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화 〉02. 팽성 전투 (1)
서주에서 모인 병사의 숫자만 1만.
이만한 숫자의 인파를 본 것도 오랜만인데, 조금만 둘러봐도 잘 훈련된 병사로 보이는 이들이 정렬하여 명령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것은 분명 장관이라고 하면 장관이겠으나, 앞으로 전쟁이 벌어질 수 있다는 걸 생각하면 영 찜찜한 느낌이다.
“뭘 그렇게 멀뚱거리고 있어.”
“아, 익덕 장군님.”
“그냥 장비라고 해. 그게 편하니까.”
보라색 머리칼의 작은 소년.
하지만 그 손에 쥔 사모를 보면 누가 이 남자를 소년처럼 보인다고 무시하겠나. 무려 제 키의 3배 가까이 되는 것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는 양반인데.
심지어 몇번 대련을 통해 실력을 봐주던 관우가 말하길 장비는 자신보다 강하다고 했으니, 그 대단한 관우가 한 수 접을 정도면 얼마나 맹장이란 뜻이겠나.
“그리고 존대도 그만하고.”
“여기 사람들은 죄다 나보고 존대하지 말라네.”
“하란다고 진짜 하냐.”
그럼 안 할까?
물론 이 양반은 평소 볼 일도 드물어 조금 어색하긴 했지만, 장비 역시 이쪽을 조금 어려워하는기색이 엿보였다.
그런 양반이 모처럼 편히 다가오는데 거절할 이유가 있나.
“하긴, 그쪽은 예전부터 그런 사람이었지.”
“내가 원래 좀 친화력이 좋지?”
“부정은 않겠는데 조금 얄밉다. 그냥 다시 존대하는 건 어때. 마침 예전이랑 달리 지금은 내가 상관인데.”
상관은 무슨.
애당초 객장 신분인 내게 상관이 어딨나. 있다고 하면 유비 정도인데,그녀도 내게 존대하지 말라고 강권하고 있었다.
물론 장비도 진심으로 말하는 것 같지 않아 그냥 픽 웃었다.
“남자가 말을 꺼냈으면….”
“알아. 하여간 꼬투리 잡기는. 그쪽 원래 그런 사람이었나? 그래도 나름 진중한 남자라고 생각했는데.”
진중하다고?
나랑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표현이라고 생각한다.
“예전의 내가 어땠는지는 모르겠는데, 적어도 내 기본은 이런 느낌이야. 그나저나 장군님이면 저쪽에서 대열하고 준비해야 하는 거 아니요?”
“내 쪽은 얼추 끝났고, 잠깐 얘기할 게 있어서 왔지.”
그는 손에 쥔 사모를 옆에 걸어두며 의자에 주저앉았다.
옆으로 손짓하는 걸 보아 조금 길어지려나 싶었지만, 어차피 군부의 일로 유비도 바빠 당장 내가 할 일도 마땅치 않았다.
“기억이 전부 날아갔다고 들었는데.”
“이쪽도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지.”
“그쪽이 죽었다고 얘기되고 벌써 3년 정도 됐나. 아무래도 다들 의심하는 느낌이 있다. 조조군이 심은 첩자가 아니냐고.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조조군의 핵심 장수였으니까.”
“아니 그건 또 무슨.”
조조군의 핵심 장수라는 것도 놀랍지만, 그쪽의 첩자 아니냐는 소리는 더 놀랐다.
애당초 핵심 장수를 이렇게 취급하면 그건 그것대로 문제 아닌가? 혹시 장비가 말 걸어온 것도 그건가 싶어 살짝 눈 치켜뜨고 바라봤지만, 그는 어깨를 으쓱이며 픽 웃을 뿐이었다.
“그런 눈으로 보지 마라. 말 안 된다는 거 아니까.”
“그러면 왜?”
“문제는 그쪽 기억이 돌아올 때의 일이지.”
장비는 한숨을 내쉬고는 팔짱을 꼈다.
