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6화 〉01. 유비라는 군주에 대해 (2) (6/40)



〈 6화 〉01. 유비라는 군주에 대해 (2)

유비는 빙긋 웃으며  옆에 쌓인 서류의산을 가리켰다.


“생각보다 빨리 처리하셨네요?”
“내가 생각해도 놀라워.”


분명 배운 적 없는 글이 술술 머리에 들어오고, 어떻게 처리하면 좋을지 대략적으로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평생 칼질이나 하던 놈이언제 이런 능력까지 길렀지?
가르친 이가 누군지는 몰라도 고생깨나 했겠다.

“자자, 여기 앉으세요.”


유비는 미리 우려둔 차를 따르고는 제 맞은편을 가리켰다.
그 손짓에 따라 앉아 마주하고 새삼 느끼는 게, 이 여자는 진짜 엄청난 미인이었다.
어휘력이 부족해  설명할 수는 없겠지만,연갈색으로 가늘게 내려오는 머리카락과  비취색 눈동자에서는 묘한매력이 느껴진다.

“예전에 호세 씨랑 그런 얘기를 했어요.”


그녀는 찻잔을 들어 살짝 들이켜고는 말을 꺼냈다.

“제가 웃는 건 영 부자연스럽다고 그러셨죠.”
“내가 그랬다고?”


그야 물론 왜 매일같이 실없게 웃고 있나 싶기도 했지만, 그와 별개로  표정 자체가 부자연스럽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게다가 이런 미인이 항상 웃어주는데 그게 왜 싫어?
과거의 나라지만 이해할 수가 없네.


아, 기억이 없으니까 이해할 수 없는 건가.


“지금은 어떤지, 아직도 그때와 같은지 여쭤보고 싶었어요.”

유비는 나를 마주하고 재차 웃었다.
분명 환한 웃음이었지만, 어딘가 그늘이 느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명과 암이 동시에 느껴지긴 해도 그것에 꾸민 듯한 느낌은 없었다.

“나쁘지 않은데.”
“그래요?”
“꾸민 느낌은 전혀 안 들어. 왜, 그런 거 있잖아. 가끔 사람이 꾸며서 웃으면 얼굴 가죽을 뒤집어쓴 것 같아 영 껄끄럽게 느껴지는 거. 댁한테 그런 느낌은 안 나.”


물론 과거를 모르니  잘라 말할 수는 없었지만, 적어도 지금의 내가 보기에 그녀에게 불편한 요소는 단 하나도 없었다.
어색함? 꾸민 듯한 미소?
글쎄. 내가 보기엔 예쁘기만 한데.


“게다가 웃는 게 뭐 어때서? 꾸며? 그래서 뭐. 그게 나쁜 건 아니잖아? 적어도 웃고 다니는  인상 찌푸리고 사는 것보다야 훨씬 낫잖아.”
“그런가요? 예전이랑은 전혀 다른 말을 하네요.”


그녀는 차를  모금 마시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그 뒤로 많이 생각했거든요. 적어도 그 당시 제게 그런 말을 했던 건 당신이 처음이고,  바뀌고 싶었으니까. 지금 그렇게 말씀하시는 걸 보면 저도 많이 나아졌나 봐요.”
“왜 구태여 내 평가에 맞추려고 해?”
“……글쎄요.”


유비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다.
타인의 평가에 맞춰 모습을바꿀 필요가 있나? 내가 뭐라고.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구태여 남의 의견과 시선에 맞춰 모습을 바꾸는 건  좋은 일이 아니다.

“적어도 지금의  당신이 마음에 들거든.”
“…그건  의외네요.”


의외라고 할 것까지야.
혹시 기억 잃기 전의 나는 유비와 별로 사이가 좋지 않았나? 미인인 것은 둘째로 치더라도 성격도 싹싹하고 항상 웃고 다녀, 주변 사람들의 기운까지 좋게 만드는 사람인데.
거참, 이해할 수가 없네.

“당시에는 웃고 다니는 이유를 모르겠다고 하셨는데.”
“그래? 웃으면 복 오고 좋지, 뭐.”

