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11화 〉02. 팽성 전투 (5) (11/40)



〈 11화 〉02. 팽성 전투 (5)

검이 맞붙을 때마다 팔이 저렸다.
근육이 떨리고 팔꿈치 마디까지 쑤시는 감각. 가볍게 휘두르는 듯했지만, 그 한  한 번의 공방으로 진이 빠지는 느낌이었다.


옆에서 부상했다지만 장패까지 나서 합동하니 과연  여인도 점점 여유를 잃어가는 게 눈에 보였다.
물론 장패는 대검을 무기로 들고 있었기에 공격으로 이어지기까지 시간이 다소 걸렸지만, 그 부분은 내가 치고 나가며 만회한다.
그렇게 시간을 벌어 장패가 공격할 때쯤에는 빠진다.

“어우, 손목아.”


그녀는 장패의 공격을 받아냄과 동시에 땅을 박차 뒤로 크게 물러났다.
겉으로는 우리가 입은 피해가 더 컸지만, 당장 저 여인의 목표가 유비인 이상 물러나게 한 건 이쪽의 의도가 정확히 들어맞았다는 것과도마찬가지.

하지만 이대로 계속 이어갈 수는 없었다.
당장시간이야  수 있겠지만, 장패는 왼쪽 어깨에 큰 부상이 생겼다.  또한 체력이 급격하게 소진되고 있어 시간을 지체하면 지체할수록 불리해지는  이쪽이었다.
둘이서 덤비는데도 전력을 다해야 하나.


“진짜 이 악물고 덤비네.”
“여기서 물고 늘어지지 않으면 죽을 테니까.”

살짝 자세를 고쳐잡으며 그녀의 말에 답했다.
그러는 사이 호흡을 가다듬었다. 나보다 강자를상대함에 적당히 한다는 말이 어울릴 리도 없었고, 그 몇 번의 교전만으로도 벌써 숨이  밑까지 차올랐다.


“장패라는 인간은 정보에 있었는데, 이런 장수가 서주에 또 있었다고는 내가 들어본 적이 없어요. 응? 넌 대체  하는 인간이냐?”
“나는….”


순순히 답하려다가도 잠시 입을 다물었다.
호세라고 답하기는 쉬웠다. 전호라는 이름을  수도 있었지만, 저들이조조군으로 보이는 이상  이름을 입에 담는  진짜 옳은 일인가 의문도 들었다.


유비가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반응을 잘 살피면서 깨달은 게 있다.
그녀는 내가 조조군에게서 숙청, 혹은 배제당했을지도 모른다고 의심을 하고 있는  같았고, 실제로 그건 정황상 합리적인 의심으로 느껴졌다.
그렇기에 입술을 비틀며 작게 웃었다.

“내 이름이  그리 중요하시나.”
“틀리지 않지.”

그녀는 재차 곡도를 다잡고는 이쪽으로 겨눴다.


“곧 죽을 이의 이름이나 정체는 한 푼도 안 하니까.”

사람의 목숨을 돈으로 재단하는 건 어떨까 싶은데.
그러는 사이 살짝 눈알을 굴려 옆을바라봤는데, 장패는 그 사이에 더 상태가 안 좋아졌는지 숨을 헐떡이며 겨우 고개만 들고 있었다.
이대로는 오래 버티지 못할 것 같다.


 혼자서는 감당하기에도 한계가 따랐다.
 청강이라는 검이 명검이긴 하지만,  손으로 양손에 전부 대처할  있을 리도 만무. 어떻게든 막아내며 빈틈을 찾고자 해도 기본적인 실력 자체가 저쪽이 더 윗줄이었다.


관우는 강자를 상대로는 한 발짝  나아가라고 했다.
그 한 발은 어떻게 내디디면 좋은가.

“옆에 친구는  상태가  좋아 보이는데.”
“응? 그럴 리가. 오래 본 사이는 아니지만, 저렇게 험상궂게 생긴 사람이 벌써 퍼질 리 있나? 장패 어르신. 아직    있지?”
“……물론이지.”

내 너스레 떠는 질문에도 그는 태연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하지만 어깨로 흐르는 핏물의 양이 예사롭지 않다. 게다가 재차 전투를 이어가면 몸에 부하도 따를 것이고, 지혈도  한 상황이니 더더욱 곤란할 터.
심각한 출혈을 방치하는 건 목숨을 내놓는 것과 다를 게 없었다.

