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apter 68
조슈아는 자신도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을 곱씹어 살폈다.
황태자 궁 앞을 서성이는 아리아드를 봤을 때, 또 그의 발걸음은 본능적으로 그녀를 쫓았다.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놓치고 싶지 않아 일정한 거리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게 그런 식에 추격전이 되리라 생각하진 못했지만.
아리아드의 몸을 감싸 안고 구덩이에 떨어지면서 온 충격이 허리에 가해졌다. 하지만 곧이어 바라 왔던 향이 후각을 마비시켰다. 고통보다 더한 자극이었다.
“…안녕.”
아득해져 있던 정신이 돌아온 것은 그녀의 목소리를 들은 뒤였다.
그는 빠르게 표정을 굳혔다.
‘대체 이게 뭐 하고 있는 짓이지.’
정신을 똑바로 차리려 할 때마다 행동은 더욱 과격하게 나갔다.
“그래서 돌아왔구나.”
차갑고 모진 말로.
“방해물인 아이가 없어졌으니, 다시 너의 자리를 찾아보려고.”
또 더 매섭고 날카롭게.
“아이가 없어지자마자 이렇게 곧바로 라트베아로 온 것도 놀라워. 네 아이가 참 불쌍하지.”
뒤이어 보랏빛 눈망울을 마주하고 나면 자괴감이 몰려왔다.
그 얼굴에 먹구름이 끼면 아리아드를 향해 쐈던 날카로운 화살들이 도로 돌아와 심장에 꽂혔다. 결국 그렇게 상처를 주고 되받길 반복했다.
“그러면 낮까지 여기서 기다려야 해?”
또한 같이 있고 싶은 마음에 이성적이지 못한 선택들이 계속되고.
“이대로면 아침에 둘 다 얼어 죽은 채로 발견되겠어.”
갖은 핑계를 갖다 대어 결국 그녀를 감싸 안았다. 술 한 방울 마시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이미 잔뜩 취한 느낌이었다.
제정신이 아닌 건 확실했다. 그녀를 만지고 입을 맞추어 끊임없이 이는 갈증을 채우고자 했다.
그 밤, 그렇게 저답지 않은 충동적인 행동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문득 정신을 차린 것은 날이 밝아 오는 것을 느꼈을 때였다.
일평생 이렇게 감정에 휘둘려 보기는 처음이었다. 햇살이 머리 위로 쏟아지고 다시 자괴감이 몰려왔다.
이 여자는 그가 충동으로 시작해서 자괴로 끝나는 쳇바퀴를 돌게 했다. 결국 남는 것은 절망뿐이었다. 손에 쥘 수 없는 것이라는 걸 깨달았기에.
그래서 자신은 이제 뭘 어쩌고 싶은 걸까. 뒤엉킨 여러 감정 속에서 제 진심은 무엇일까.
차라리 눈에 보이지 않았을 때가 편했다. 그러니 이제 와 그 여자가 다시 멀리 사라져 주길 소망했다.
내가 갖지 못하는 것이라면 눈앞에서 사라져 주었으면.
아니, 내가 가질 수 없는 거라면 차라리 모두 갖지 못했으면.
그래, 차라리….
“…조슈아, 혹시 아직 밖에 있어?”
갑작스레 들려 오는 목소리가 현실로 그를 끄집어 올렸다. 조슈아가 눈가에서 팔을 내렸다.
“여기에 내가 입을 만한 옷이 있을까? 지금 옷이 너무 엉망인데….”
그는 문고리를 잡아 돌렸다.
문이 열리자, 바로 앞에 새하얀 나신의 여자가 있었다. 조슈아는 전처럼 당황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그저 얇은 팔목을 쥐고 빠르게 잡아당겼다. 그에 힘없는 몸이 손쉽게 끌려왔다.
그는 그녀를 침대까지 끌고 왔다. 손을 놓자 침대 위로 그녀의 몸이 쓰러지듯 눕혀졌다.
당혹감에 한껏 커진 눈을 마주한 채 그는 그 몸 위로 올라탔다. 곧이어 큼지막한 손이 얇은 목을 짓누르듯 감싸 쥐었다.
조금만 힘주어도 꺾일 것만 같은 목에서 맥박이 선명히 느껴졌다.
드디어 그는 혼란스러운 감정 속에서 마음에 드는 것을 찾아냈다.
내가 가질 수 없다면 남도 가질 수 없게 없애 버려야지. 그러면 쳇바퀴처럼 끊임없이 도는 불쾌함도 멈출 테니.
그리 결론 내리니 어지럽던 감정들이 잦아드는 것을 느꼈다. 그러자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꺼낼 수 있었다.
“제발 납득시켜 봐.”
혹여 자신이 상처받을까 두려워 여태껏 하지 못했던 질문을.
“왜 그렇게 떠나야 했는지.”
* * *
그의 갑작스러운 행동에 소희의 입술이 벙긋거리기만을 반복했다.
침대로 오기까지 일련의 과정들이 잘 기억나지 않았다. 정신을 차려 보니 침대에 누워 있었고 조슈아의 몸 아래 제 나체가 눌려 있었다.
씻고 물기를 닦지 못한 몸에서 물방울이 쉼 없이 뚝뚝 떨어졌다. 그에 밑에 놓인 침대 시트가 흠뻑 젖는 것은 금방이었다.
목을 잡은 큼지막한 손아귀에 점차 힘이 실리는 것을 느꼈다.
소희는 그에게서 벗어나기 위해 발을 버둥거렸다. 그러자 침대 위에 놓여 있던 옷가지들이 발끝에 치여 이리저리 흐트러졌다.