물론 그것도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구태여 나쁘게 말할 이유도 없다.
 지론상 항상 웃고 다니는 사람은 썩 믿을만한 사람이 못 된다고 생각했지만, 적어도 요 한  사이로 유비를 지켜보며 그런 느낌은 들지 않았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세요?”

그녀의 질문에는 잠시 입을다물었다.
왜 그런 걸 묻는 걸까. 잠시 쉬자고 하더니, 갑자기 뜬금없이 부담스러운 질문을 던지는 건 어떨까 싶은데.
왜 쉬자고 해놓고 머리 쓰게 만드는 거야.


“글쎄.”


그래도 질문을 받았으니 답하는  도리.


“솔직히 항상 즐거워서 웃는 거라고는 생각  해.”
“……예?”
“뭘 그렇게 보나. 당연한 거 아냐?”


아무리 그래도 사람이 매 순간 행복하다는 게 말이 돼?
애당초 감정이라는 것에는 한도가 있다. 당장 길바닥에서 금덩이를 주워 행복하더라도 언젠가는 그 행복도 점점 사그라지기 마련.

감정이란 이른바 타오르는 불길과도 같은 것이었다.
심적인 반응을 연료로 하여 타오르지만, 그것은 언젠가는  타올라 꺼진다. 새로운 사건이 벌어지지 않은 이상, 사람의 감정이란 것은 언제나 일관될 수 없는 것.
애당초 매 순간이 행복해 웃는 사람이라면 그건 어딘가 망가진 게 분명했다.


“왜 웃는지는 솔직히 모르지. 그래도 말이야?”


나는  여자가 웃는 모습이 썩 마음에 들었다.
기억을 잃기 전 접점이 있었다고 했던가. 혹여 그것 때문일까도 생각했지만, 그것과는 조금 다른 부류처럼도 느껴졌다.
무엇보다 그녀는 어떤 사람을 대하더라도 항상 존중했고, 그러면서 자신을 낮출 줄 알았다.

그건 분명 현 천하에서는 보기 힘든 인간상.
 번 그런 식으로 호감이 생겨서 그런지, 전반적으로 그녀의 미소 또한 마음에 들었다. 적어도 내가 본 관리 어르신 중에서는 이런 사람이 없었던 탓도 크겠지.


“난 댁이 마음에 들거든.”
“이유를 설명해주실  있을까요.”
“아니, 그냥 괜찮은 사람 같으니까. 이유가 필요해? 그냥 사람 잘 대해주고, 그러면서 배려할 줄 알면 좋은 사람이지.”


경계할 이유가 있다면  또한 이상하게 보이겠지만, 적어도 지금의 내겐 유비라는 사람을 멀리 둘 이유가 없었다.
적이 아니라면야 그냥 사람 좋은 여자인데?
물론  가지 안타까운 점은 있었다.

“대신 그렇게 항상 웃고 다니니까 진짜 즐거운  언제인지를 잘 모르겠어. 그거 하나는 단점이야.”
“그걸 단점이라고 할 수 있나요?”
“아니라고 생각했나? 아랫것들에게는 상전 분위기 읽는 게 얼마나 중요한데. 댁은 그런점에서는 아랫것들 되려 피곤하게 하는 부류야.”


그렇게 말을 끝마치니 유비가  웃기 시작했다.


나는 나름대로 진지하게 말했는데?
왜 그렇게 웃고 그러시나. 이쪽은 농담 아니라니까.

예전에 한창 관군으로 전장에 나설 때 백인장을 맡은 양반이 딱 저런 느낌이었다.
물론 그는 웃고 다니거나 하진 않았지만, 반대로 항상 무표정한 인간이라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몰랐었다.
해도 단답형으로 끊으며 표정에 드러나는 게 없으니까.
그래서 괜히 긴장하며 아랫것들 군기가 빡 잡혔고, 안타깝게도 그 아랫것에는 나도 포함됐다는 슬픈 과거가 있다.