“쯧, 무슨 허세를.”


초장에 아직 합 맞출 수단을 몰라 따로 덤볐던 것이 실책이었다.
그 과정에서 장패가 베였고,  상처가 크게 번졌으니 이렇게 둘이서 하나에 덤벼드는 구도도 얼마가지 못한다.

“거기서 보고 계쇼.”
“허나….”


허나고 자시고.
 상처로 괜히 더 싸우다가는 설령 살아가더라도  사람은 반드시 죽는다. 게다가 저런 상태로 저만한 대검을 몇 번이나 휘두를 수 있겠나.
어차피 곧 쓰러질 이의 도움이라면 처음부터 없다고 생각하는 게 나았다.

“혼자 덤비게?”
“뒤에 싸우는 사람도 있겠다, 빨리 끝내야지.”


고작 이런 곳에서 죽을 생각은 없다.
전장과는 영원히 작별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런 곳에서 다시 엮이리라고는 꿈에도 꾸지 못했다. 물론 그렇게 따지면 기억을 잃는다는 건 언제 상상이나 했겠느냐마는.
그렇지만 이대로 포기할 수도 없었다.
조금 안타깝지만, 나는 저들이 제법 마음에 들었으니까.


“덤벼.”

오른손에는 검을.
왼손에는 허리춤에 묶은 검집을 풀어 쥐었다.

 손으로 대처하기 힘들다면 이쪽도 양수로 대처한다.
지금이야 번듯한 검을 가지고 있지만, 예전에는 전장에 나서 아무 무기나 잡고 가끔은 지면을뒹굴며 개처럼 싸우고는 했다.
그러는 와중에 가끔 이런 식으로 서로 다른 무기를 쥐고 싸운 적도 있다. 그리고 무엇보다 전투에 있어 무기를 가리는 것만큼 사치스러운 일은 또 어디 있겠나.

“뭐야, 내 흉내야?”
“그쪽만 무기  개 쓰면 비겁하잖아.”
“이제 보니까 사람 웃기는 재주가 있었네.”


웃기려고 하는지 아닌지는 붙어보면 알겠지.
저번에 한 번 두드려봤는데, 이 칼집은 대체 무슨 짓을 했는지 단단하기가 검과 비교해도 더 단단할 것 같았다.
애초에 이런 용도를 염두에 두고 제련한 게 아닐까 싶을 정도.
실제로 검집 끝자락에는 손으로 쥘 수 있게 가죽까지 감겨 있으니 그 가정도 썩 틀리지 않은 듯했다.
대체 과거의 나는 무슨 짓을 했기에 검집까지 무기로 썼을까.


“후우…….”


뭐, 그게 무슨 연유에서건 당장 쓸  있다면 그걸로 됐다.
다른 걸 잡다하게 생각할 정도로 여유 있는상황도 아니었고, 장패에게 빠지라고  이상 저 괴물 같은 여인을 혼자 감당해야만 했다.

앞으로 한 발.
이런 일에 목숨을 걸 줄은 몰랐지만, 생각했던 것보다 거부감은 들지 않았다.
다신 전쟁에 나서지 않겠다고 해놓고, 과거 연이 있었다고 들었으나 이제 고작  달 보고 지낸 이들을 위해 검을 든다.
조금 우습기도 했지만, 망설임은 없었다.

방어를 굳힌다고 해도 나보다 빠른 상대를 붙잡을 방법은 없다.
그저 지키고만 해선 상황이 호전될 기미가 보이지 않았고, 여기서 포기한다고 해도 뒤가 없었다. 뒤에 죽음을 배수진으로 치고 있다면 망설일  뭐 있나.


땅을 박찬다.
빠르게, 더 빠르게.


상대가 나보다 빠르다는 건 안다. 그렇다면 내어줄 것은 내어준다. 몸의 안전까지 지켜가며 이길 상대가 아니라는 것은 이번 교전으로 뼈저리게 깨달았다.
그렇다면 다소의 피해는 감수할  있다.

“이익!!”

옆구리를 베였다.
그렇다면 나는 검집으로 후려친다.
그와 동시에 오른쪽 어깨가 찔렸다. 순간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지만, 손아귀에 힘은 여전히 느껴졌기에 그대로 휘두른다.

