그 잔재처럼 남을 따름이었다.
기억이 돌아올기미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이 여인을 보면 본능적으로 가슴 한편이 근질거렸지만, 그건 신체의 작용이었다.
기억으로 하여 그녀가 누구인지 떠올릴 수 없는 이상, 그녀는 내게 그저 이상한 느낌의 여인으로밖에 남지 않는다.
“그러면 사마의, 그 재수 없는 꼬맹이도 기억 안 나?”
그녀는 울먹이며 내 손을 꽉 붙잡았다.
“조운이라고. 주인이를 오라버니라고 부르던 계집애도 있어. 진궁이라고, 그 유독 잘 따르던 여자도 있는데. 싸가지는 없어도 조조 그 꼬맹이도 있고….”
“기억을 말한다면 아무것도.”
“진소연. 그 여자도 정말 기억 안 나?”
진소연.
매번 날 찾는 이들이 언급하는 인물이었다.
누군지도 모를 인물.
그러나 내게 많이 관여된 인물이라는 것만큼은 알겠다. 그야 주변에서 이리도 그 이름을 읊는데 모르는 것도 이상하지.
“그러면 있잖아.”
그녀는 상체를 일으켜 내게 접근했다.
“다시 돌아갈 생각은, 있어?”
모르겠다.
이 여인의 말만 들으면 그 주변으로 나와 친밀했던 이들도 다수 있던 것 같지만, 그 부분에서 기억이 없으니 뭐라고 하기도 힘들다.
게다가 다소 거북함도 있었다.
조조라는 인물 개인에 대한 묘한 거부감과 장군이라는 직함에 대한 부담감. 게다가 그들은 날 기억할 것인데, 정작 내가 그들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것에서 오는괴리감까지.
유비의 권유에 응한 것도 이곳에서 중역으로 있기보다는 단순한 일을 조력하며, 언제든 떠나도 좋다던 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결국에는 답하지 못했다.
그녀는 그런 나를 바라보며 손을 뻗는다.
“주인이는 앞으로 뭘 하고 싶어?”
“하고 싶은 것?”
“그냥. 아무거라도 괜찮으니까.”
그 갈색 눈동자가 날 응시한다.
앞으로의 일이라고 해도 딱히정해둔 건 없었다.
유비의 곁에 있는 것도 당분간 신세 진다는 느낌이 강했는데, 기본적으로는 전쟁과 조금 동떨어져 조금 평화로운 삶을 보내고 싶었다.
물론 돈이 없다면 평화라는 말도 우습기야 하다만.
“일단은 돈을 좀 모아서, 그 뒤에는 한적하게 살고 싶어.”
“……그래?”
이후 그녀는 입을 다물었다.
야속하게도 시간은 점점 흘러갔다. 내 침상에 앉아 고개를 든 그녀를 바라보자면 알 수 없는 고동이 자꾸만 가슴 한편에서 쿵쿵 울려댔다.
“생각해보니까 말이야.”
가장 중요한 것을 잊고 있었다.
“나 아직 그쪽 이름도 몰라.”
“……전부 잊었다고 했었지.”
그녀는 쓰게 웃으며 고개를 들었다.
“그냥 여포. 자는 봉선이고, 그저 어디에나 있을 평범한 여자야.”
“여포라.”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아니 잠깐만.
여포? 내가 아는그 이름이 맞나?
생각해보니 기시감이 있다 싶었는데, 과거 병주에 있을 적 한 번인가 먼발치에서 본 적이 있었다.
방천화극을 휘두르는 불패의 무장.
하여 뒤에 이름 붙기를 천하무쌍.
“혹시 그 천하무쌍이라던?”
“……아냐.”
그녀는 작게나마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는 그냥 여포.”
“아니, 그. 내가 아는 거랑은 좀 다른데.”
이제 보니 천하무쌍 여포를 상징하는 방천화극도 있다.
내가 왜 이걸 몰랐지?
저런 무기를 다루는 붉은 머리칼의 여인이라면 한 명밖에 없을 건데.
아마 진짜 여포라고 생각하기에는 그 몸짓이 너무나도 가녀려서, 그 분위기가 너무나도 여리고 슬퍼 보여서 연상할 수 없던 것같았다.
여포는 그런 이쪽의 말을 부정했다.
“그냥 어디에나 있는 겁쟁이야. 잊히는 게 무섭고, 떠날 게 두렵고, 버려지고 싶지않아 벌벌 떠는 그냥 그런 여자.”
몸을 일으켜 천천히이쪽으로 다가온다.
서로의 숨결이 섞일 정도로 얼굴을 마주하며 그녀는 말을 이었다.