“가끔이라도 좋으니 진심을 터놓을 수 있는 상대나 만드쇼. 그렇게 매번 긴장하고 있는 것도 지치잖아. 나라면  터놓고….”
“제가 긴장하고 있다고요?”


더 말을 이으려던 차에 그녀가 먼저 말을 끊어버렸다.
표정도 조금 떨리는 게, 내가 이상한 말을 했나. 물론 당사자 앞에서 꺼내기엔 조금 조심스러운 말이었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개인의 감상에 불과한 것.

“음, 그냥 내가 느끼기엔 그렇다는 거지. 물론 아니면 말고. 적어도 내가 보기에는 매 순간순간 긴장하고 있는 것 같아서 말이야.”

이건 지극히 개인적인 견해였다.
왠지는 모르겠는데, 그냥 유비가 웃고 다니는 걸 보면 뭔가 소동물이 움츠린 것처럼도 보였다.
내면에는 분명 무언가를 감추고 있는데, 그 감추는 것에 너무 필사적인 탓인지 조금 긴장하는 것처럼 보이는 게 사실이었다.

“에이, 됐다. 내가 서주목 어르신을 상대로  소리래.”


손을 내젓고는 그녀가 따라준 잔을 한 번에 들이켰다.
아무래도 대화가  길었던 탓인지 차는 벌써 다 식었는데, 뜨거운 걸 꺼리는 편이라 이게  낫기도 했다.
텁텁해진  어쩔  없지만.


“이제 일합시다, 일!”
“……그러네요.”

그녀는 멍하니 고개를 끄덕였다.


난 자고로 이런 분위기가 싫었다.
그냥 편안하게. 응? 구태여 이런 진지한 분위기로 넘어가면 당분간은 묘한 기류가 흘렀다. 남녀 둘이서 같은 방에 머무는 와중에 그런 분위기까지?
진짜 사양하고 싶다.

“재밌는 걸 들었어요.”
“아니, 이게  재밌다고. 그럴 시간에일하쇼.”

뭔가 놀리는 것 같아서  찝찝하다.

“진심이에요. 적어도  향해 긴장하지 말라고 한 건 당신이 처음이니까. 이건 운장이나 익덕도 모르는 부분이거든요.”
“아니 그냥 개인적인 감상이라니까?”


자꾸 꼬치꼬치 캐물으면 곤란하다.
지극히 개인적이라니까는왜 그렇게 연연하는지 모르겠네. 기억 잃기 전에는  특별한 관계라도 됐나?
그러기엔 지금 관계가 너무 담백하지 않나.

“긴장이라. 어쩌면 그럴 수도 있겠네요.”
“아, 진짜!!  안  거요? 나 진짜 간다?”
“알겠어요. 이제 놀리는 건 여기까지. 됐죠?”

하여간, 알다가도 모를 여자라니까.



* * *


그렇게 며칠을 서류 더미에 묻혀 살았다.
염병. 진짜  번 돕겠다고 했더니 끝까지 물고 안 놔주더라. 나중에는 제갈근 선생이 여유가 남는다고 도우러 온 걸 둘만으로도 괜찮다며 돌려보내기까지.
이 여자, 은근히 사람 부려 먹는  험한가?

“꼬맹아, 너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냐?”
“잘 모르겠음.”


그렇게 업무가 끝나 잠시 남는 시간을 틈타 돌아다니던 차.
정원 인근에서 제갈량 꼬맹이가 있는 걸 보아 적당히 신세 한탄이라도 할까 해서 찾았는데, 안타깝게도 한탄을 받아줄 느낌은 아니었다.
물론 이 꼬맹이랑도 한 달을, 그것도 다른 이들보다 더 자주 봤기 때문인지 이제는 얼추 저런 화법에도 익숙해질 있었다.

“아무튼,  양반  이상하다니까.”
“그래도  군의 군주. 이런 말 해도 됨?”
“안 될  있나?”


