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9화 〉02. 팽성 전투 (3) (9/40)



〈 9화 〉02. 팽성 전투 (3)

소패는 팽성에서 이틀 정도 행군하면 도착할 정도로 가까운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기병만으로 움직였더라면 아마 하루 안에 도착하지 않았을까. 서주와 경계를 맞댄 지역의 요충지라고 하던 말이 썩 틀린 말도 아니었다.


“그럼 다녀올게요.”

유비는 고개 끄덕이고는 빙긋 웃어 보였다.
그런 그녀와 동반하는 이들은 제갈근과 장패. 참모이니 제갈근이야 당연한 일이었고, 태산 근방의 군벌이라고 알려진 장패 또한 동반한다는 게 의외였다.
서주목인 유비와 군벌인 장패는 완벽한 상하관계는 아닐 것 같았는데, 잘도 이런 일에 동참했네.


“거기 가서는 꼭 몸조심하쇼.”
“어허. 이 장패님이 따르는데 무얼 걱정하시오?”


거참 대범하기도 하셔라.
물론 얼핏 느껴지는 것만으로도 제법 강하다는 게 느껴졌지만, 내가 이기려고 하면 충분히 이길  같은데.

[ 장패 선고 ]

통솔력  81
무력 – 84
지력 – 67
정치력 - 56
매력  72



그나저나 이건 진짜 시도 때도 없이 보이네.
아무래도 내가 사람을 가늠하려 들 때 나타나는 것 같다만.
이 반투명한 지표에 적힌 건 해당인물의 능력을 나눈 것도 같았는데, 대체 이런 게  보이는지 모르겠으나 나름의 신빙성은 느껴졌다.

 지표에서 보자면 장패의 무력은 84.
내가 90이었고,관우가 97. 장비가 98이라고 했으니 이들에 비해 모자람은 있겠지만, 그밖에 다른 이들 중에서 저만한 수치를 보인 이는 없다시피 했다.
게다가 나랑 별반 차이 나는 무력은 아니니까.


“못 믿는  아니라 호랑이 아가리에 주군이 머리 들이민다는데 그야 걱정하는 게 당연하지.”
“어, 저를 주군으로 생각해주시는 거예요?”
“아니 말이 그렇다는 거고.”


살짝 한숨을 내쉬고는 손을 내저었다.


괜한 말실수를 해서는.
그렇게 손을 내저으며 유비를 배웅했고, 그녀는 다녀오겠다는 말과 함께 선행할 이들을 꾸려 소패성을 향해 나아갔다.


이제 당분간은 할 것도 없었다.
유비가 회담을 마치고 돌아온 직후가 본격적인 근무 시간.
그녀의 뒤를 지키고자 삼백 정도의 병력이 남아 대기하고 있었고, 그 지휘권은 내가 맡을 수도 없었기에 제갈량이 남아 그것을 대리했다.

아직 약관도 되지 못한 나이에 무슨 군을 맡는가 싶었지만, 유비군 내에서는 이미 관직에 올랐다고 하니 내가 뭐라고  것도 아니었다.
나 개인은 객장이라 병사를 맡기 모호한 감도 있었고.

“저쪽에선 얘기가 길어지려나.”
“길 수도, 짧을 수도 있음.”

그래도 회동이라면 조금 길어야 정상 아닌가?
물론 너무 길어져도 곤란했다.
유비군의 본대는 저 뒤편에 있었고, 우리는 그들과 소패성으로 이어지는 가도 한복판에 진을 치고 있었다. 그 말인즉슨 길가에 멍하니  있는 것과 다를 게 없다는 뜻.

아직 한겨울이라 이렇게 가만히 있으면 춥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춥다.

“어우, 꼬맹아.   춥냐?”
“꼭 껴입었음.”

이럴 땐 문관이 부럽기도 하네.
이쪽은 갑옷 덕지덕지 껴입어야 해서 아무리 해도 일정 부분 방한을 포기해야 했는데, 요 꼬맹이는 아예 뚱뚱해 보일 정도로 뭔가 덕지덕지 껴입고 있었다.
얼굴만 쏙 내놓은 게 마치 눈사람 같아서 조금 웃겼다. 쟤를 저대로 굴리면 어떨까 싶었지만, 진짜 그러면 아무리 꼬맹이라도 화내겠지.


