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3화 〉03. 폭풍전야 (1) (13/40)



〈 13화 〉03. 폭풍전야 (1)

그 뒤로는 별일 없이 흘러갔다.
정말 그것밖에 말할 것도 없는 게, 소패성에 주둔하던 조조군은 일만 정도의 상주할 병력을 제외하고는 전원 허도로 물러갔고, 아군 또한 팽성에 오천 정도의 방위군만 남긴 채 서주성으로 회군했기 때문이었다.
돌아와 새삼 느끼는 게, 고작 한 달 정도 머물렀던 서주성이 마치 집처럼 느껴졌다.

“자자, 어서 이쪽으로 오세요.”
“나 낫고 얼마 안 지났는데.”
“그럴 때일수록 움직이는 게 최고 아닌가요?”

그렇게 팽성에서 돌아오고 보름 정도가 지났을까.
유비가 슬슬 낫기 시작한 나를 이끌고는 어디론가 향하기 시작했다. 서주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계속 이렇게 질척거리더니, 이번에는  무슨 일인가.


“움직이는 건 좋은데,대체 무슨 용무요?”
“이번에 연회를 열었거든요. 정세가 아무리 복잡해도 저희까지  처져 있을 필요는 없잖아요?”
“아니 뭐 그건 그렇긴 한데….”


그렇다고 갑자기이렇게?
게다가 연회라니. 물론 내가 유비에게 신세 지고 두 달도  지났다지만, 그동안 연회가 열린  본 적이 없는데.
너무 뜬금없다고 해야 하나.
사실상 팽성 인근에서 벌어진 전투도 소규모의 국지전에 불과해, 그걸로 승패를 논하기에는 다소 호들갑이 과한 것 같았다.

“게다가 이건 호세 씨의 환영식이기도 해요.”
“나?”
“이번에 저희 군에 들어와 주시기로 했잖아요?”

어, 이게그렇게 되나.
아직 전쟁은  달갑지 않았다. 분명 그녀와  주변 사람들을 돕겠다고는 했지만, 이렇게  잡고 정식으로 석에 올리려는 듯한 행동은 조금 부담스러운데.
나는 그냥 지금처럼 겉도는 방식으로 알았다고.


“……혹시 그건  거짓말인가요.”
“표정은  왜 그래? 돕는다고. 돕는다니까?”

목줄 채우지 말랬더니 이렇게 감정으로 호소해?
게다가 표정은 또  그렇게 음울한 게, 하지만 그 사이로 다소 두려운 분위기가 느껴진 건 내 착각인가?

“그렇죠? 과거 중랑장까지 지내셨던 분이 도와준다면 천군만마죠. 자자, 어서 오세요. 다들 기다리고 있다니까요?”

벌써 사람까지  불렀어?
하이고, 이거 참.
그런 걸 기대하면 분명 실망할 텐데. 이쪽은 기껏해야 조금 싸울 줄 안다는 게 고작이었다. 그냥 적당히 한  걸치려고 했던 거라니까.


“다 좋은데, 영원히 여기 뼈를 묻겠다는 건 아니거든?”
“괜찮아요.”
“뭐가 괜찮아. 군 기밀이라던가, 여러 가지 있잖아.”
“그런 걸 빼돌리실 생각이에요?”


아니, 딱히 그런 건 아닌데.
구태여 빼돌릴 이유도 없고, 만약 떠나더라도 날 거둬준 이들의 뒤통수를 치는 짓 따위를 할  있겠나.

고개를 가로저었더니 유비가 빙긋 웃었다.

“그럼 문제없잖아요?”
“그런가.”

너무 쉽게 정해진  같은데.
물론 유비가 개인적으로 호감을 드러내는 건 알고 있었다. 눈치가 없는 것도 아니고, 그녀가 은근히 내게 바라는 게 있다는 것도 모른다면 눈이 옹이구멍이란 거겠지.


문제는 그만한 역할을 해줄 수 있느냐는 것.
게다가 난 아직도 그녀가 왜 이렇게까지 해주는지 잘 몰랐다.차라리 이유라도 명백하면 마음이라도 놓이겠건만.
능력을 산다기보단 인간 개인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것 같아서.


