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9화 〉05. 당신의 이름 (2) (19/40)



〈 19화 〉05. 당신의 이름 (2)

확실히 밤은 순찰하기 다소 싸늘한 감이 있었다.
겨울의 끝자락.
그 추위를 상징하는 계절은 떠나는 마지막 순간까지 아쉬워하며 찬바람을 잔뜩 몰아쳤고, 태양은 지고 밤이  시간대에는 그 추위를 더해갔다.


“염병, 귀신은 무슨 얼어 죽을 귀신이야.”

자고로 괴력난신은 전부 미신에 불과했다.
확인되지도 않은 허상에 두려워 떠는 것만큼이나 바보 같은 짓이 어디 있겠나.
아마 내 생각으로는 내부 병사 중 하나가 밤중에 돌아다닌 것으로 생각됐지만, 만에 하나라도 외부인의 출입을 고려해야 했기에 직접 움직이고 있었다.


그나저나 진짜 춥네.
게다가 순찰하는 병사들도대부분 바깥으로 돌렸고, 내 막사 인근으로는 대부분 취침할 시간이라 그런지 사람 인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았다.


공허하게 불어오는 바람 소리가 영 거슬렸다.
그냥 누구 하나 데리고 나올 걸 그랬나. 아니 뭐, 이게 귀신을 믿는다는 그런 게 아니고 사람 내음도 안 느껴지니 너무 적적해서.
아니 진짜로.


“확실히 스산하긴 하네.”

이렇게 어둠으로 물들어 드문드문 설치된 불빛에만 의존해야 하니 더더욱 스산하게 느껴졌다. 귀신으로 추정되는 인물을 이런 시간에 마주치면 그야 놀라기도 하겠지.
인적 드문 군영.
 사이로 머리 새빨갛고 눈물 흘리는 여인?

그건 귀신이 아니어도 놀라운 만남이다.

아무튼, 그건 그거고 수색은 수색대로 계속 진행했다.
이곳저곳 돌아다니며 살폈는데, 경로를 잘못 잡은 탓인지 가끔 마주치는 이들도 대부분 순찰하는 병사들이거나 잠시 변소에 들르는 이들이었다.


머리가 새빨갛다고 했던가.
조금만 더 돌아보고 자러 가야겠다.
생각해보니까 이게 한밤중에 뭐하는 짓거리인지 모르겠네. 세상에 괴력난신이 어디 있다고 이 개고생을 해야 하나.

설령 그런  있다고 해도 왜 내게 해 끼치겠어.
그런 건 보통 원한이있는 사람한테가는 법이잖아? 미안하지만 나는 누군가에게 큰 원한을 사지 않았노라고 감히 장담할  있었다.


아, 그런데 기억 없는 동안은 장담 못 하는데.

“부관님.”
“으악 시팔!!”
“저, 접니다!!”


고개 돌려 확인하니 백인장이 이쪽으로 손을 뻗고 있었다.
난 또 뭐라고.
아니? 물론 귀신 같은 걸 걱정한 건 아니다.


“크흠!! ……그래, 무슨 일이냐.”
“방금 으악이라고.”
“안 했다.”


그냥 조금 놀랐을 뿐이다.
밤길을 혼자 걷고 있는데 갑자기 인기척도 안 내면 놀라잖아. 그보다 얘는 뭔데 기척 하나 느껴지지 않은 거지?
아니 그냥 추워서 감이 좀 떨어졌나.


“이번에 병사들이 귀신 관련으로 소란을 피웠다고 들었습니다.”
“나도 그 탓에 아닌 밤중에 뭔 지랄인지 모르겠다.”
“미력하나 저도 돕겠습니다.”

어? 진짜?
……아니, 이게 아니지.

“됐다. 내일 합동 훈련도 있겠다, 먼저 들어가라.”
“하지만.”
“팍 씨, 됐다고.”


어차피 금방 들어갈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사람 하나 더 붙으면 또 돌아야 하잖아.
 봐도 뭐 없을 거 같고, 추운 데다가 있지도 않을 귀신인지 지랄인지로 개고생하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외부로 도는 순찰 병력은 증원했으니 바깥 출입자라면 그 부분에서 걸러질 것이고, 내부의 병사라면 걱정할 필요는 없을 거로 예상되니까.


“그럼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백인장을 먼저 돌려보내고 또 인근을  바퀴 돌았다.
역시 이렇다 할 것도 없었다.
목격자가 많으니까 분명 누군가 있던  사실인데, 코빼기도 비추지 않는다는  다소 의아한 부분.
내일 중으로 아군 진영에서 빨간 머리를 한 병사가 있는지 찾아볼까.