잠깐, 화를 낸다고?
왠지 무표정 말고 다른 표정도 보고 싶은데.

“너 화낼 줄 아냐?”
“의문. 무슨 의도임?”
“아니다.”

굳이 화나게 할 필요는 없지.
그건 어른스럽지 못한 일이다. 구태여 꽃다울나이의 소녀를 눈밭에 눕혀 굴려보겠다는 게 대체 무슨 발상이냐. 분명 재미야 있겠지만, 그 뒷감당이 곤란하다.
이런 애가 화나면 더 무서울 것 같기도 하고.


“아으, 지루하네.”


하필 저 뒤편으로는 산세가 높아 아랫바람이 술술 불어오고 있었다. 춥기는 더럽게 추운데, 정작 당분간은 기다릴 수밖에 없다는 게  답답하다.
그러던 와중 꼬맹이는 자리에 주저앉아 뭔가 꼼지락거리기 시작했다.

“뭐하냐?”
“그림.”

아니, 그건 보면 알겠고.
쪼그린 제갈량의 근처로 다가가 고개를 숙였는데, 얘는 조약돌을 하나를 쥐고서 바닥에 뭔가를 열심히 그리고 있었다.
그리고는 돌을 몇  두며 움직이는데.


“야, 너도 나이가 있는데 흙장난은 아니지 않냐?”

그래도 열여섯 이상은  거로 아는데, 이건 좀.

“해보면 재밌음.”
“……아니 재미고 자시고, 그래서 이건 뭔데.”
“머릿속에 있는 걸 그리면 그만. 그게 뭐든 괜찮음.”


아니 이런 걸 왜 하고 있어야 하냐고.
일단 이쪽으로 뾰족하게 깎인 조약돌 하나를 내밀기에 받아들긴 했지만, 구태여 이런 흙장난 같은것에 어울리고 싶지는 않았다.
그래도 뭐, 아예 무시할 수도 없고.

“넌 뭐 그리고 있는데?”
“각 세력의 크기와 구도. 집약할 수 있는 것은 집약하고, 그것을 형상으로 나타내 개인적으로 상상하는 것을 그렸음.”
“허이구.”


뭔 또 어려운 말을 그렇게 남발하나.
그럼 나는… 적당히 산이라도 그릴까. 여기에다가 꽃 하나도 그리고, 이걸로는 조금 허전하니까 집을  채? 그 옆에 나무라도 그리면….


“뭐야 이거.”


생각보다 재밌어서 자존심 상하네.


* *

유비는 그들의 안내에 따라 소패성 관사로 발걸음을 옮겼다.
시선을 돌려 그 주변으로 보이는 병력을 살핀다.
예주에서 직접 파견한 병력으로 들었는데, 이렇게 면면을 살피니 확실히 정예라는 것이 느껴졌다.
물론 서주도 이런 병력이 없지는 않았지만, 한창 전쟁을 벌이던 조조군의 정예와 비교하면 다소 경험이 떨어지는 게 사실이었다.


“조홍 사령관께서는 이쪽이십니다.”


그렇게 말을 이은시종이 문을 열었고, 그 안쪽에서는 금발을 길게 늘어뜨린 미인이 유비를 바라보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오, 서주목. 오랜만입니다.”
“조홍 장군님.”
“원술 토벌 이래로 직접 대면하는  처음이었죠?”


한때 그녀와 유비는 같은 군에 속했었다.

황제를 참칭한 원술.
 토벌전에서는 중랑장 전호가 이끄는 2군으로 그 휘하에서 함께 일했었던 사이지만, 그 뒤로 3년이 지난 지금은 각자 다른 처지로 서로를 마주하고 있었다.

“그렇게 됐네요.”

유비는 살짝 웃으며 안쪽으로 들어섰다.
그렇게 준비된 자리에 앉는 걸 지켜본 조홍은 빙긋 웃으며 자리에 앉았다. 그 옆으로는 만총이라고 자신을 소개한이가 앉았고, 유비 측에서는 제갈근과 장패가 자리를 잡으며 본격적으로 회담이 시작됐다.