“이보쇼.”
“네?”
“내 어디가 좋아.”

그러니 잠시 말이 끊겼다.

“그, 그건 대체 무슨 의도로….”
“말이 짧았네.”

생각해보니까 이건 완전히 그런 쪽이잖아.

“그게 아니라, 인간적인 부분이야. 나한테 이렇게까지 잘해주는 이유를 모르겠어. 그냥 그걸 물으려고 했는데, 너무 잡스럽게 말했네.”
“아아, 그런 건가요….”

왜 갑자기 축 처져?
그나저나 이건 예전부터, 혹은 첫 만남부터 궁금했던 부분이었다.
기억을 잃은 나와 내 과거를 어렴풋이 알던 그녀.
딱 그것뿐이었다. 어쩌면 그것보다 살짝  좋을 수도 있는 게, 기억을 잃기 전 나는 조조군에 속했다. 유비에게는 적대해야 할 군의 장수였는데.


“그냥이라고 하면 안 믿으실 거죠?”
“세상 살다 보면 그냥이라는  없더라고.”
“저도 동의해요.”

그럼 왜 말해.

유비는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나도 그 뒤를 따랐는데,슬슬 겨울의 끝자락이긴 해도 아직은 쌀쌀했다. 언젠가는 봄이 와 새싹도 피겠지만, 그 날은 아직 멀기만 했다.
잠시 그렇게 길을 걸었을까.

“저랑 비슷한 사람으로 생각했거든요.”
“비슷하다고?”


글쎄. 그런 느낌은 없던 거 같은데.


“제 착각이었어요. 당신은 저보다    바라보고 있었지만, 저보다는 더 작은  원했어요.”
“그게 말이 되나?”


큰 걸 바라보며 작은  원한다.
그 둘이 양립할 수 있는 것인가?  모르겠다.

“게다가.”


그녀는 잠시 입을 다물었다.

“……남자한테 처음으로 기분 나쁘다는 소리를 들었거든요.”
“내가 그랬다고?”


이런 미인한테?
어쩌면 기억을 잃어 다행인가. 아무래도 미래의 나는 눈깔이 조금 삐었다고 해야 하나, 심미안에 조금 하자가 있었던  같았다.

“처음이었어요.”
“그야 처음이었겠지.”


누가 유비를 보고 기분 나쁘다고 할까.
지나가던 누구나가 돌아볼 미인이다. 물론 이 서주에 들어서 이런저런 여인들을 보았지만, 개인적인 취향 문제를 제외하고 객관적으로 보기에는 유비가 그중에서도 제일 아름다웠다.


“솔직히 많이 놀랐어요. 그런데 당신은 그저 인간으로서 절 바라봤고, 그 과정에서 태연하게 제 깊은 곳을 푹푹 찔렀거든요.”
“엥? 우리, 성교도 했수?”
“……그, 그런뜻이 아니고요!!”


아니 말하는 것만 들어서는  그런 의미인 줄 알고.


“정말, 정마알!! 기껏 사람이 진지하게 말하는데.”
“미안하우.”
“진짜 너무해요.”

거참, 그럴 수도 있지.
원래 말을 풀어서 하지 않으면 오해도 생기는 법이었다. 그런 오해를 하나하나 풀어가는 것도 대화라는 거 아니겠나.


그러는 사이에 벌써 저 멀리 연회장이 보이기 시작했다.
수다는 여기까지인가. 기왕이면 그녀가 날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 호감의 이유는 무엇인지 알고 싶었지만, 그 또한 함께 있는 다음 기회도 생기겠지.


“제가 가장 이상적이라고 생각한 선인이라 그랬어요.”
“응?”
“당신에게 눈길이 가는 이유.”

그녀는 회의장으로 향하며 고개만 살짝 돌렸다.


“장군으로 군을 지휘하며 마지막까지 인간성을 버리지 않았으니까. 겉으로는 다 끊어낸 척하지만, 잘 보면 그런 소박한 감성이 남아있는 사람이었거든요.”
“인간성이라.”

