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5화 〉01. 유비라는 군주에 대해 (1) (5/40)



〈 5화 〉01. 유비라는 군주에 대해 (1)

서주성에 도착해 유비를 만나고 벌써 한 달이 지났다.
그동안 내 위치에도 조금 변화가 있어, 언제까지 객장 신분으로 두는 것은 조금 그렇다며 무관으로 임명했지만, 별도의 직책 없이 호위 무장이라고 불렸다.
 정도라면 원한다면 언제든 내려놓을 수는 있다던데, 난  모르겠다.


여차하면 도망가야지.

그런 가벼운 생각으로 오늘도 관사에 들어섰는데, 평소와는 영 분위기가 달랐다.
뭐라고 하면 좋을까. 조금 어수선하다고 해야 하나? 감각적인 부분이라 뭐라고 설명할 길도 없었지만, 다들 어딘가 당황한 느낌도 들었다.

일단 내 임무 자체가 유비 호위였기에 주목의 집무실로 향했다.

“아, 오셨어요?”
“그런 일 아니겠나. 그나저나 바깥은  저래?”

그 질문에 유비가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
언제나 웃기에 이 여자는 웃는 얼굴이 굳어진  알았는데, 이런 표정도 지을 수 있구나. 그런 간단한 감상을 느꼈을까.

“조조가 움직였어요.”
“그건 참 안타깝구만.”

거기까지 말하고는 품에 넣어둔 호패를 꺼내려고 했다.

“그럼 우리는 여기까지겠네.”
“…저기요?”
“……아니, 농담이니까 진짜 그런 표정 짓지 마쇼.”

버려진 강아지 같은 표정을 지으면 어떡하나.
게다가 기억 잃고 배회하던 날 주워준 은혜도 있다. 이들이 날 섭섭하게 대한 적도 없고, 당장 내가 이곳을 떠난다고 다른 갈 곳이 있는 것도 아니니까.
병주는 들러보고 싶었지만, 벌써 8년 이상 지났으니 터도 남아있을지 의문인 데다가 급한 일도 아니다.

“그러면 조조 그 여자가 어떻게 움직였다는 건데?”
“예주 소패로 군을 움직였어요.”
“소패?”

거긴 또 어디더라.


“기억이 없으시다더니 지명도 다 잊어버리셨네요.”
“애당초 나는 중원 사람이 아니니까.”


어느 쪽이냐고 하면 하북 사람이지.
기주였을까? 어머니와 함께 전가에서 쫓겨나 지낸 곳이 기주였으니 얼추 그 인근으로 예상할 수는 있었지만, 그나마도 확실치는 않았다.
중원 일대라면 황건적 토벌에 가담하여 소년병으로 몇 번 차출된 적이 있지만, 이곳 지리를 소상히 꿰고 있을 정도로  것도 아니었다.


“소패는 서주 바로 인근에 있는 지역에요. 전략적으로도 요충지고, 여차하면 그곳에서 바로 서주의 서부를 초토화할 수도 있는 곳이죠.”
“그럼 대놓고 여기 노린다는 소리 아니요?”
“아마 위협으로생각되지만….”

생각보다 큰 문제였네.
어쩐지 다들 우왕좌왕하는 것 같더라니. 이 한 달간 아예 놀고먹지는 않아, 종종 제갈량 그 꼬맹이랑 어울리며 대륙 정세를 들은 적이 있었다.

조조라고 하면 현 천하의 절대적 2강.
현 원소가 아직 공손찬을 끝장내지 못한 상황에서, 이 중원을 필두로 가장 큰 영향력을 휘두를 수 있는세력임과 동시에 황제를 업고 있어 명분으로도 저항할 수 없는 상대라고 들었다.


“황제 폐하도 모시고 있다며. 그럼 우리는 바로 항복이야?”
“설마요. 지금까지 조조의 행보를 보면 명백히 황실을 우롱하여 황권을 제 것으로 삼고 있어요. 폭정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해서 폭군이 아니라는 것은 아니잖아요?”


그건 조금 어려운 문제였다.
폭정을 저지르기에 사람들은 폭군이라고 부른다.
그게 분명 일반적이긴 하지만, 내가 생각하기에는 굳어진 체제를 개혁하며 잦은 반발을 불러온다면 그 또한 폭군이라고 부를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그럼 어떻게 하려고?”
“우선은 대치해야죠. 황제 폐하의 칙명이 내려온다고 해도, 저들이 저희와 전면전을 할 게 아니라면 어느 정도 숨통은틔워줄 거예요.”
“확신하는 이유는?”