방어를 포기하고 그저 공격 일변도로.
상대는 이쪽을 다소 경시했고, 그렇기에 품을 쉽게 내주었다. 나보다 훨씬 빠른 상대라면 절대 떨어지지 않겠다.
거리를 주지 않으며,  손해를 각오하고 상대의 손해를 유발한다.

그렇게 계속 팔을 움직였다.
사방으로 튀는 핏물이 보였지만, 조금 전처럼 일방적으로 당하는 그림은 아니었다. 상대의 검은 다소 길이가 짧은 곡도.
거리를 짧게 주면 얼핏 저쪽이 유리할 것처럼도 느껴졌지만, 실제로 붙어 싸워보니 개싸움으로 이어져 서로가 공격을 주고받았다.

내가 허벅지를 베인 사이, 그녀의 어깨를 검집으로 후려 찍을 수 있었다.

“끄윽!”

아직이다.
조금 더 화끈하게.

사방으로 핏물이 튀기는 게 보였다.
갑작스러운 분위기의 반전 탓에 상대도 당황했겠지만, 기본기의 차이는 어디로 가지 않는지 계속 붙어있을수록 이쪽의 피해가 더 크게 가중됐다.


하지만 그 어느 것 하나 치명상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숨을 삼킨다.
호흡마저, 어쩌면 시간마저 멈춘 것처럼 느껴졌다.
세계 전체가 멈춘 것처럼 보이는 상황에서, 오직 우리 둘만이 서로를 향해 검을 휘두르는 듯한 착각마저 들 정도로.

연이어 검과 검이, 혹은 검집과 검이 부딪친다.
몰아지경으로 그저 그 궤적을 읽었다.
조금씩 눈에 들어오는 것처럼도 보였지만, 여전히 그녀의 검은 빨라 미처 대처하기도 전에 팔뚝에서 핏물이 터지는 게 보였다.


“아직.”

조금 더.


근육이 비명을 지른다.
신체가 사고의 영역에 따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생각하는 것처럼 움직여주지 않는 몸을 억지로 혹사하며, 숨을 크게 들이켜며 한 번, 또  번의 공격에 진심을 담는다.


죽음은 바로 지척에 있었다.
한 번이라도 실수하면 바로 목이 날아갈 전투.


하지만 그건 상대 또한 마찬가지.
이 불평등이 만연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평등 비슷한 것을 찾을 수 있는 곳이라면 전쟁이었고, 그것이 펼쳐지는 장소가 전장이었다.
서로의 목숨을 담보로 걸고 벌이는 행위.

우리는 그것을 전투라고 불렀다.

“끈, 질기게에에에에!!”


순간 몸이 살짝 들렸다.
정신을 차리니 미처 보지 못한 각도에서 그녀의 발이 내 복부를 걷어차고 있었다. 한 대 얻어맞았다고 머뭇거릴 여유도 없고, 재차 다가가려던 차.


화끈거리는 감각과 함께 오른쪽 손목에서 핏물이 튄다.
크게 베인  같지는 않았지만, 방금 배를 걷어차인 것과 더불어 신체에 누적된 피해가 한계를 맞이했는지 그만 검을 놓치고 말았다.
연이어 날아드는 곡도를 검집으로 쳐내고는 숨을 크게 들이키며 소리쳤다.

“장패애애애애애! 던져라!!”


주어를 말하지 않았다.
당장 오른손이 비어 시선을 돌릴 여유도 없었고, 팔을 뻗어 그녀의 손목을 붙잡고 반대편 손에 쥔 검집으로 곡도를 막아 세운다.


여전히 사방에서는 병사끼리의 전투가 펼쳐지고 있어 잡음이 심했지만,  와중에 선명하게 바람 가르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와 동시에 붙잡았던 그녀의 손목을 던지듯 놓아버리고는 땅을 박차 공중으로 뛰어오른다.
위쪽으로는 장패가 던진 대검이 회전하며 이쪽을 향해 날아오고 있었다.

눈치는 빠르네.
그런 생각을 하며 왼손의 검집도 내던지고 회전하던 대검의 손잡이를 간신히 붙잡았다.
반동으로 손목이 시큰거렸지만, 공중으로 도약한 상황에서도 제대로 붙잡을  있었다. 그 묵직한 감각은  여인의 방비를 깰 유일한 무기임을 상징한다.

마지막이다.
그녀는 아직 지면 위에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어디  짧은 곡도로 막을 수 있으면 막아보라지.
그 곡도와 함께 부수고 베어버리겠다.