“우선 이런 자리를 만들어주신 것에 감사하지만,  연유는 잘 모르겠네요.”

유비는 먼저 고개를 살짝 숙이면서도 눈을 치켜떴다.
먼저 서주 국경으로 군을 배치한 것은 조조군. 원술 토벌전에서는 같은 연합군을 형성했던 만큼 대외적인 관계가 나쁘지 않았기에 그 군사적인 도발을 이해할 수 없었다.
그런 그녀의 말에 조홍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그게 참, 이쪽도 곤란하단 말입니다.”
“서주의 입장을 먼저 밝히자면 저희는 한 황실과 황제 폐하를, 그리고 그 황실을 수호하는 대장군께 존중을 표하고 있어요.”
“그러면 소패 부근으로 군을 이끌고 온 건?”

조홍의 반문에 유비가 살짝 눈웃음을 지었다.


“물론 조정의 군이 움직이는 것에 지방관이 대응할 일도 아니겠으나, 사전에 아무 연락도 없이 갑작스러운 움직임이었으니까요. 서주 백성들이 긴장하고 있으면, 그들의 주인인 저로서도 대처할 수밖에 없었어요.”
“하… 예전부터 생각지만, 서주목은 말씀을 참 잘하시네요.”

약간은 비아냥처럼 들릴 수 있는 말에도 유비는 그저 웃었다.

“조홍 장군께서 칭찬해주시니 몸  바를 모르겠네요.”
“뭐, 그건 됐고요.”


조홍은 살짝 미간을 찌푸리고는 품에서 인장 하나를 꺼냈다.
사전에 조조가 황제에게 부탁해서 받아낸 좌장군의 인장. 그녀는 그것을 유비에게 내밀면서 어깨를 으쓱였다.

“어차피 우리 대장군께서도 긴말 필요하지 않다고했겠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겠습니다.”

유비는 좌장군의 인장과 조홍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여기서 이걸 내민다는  분명 무언가 바라는 있을 터. 그러면 그 내용은 얼추 유추할 수 있었는데, 이어지는 조홍의 말은 그녀의 예상과 크게 다르지 않았다.

“좌장군의 직책에 올라주시죠.”
“갑자기 이런 관직에 오를 정도로 공을 쌓은 기억이 없어요. 분명 황제 폐하께서 은혜를 베푸신 것이겠지만, 자격 없는 이가….”
“그런 게 아니라는 거, 이미 아시잖습니까?”

물론 알고 있었다.
저들이 바라는 것은 완벽한 협조.
여기서 좌장군에 오른다면 분명 이후 서주는 조조군과 합병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한때 조조군에게 짓밟혔던 서주가 이제는 조조군의 손아귀에 들어가는 셈.


하지만 저들의, 조조의 목표는 서주가 아닐 터.
분명 원소와의 대전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불필요한 잡음을 남기고 싶지 않겠지. 그걸 이해했기에 유비는 더더욱 고개를 가로저었다.

“제게는 그럴 자격이 없는 것 같아요.”
“……저희와는 손을 잡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여도 괜찮다는 겁니까.”
“저는 황실과 폐하에게 충성하는 신하의 몸. 조정을 받드는 대장군과 어찌 반목할까요. 이건 단지 제가 합당한 자격이 없는 이라서 그런 거랍니다.”


조홍은 그 말에미간을 와락 찌푸렸다.


그녀가 느끼기에 유비는 아까부터 말끝마다 조정과 황실을 입에 담고 있었다. 안 그래도 조조는 어린 황제를 두고 황실의 권위를 짓밟는다고 평가되는 상황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조조의 제의를 거절하고 황실을 옹호한다.
그게 무슨 뜻인지 모를 정도로 유비는 바보가 아니었다.

하여 조홍은 이를 꽉 깨물었다.

“명에 따르지 않는 것도 불충 아닙니까.”
“옳지 않은 명령에는 목숨을 걸고서라도 바른말을 하는 게 충신의 도리죠.”
“……후회하실 겁니다.”

유비는  말에 답하기보다는 웃음으로 화답했다.