조슈아는 자신을 미는 얇은 팔목을 다른 손으로 감싸 쥐어 올렸다. 그리고 좀 더 몸을 밀착시켰다.
귀 옆에서 메마른 목소리가 나직하게 울렸다.
“제발 납득시켜 봐. 왜 그렇게 떠났어야 했는지.”
목을 틀어쥔 손에 더한 힘이 실렸다. 그에 소희의 입 밖으로 잔기침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네 말이 이해되면 놔줄게.”
“콜록…. 놔줘야….”
“뭐?”
“놔줘야 말을 하지, 콜록.”
소희는 쉰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그제야 그의 손에 힘이 조금 풀렸다.
말을 할 수 있는 구멍은 확보되었지만, 선뜻 이야기를 꺼내기가 어려웠다. 어떻게 서두를 던져야 할지도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내가 가진 아이가 데온의 아이였고, 사실 너는 그런 나를 죽일 운명이었다고?
다소 황당해 보이는 그 이야기를 아무리 열심히 설명한다고 해도 이해시킬 방법이 없었다.
소희는 입만 오물거리길 반복했다. 그에 바로 위에 놓인 눈동자가 점차 더 서늘한 빛을 띠었다.
“왜 떠났고, 왜 돌아왔는지.”
“….”
“설명해. 당장.”
그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재촉했다.
목 부근을 잡은 그의 손아귀가 잘게 떨리고 있었다. 소희는 그 떨림 속에 묻어 있는 분노를 오롯이 느끼며 천천히 입술을 열었다.
“미안해.”
“아리아드, 쓸데없는 사과 말고.”
잔잔하게 흐르던 목소리가 이탈했다.
“제대로 된 설명을 해.”
어금니를 꽉 물고 뱉는 말이 거칠었다. 결국 소희는 오랜 침묵 끝에 겨우 괜찮아 보이는 대답을 골라냈다.
“임신한 날짜를 계산해 봤는데… 네 아이가 아닌 것 같았어.”
소희는 그의 눈을 피했다. 괜찮아 보였던 대답마저도 뱉고 보니 엉망으로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겁이 났어. 너랑 아예 닮지 않은 아이가 나오면 어떡하지, 그러다가 들키면 어떡하지….”
말끝을 흐리며 다음 말을 고민하다가 그저 입을 다물었다. 밀도 높은 침묵 속에서 공기가 싸늘하게 식어 가는 듯했다.
아무것도 입지 않은 맨몸으로 차디찬 한기가 느껴졌다. 한참 뒤에 이어지는 말 때문에 더욱이 그랬다.
“내가 몰랐을 거 같아?”
조슈아는 목에 핏대가 솟아 매섭게 쏘아붙였다. 그에 놀란 소희가 시선을 올리자 그제야 그들의 눈이 마주쳤다.
“네가 임신했다고 했을 때, 이미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어.”
“…뭐?”
“내 아이가 아닐 수도 있겠다고.”
일순 소희는 머릿속이 까맣게 물들며 멍해지는 것을 느꼈다.
“데온 그 새끼 침실에 누워 있던 너를 본 날부터, 그럴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어.”
바로 위에 놓인 붉은 입술이 느릿하게 움직였다. 그걸 빤히 바라보던 소희의 눈동자 초점이 조금 흐릿해졌다.
“만일 내 아이가 아니어도, 내 아이인 척 굴어 보려고 했어. 나한테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었으니까.”
이어지는 말과 그다음 말도, 어렵지 않은 문장인데도 이해가 되질 않아 한참을 해석하느라 머리를 굴렸다.
“그냥… 난 그냥 너만 있으면 뭐가 되었든 아무 상관이 없었어.”
거칠었던 언성이 갑작스레 서글퍼졌다. 입술에서 다시 그의 붉은 눈으로, 소희는 시선을 올렸다. 눈물은 맺혀 있지 않은데 눈시울이 벌게져 있었다.
소희의 숨이 가늘어졌다. 그리고 두 손을 꽉 쥐었다 펴길 몇 번이고 반복했다.
기존 시놉시스와 그녀의 예상은 완벽히 빗나갔다. 조슈아가 제 아이를 칼로 베고 자신을 죽이라고 명했던 꿈속 장면들이 그렇게 와장창 깨져 버렸다.
정말이지 이해가 되질 않았다.
변치 않는 절대적인 사랑은 없다고 믿었다. 삼백 일 가까이 아이를 품어 낳은 엄마도 돈 때문에 자식을 버렸는데.
그런데 앞에 있는 이 남자는 남의 아이를 가진 여자를 이해해 보려고 했단다. 그런 비이성적인 사랑을 이미 결심했단다.
소희는 제 행동의 기준이었던 과거의 경험들이 몽땅 무너져 버리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러자 일순 머리가 빙빙 돌아 주변 모든 게 일그러져 보였다.
그 앞에서 조슈아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돌이켜 보면 멍청했지. 주변에서 다들 날 얼빠진 놈으로 보던 게 당연했어.”
조슈아는 드디어 그녀의 목에서 손을 뗐다. 그리고 몸을 일으켰다. 눌려 있던 몸 위가 허전해지자 축축한 나체에 서늘한 기운이 내려앉았다.
그는 침대 옆에 서서 소희를 내려 봤다.
“아리아드, 무도회가 끝나면 당장 황성 밖으로 나가.”
그는 다시 평소대로 돌아와 있었다. 무정한 표정과 어투로.
“제발 내 눈앞에서 사라져. 내가 너한테 무슨 짓이라도 하기 전에.”
눈시울 위에 자리했던 붉은빛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