개인적으로는 별로 선호하지 않는 말이었다.
전장에서는 그런 걸 가지는 놈부터 죽어 나간다. 물론 인간성이란 인간이 인간답게 살기 위해 마지막까지 간직해야 할 것이었지만, 이런 세상에서 그런 시시콜콜한 것을 따지는 태평한 놈이 어디에 있겠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과거의 내가 그런 놈이었나 보다.


“거참, 죽기 딱 좋은 놈이었네.”
“그러니까 낭만이 있는 거 아닐까요?”

목숨 걸린 일에 낭만은 무슨.
실없이 웃는 그녀의 등을 살짝 두드리며 앞을 가리켰다.

“갑시다.”
“예, 가죠.”


익숙하지 않은 얼굴도 몇 있었지만, 그래도 대부분은 자주 만났던 이들이었다.
관우는 침착하게 앉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고, 장비 같은 경우에는 아예 술통을 끼고 이쪽을 향해 손짓하고 있었다.
제갈량은 술에 흥미가 생겼는지 살짝 다가가다가 제갈근 선생에게 머리 한 대 얻어맞고 빼애액 거리는 상황.
그 옆으로는 장비 양반보다 더 거나하게 취해서는 사방으로 주정이나 부리고 있는 중년 남성 하나에, 또 그 주변으로 앉아있는 여성들까지.

이게 유비군인가.
제법 자유로운 분위기라  나쁘지 않았다.



* * *


서주 북쪽으로 자리한 청주 일대에서는 한창 일촉즉발의 분위기가 유지되고 있었다.
기존공손찬이 앉혀둔 청주자사 전해를 필두로 한 공손찬의 파벌과 원소의 아들 원담을 필두로 한 원소군의 대립.
크게 몇 번인가 전쟁을 벌였고, 그 과정에서 서로 승패를 주고받으며 지금은 대치상태로 접어들었지만, 언제 다시 부딪쳐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


그것은 하북에 있는 원소에게도 나름 부담스러운일이었다.

“흠, 청주로 돌릴 병력이 부족한가.”


가장 상석에 앉은 금발의 남성, 원소가 먼저 입을 열었다.
그런 그의 말에 대꾸하는 것이 곽도.
그녀는 지도를 가리키며 고개를 끄덕였다.

“전해의 저항이 격합니다. 게다가 아직 유주 일대에는 공손찬의 잔존 병력이 활개하고 있는 상황에서, 그 또한 이를 갈며 대치하고 있어 병력을 돌리기에는 다소 어렵지 않을까 싶습니다.”
“쯧, 덜떨어진 놈.”


원소는 혀를 차며 원담을 욕했다.
기품이라고는 터럭만큼도 찾을  없었고, 그렇다고 용모가 빼어난 것도 아니다. 그나마 군무에는 재능이 있다 하여 보냈더니,그 자잘한 일도 처리하지 못하는가.
그런 원소의 반응에 상석 바로 밑에 자리한 남성이 고개를 들었다.

“이건 쉽게 생각하실 문제가 아닐 겁니다.”
“오오, 전풍. 하면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는가?”


원소의 대꾸에 전풍이 살짝 시선을 돌렸다.
곽도는 전풍이 나서자마자 바로 표정을 찡그려 대놓고 반발하는 듯한 모양새를 취했다. 그녀의 그런 태도는 영 마음에 들지 않았지만, 우선 그는 기존에 생각했던 안건을 피력했다.

“청주의 전해는 전투에 이골이  무장. 공손찬의 휘하에서 제법 오래 일한 만큼 버티고자 한다면 장기전으로 이어질  있습니다.”
“이미 1년이나 지났다. 대안은 있는가?”
“장합 장군을 보내지요.”

그 말에 곽도가 가장 먼저 반대를 표했다.

“지금 공적을 하북 출신에게 돌리겠다는 겁니까?”
“그러면 안량 장군도, 문추 장군도 괜찮습니다만.”
“말하는 것하고는…!!”

