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피폐물 속 여주는 내가 할거야-7화 (7/120)

Chapter 7

순한 얼굴과는 다르게 그는 위협적으로 움직였다.

소희는 숨을 뱉을 겨를도 없이 정신없이 그를 맞이하다가, 가끔씩 떼어지는 틈으로 달뜬 숨을 쉬었다.

그녀의 머리 뒤에서만 머물고 있던 커다란 손이 목덜미를 쓸었다. 그리고 의식하지 못한 사이에 점차 내려가 가슴을 쥐었다.

물 흐르듯 흘러갔던 움직임과는 상이하게 그 손길이 갑작스레 거칠어졌다. 굵은 손가락이 자극적인 부위를 찾아 집요하게 움직였다.

그의 입술이 살짝 멀어지자 소희가 신음을 뱉었다.

“…잠시만.”

소설의 전개고 뭐고 멍해져 조금이라도 정신 줄을 붙잡으려고 살짝 밀었지만 그의 탄탄한 몸은 밀릴 리 없었다.

“가만히 있어.”

낮게 깔린 목소리가 그 한마디를 던지고는 다물린 입술이 다시 제 할 일을 찾아갔다.

이채 서린 핏빛 눈동자가 그녀의 목에 와 닿더니 조슈아가 순식간에 그 부위에 입을 맞췄다.

그리고 여린 살을 찾아 짓이겼다. 그 움직임은 자신을 약 올린 대가를 단단히 치르듯 끈질기고 거칠었다.

이내 입술이 닿은 구간마다 빨갛게 자국이 남았다. 불에 덴 듯 홧홧한 감촉이 맴돌아 저도 모르게 이상한 소리를 낼까 소희는 이를 꽉 물었다.

조슈아는 자연스럽게 그녀의 드레스 지퍼를 내리며 더 밑으로 향했다. 그 입맞춤이 벗겨진 옷을 타고 진득하게 흘렀다.

그런데 뜨겁게 닿아 있던 숨결이 돌연 멀어졌다.

눈을 감고 있던 소희가 힐끗 한쪽 눈을 열었다.

조슈아가 그녀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정욕에 물들어 무섭게 불타던 눈동자는 이내 제 본래의 빛을 찾아가려 했다.

마주한 눈동자 사이로 묘한 공기가 흘렀다.

한동안 그는 그렇게 빤히 바라보기만 하다가 결국 침대에서 벗어나 등을 보였다.

“…갑자기 어디가!”

허겁지겁 부르는 소리에 그의 적안이 와 닿았다.

아니, 내가 밝히는 여자는 아니고. 다 19금 신을 원하는 독자님들을 위해서라고.

소희는 그렇게 자신의 생각을 합리화했다.

“그만 쉬어.”

“아니, 이렇게 해 놓고 쉬라고?”

장난하나, 저 새리가. 지가 불은 다 지펴 놓고 뭐하자는 건데!

이렇게 끊기면 독자님들이 얼마나 아쉬워하겠어. 물론 나도 아주 조금 아쉽기도 하고.

끙, 앓는 소리를 내는 소희를 그가 가만히 내려다봤다.

이내 떠날 것처럼 시선을 피하자, 그녀가 급하게 그의 팔소매를 잡았다.

“안 돼, 끝까지 해야지!”

너무 비굴해 보이려나. 아니야, 내 소설을 위해서 이 정도쯤이야.

그때 조슈아의 눈동자 속에 잦아들던 붉은 빛이 일순 크게 파도쳤다.

“아리아드.”

뒤이어 쇳소리가 섞인 저음이 내려앉았다.

“넌 오늘 이 순간을 평생 후회하게 될 거야.”

그가 거칠게 다가서며 재킷 단추를 풀었다. 그리고 다시 새하얀 살결에 고개를 묻었다.

움직임이 전보다 더 깊은 곳을 향하자 생경하고 아찔한 감각이 이어졌다.