“무슨 일이 벌어져 죽었다는 사람이 3년 만에 돌아왔는지는 몰라. 애당초 이제 조조년이랑 치고받게 생겼는데네가 있으니까 껄끄럽다는 사람도 더러 있다.”
“내가 좀 단순하게 생각했나.”
유비가 괜찮다고 해서 나도 그런 줄로만 알았다.
물론 조조군이 서주 방면으로 움직인다는 이후로 주변 시선이 조금 따가워진 것은 알았지만, 아예 그쪽에서는 핵심이었다고 하면 이쪽 사람들의 시선도 이해할 수 있었다.
그러면 지금이 떠날 시기일까.
“그럼 댁도 그렇게 생각하는 거요?”
“아니, 난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해.”
그는 살짝 고개를 들어 이쪽을 바라봤다.
“예전에 그쪽 상대로 내가 실수를 좀 한 것도 있고, 솔직히 요 한 달 지켜보면서 무슨 꿍꿍이가 있는 것도 아니라는 건 알았으니까.”
“그러면 이런 얘기는 왜 하시는 거요?”
내 질문에 그는 살짝 고개를 돌렸다.
그 시선의 끝자락에는 저 멀리 집결한 병사들을 바라보며 연설하고 있는 유비가 있었다. 아예 군복까지 입고는 양 허리춤에 쌍검을 걸친 모습.
장비는 그런 그녀를 잠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기억이 언제 돌아올지, 어쩌면 영영 돌아오지 않을지. 그것도 모르는 상황에서, 그래도 난 누님의 남동생으로 이 말은 해두려고.”
이윽고 시선 돌린다.
그 표정은 조금 안타까운 듯한, 그러면서도 씁쓸해 보이는 표정이었다. 물론 표정만으로 사람의 기분을 전부 살필 수 없다마는 그냥 그렇게 느껴졌다.
“설령 기억이 돌아와 떠나게 되더라도 뒷맛 찝찝하게 가지는 마라. 너 하나 끼고 도는 게 정치적으로 얼마나 부담인지 알아줬으면 한다.”
“그런 거라면 지금이라도 내가 떠나는 게….”
이렇게 말하니 또 대뜸 고개를 가로젓는다.
“왠지는 모르겠다만 누님이 널 싸고도니까. 아니면 뭐냐, 서주가 좀 위험해졌으니까 이제 도망치겠다거나 그런 건 아니겠지?”
“그게 아니라 구태여 피해 주고 싶지 않으니까.”
나도 금수도 아니고, 양심이라는 게 있는 인간이다.
물론 요 한 달을 먹여주고 재워준 값이 목숨값보다 중하다고는 못 하겠지만, 적어도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남아서 도와주고 싶었다.
누군가에게 빚을 남기는 건 영 찝찝하기도 하고, 무엇보다 나 개인으로서도 이곳에 있는 사람들이 마음에 들었으니까.
“누님은 널 필요로 한다. 아마 떠난다고 해도 누님은 고개 끄덕이겠지만, 원래 우리 누이는 저 원하는 걸 말 못 하는 성격이라서. 참 답답한 성격이지.”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유비를 바라보는 시선에는 자랑스럽게 여기는 기색이 역력했다.
장비와 관우.
거기에 제갈 자매도 있었고, 그 밑으로도 여러 사람이 모여 그녀를 지탱하고 있었다. 유비는 이 많은 사람을 모아 자신의 사람으로 만들고 포용할 정도의 인물인가.
저마다 다들 실력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런 이들이 진심으로 유비라는 여인을 따라 그 앞날을 열고자 한다. 그렇다면 당사자인 유비가 바라는 미래는 무엇이고, 그녀는 최종적으로 어떤 모습으로 남길 바라는가.
문득 그게 궁금해졌다.
* * *
소녀의 티를 벗어, 이제는여인에 가까워진 사마의가 고개를 까닥거리며 연신 지도를 살폈다.
서주에서 군이 출병한다는 정보는 들어왔다.
얼추 그녀의 예상대로 진행되고 있었지만, 이번 대안에서 서주를 포섭할 수 없다면 점령해야 했는데 그를 위한 전력이 모자랐다.
