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2화 〉00. 3년의 공백 (2) (2/40)



〈 2화 〉00. 3년의 공백 (2)

자신을 유비라고 밝힌 이를 따라 관사로 들어갔다.
나중에 듣기로는 서주목이시라는데, 그런 분한테 반말을 썼다는 부분에서 살짝 등골에 소름 돋았다. 나 이렇게 높으신 분은 거의 처음 만나는 것 같다.
아니 진짜로.

“어디서부터 얘기하면 좋을까요.”
“그, 죄송한데 존댓말은  쓰셔도 됩니다.”
“그럴 수 있나요. 중랑… 이젠 잊으셨을까요. 전공께서도 부디 편하게 대해주세요.”
“전공?”


 말에 유비가 고개를 끄덕인다.


“전씨 성이시잖아요?”
“……와, 진짜  아시기는 하는  같은데.”

과거의 성씨였다.
어렸을  버렸던 성씨였고, 지금은 그저 호세라는 이름으로 자칭하고 있었는데도 그걸 안다는 건 진짜  사람이 날 아는 사람은 맞긴 한가 보다.

애당초 지금이 197년이라는 것도 놀라운 부분이었다.
믿고 싶지는 않았지만, 이후 서주성에서 만나는 모든 이들이 입을 모아 지금 연도가 197년이라고 했다.
작정하고 날 속이려는 거면 모르겠지만, 정작 이들이 입을 모아 나 같은 한량 하나를 속이는 게 대체 무슨 의미가 있겠나.


“아무튼, 뭔지는 모르겠는데 제 마지막 기억….”
“존댓말은 하지 마요.”
“하지만…….”
“하지 말아줘요.”

아니, 본인이 그렇다면야.
솔직히높으신 분을 마주한 적도 없어 이렇게 존대하는 게 영 불편하기만 했다.
나는 병주에 사는 흔한 도적단 두령 중 하나에 불과했다. 그게 왜 갑자기 서주로 넘어와, 그것도 시간 자체가… 몇 년이지?
내 마지막 기억이 189년이니까 약 8년인가?


“다시 생각하니까 놀랍네. 내 마지막 기억은 189년이거든.”
“지금은 197년 겨울이에요.”

아니 이걸 뭐라고 설명해야 하지?
사실 이게 전부 장난이었다고, 농담이라고 말해주는 게 더 마음 편할 것 같았다. 서주목이라는 양반이 이리 저자세로 나오는 것도 놀라운데, 게다가 시간은 거의 내 기억에서 8년 정도 어긋남이 있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도 현실감이 없었다.

그런 느낌으로 계속 대화를 이어갔다.
유비라는 사람도 내 초반기에 대해서는 잘 모르는지 대략적인 설명만 이어졌는데, 190년대로 들어서며 반동탁 연합이라는 게 생겼고, 거기서 나는 진소연이라는 사람과 함께 했다는 것 같았다.
그렇게 이름을 쌓고, 이후에는 조조 밑에서 일하며 연주를 정복하고 예주까지 정복. 나중에는 아예 황제 폐하까지 호위해서 예주로 모셨다고.


내 최종 직책은 중랑장이라던가?
그게 무슨 직책이냐고 물어봤는데, 대략적으로는 황제 폐하의 호위 겸 군부와도 다소 독립된 황제 폐하의 직속 군의 사령관 역할도 맡는다고.

이게 무슨 말이 되는 소리인가.

그런 과정을 거쳐 지금은 군웅이 난립한 시대라고 하는데, 내 기억은 어디까지나 황건적의 난이 막 끝나고 병주 산골에 숨어 마음 맞는 놈들과 함께 살았던 기억밖에 없었다.

“그러면 내가 조조군 소속이란 말이요?”
“……일단은 그렇겠죠.”
“솔직히 아무것도 이해  가지만, 그럼 난  조조라는 여자에게 돌아가야 하나? 솔직히 그 여자 별로  달갑지는 않은데.”

조조라면 예전 소년병으로 일하며 함께싸웠던 기억이 있었다.
함께라고 말하기도 우스운 게, 난 단지 그 여자의 밑에 있던 한 명의 소년병에 불과했다. 그저 어디에나 있을 법한 병사.
그 과정에서 그녀의 민간인 학살을 보았고, 거기에 대항했다가 목이 잘릴 뻔했던 기억도있어 그것은 내게 썩 유쾌한 경험은 아니었던 거로 기억한다.

“물론 당신이 원한다면 그것도 괜찮겠지만, 추천하지는 않아요.”
“왜?”
“……현 조조군은 이미 대전을 준비하고 있으니까.”


대전?


그 이후의 말을 빌리자면 조조군은 원술이라는 양반을 잡고, 내부에서의 진통을 겪은 이후로 점점 대륙 정벌이라는 야욕에 박차를 가했다는 듯하다.
유비가 기억하기를 나도  과정에서 전사했다던가.
내부의 적을 대거 숙청한 이후, 조조는 각 지방의 제후를 압박함과 동시에 미친 듯이 군비를 확장하기 시작했다고.