* * *

현재 소희는 상아색 대리석 테이블에 앉아 있었다.

조슈아는 기력을 다해 축 처진 몸을 안아 들고 욕실로 왔다. 그리고는 욕조 옆 테이블 위에 그녀를 앉혀 놓고 곧바로 자리를 비웠다.

소희가 어리둥절해하며 화려하게 꾸며진 공간을 둘러보다 뒤에 놓인 거울로 시선을 옮겼다.

“아니! 이 몰골로!”

머리는 며칠 못 감아 떡이 져 있었고, 오른팔을 제외한 팔다리가 붕대로 감겨 있었다. 물론 아리아드 캐릭터가 기본적으로 고혹적인 설정이라 그 자체만으로도 아름답긴 했다만.

아니, 떡 진 머리는 좀 아니지. 조슈아 생각보다 비위가 좋은걸.

입술을 깨물고 방금 전 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던 소희가 민망함에 거울 앞으로 머리를 쾅쾅 박았다.

떠나려던 조슈아를 붙잡은 것에 대한 후회가 몰려왔다. 실컷 즐기고 나니 남는 건 그저 허무감이랄까.

뒤에서 반갑지 않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미쳐도 곱게 미쳐야지.”

지금 제일 마주하고 싶지 않은 남자가 눈가를 살짝 찌푸리며 다가왔다. 그리고 계속해서 머리를 박는 틈에 손을 끼워 넣었다.

이마에 닿은 손이 따뜻했다.

“왜 온 거야.”

뒤돌아보지도 않고 그리 중얼거리는 걸 조슈아가 돌려세웠다.

“씻겨 줄게.”

“엥?”

부끄러움에 차마 고개를 못 들던 그녀가 믿을 수 없는 말에 번쩍 얼굴을 올렸다.

“씻기긴 뭘 씻겨. 미쳤나 봐.”

욕실에 데려다주고 나가기에 당연히 시녀가 올 줄 알았더니 웬걸, 본인이 직접 널찍한 타월을 들고 온 채였다.

황당함과 수치심에 소희의 얼굴이 벌건 고구마가 되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그의 손이 소희를 가볍게 안아 올려 욕조에 넣었다. 그리고 섬세한 손길이 차분히 붕대를 풀어 주기 시작했다.

“아니, 내가 할게.”

“가만히 있어. 씻겨 주기만 할 테니까.”

단호한 어투가 그녀의 말을 똑 끊어 먹었다.

어쩜 저렇게 다정하게 말하면서도 협박성이 짙을 수 있지? 진짜 신기한 남자야.

강아지 같은 순한 눈매 위에 놓인 검은색 눈썹을 가만 들여다보는데, 붕대를 풀던 그의 손가락이 난데없이 민감한 부위를 쓸었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소희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몸을 살짝 떨자 조슈아의 한쪽 입술이 삐뚜름하게 말려 올라갔다.

“아리아드, 이제 내 감정을 알겠어.”

“뭐?”

“난 네가 괴로워하는 게 좋아.”

단 며칠 사이, 허공에 떠돌던 정체 모를 화기는 이상한 곳에 정착했다. 그도 차마 정의 내리지 못한 그것을 그냥 그렇다고 믿었다.

“너의 일그러진 얼굴이 마음에 들어.”

들려오는 나지막한 말소리에 소희가 눈썹을 꿈틀거렸다.

“…변태 같네, 진짜.”

“네가 날 이렇게 만들었어.”

그가 그녀의 부드러운 살결을 찬찬히 쓸었다. 값비싼 전시품을 다루듯 조심스러운 손길이 목부터 시작해 발끝까지 닿자 소희가 속이 간질대는 이상한 느낌에 어금니를 꽉 물었다.

“내 옆에서 끝까지 괴로워하다가 죽어, 아리아드.”

“헉.”

여주인공한테만큼은 다정한 남자가 이런 식으로 뒤틀리는 건 좀 이상한데.