장합은 기존 하북에 머물던 하북계 관료.
그렇기에 원소와 함께 들어왔던 낙양과 예주 일대의 관료와는 미묘한 대립이 이어졌고, 이번 인재 추천에서도 그런 대립이 작용해 정치적인 다툼으로 번지려 했다.
원래라면군주인 원소가 그것을 억제해야 했으나.


“흠, 그러면 곽도. 너의 의견은 어떻지?”


그는 오히려 그 상황에 기꺼워하며 씩 웃었다.

전풍은 그게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군이 두 쪽으로 나뉘어 다투고 있지만, 정작 군주인 원소는 그 대립을 통해 서로의균형을 조율하고 더 대립하기를 원하고 있었다.
정치적으로는 서로 다투는 과정에서 효율을 뽑아낼 수 있겠으나, 적어도 한 세력을 관장해야 할 군주가 저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물론 이 의견을 입 밖으로 꺼낸다면 자존심 강한 원소가 어떻게 행동할지 알고 있었기에 그저 참으며 이를 꽉 깨물었다.

그러는 사이 곽도는 빙긋 웃으며 원소를 돌아봤다.

“원담 도련님이 고전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지리의 영향도 있습니다. 하북에서 청주 본토로 들어서기에는 황하를 건너야 하고,  뒤로도 빼곡한 산맥을 거쳐야 하는 문제점도 있죠.”
“하여?”
“유비를 끌어들이는 것이 어떻습니까?”

그녀의 말에 원소도 고개를 끄덕였다.

근래 들어 조조와 유비 사이에 균열이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기회를 살려 언젠가 유비와 연계, 서주가 조조를 견제하는 사이 빠르게 공손찬을 제압하는 건 어떨까 생각하기도 했던 것.
곽도는 그런 원소를 향해 당당하게 웃었다.

“유비는 현재 고립무원. 옆으로는 조조와 언제 부딪칠지 몰라 몸이 달았을 것이니, 아군과의 동맹을 미끼로 청주 공략에 협력하라고 하면 어찌 받아들이지 않겠습니까.”
“그건 너무 이르오.”

전풍은 그런 그녀의 의견에 반대를 표했다.

“그러면 더 나은 방안이 있으시다고?”
“적어도 유비는 아니요. 서주는 전략적으로도 중요한 요지. 벌써 그들을 끌어들여서는 아군이 하북을 수복하기도 전에 조조에게 공략당할 우려가 있소.”
“공손찬의 유주와 청주만 점거할 수 있다면 원공의 힘만으로도 능히 조조를 꺾을  있을 텐데,  벌써 그리 염려하시는 거죠?”
“더 확실한 승기를 잡기 위하여…!!”

그렇게 대화가 점점 가열하려던 차.

“그만.”


원소는 한손을 들어 둘의 대화를 제지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유비와는 조만간 손을 잡을 필요를 느꼈다. 이번 안건은 곽도의 진언에 따르되, 전풍의 말대로 원담에게도 무기 하나를 쥐여줄 필요는 있을 것 같다.”
“하옵시면….”
“전풍의 말대로 장합을 보탠다. 서주의 조력과 장합의 합류. 그 정도면 그 천치라도 실수하진 않겠지.”

일장일단의 선택.
이에 전풍과 곽도 모두 살짝 찝찝하다는 표정을 지었지만, 정작 그들을 지켜보는 원소는 아무렇지도 않게손뼉을 치고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군의는 이것으로 파하지. 장합 장군에게는따로 전령을 보내두도록. 유비에게 갈 이로는…….”


그는 잠시 장내를 둘러보다가 한 인물에게 시선을 고정했다.

“저수. 그대에게맡기겠다.”

원소의 말에 중년 남성이 자리에서 일어나고개를 숙이기를.


“명하시는 대로.”


이렇게 원소군의 군의가 마무리되었다.
청주로 향하는 장합과 서주로 향하는 저수. 천하의 정세는 여전히 급류를 타고 빠르게 변하고 있었고, 그 중심지는 청주와 서주로 옮겨가게 되었다.


서주의 유비와 청주의 전해, 원소군의 원담까지.


세 세력이 엮이게 될 청주.
그곳의 폭풍전야와 같은 대립에도 곧 끝이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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