도약했던 신체가 다시 지면을 향함과 동시에 팔 근육에 마지막 기세를 전부 담아 힘을 실었다. 팔꿈치와 손목, 어깨를 비롯해 모든 관절이 삐걱거리는 느낌으로 보아 아마 이번이 마지막.
그래도 상관없었다.

이게 내가 강자를 이기기 위한 한 발짝.

그런 생각으로 지면을 향해 대검을 크게 휘두른다.

* * *

전장을 중심으로 섬뜩할 정도의 파열음이 들렸다.

 멀리서 뭉게뭉게 피어오르는 흙먼지. 그 소리가 어찌나 컸던지 주변에서 다투던 병사들도 잠시 멈칫하며 그곳을 돌아볼 정도였다.
유비 또한 주변 병사와 함께 적병을 베어내고는 그곳을 바라봤다.

순간 바람이 불며 흙먼지가 걷힌다.


“우와 진짜 죽을 뻔했네.”

가장 먼저 보인 것은 호세의 뒷모습.
그리고 그런 그를 바라보고 있는 여인의 모습까지.

조조군이 보낸 습격부대의 대장으로 보이는 여성은 바닥에 엉덩방아를 찧고 있었는데, 방금 공격을 피하고자 몸을 날렸다는 걸 유추할 수 있었다.
호세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며 허망하게 웃었다.

이것까지 피하나.
그에게 있어 이건 마지막 전력을 끌어낸 공격이었다.


팔 근육은 이미 잔뜩 떨렸고, 그 대검을 다시 들어 올릴 힘조차 느껴지지 않았다. 최후의 공격이라고 생각했지만, 그 또한 닿지 않았는가.
그는 자리를 털고 일어나는 감녕을 바라보며 눈을 질끈 감으려던 차.

“후우… 이건 수지타산이 안 맞잖아.”

그녀는 손목을 풀며 한숨을 내쉬었다.
방금 공격을 피하는 것까지는 좋았지만, 과정에서 균형이 무너져 발목 부근이 접질렸다. 그 강공과 함께 흩날린 흙먼지가 눈에 들어가 시야도 고르지 못했다.

감녕의 무기는 빠른 속도와 신체의 균형.
그것을 잃은 이상 그녀의 전력이 다소 감소하는 것은 어쩔 수 없었고, 게다가 상대의 저항이 예상 이상으로 너무 거셌다.
그녀가 받은 지령은 협상에 성공했다는 신호가 올라오지 않는다면 유비를 죽이는 것이었지만, 그 과정에서 무리하지 말라는 명도 함께 받았다.

안타깝지만 여기까지일까.
감녕 또한 이런 곳에서 무의미하게 죽을 생각은 없었다.


“그쪽, 이름이 뭐야.”

그 질문에도 호세는 눈을 치켜뜰 뿐이었다.

“…뭐, 다음도 있을 테니까.”


감녕은 그 반응에 미련 없이 등을 돌렸다.

“퇴각이다, 퇴각! 종 쳤다.”

원래라면 그 뒤를 노리기라도 해야 했지만, 그럴 힘조차 없던 그는 그녀의 뒷모습을 잠시 지켜보다 이내 자리에 철썩 주저앉았다.
사방으로 물러가는 적군을 바라보며 안도의 한숨을 한 번.

“괜찮아요!?”

이어 자신에게 다가오는 유비를 바라보며 그는 말한다.

“그동안 받은 것만큼은  것 같아.”

그리고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이미 피도 너무 많이 흘렸고, 그 이상으로 너무 피곤했다. 상처의 고통 따위 느껴지지 않을 정도로 혼미한 상황에서 그는 한껏 웃고는 눈을 감았다.

“호세 씨? 호세 씨!!”
“안 죽어. 그냥 좀만 쉽시다.”


유비는 그의 목을 비롯해호흡을 살폈고, 이내 생명에 지장이 없다는 걸 알고서야 겨우 안도의 한숨을 내쉴  있었다.
이번 습격은 어떻게든 물리쳤다.
하지만 저들의정체가 조조군으로 예상되는 가운데, 언젠가는 이보다 더한 격전이 벌어지리라는 것은 확실했다.


“……안녕히 주무세요.”

그래도 이번 고비는 어떻게든 넘겼으니  건은 해결된 셈일까.
유비는 그의 머리를 받치며 감사의 의미를 담아 미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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