목표는 북방의 원소.
그것을 위해 내부 황족도 대거 숙청한다. 그 자신과의 의견에 반대되는 이들 또한 조금씩 입지를 잃고, 주변으로는 모시고 있는 황제 폐하의 이름을 팔며 압박하기에 이르렀다고 한다.

“저희도 지금 조조와의 전투를 준비하고 있는 실정이에요.”
“잘 모르겠는데, 그게 동탁? 이라는 사람이랑 다를 게 뭐지?”

반동탁 연합이라는 것도 그녀에게 들어 겨우 알았다.
내 기억에는 없는 일이지만, 황건적의 난 이후 낙양 내에 발발한 불화 과정에서 외부 군벌인 동탁이 들어와 황제 폐하를 겁박하고 낙양 전체를 손에 넣어 폭정을 저질렀다던가.
조조가 지금 하는 게 그것과 다른 것은?


“……저도  모르겠네요. 확실한 건 저는 그녀의 방식에 찬동할 수 없고, 그렇기에 조조와 조금씩 거리를 두던 상황이었어요.”
“조조라는 사람이 대장군이라며. 그런데도 황족을 전부 밀어내며 내부적으로 계속 전쟁 준비에 한창이라는 건….”
“원소도 아직 북방을 제압하지 못한 이상, 현 천하에서 조조에게 거스를 수 있는이는 그리 많지 않아요.”


나는 잘 모르겠다.
그런 군에 속했다는 것도 의문이고, 무엇보다 내가 뭐라고 그런 곳에서 높은 위치에까지 오를 수 있던가.

“어쩌면 당신이 죽은 이후 조조군은 급격하게 변했어요. 모든 게 당신이 없는 탓이라고는   없지만, 당신의 위치는 어찌 됐건 황제 폐하의 직속이라는 신분도 있었으니까요.”
“난 그렇게 막 머리 쓰는 일에는 흥미가 없는데.”
“확실히. 예전에  번 뵈었을 때의 당신은 언제나 그런 느낌이었죠.”

그녀는 작게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미인은 조금 웃는 것만으로도 그림이 되는구나. 저 뾰족한 귀에 신경이 쓰였지만, 그런 건 아무것도 아닐 정도로 아름다웠다.


살짝 붉은 빛 머금은 갈색의 찰랑거리는 머리와 비취색으로 빛나는 눈동자.
피부도 뽀얗고, 무엇보다 그냥 얼굴 생김새 자체가 아름다웠다.


“그래서 전 가시겠다고 하면 말릴 순 없겠지만, 지금 조조군의 상황으로 보아 가신다고 해도  좋은 일은 없을  같아요.”
“황제 폐하 주변 권신들을 전부 쳐내고 있어서?”
“네. 게다가 중랑장이라는 직책 또한 그 과정에서 어쩔  없이 황제 폐하의 직속과도 같은 직책이니까요.”


확실히 조조라는 인간은 무서운 여자였다.
왜인지는 아직도 모르겠지만, 황제 폐하의 직속이었다는 내가 돌아간다고 딱히 환대받지 못하리라는  잘 알겠다.
물론 유비라는 사람의 말을 어디까지 믿어야 하는가도 의문이었지만, 그걸 다 떠나서 전쟁통에 엮이고 싶지 않다는 게 본심이었다.


전쟁이라면 이미 질색이다.
그런 곳에 구태여 머리 들이밀어도 돌아오는 건 죽음뿐.
피할 있다면 피하는  옳았다.


“그러면 병주에는 아무것도 안 남았으려나.”
“저는 당신의 신상까지 파악한  아니라서요. 다만 그, 당신께서 말하길전쟁 도중에 처음부터 따랐던 이들 대다수 죽어버렸다고 말했던 건 기억해요.”
“그건 좀, 슬픈 얘기네.”

그 뒤로도 잠시 얘기가 이어졌다.
그녀가 기억하는 내 모습은 지금의 나와는 상당히 다른 부분이 많았다. 2만의 병력을 지휘하며 전장에 나서는 장군?
남자라면 한 번쯤 만인을 다스리는 장군을 꿈꾼다고하지만, 웃긴 건 그런 꿈은 어디까지나 어릴 적에나 꿀 수 있는 망상에 불과했다.


그게 실제로 이뤄진다고 해서 좋을 게  있나.
인생은 어디까지나 가늘고 길게 가는 게 좋다. 자질 없는 이가 허튼 망상을 품고 앞으로 나아가야기다리는 건 파멸뿐이었다.
이상한 건, 그녀의 말이 전부 사실이라고 가정했을 때 그런 위치에 올랐던 내가 어째서 죽었다고 소문이 퍼졌으며, 모든기억을 잃고 3년 뒤 서주에 떨어졌냐는 것.


전부 이해할 수는 없었다.
하지만 얼추 대략적인 부분에서는 그녀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부정하려고 해도 내가 기억하는 게 하나도 없으니까.
우습지만 그게 사실이다.


“앞으로는 어쩌시겠어요?”
“……일단, 글쎄. 정말 모르겠는데.”
“가실 곳이 없다면 그 신병, 제게 맡기시지 않을래요?”


