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75
“데온, 제발 부탁이야. 나한테서 떨어져.”
그 말에 데온은 곧장 뒷문으로 빠져나왔다. 아리아드와 함께 나오려고 미리 봐 놨던 인적이 드문 장소였다.
조명을 망가뜨린 것은 그의 계획이었다. 그 이상은 마땅히 좋은 방법이 생각나지 않았다.
그저 아리아드를 데리고 당장이라도 도망가 버리고 싶었다. 찰스 엔드로, 그 얼간이에게 그녀를 빼앗길 순 없었으니까.
데온은 바깥을 서성이다가 건물 외벽에 기대 담배를 물었다. 그곳에 그 작은 여인만 세워 두고 온 것이 초조해서 참을 수 없었다.
갑작스럽게 먼 곳에서 소란이 일자 그는 시선을 옮겼다. 약혼식이 있었던 건물의 입구가 열리더니 사람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었다.
그는 더럽혀진 옷을 대충 털어 정리했다. 이곳에 숨어 있다가 사람이 좀 빠지면 아리아드가 잘 있는지 살필 작정이었다. 몇 분이 지나 주변이 잠잠해지자 데온은 천천히 발길을 떼어 냈다.
그런데 그때였다. 건물 뒤편 외곽에서 난데없이 누군가 튀어나온 것은.
데온의 단단한 가슴에 로브를 쓴 남자의 얼굴이 세게 부딪쳤다. 그에 로브에 달린 후드가 살짝 벗겨지자 그는 고통을 신경 쓸 여유도 없이 후드를 추스르고는 황급히 걸음을 재촉했다.
그러나 남자의 두 다리는 더 이상 움직일 수 없었다.
“어이, 부딪쳤으면 사과를 해야지.”
솥뚜껑만큼 큼지막한 손이 그의 뒷덜미 쪽 천을 잡아 올렸기 때문이다. 데온의 거대한 덩치에 평균 키를 가진 남자가 대롱대롱 매달려 있는 꼴이 되어 버렸다.
발버둥이 거세질수록 쓰고 있던 후드가 점차 벗겨져 흘러내렸다. 그러자 당혹감에 벌게진 얼굴이 드러났다.
“…이거 놔!”
그 목소리를 듣자 데온은 이상하게 처음 보는 자에게서 익숙한 느낌을 받았다.
묘한 느낌에 사물을 감정하듯 남자를 한 손에 들고 요리조리 살폈다. 그러자 남자는 불쾌한 기색을 보이며 다시 버럭 소리를 질렀다.
“이거 놓으라니까!”
“아, 알겠다. 어디서 많이 들어 본 목소리인 거 같다 했더니.”
다시 명확하게 남자의 목소리가 귓구멍에 꽂히자 데온은 확신했다.
“너, 약혼식장에서 아리아드 욕을 하면서 소리를 질렀던 놈이지.”
아리아드의 일이라면 이상하리만큼 예리해지는 그는 그렇게 단박에 약혼식을 망친 범인을 잡아냈다. 그러자 남자가 더 심하게 발버둥을 치며 빠져나가려고 용을 썼다.
데온은 당혹감으로 물든 얼굴 앞에 제 사나운 눈매를 갖다 댔다.
“어림도 없어. 감히 아리아드에게 모욕을 준 대가를 받아야지.”
그 순간 그의 뒤편에서 누군가 나타나 널찍한 어깨 위에 손을 올렸다.
“적당히 하지. 사람 뒷덜미를 그런 식으로 잡고 있는 건 예의가 아닌 거 같은데.”
기분 나쁜 목소리에 데온은 미간을 구기며 고개를 돌렸다. 등 뒤에는 조슈아가 있었다.
어깨 위에 올라온 불쾌한 손을 떨치기 위해 담배를 쥔 팔을 휘두르자 다른 편 손에 힘이 빠지며 발버둥 치던 남자가 바닥으로 떨어졌다.
둔부에서 느껴지는 어마어마한 충격으로 바닥을 이리저리 뒹구는 남자를 신경도 쓰지 않고 데온은 금방 다른 곳으로 관심을 돌렸다. 갑작스레 나타나 이 남자의 편을 드는 조슈아가 상당히 이상해 보였기 때문이었다.
무언가 불길한 기운이 데온의 전신을 휘감았다.
그는 벽면에 담배를 눌러 끄고는 빠른 걸음으로 조슈아와 거리를 좁혔다. 로브를 뒤집어쓴 남자는 아린 둔부를 감싸 쥐고 이미 그 자리를 급히 빠져나가고 있었다.
제 할 일이 끝난 듯 천천히 발길을 움직이는 조슈아의 앞을 거대한 덩치가 불쑥 막아섰다. 그리고 데온은 혹시나 한 제 생각을 꺼냈다.
“저 남자 말이야. 설마 네가 사주해서 쓴 사람은 아니지?”
마주한 조슈아의 눈동자에 당황하는 기색 따위는 없었다. 그는 그저 차갑게 대꾸했다.
“맞다 하면 네가 뭐 어떻게 할 건데.”
“미친놈.”
데온은 자신이 느낀 불안감이 정확히 들어맞자 그 앞에서 욕을 읊조렸다. 아리아드를 빼내고자 하는 마음이야 같았겠지만, 조슈아의 방법은 아주 많이 틀려먹었다.
“아무리 아리를 약혼식에서 빼내 주려고 했다지만 과한 거 아니야?”
그에 조슈아는 심드렁하게 답했다.
“오해가 있네. 그런 친절을 베풀려고 한 건 아니었는데.”
“뭐?”
“아리아드의 앞길에 깽판을 놓을 생각이었지. 낭떠러지까지 밀려 더는 구원해 줄 수 있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조슈아는 그리 말하고는 입꼬리를 올렸다. 기가 차서 잠시 말을 잃은 데온은 그에게서 한 발자국 뒤로 떨어졌다.
“미친 새끼, 점점 더 미쳐 가네.”
이 재수 없는 자식과 오래 마주하고 있으면 역시나 기분이 좋지 않았다. 데온은 점점 그와 거리를 벌리면서 소리쳤다.
“그리고 구원해 줄 사람이 없긴 왜 없어. 내가 있는데!”
뒤이어 큰 웃음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비소가 분명했다.
“네 앞가림이나 잘해. 곧 망해서 땅바닥에 나앉을지도 모르는 필트모어 가주님.”
그 나직한 비아냥거림에 데온은 돌아보지도 않고 중지만을 치켜세웠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