그 이후로는 조홍과 유비가 직접 대화하기보다는 대동한 만총과 제갈근이 주를이뤄 국경 문제를 비롯해 각 주의 협의안에 관해 얘기하기 시작했다.
조홍과 유비는 그저 서로를 바라보기만 할 따름.
그렇게 얘기가 얼추 정리되어 자리를 파할 때쯤이었다.

“서주목. 마지막으로 묻지.”


이제는 존칭도 생략한 조홍이 한 발짝 앞으로 나섰다.

“예전… 중랑장 휘하에서 함께 싸웠던 공적이 있으니까 묻는 거야. 이번 일을 거절하면 앞으로 대화가 이뤄질 일도 많지 않을 테니까.”
“몇 번 말씀하셔도 신하의 도리를 저버릴 수가 없네요.”
“그럼 이걸로협상은 결렬이네.”

그녀는 아쉽다는 듯 한숨을 내쉬었다.
유비는 그런 조홍을 잠시 바라보았다. 여기 도착했을 때부터 이럴 것은 알고 있었고, 거절할 것을 정했기에 이 결과 자체는 불만이 없었다.

하지만 아직 말하지 못한 게  가지.

중랑장 전호의 일.
지금은 저 멀리서 자신을 기다리고 있을 그였지만, 한때는 조조군에 대표적인 장수로 거론될 정도였으며 황제 폐하의 직속 중랑장으로 고위 관직에 올랐던 그였다.
모두가 죽었다고 했지만, 그는 기억만을 잃은 채 자신의 곁에 있었다. 전부 밝힐 수는 없겠지만, 저들의 의중을 떠볼 수 있지 않을까.


“조홍 장군님?  가지 여쭙고 싶은  있는데 괜찮을까요?”
“다 거절해놓고 무슨. 뭘 묻고 싶은 건데.”


어깨 으쓱이는 조홍을 향해 유비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중랑장은 어떻게 죽은 거죠?”
“……뭐?”


순간 조홍은 질문을 이해하지 못해 잠시 멈칫했다.

“시신조차 발견되지 않았다고 했지만, 저는 아직도 모르겠어요. 조조군에서  누가 감히중랑장을 해할 수 있으며, 어째서 1년 뒤에야 장례식이…….”
“닥쳐.”

유비가 말을  잇기도 전에 조홍은 그녀의 멱살을 움켜쥐었다.


“네가 뭘 안다고 그 이름을 입에 담아.”
“……모르니까 여쭤보는 거죠.”
“꺼져. 자리도 깨졌겠다, 이상 할 말도 없으니까.”


갑작스러운 감정의 변환.
조금 전까지만 해도 아무렇지도 않게 답하던 조홍이 얼굴까지 새빨갛게 물들이고는 이를 꽉 깨물고 있었다.

“죄송하지만 이제 퇴실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그런 조홍을 만류하며 만총이 그녀와 유비를 떼놓았고, 그대로 바깥으로 안내하기 시작했다. 살짝 뒤돌아본 그곳에는 여전히 이를 악물고 있는 조홍의 모습이 보였다.
유비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이 문제는 생각보다도 더 복잡해 보였다.
그는 대체 어떤 형태로 조조군에서 나온 걸까. 그가 죽었다고 다들 입 모아 말하지만, 살아있는 그와 함께하는 그녀에게 있어 아직 이해할 수 없는 요소가 너무 많았다.


유비는 바깥으로 나와 잠시 고개를 들었다.
우중충한 하늘.
먹구름이 잔뜩 끼어 금방이라도 눈송이가 내릴 것만 같았다. 그녀는 그것을 잠시 올려다보고는 이내 한숨을 내쉬었다.

“당신은 대체  했던 거에요?”


왜 기억을 잃었고, 어쩌다 자신에게 찾아왔는지.


내쉰 한숨을 타고 뽀얀 입김이 나왔다.잠시 그것을 바라보던 유비가 이내 고개를 돌려 동행한 이들과 함께 천천히 걸어나갔다.
조조군과는 이걸로 끝.
앞으로는 이리 태평하게 대화할 수 없었고, 이 의문은 당분간 풀리지 않겠지. 그녀는 그것을 이해하고 있었기에 이번 기회에 그 반응을 보고자 했다.


 결과는 한층 더 혼란스러운 것이었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