조인 장군과 조운은 형주 방면으로 돌려 그곳에서의 돌출에 경계하고 있었고, 하후 남매는 낙양 일대를 포함한 사예주 일대의 경계를 맡은 상황.
물론 그것을 제외하더라도 조조군 내에 가용할 수 있는 장수 전력은 있었지만, 그 넓은 지역을 전부 경계하기에는 병사의 숫자가 모자랐다.
“당장 전쟁이 벌어질 건 아니지만….”
그래도 아쉬운 것은 아쉬운 것.
사마의는 이번 기회에 아예 서주 함락까지 진언했지만, 조조와 진소연 모두가 입을 모아 아직은 시기상조라고 반대하여 이루지 못했다.
그녀는 이번 기회가 가장 적기라고 판단했지만, 반대로 그 둘의 반대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연주와 예주를 장악하며 군사력만은 중원 최강으로 부상했지만, 북으로는 하북이 자리하고 동부로는 서주, 서부로는 사예주, 남부로는 형주와 경계를 맞대고 있었다.
그중 확실한 아군이 아무도 없는 상황.
“이럴 때 여포라도 있었으면.”
사마의는 이제 없는 이의 이름을 읊으며 잠시미간을 찌푸렸다.
전호의 행방불명.
사실상의 사망 이후, 시신을 찾지 못해 그 근방으로 계속 조사가 이뤄지는 가운데 1년이 걸려 겨우 사망했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고 장례를 치를 수 있었다.
그 직후 여포는 홀연히 조조군을 떠났다.
애당초 여포는 조조와의 전쟁에서 진 패장이었다.
그걸 전호가 거두었을 뿐이었고, 엄연히 따지면 관직에도 오르지 않은 민간인에 불과했다. 어디까지나 중랑장의 독단으로 그녀에게 임의적인 군사권을 부여했을 뿐.
그러니 떠나더라도 뭐라 하기 힘든 입장이었지만, 사마의는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뭐가 부질없어. 아직 원수가 살아있는데.”
그 사건을 꾸몄던 순심은 이미 죽었다.
그 과정에서 순욱의 거처가 애매하였지만, 그녀 또한 허도가 불타던 밤 죽어버렸다. 얼핏 보아 그의 죽음에 직접 관련된 이는 전부 죽어버린 듯한 모양새.
하지만 원소가 아직 숨 쉬며 살아있었다.
조조가 황제라고 참칭한 원술을 꺾으며 역대 최대 전과를 거뒀을 때, 내부로 공작원을 파견하고 참모까지 대거 파견해 허도 염상이라는 참사를 빚어낸 것은 다름 아닌 원소.
그 남자가 아직 이 천하에 가증스럽게도 숨 쉬며 살아있었다.
그런데 복수를 포기하고 물러난다고?
사마의는 그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여포는 떠나기 직전 사마의에게 말했다.
모든 게 끝났다고.
“다 끝났다고? 틀렸어.”
적어도 여기서 멈출 수는 없다.
우선 첫 번째로 원소의 목을 벤다. 그걸 이뤄내지 않고서야 뭐가 복수고, 뭐가 끝이라는 말인가.
어릴 적 그를 처음 만난 이후, 그녀에게 있어 그는 태양과도 같았다.
자신과는 다른 인종. 그렇기에 눈부셨고, 하여 그 남자가 어디까지 가는지 보고 싶었다. 그 마지막을 함께하고 싶다는 욕심도 있었다.
그런 자신의 소소한 행복은 송두리째 빼앗겼다.
“전부 다 죽일 거야. 그게 아니면 시작할 수도 없어.”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직접 관여된 이들을 죽이면 이제 간접적으로 그의 죽음과 연관된 이들을. 그렇게 하나하나전부 이 천하에서배제한다.
사마의에게 남은 것은 오직 그것밖에 없었다.
이건 어쩌면 전부 그의 잘못이었다.
그녀는 시작부터 어딘가 일그러진 생명이었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그 죽음과 고통을 이해하지 못한다. 그저 자신의 재능을 천하에 만개하고 싶었을 뿐인 괴물.
