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3화 〉00. 3년의 공백 (3) (3/40)



〈 3화 〉00. 3년의 공백 (3)

제갈근이라는 사람이 이끄는 대로 우선 관사를 살폈다.


“신기해요. 예전 중랑장께서 저희를 지휘하던 때가 있었는데, 뭔가 이렇게 서주에서 또 뵈는 건 조금 어색하고요.”
“이쪽은 진짜 아예 모르는 일이야.”
“그래도요.”


그 옆으로는 소녀 한 명.
연령은 얼추 십 대 중후반으로 보였는데,  아이는 멍한 표정으로 이쪽을 그저 주시하고 있었다.
회색 머리카락이 비슷한 거로 보아 제갈근이라는 여자와는 친지 관계처럼 보이기도 한다.

“그, 저 아이는?”
“제 동생 량이라고 해요. 량아, 어서 인사드려.”
“……중랑장. 반가움.”

말이,어….
이런 말을 해도 좋을지는 모르겠지만.


말이 좀 심하게 짧네.


아니 물론 이게 경중을논하는  아니다. 예법을 논하는 것도 아니고, 솔직히 나 자신도 누군가에게 존칭을 붙이는  어색하기만 한데 그걸 탓할 생각도 없었다.
단지 뭐냐.
언어 자체에 생략된 게 너무 많지 않나?

“량아. 너 진짜 커서도 그럴래? 언니가 다른 분 보는 앞에서는 그렇게 말하지 말라고 했잖아.”
“입에 붙음. 찰짐.”
“너 진짜 찰지게 맞아볼… 아아! 죄송해요.”

……자매의 일은 신경 쓰지 말자.
가족끼리의 일에 원래 외부인이 간섭하는 거 아니다. 물론 어투 자체에 조금 당황하긴 했지만, 잘 들어보면 제법 재밌는 화법이기도 하니까.

“언니는폭력적임. 군자라면 응당 대화로 풀어야 함. 그렇게 배움. 틀림?”

하지만 저 말은 어떠한가.
매를 버는 듯한 느낌도 드는데. 적어도내가 아는 놈들이. 가령 오랫동안 나를 따랐던 방삼이가 저랬으면 난 아마 당장 꿀밤을 놓기 전에 입 닫으라고 했을 거다.


“……어서, 가시지요.”

아, 얼굴 굳었다.
누가 봐도 분노 상승을 필사적으로 참는 듯한 표정이었다. 아마 내가 없었으면 진즉에 자매끼리  판 붙지 않았을까?
물론 둘 다 미인이기도 해서 싸우는 걸 보고 싶지는 않다만, 기왕 싸운다면 돈을 걸게 해줘. 난 언니 쪽에 걸 용의가 있다.


“우선은 이곳이 중랑장… 이제는 어찌 불러야 할까요.”
“호세로 됐수.”
“그럼 호세 공은 여기서 머무르시면 돼요.”

호세로 됐다니까는.
그녀는 건물 내부로 들어가 이것저것 설명하기 시작했다.
건물 내부 자체는 제법 화려했는데, 과거에는 이곳을 손님용 별실로 쓰였다고 말하며 필요한 것이 있으면 시종에게 말하라고 하는 것에서 극구 사양했다.

“시종은 없으셔도 된다고요?”
“아니, 내 주제에 무슨 시종이야. 애당초 이것도 건물이 너무 좋아. 당장 내가  해줄 수 있는지도 모르는데, 이렇게 과한 걸 받아서야 쓰나.”
“호세 공께서는 이 정도 당연히 받아들이셔도 되는데요.”

뭐냐, 이질적일 정도의 신뢰는.
신뢰가 무겁다.
당장 난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는다. 지금도 눈 감으면 병주 눈 내리는 산골로 돌아갈 것만 같았고, 내게 있는 경험이라고는 백 언저리 되는 놈들 이끌었던 경험밖에 없다고.


“……미리 말하지만 난 군 관련해서는 전혀 몰라.”
“손님께 그런 일을 부탁드리지는 않아요. 그래도 만약 조금 도와주실 의향이 있다면, 그 부분에서 조금씩 배워가시는 것도?”
“와 나. 혹시 이렇게 목줄 채울 생각이었수?”

바로  돌리려 도망갈 것처럼 행동하니 제갈근이  팔을 필사적으로 붙잡았다.

“노옹담! 농담이었어요!! 아아, 죄송해요!!”
“병주의 개는 목줄 채워 기르는 게 아니요.”
“알겠어요! 알겠다니까요!?”


그렇게 한바탕 실랑이가 일고 제갈근이 숨을 헐떡였다.
미인이  헐떡이는  나름 그림이 됐지만, 문제는  미인이 여차하면 내 목에 목줄 채울 사람이라면 그저 예쁘다고  수도 없다.