“그저 당신을 사랑하는 한 명의 여자야.”
* * *
이후 우리는 날이 밝을 때까지 얘기를 나누었다.
앞으로의 일.
그녀는 내가 평범하게 살고 싶노라면 그 의지를 존중하겠다고 했다. 정확히는 내가 무슨 생각을 하건 거절할 의향도 없어 보였는데, 그런 와중에 곁에 있게만 해달라고 한다.
과거의 일을 무작정 지금의 내게이입하여 끌어오지 않는 건 좋았지만, 그 모습에선 어딘가 위태로움을 느꼈다.
마치 조금이라도내 의견에 반박하지 않겠다는 듯한.
어쩌면 내가 본인을 떠날 거로 생각하는 것만 같았다.
물론 나도 기억이 없는 관계로 그녀와의 관계성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게다가 아무리 객장 신분이라고 해도 나는 유비군에 속한 인물.
그렇기에 그녀를 따로 놓고 유비를 찾아가려고 했는데.
“……안 돼.”
“아니, 금방 돌아온다니까?”
“제발. 부탁이야. 그냥 나랑 같이 가면 안 돼? 그 유비 걔가 문제야? 그거라면 괜찮아. 무기도 놓고 갈 거고, 아니면 몸도 묶고 갈까?”
“그게 아니라니까.”
그녀는 한사코 나와 떨어지는 걸 반대했다.
아예 시야 바깥으로 내가 사라지는 걸 원치 않는다는 느낌마저 들 정도로. 그것은 어떤 의미로 정신적인 문제가 있지 않을까 싶었다.
대체 여포와 나는 무슨 사이였을까.
여포는 나를사랑했노라고 했다.
하지만 내가 우리의 관계성을 물었을 때, 그녀는 단지 슬픔을 가리려는 듯 웃으면서 자신이 일방적으로 사랑하고 있노라고 고백할 뿐이었다.
냉정하게 말하면 현재의나와는 무관한 일이다.
그러나 이렇게까지 애절하게 달라붙는데 그걸 모질게 내치는것도 할 짓이 아니지. 무엇보다 나 자신도 그녀를 밀어내고 싶지 않았다.
어째서?
자신에게 되물어도 기억이 없으니 돌아오는 말도 없다.
어쩔 수 없이 여포와 동행했다.
가는 길마다 웅성거리는 소리가 거슬렸다. 하지만 정작 그녀는 주변의 반응 따위 아무래도 좋은지 내 손을 꼭 붙잡고는 뭐 그리 좋다고 헤실헤실 웃기바쁘다.
그렇게 유비의 막사에 도착했을까.
“아침부터 절 찾으셨다고 해서 무슨 일인가 했는데.”
“그게 참.”
유비는 떨떠름한 시선으로 나와 여포를 번갈아 바라봤다.
“……오랜만이죠?저희.”
여포와 일면식이 있었나.
유비의 질문에도 여포는 입을 꾹 다물었다. 그저 내 손을 조금더 세게 붙잡았을 뿐인데, 그 손은 작게나마 떨리고 있었다.
이게 그 이름 높은 천하무쌍이라고?
나는 잘 모르겠다.
“어떻게 된일인지 설명해주실 수 있죠?”
“그게 나도좀 복잡한데.”
이게 무슨 들짐승을 주워왔다는 식의 간단한 얘기도 아니었고, 무려 그 천하무쌍이다.
혹시나 내기억과 현재 상황이 다를까 싶었는데, 유비는물론이거니와 그 주변에 있던 관우 또한 이쪽을 경계하며 한 손으로는 언월도를 꼭 붙잡고 있었다.
“내가, ……아니. 제가 설명할게. …요.”
“하아…. 정말 예상치도 못했네요.”
그렇게 보지 마라.
나도 당황스럽기는 매한가지라고.
“일단 길어질 것 같으니까, 어디 자리를 잡죠.”
유비는 재차 한숨을 푹 내쉬면서도 대화하는 방향을 선택했다.
물론 내 잘못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어떤 의미에서는 내 잃어버린 과거와도 연관됐으니 무관하다고도 볼 수 없었다.
게다가 나 자신도 울며 찾아온 여인을 밀어내고 싶지는 않았기에 유비의 이러한 대처에는 감사할 따름이다.
그렇게 우리는 잠시 대화를 나누었다.
한때 조조군에 있던 여포.
그리고 마찬가지로 그 조조군에 있었던 나.
잃어버린 과거와 지금을 살아가는현재.
앞으로도 풀어야 할 실타래가 많을 듯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