그런 그녀를 이 세상에 풀어놓은 것은 다름 아닌 전호 본인이었다.
“……날 풀어놨으면 목줄이라도 꽉 잡았어야죠.”
그 목줄을 잡아줄 주인이 사라졌다.
분명 어떤 의미에서는 자신의 재능을 제약하던 이의 부재였고, 그것은 곧 자유이기도 했다. 이제 그녀를 속박하는 이는 아무도 없게 된 셈.
하지만 그녀는 이런 자유를 바라지 않았다.
사마의에게 있어 그 속박은 안식처이기도 했다.
“쯧.”
그녀는 혀를 차고는 의자 등받이에 기댔다.
서주의 건은 우선 이 정도로 문제 될 것은 없었다.
그곳으로 향한 조홍과 만총 모두 똑똑한 이들이니 불필요한 충돌을 빚지 않을 터. 그렇다면 우선 그녀가 신경 써야 할 곳은 형주였다.
유표는 처음부터 원소에게 협력하던 인물.
지금이야 몇 차례 국지전에서 조조에게 패하고는 형주 바깥으로 움직이지 않았지만, 원소가 공손찬을 제압하고 난 뒤가 문제였다.
본격적으로 중원 대 하북으로 구도가 잡힌다면 유표는 분명 조조의뒤를 노리고 덤벼들 게 뻔했다.
그러니 그 전에 미리 형주의 기세를 꺾어야만 하는 상황.
하지만 수뇌부의 대처는 미적지근하기 그지없었다.
“상서령은 대체 뭘 생각하는 건지.”
사마의는 형주와 대립하기 전, 미리 의심스러운 서주를 토벌할 것을 상서령 진소연에게 권했다.
서주와 형주를 동시에 상대하게 되면 아무리 조조군이라도 부담스러운 상황.
형주는 남쪽으로 길게 뻗어 사실상 짧은 기간 동안 공략하기란 불가능한 상대였고, 그렇기에 사마의는 먼저 상대적으로 대처하기 쉬운 서주를 노려 각개격파하는 게 좋다고 보았다.
“……미적지근해.”
그녀는 이미 몸이 달아오른 지 오래였다.
당장에라도 모든 걸 부수고 싶었다. 그녀의 태양은 사라졌고, 그 관점으로 보아 이 세계는 멸망으로 치달은 것과 다를 게 없었다.
하지만 여전히 태양은 떠오른다.
사람들은 그의 죽음 따위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간다.
마치 전호라는 남자가 이 세상에서 아무것도 아니었다는 것처럼. 그렇게 태연하게 살아가는 이들을 볼 때마다 그녀는 속에서 올라오는 혐오와 구역질을 애써 참아야만 했다.
왜 너희는 아무렇지도 않게 살아가.
나는 이렇게 슬픈데.
그런 증오가 시간이 지나면지날수록 쌓여갔다.
“아, 이건 다 아저씨가 나쁜거예요.”
날 두고 가니까.
마지막까지 인사도 없이 그렇게 떠났으니까.
그러니까 내가 이렇게 미쳐가는 거잖아요.
그래서 내가 잔뜩 미쳐버렸잖아요.
“그래도 걱정하지 마요.”
그 복수만큼은 제대로 해줄 테니까.
사마의는 등을 기대며 눈을 감았다.
그럴 때마다 제 머리를 쓰다듬던 한 남자의 모습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여전히 추억에 젖어 살았다. 아직 잊히지 않는 과거를 회상하며 그것에 몸을 맡기고는 상상하듯 떠올린다.
그녀는 이런 고독을 좋아했다.
이미 죽고 없어진 그의 모습을 가장 선명하게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니까. 오직 이렇게 눈을 감고 상상하는 것만이 점점 사라져 가는 그의 흔적을 떠올릴 수 있는 유일한 길이었다.
하여 오늘도 눈을 감고 상상한다.
이미 죽고 없어진 이의 손길을 애써 떠올리며.
그것이 의미 없는 일이라는 건 애써 떠올리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