그렇게 생각하고는 다시 막사를 향해 발걸음을 돌렸다.
그래, 이게 맞다.
 내가 아닌 밤중에 귀신 찾기를 해야 하느냐고. 하여간 다들 호들갑이 너무 심하다. 물론 괴력난신을 실제로 만났다는 이들은 더러 있었지만, 그들이 하는 말이 두루뭉술하기 그지없어 신빙성이 다소 떨어지고는 했다.

“귀신은 무슨.”

천천히 발걸음을 옮겨 막사 인근으로 향했을 무렵이었다.

“……진짜로.”


여성의 목소리가 들렸다.
살짝 물기 서린 듯한 목소리. 누군가가 울먹이며 말한다면 딱 이런 목소리일까. 살짝 고개를 돌렸는데, 이 주변으로는 누구 하나 보이지 않았다.

“뭐야, 뭔데.”

설마 진짜 존재하는 거야?
아니지. 무슨 귀신은, 아니 진짜 염병하지 말라고.

그렇게  번 고개를 돌리고, 또 돌렸지만 아무도 없었다.
혹시 환청이라도 들은 걸까.
착각이라고 하기에는 다소 선명하게 들렸지만, 정작 고개를 돌려도 아무도 존재하지 않았다. 그저 바람 소리만 공허하니 울리는 상황.


“……누구냐. 지금 나오면 용서한다. 진짜로.”

그리고 잠시 시간이 흘렀을까.


“너무 오래 걸렸잖아.”

막사 뒤편으로 누군가가 천천히 걸어 나왔다.
선명하니 붉은 머리칼.
그녀는 분명 실체가 있는 인간이었다.

“나, 진짜 오래 기다렸어.”

 여인은 나를 향해 천천히 다가왔다.
지금은 응당 누구냐고 따져 물어야 할 부분이었지만, 그러기에는  여인이 너무 처량한 표정으로 눈물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진짜죽은 줄로만 알아서. 나, 진짜 그래서….”
“아니, 그게….”
“살아있었으면 말이라도 하나 남겨주지.”

기억에 없는 얼굴이었다.
애초에 저렇게 붉은머리칼을 가진 지인이 있었던가?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선에서 없는 것으로 보아 저쪽이 사람을 착각했거나, 어쩌면 내가 기억을 잃기 전에 알던 사이가 아닐까 싶었다.


“나, 여기가 너무 아팠어.”

그녀는 제 가슴을 꾹 누르며  발짝 걸음을 옮겼다.

“너무 외로웠다구.”

하여 또  발짝.

막 걸음마를 뗀 아기처럼 위태위태한 발걸음으로.
하여 붉은 머리의 여인은 내게로 온다.


그런 그녀를 향해 뭐라 대꾸할 말도 없었다.
몸이 뻣뻣하게 굳어 움직이지 않았는데, 일단 저 여인을 제지하고 신상을 파악해야 한다고 뇌가 아무리 떠들어도 몸은 움직일 생각도 하지 않았다.
그저 본능에 맞춰 나 또한 그녀를 향해 한 발짝 떼었다.

‘주인아!’
‘웬 꽃이냐고? 그냥 내 마음이라고 생각해. 나는 네가 마음에 드는데, 너는 영 그렇지 않은  같으니까. 그래서 그냥, 나한테 반하라고 주는 선물?’
‘하여간, 진짜 약골이라니까.’

들어본 적 없는 말이이명처럼 맴돈다.
그러는 사이 그 여인은  바로 코앞까지 다가왔다.

“이제는 제발. 부탁이니까 그렇게 떠나지만 마.”
“나는….”
“미안해. 내가 잘못한 게 있으면 더 잘할게. 내가 보기 싫으면, 그러면 그냥 뒷자리만 내어줘. 난 그것만으로도 만족할  있으니까.”


너무 필사적인 목소리에 말문이 막혔다.
눈물 한 방울. 또 한 방울이 여인의 턱 끝에 맺혀 지면으로 떨어진다. 그게  그리도 처량하고 슬프게 보이는지, 나는 왜 저것에 감정을 동요하는지.

“그러니까 곁에만 있게 해줘.”


 곁을 떠나지 말라고.

그녀는 한참을 내 가슴팍에 안겨 울었다.
그동안 어떤 대꾸도 할  없었다.


나는 아직 이 여인이 누구인지조차 몰랐으니까.