 질문에 유비가 빙긋 웃으며 지도를 가리켰다.


“서주는 연주, 예주와도 맞닿았지만, 북으로는 청주를 통해 하북과도 이어진 곳이니까요. 원소와 조조,  누구라도 서주는 포섭하고 싶을 대상이겠죠.”
“전략적으로 중요한 지점이라는 소리지?”
“그렇죠. 조조는 이웃으로  서주가 계속 거슬릴 거고, 원소에 이르러서는 저희와 협력한다면 구태여 황하를 건너지 않더라도 육로로 조조를 위협할 수 있어요.”


흠. 이건 조금 고민되는 부분인데.
유비는 아직 전면전으로 이어지지 않을 거로 생각했지만, 일이 수틀려 조조가 서주를 먼저 제압하겠노라고 생각하는 순간 바로 끝장나는 게 아닌가?

“나라면 적인지 아군인지 모를 이웃은 쫓아낼  같은데.”
“예?”
“아니, 그냥 왠지 모르게. 솔직히 아직 잘 모르겠는데, 그래도 내가 잠깐 보았던 조조라면 무리해서라도 서주를 먼저 꺾고 시작할 것 같아.”

물론 전부 감에 불과했다.
내가 실제로 조조와 일한 적도 없고… 아, 그 밑에서 일했다고 했던가. 하지만 기억이 없는 이상에야 없는 것과도 마찬가지 아닌가?
아무튼, 이건 진짜 예상에 불과했다.


“너무 진지하게 생각하지는 말라고.”
“아뇨.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어요. 실제로 량이도 이번 조조의 움직임에는 충분히 대비하고 맞서는 게 좋다고 했으니까.”

그 꼬맹이가?
그러면 좀 조심할 필요가 있었다.
제갈량 걔는 생긴  맹해 보여도 생각보다 진짜 똑똑한 애니까. 가끔  마디 섞으면 이해 못 할 구석도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그 지성에 놀란  한두 번이 아니다.

“그러면 난 어떡하우?”
“저랑 같이 팽성으로 가주셔야겠어요.”

유비가 지도에서 가리키는 곳을 바라봤다.
팽성, 팽성…. 아, 여기네.
그런데 문제가 하나 있다면, 팽성은 바로 소패에서 엎어지면 코 닿을 거리 아닌가. 만약 조조가정말 서주를 공격하고자 한다면 금세 전화에 휩싸일 듯싶었다.

“……저기 유비 아가씨야.”
“예?”
“나 전쟁에는 안 나서겠다고 한 것 같은데.”

그 어떤 은혜라고 목숨보다 중요하진 않다.
정말 매정하고 미안한 말이지만,일단 내가 사는 중요하지 않겠나? 물론 요   가까이 붙어 지내며 정도 많이 들었다만 아닌 건 아닌 거다.

“괜찮아요. 호세 씨는 하던대로 제 신변만 지켜주시면 되고, 여차하면 잔소리 몇  해주시는 거로 충분해요. 저도 일단은 서주목이라고요? 최전선에 설 리가 없잖아요.”
“그건 다행이다만…, 잔소리?”

그 의문에 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배시시 웃었다.

“네네. 제가 가끔 실수할 때도 있을 거고, 잘못된 선택을하거나 흔들릴 수도 있을 테니까요. 그럴  뭐하는 짓이냐고 시원하게 잔소리 좀 해주세요.”
“그건 호위 무장이 아니라 보모 아닌가?”
“에헤헤. 잘 부탁해요?”


아직 딸 가질 나이는 아닌데.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유비가 나보다 나이는 훨씬 많은 거로아는데.


“댁 나이가 몇이었지?”
“……저기요, 호세 씨. 미안한데 여자에게는 물어도 될 말이랑 안 될 말이 있다고생각하는데, 그 부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미안하니까 그렇게 보지 마쇼.”


농담이 아니라 방금 표정은 날 죽일 것 같았다.
거참. 어차피 외견은 그대로니까 나이고 자시고 신경  것도 아니라고 생각하는데, 여자는 또 다른 느낌이려나.
난  모르겠다.

“그러면 팽성으로? 출발은 언제쯤 할 생각이요?”
“군비는 저희도 이미 갖추었으니까, 이제 물자를 호송할 준비만 마치면 바로 출발할  있어요. 아마 사흘 뒤면 출발 가능할 것 같네요.”

사흘이라.
그러면 그동안은 할 일도 없네.

“뭐 도와줄 건 없고?”
“나머지는 전부 사무적인 일이라서요.”