“……그러면 잠시 쉬세요. 저녁에는 서주목께서 당신을 위해 조그마한 식사 자리를 준비하신다고 하니, 그때 다시 찾아올게요.”
“아니 진짜 부담스럽다니까?”

거 식충이한테는 풀뿌리나 주면 될 것을.
물론 진짜 풀뿌리를 주면 그건 그것대로 곤란하겠지만, 그래도 이리 융숭하게 대접하는 것보다는 마음의 짐이 덜할 같았다.

“저희의 성의라고 생각하세요. 그럼 저녁에 다시 뵐게요.”


제갈근은 고개 숙이고는 살짝 몸을 돌렸다.
그리고 이내 다시 몸을 비튼다.

“량아? 가야지. 뭐해?”
“……여기 있을 거임.”
“너 진짜….”


하지만 소녀는 고개 가로저으며 단호하게 맞선다.


“물어보고 싶은  있음.”
“그건 나중에  공과의 자리에서, 그게 아니더라도 천천히 말해도 되는 거잖아? 오늘은 호세 공도 나름 피곤하실 테니, 우선 자리를 비켜드리는 게.”
“……피곤함?”


거기서 나한테 묻는 건 어떨까 싶다.
갑자기 8년 이상의 시간이 삭제된 느낌이라 복잡하긴 했지만, 피곤하냐고 물으면 딱히 그렇지는 않았다.
서주에서 잠시 떠돌면서 느낀 건데, 내 몸이지만 예전과 비교해 확연히 드러날 정도로 체력과 힘이 달라졌다. 이것도 그사이에 발전한 걸까.


“아니, 피곤하진 않은데.”
“그럼 좋음. 언니도 들음?”
“……예의라는 게…. 아아, 숙부님. 저는 어디서 실수한 걸까요.”

비극적인 여주인공을 보는  같아 조금 웃기다.
하지만 뭐, 이런 소녀가 있겠다는데 구태여 만류할 이유도 없었다. 게다가 나도 아직 복잡해서 혼자 있으면 괜히 잡생각만 들  같았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내 걱정이라면 괜찮은데.”
“정말, 호세 공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량이한테는 무르시네요.”

그랬다고?
살짝 고개를 돌렸는데, 이 소녀는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 건지 그저 멍한 표정으로 이쪽을 올려다보고 있다.
너무 표정이 멍하면 도리어 이질적이라는 걸 여기서 깨달았다.


“그럼 저는 다른 공무가 있어 먼저 실례하겠습니다. ……량이 너는 무례하게 굴지 말고. 호세 공도 저 아이가 귀찮으시면 적당히 쫓아내셔도 괜찮아요.”

아니 뭘 쫓아내기까지야.
적당히 고개 끄덕이니 제갈근이 물러났고, 그 동생 제갈량이라는 아이는 적당히 바닥에 주저앉아서는 내게 손짓하고 있었다.

“응? 왜?”
“여기.”

 소녀는 제 옆자리를 손바닥으로팡팡 두드렸다.
거기 앉으라고?
너무 가깝지 않나 싶었지만, 저 무표정한 얼굴을 보면 왠지 모르게 그래야 할 것 같아 우선  옆에 살짝 앉았다.
앉자마자 묘한 향기가.
이건 꽃내음일까? 조금 시원한 느낌의 향기가 났다.


“기억 잃었다고 들음.”
“……사실 난 자각도 없다마는.”


주변에서 다들 시간이 어쩌고 중랑장이 어쩌고 하니까 그런가 보다 하는 거지, 사실 나 자신은 병주에 있다 홀연히 서주로 떨어진 느낌이었다.
물론 체격이라던가,  개인이 느끼기에도 확연한 변화는 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 시간이 변했다는 걸 실감하기에는 그간 했던 경험과 기억이 있어 쉽사리 납득하기 힘든 것도 사실이었다.

“그러면 질문.”

소녀는 검지를 치켜세웠다.


“아저씨의 목적은 무엇?”
“잠깐만. 아저씨? 야, 그건 아니지.”

딱 봐도 십 대 중반에서 후반으로 보이는 소녀였다.
그럼 미안하지만, 아직 아저씨라고 불릴 나이는 아니다. 물론 내 실제 나이를 모르기는 하지만, 적어도 197년이라고 하면 20대 후반이지 않을까.
게다가 개인마다 다르지만, 노화가 멈추고 안 멈추고가 나뉘는 상황에서 이 외견으로 아저씨라 불리는 건 조금 어떨까 싶다.

아니, 솔직히 그냥 아저씨라는 호칭이 싫다.