* * *



관사 한편에 자리한 거치대.
그곳에는 검 한 자루가 소중하게 고이 보관되어 있었다.
차마 아까워서 쥐지도 못한 그것. 그녀에게 있어 그가 남긴  안 되는 유품과도 같은 것이었고, 하여 그녀는 오늘도 그 검을 멍하니 바라보며 숨을 삼켰다.


“이제 곧 삼 년이네.”


시간은 야속하게 흘러갔다.
그녀의 시간은 이미 예전에 멈췄는데, 세계는  일이 아무것도 아니라는  빠르게 흘러가기 바빴다.


“나는 어떻게 했으면 좋았을까.”

그 질문에 답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홀로 집무실을 지켰으니 그도 당연했지만, 그녀는 지금 당장에라도 누군가가 대답해줄것만 같은 착각에 사로잡혔다.


한의 중랑장.
전호가 죽고 벌써 3년이 되어간다.

그동안 조조군은 많은  바뀌었다.
우선 허도 내에서 문제를 일으켰던 친황실계를 필두로 대대적인 숙청이 이뤄졌다. 그 과정에서 수많은 핏물이 흘렀고, 그 이상으로 황실과의 사이도 틀어지고 말았다.


그가 원하던 건 이게 아니라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이러지라도 않으면 자괴감에 미쳐 쓰러질 것만 같았다. 눈만 감으면 그날 밤의 염상이 떠올라밤잠을 설치고는 했다.


선홍으로 물든 세계.
시꺼멓게 올라오는 연기는 허상처럼 남아 언제나 그녀를 괴롭혔다.


“내가 뭐라고.”

그는 마지막까지  자신을 구하고 사라졌다.
차라리 거기서 자신이 죽었더라면.
아니면 처음부터 반발하는 이들을 전부 끌어안았더라면. 사태를 간과하기보다는 더 완벽하게  처리를 마쳤더라면.
빌미를 남기지 않았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상상을 할 때마다 가슴 한편이 시리도록 저렸다.


과거는 언제나 후회가 되어 회한을 남긴다.
아련하게 추억할 수밖에 없는 과거는 언제나 가슴을 후벼 판다. 찌릿하게 아픈 통증도, 삶에 의욕도 없어 죽고만 싶었던 것도 한두 번이 아니었다.

“……약속은 반드시 지킬게.”

그와 했던 처음이자 마지막 약속.

 세계를 구제한다.
천하에 그 누구 하나 배 굶주리지 않고, 등 따듯하게 영유할 수 있는 세계로 만든다.
처음으로 그를 만나 나누었던 약속이었다.

그렇기에 그녀는 고개를 들었다.


“그러니까  일이 전부 끝나면.”

그녀는 뒷말을 잇지 않았다.
오늘도 달은 아름다웠다. 선명하게 떠오른 보름달이 대지를 비추는데, 오직 자신만이 그 빛의 은혜를 받지 못해 새까맣게 물들어가는 느낌이었다.

손을 뻗어 그가 자신에게 건네었던 검을 만진다.

“그때 너는 내게 잘했다고 해줄까?”

그와 동시에 드러난 손목.
그곳에  자잘한 흉터가 곧 그녀의 회한이었다.

그렇게 잠시 멍하니 그것을 바라보았을까.

“상서령, 아직도 퇴청하지 않으셨습니까.”
“응. 그냥 좀 적적해서.”

제국의 상서령.
진소연은 눈가의 눈물을 훔치고는 고개를 들었다.

아직 끝나지 않은 것이 너무나도 많았다.

그녀는 시선을 돌려 방문자를 맞이하며 표정을 굳혔다.
아파할 시간은 없었다.
그조차도 자신에게는 사치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남양 일대는 어떻게 됐어?”
“장수군의 움직임이 더뎌졌습니다. 아마 외부로의 유통로를 차단한  제대로 들어맞은 것 같습니다. 슬슬 그쪽에서도 반응을 보이겠지요.”
“항복 서신이 도착하거든 대장군께도 보여드려.”

아직 천하의 혼란은 진정될 기미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아직 원소마저 건재한 상황에서 그녀는 무너질 수 없었다.

그녀는 냉소적인 표정으로 시선을 돌렸다.


일차적인 목표는 천하의 완전한 통일.
그를 위해 먼저 형주의 방파제를 겸한 장수의 공략을 이어갔다.
장수의 공략이 끝난다면 다음 목표는 유비의 서주.

소연은 더는 망설이지 않았다.
이미 그럴 이유도 없었고, 유일하게 자신을 말려주던 이도 사라졌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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