사무라.
물론 내 특기라고 하기는 어려웠지만, 어느 정도라면 도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어째서인지는 모르겠지만, 과거 기억하기로 분명 까막눈이었을 내가 지금은 글을 어느 정도 읽고 쓸 수 있게 되었다.
이런 건 기억과는 별개의 영역인가.

“괜찮으시겠어요?”
“어차피 귀찮으면도망갈 거니까, 그 부분에서 적당한 일이나 맡기쇼. 나라고  주변에서 빈둥거리면서 얻어먹는 놈팡이 소리 듣기는 싫으니까.”
“……누가 그런 소리를 하던가요?”


아니 표정은 또  그래.

“아니, 그냥. 그렇게 생각되는 게 싫다고.”
“그 누구도 그렇게 생각하지 않을 거고, 생각하게 두지도 않을 거니까 평소처럼 있으셔도 괜찮은데 말이죠.”

그건 내가 싫다.
개새끼도 주워준 은혜는 안다고, 과거 기억하지 못할 은혜와는 별개로 주워서 먹여주고 재워준 은혜가 있다.
많은 걸 갚을 수는 없겠지만, 할 수 있는 만큼이라면.

“적당히요, 적당히. 괜히 나중에 칭얼거리면서 안 도와줬다는 소리 들을 바에는 지금이라도 뭐 하나 해주는 낫지.”
“그래요?”

언젠가 여기서도 떠나게 되겠지.
난 전장에도 나갈 생각이 없었고, 그렇다고 문관으로 무언가 해낼  있을 정도로 능력 있는 놈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그 언젠가 있을 이별에 대비해 미리 은혜를 천천히 갚는 게 인간 된 도리라고 생각했다. 마음의 짐을 짊어지고 싶진 않으니까.


“그러면 제 일을 잠시 도와주시겠어요? 그냥 올라오는 문건을 같이 읽으면서 어떤 종류인지만 구분해주시면 되거든요.”
“기왕 부려 먹는 건데, 그런 쉬운 일로 되겠나?”
“쉬운 일이요?”

그녀는 그 이상 말하지 않고는 빙긋 웃었다.
그 웃음의 의미를 깨닫는 것은 이 직후.
어마어마한 양의 죽간과 문서가 집무실로 전해져오는데, 평소에도 일 처리를 많이 한다는  알았지만, 이렇게 많을 거로는생각지도 못했다.


“……어, 이건 내 계획과는 다른데.”
“전쟁이 벌어질 수도 있으니까요. 평소의 세  이상 들어오는 건 당연하잖아요? 오늘은 특히 상단과의 거래를 트는 과정이라 좀 많네요.”


괜히 도와준다고 했나.

“지금이라도 취소할  있나?”
“있을 것 같으세요?”


염병.

그대로 유비에게 끌려가 앉혀진 곳은 그녀 바로 옆자리에 놓인 작은 탁자.
하나하나 죽간을 읽고 내용을 정리해 그녀에게 올리면, 그녀는 바로 그것을 쓱 훑어 확인하고는 서주목의 인장을 찍거나 다시 내게 돌려줬다.
이쪽으로 돌아온 것은 반려하는 것이니 따로 모아 정리해 나중에 제갈근 선생에게 전해주면 된다던가?


그렇게 몇 시간을 일했을까.
슬슬 글자에 오염되어 토할 것 같았다. 뇌까지 범해진다는 게 이런 기분이었구나 싶었고, 내 두 번 다시는 먹 냄새도 맡기 싫어지는 시간이었다.


“호세 씨.”
“흐억! 나, 나 농땡이  부렸수!!”
“……혹시 졸았어요?”

아니다. 그냥 잠시 신경을 너무 집중해서 놀랐을 뿐.
그야 일어난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조나. 차라리 졸 수라도 있으면 마음이라도 편했을 것을, 이 빌어먹을 몸뚱어리는 이런 상황에서 졸음도 느끼지 못했다.


“혹시 다른일을 맡길 거면 도망칠 건데.”
“그런 게 아니라 잠시 쉬자고요.”

그건 대환영이지.
인간이란 자고로 휴식을 동반해야 효율도 나오는 법.
근육도 계속 쓰다 보면 하루에 쓸  있는 한도를 다해 돌덩이처럼 굳어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머리 또한 그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무튼, 응당 군자라면 타인의 배려에는 응하는  옳다.
하여 자연스럽게 죽간을 내던지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렇다고 던지시는 건 좀….”
“죄송합니다.”

이건 좀 너무 기분 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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