 신병을?
잠깐 고개를갸웃거렸는데, 유비는 환하게 웃으며 내 손을 붙잡았다.


“당신께는 빚이 있었거든요.”
“이런 곳에서 내가   있는 게 있으려나.”
“그냥 잠시 묵고 떠나셔도 괜찮아요. 전 당신과 제법 마음이 맞을 것 같았거든요. 그때는 비록 다른 진영으로 나뉘었지만, 지금이라면 분명.”


뭐라고 답할지 망설여졌다.
하지만 내 손을 붙잡은 손길의 따스함에 무심코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어쩌면  겨울은 특히 추웠기 때문일까.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내게는 너무 혹독했기 때문일까.
그래서 그냥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그러면 잠시일지, 앞으로 계속일지. 저는 후자이길 바라지만, 그래도 앞으로는 잘 부탁드려요.”
“……어어, 예.”
“존댓말 금지. 아시겠어요?”
“어.”
“……그렇다고 바로 툭 짜르시는 것도 예전이랑 다를  없네요.”

하지만 높으신 분이 말 놓으라고 했잖아.
그러면 말 놔야지 어쩌겠나.



* *


유비는 잠시 탁자에 앉아 턱을 쓰다듬었다.

“중랑장 때문인가요?”

그녀의 곁으로 선 관우.
중랑장이 서주에 나타난 과정을 설명했고, 지금은 그를 숙소까지 안내함과 동시에 그를 조금  면밀히 살피겠다는 제갈 자매를 뒤로하고 관우와 남아 거취를 얘기하기로 했다.

“저는 잘 모르겠네요.”
“그렇지? 너무 당혹스럽기는 해.”

3년  이미 사망소식이 퍼졌다.
시체를 찾지 못해 장례식은 1년 뒤에나 열렸다지만, 그 식이 너무 화려하여 대륙에 그 죽음을 모르는 이가 없었다.
게다가 그가 가진 입지가 특이하기도 했다.
조조군 소속이며 황제의 명을 받은 중랑장.
그는 이런저런 전장에서 숱한 공을 세워 대륙에서 이름을 날리는 와중이었고, 정치적으로도 조조를 견제할 수 있는 위치에 있었기에 그 죽음에는 더더욱 의문이 많았다.


“조조군의수작… 일 리는 없겠네요.”
“저만한 사람을 3년 간 없는 사람으로 만들고는 구태여?”

상식적으로 말이 되질 않았다.
조조군에서 그가 가지는 입지를 생각하면 더더욱. 게다가 과거 그와 초창기부터함께했던 진소연이 조조군에서 2인자의자리를 공고하게 다진 상황에서 그럴 필요가 있던가.


“혹시 조조군 내에서의 숙청은 아닐까요?”
“……중랑장이라는 직책이 껄끄럽긴 하겠지.”

물론 정말 그랬을 거로 생각되진 않았지만, 가정한다면 그런 일밖에 떠오르지 않았다.
그렇다면 왜 이제야 그가 나타났는가. 기억을 잃은  진짜인지, 만약 그게 사실이라면 이 3년간 그는 어디에서 무얼 하고 있었는지가 의문이었다.

“확실한  현 조조군의 행보는 그의 성향과는 상이하다는 거야.”
“혹시 그를 품으실 생각인가요?”

의자매의 질문에 유비는 빙긋 웃었다.

“전호라는 사람. 품을 수만 있다면 대단할 것 같지 않아?”
“나름대로 능력 있는 인물이라는  알겠지만, 나중에 기억을 되찾기라도 하면 곤란하지 않을까요?”
“거짓말한  하나도 없어. 나중에 기억을 찾는다고 해도 현 조조군의 행보를 본다면, 적어도 내가  그 남자라면 수긍하지 않을 거야.”


유비의 확신에 관우는 고개를끄덕였다.


“언니가 그렇게 말한다면 전 이의 없습니다.”
“고마워.”


자매의 확답을 들은 유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천하는 중원의 절반을 차지한 조조와 하북에서 분전하고 있는 원소의 양강 구도로 접어들었다. 남부의유표는 여전히 움직일 생각도 없었고, 서주의 자신은 양쪽에서의 압박에 시달리고 있는 상황.
사람 손이 하나라도 더 필요한 상황에서, 중랑장까지 지내며 전장에서 숱한 공을 세웠던 남자의 가세는 분명 도움이 됐다.


설령 그게 아니더라도 그녀는 그 남자와 함께하고 싶었다.
예전부터 이상하게 생각했다.
그녀가 본 그의 성향은 조조와 정반대. 사람 보는 눈에 있어 틀리지 않는다고 자부하던 유비가 보기에 조조와 전호, 사람의 동행은 이질적이기 그지없었다.

“일단 친절하게 대해줘.”
“예, 언니.”

유비는고개를 끄덕이며 발걸음을 옮겼다.
아직  일이 많았다.
조조와 함께하지 않기로 마음먹은 이상, 언제건 조조와의 전투에 대비해야만 했다. 현 조조군은 제 의향에 거스르는 군벌은 빠르게 부수고 나아가는 조직.

전쟁을 선호한 적은 없었다.
하지만 해야 한다면  생각은 추호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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