본인도 말 편하게 하라고 했는데.
물론 상대가 그러라고 한다 하여 진짜로 그러지는 않지만, 유비는 제법 진심으로 그러는  같아 나도 편하게 상대하는 중이었다.
만약 이래놓고 나중에 뭐라고 하면?
그땐 그때의 일이고.

“이번에는  자기 관련해서 묻던데, 어우. 윗분들은 그게 얼마나 부담스러운 건지 모르는 것 같아.”
“그녀는 아저씨를 제법 신경 쓰고 있음. 예전부터 그랬고, 지금도 마찬가지.”
“내가 뭐 저질렀냐?”

그러니 꼬맹이가 그 멍한 시선으로 이쪽을 바라봤다.
당최 무슨 생각을 하고 사는지 모를 표정이었지만, 이게 이 꼬맹이의 개성이라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 이해할 수는 있었다.

“아저씨와 그녀는 닮은꼴. 하지만 무언가 다르다고 느낌.”
“닮았다고? 물론 내가 좀 잘생기긴 했지.”
“어이가 없음.”

어이가 없다는 뭐냐.
너무하지 않나? 그래도 한때는 거리에서 여자 후리기로는 날 따라올 인간이 없었는데. 얼굴에 난 흉터가 아쉬울 정도로 미남이라고 많이 들었다고.
이건 진짜다.


“유비와는 자주, 진지하게 대화하길 추천.”
“왜?”
“그녀는 아저씨를 존중하고 이해하려 함. 근본은 분명 다르지만, 그 시작은 비슷한 선상. 그러면 같이 가는 것도 가능하지않음?”

같이 간다?
솔직히 지금 당장에야갚아야 할 은혜도 있고, 어디  곳도 없는 상황에서 머무르라고 하니 있는 것뿐이었다.
정이야 조금 들었지만, 앞으로도 이런 관계를 유지할 수 있을 보장도 없다. 게다가 전쟁이라면 진저리가 나는 상황에서 서주는 어쩔 수 없이 전쟁에 엮일 거란 확신도 있었다.


“그건  모르겠네.”
“중랑장 전호에서 인간 호세로 돌아옴. 아저씨 어깨에 놓인 짐도 없어진 것. 그러니 후회 없는 선택을 하길 바람.”

중랑장이라.
솔직히 말하자면 이해할 수 없었다.
대체 과거의 나는 무슨 이유로 전쟁에 몸을 맡겼고, 관직에도 오르고자 했을까. 그게 가시밭길이라는 것은 빤히 보이는데.


물론 부귀영화에 흥미 없노라고 말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그게 목숨을 걸고 이룰 정도로 중요한 일은 아니었다.
개인적으로는 그저 평화롭게 돈 걱정 없이 살고 싶다마는 이 천하에서 평화와 돈 걱정이 양립하는 경우는 썩 많지 않았고, 그게 얼마나 허황된 희망인지도 알고 있었다.

‘천하 만민, 그 누구 하나 배 굶주리지 않고 등 따듯하게 사는 세상을 만들어  테니까.’



귓가에 또 목소리가 울리는 듯한 착각을 느꼈다.
생전 처음 듣는 목소리.
과거의 기억일까. 하지만 그 단편이라고 해도 그 목소리의 주인이 누구인지 모르는 상황에서 바뀔 건 아무것도 없었다.


단지 조금.

“야, 밥 먹으러 가자.”
“생각 없음.”
“너 자꾸 그러면 땅꼬마로 남는다?”


 웃으며 꼬맹이의 머리를 마구 쓰다듬었다.

누구인지 모를 이의 목소리가 울릴 때쯤이면 언제나 살짝 울적해지고는 했다.
그래서 괜히 제갈량을 조금 괴롭히며 애써 웃었다.


애써 웃는다?
어쩌면 유비도 이런 느낌으로 웃는 걸까.
그것까지는 잘 모르겠다.


“땅꼬마아님!”
“그건 유비 언니처럼 쭉빵하게 되고 나서 말하자.”

가볍게 웃어주며 꼬맹이의 손을 이끌었다.

“……그 몸은 반칙임.”

어, 그건 나도 동의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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