“오빠라고 해봐.”
“아저씨.”
“오빠.”
“아저씨.”


염병.

“……그, 뭐였지?  하고 싶냐고? 아무 생각도 없는데.”
“예전 당신에게는 명확한 목표가 있었음.”
“그러냐?”


그런데 그건 그때의 나지 지금의 내가 아니었다.
솔직히 난 아직도 이해할  없는 게,  좋은 게 있다고 그 전쟁터에 다시 뛰어드나. 분명 병주에 기어들어 가면서다시는 전쟁에 코빼기도 비추지 않겠다고 맹세했던  엊그제 같은데.


게다가 그 과정에서 산장의 놈들도 다수 죽었다고.
그렇게까지 하면서 얻을 수 있는  뭐지? 나 자신을 희생해서 얻어야만 할 정도의 것은 그리 많지 않다고 생각한다.

“난 잘 모르겠다. 그냥 적당히 살다 적당히 가면 그게 최고 아니겠냐.”
“아저씨가 그걸 원한다면 좋다고 생각함.”
“인생은 뭐든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최고지.”


 손으로 지금까지 얼마나 많은 인명을 해쳤던가.
당장 기억하기만으로 황건적의  당시 수많은 생명의 죽음을 보았고, 내 손으로 보내준 경우도 허다했다.
인간의 목숨은 덧없기 그지없다.
그렇기에 그 인명이라는 단어가 가장 값싸지는 전쟁이라는 것에신물이 났고, 다시는 그런 곳에 관여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참 신기하지. 유비라는 사람의 말과 너희의 말을 들으면 진짜 다른 사람 같아. 당장 그렇게 싸울 생각이 추호도 없는데.”
“잘 싸웠음.”
“내가?”
“전장의 영웅. 조조군에서 세운 공적으로 나열하면  조인에 비교해 밀리지 않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었음.”

조인이 누군지도 모르겠다.
아무튼, 내가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었다는  조금 신기했다.
마지막으로 기억하는 전쟁 경험은 황건적의 난이었다. 그 과정에서 이곳저곳에서전투를 치렀고, 마지막 기주로 넘어가 치른 전쟁 이후로는 전쟁터에 발을 끊었다.


다시 돌아갈 의향이 있느냐고 묻는다면.
음. 어지간한 일이 아니고서야 절대 사양하고 싶다.

“아저씨는 인간적인 사람이었음.”
“인간적이라. 내 손으로 묻은 사람이 몇인데.”
“그래도.”


소녀는 살짝 고개를 들었다.
그 선명한 초록색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마주했다.

“아저씨는 누군가의 죽음에 슬퍼할 줄 알았음.”

그 시선이 묘하게  자신을 관통하는  같았다.
내 내면까지 전부 파악하려는 듯한 시선이라, 그게 조금 부담스러워 살짝 고개를 돌렸다.
부끄럽기도 하고, 무엇보다 그 표정이 너무 진지하게 느껴져 적당히 사는 한량에게는 너무 무거운 시선이다.

“길고 가늘게. 나쁘지 않음.”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표정은 여전히 무표정이었다.

“하지만 과거의 아저씨가. 그 중랑장이 그걸 원할지는 모르겠음.”
“중랑장이라. 그, 기억 잃기 전에는 이것저것 저지르고 다닌 모양이네. 나란 인간이 이렇게 신뢰받을 인간은 아닌데 말이야.”

제갈량은 살짝 몸을 기울여 내 팔뚝에 머리를 기댔다.
가볍고도 가녀렸다.

“현 조조군은 아저씨가 있을 당시의 그것이 아님. 이미 모든 게 일그러지기 시작했고, 고삐 없이 폭주하는 말과도 같음.”
“그건 유비… 서주목한테 들었어.”

소녀는 고개 끄덕이고는 손을 뻗어 내 손등 위로 손을 포갰다.


“무엇을 선택할지는 본인 나름. 아저씨는 천천히 다시 경험을 쌓으면서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할지 정해야 한다고 봄.”


예전의 나는 무언가 뚜렷한 목표를 위해 살았을까?
지금의 나에게는 아무 목표도 없었다.
애당초 목적 없이 거리를 배회하다가 그것에 질려 마음 맞는 놈들을 하나둘 모아 산으로 기어들어 간 것이 병주에서의 전말이었다.


현실에 매몰되어 어차피 바뀌지않은 세상에서 그저 견디고 버틸 뿐이었던 내가 재차 전장에 나설 정도의 일이 있었단 말인가.


이들의 말에서는 심심찮게 진소연이라는 사람이 언급됐다.


내 시작을 함께했다고.


그 여자는 대체 누구인가.
왠지 모르게 그 여자를 만나보고 싶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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