내가 뭘 잘못한 거지? 내가 여주인공이 아니어서 그러니?

* * *

조슈아가 방문을 닫고 집무실로 향하려다, 앞에 서 있는 시녀에게 말을 건넸다.

“아이를 가지려면 관계를 몇 번 해야 하죠?”

뜬금없는 말에 여자가 차분히 답했다.

“사람의 몸 상태에 따라 다릅니다. 특히 여자는 생리 주기에 따라서 다르지요.”

“아리아드의 현재 몸 상태는.”

그제야 그의 말뜻을 파악한 시녀가 원하는 답을 내주었다.

“가임기십니다.”

원하던 정확한 답변에, 조슈아가 제 얼굴에 설핏 미소가 그려진 줄도 모른 채 읊조렸다.

“시녀장한테 전달해서 궁전에 있는 피임약 다 없애세요.”

그리고는 긴 복도를 걸어가는 조슈아의 발걸음이 그 위치에 걸맞게 우아했다.

그는 그녀의 몸을 씻겨 주었던 제 손을 바라보다 향을 맡았다. 그러자 왜인지 모르게 화기가 들끓던 마음이 편안해졌다.

묵직한 발걸음 뒤로 짙은 그림자가 뒤따랐다. 그리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디딜 때마다 조슈아는 제 마음을 확인했다.

아리아드, 널 망가뜨릴 거야.

그게 자신이 확인한 진정한 마음이라 믿었다. 이제 아리아드의 목을 베어 장식하는 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을 듯했다.

* * *

“찾아본다고 했던 약은?”

“네? 무슨 약이요?”

“사후피임약! 찾아보겠다고 했잖아.”

씻어서 뽀송뽀송해진 아리아드의 보랏빛 머리카락을 쓸어 넘기며 소희가 되물었다.

그에 시녀가 눈을 피했다.

“저녁 식사를 하셔야지요. 음식 내오겠습니다.”

뭐야, 이 불길한 느낌.

아무래도 시녀가 왜 이렇게 행동하는지 대충 알 것 같아서 소희는 다시 되묻지 않고 그저 설핏 미간만 구겼다.

분명 조슈아가 뭐라고 한 것 같은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아리아드는 데온의 아이를 가지게 되고, 그녀의 목은 뒹굴뒹굴하며 바닥을 굴러다니겠지. 결국 그것은 내 소설이 망하는 지름길이요.

그렇기 때문에 약을 구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고민에 빠진 소희 앞으로 엉뚱한 사람이 식사를 담은 쟁반을 들고 들어왔다.

또 조슈아다.

아까 낮에 벌였던 질펀한 장면이 떠올라 괜히 민망스러워 눈을 피했다.

“먹여 줄게.”

낮에는 먹여 달라 해도 염치없다며 벌레 보듯 했던 남자의 변화에 소희의 동공이 커졌다.

“굳이 그럴 필요는 없는데.”

알 수 없는 행동에 괜히 불안해서 여주가 되어야 한다는 사명감도 잊은 채 소희가 밀어내는 지경이 되었다.

그는 여전히 그녀의 말을 귀담아듣지 않았다. 그저 조용히 식사를 내려놓고 원목 의자에 자리 잡았다.

“왼손잡이인데 붕대를 두르고 있잖아, 아리아드.”

“오른손잡이인데요?”

“아까 왼손잡이라며.”

“오른손잡이인 거 다 안다며. 이게 갑자기 왜 헛소리를!”

버럭 내지르는 소리에 조슈아는 또다시 빛나는 용안을 불쑥 들이밀고 얼굴 공격을 하였다.

아앗, 눈부셔.

소희가 놀라서 고개를 홱 돌리니, 그 굵고 기다란 손가락이 턱을 가볍게 잡고 돌려세웠다.

이채가 도는 빨간 눈동자가 그녀의 눈을 곧게 마주하고 있다가 그 눈매가 어여쁘게 접혔다.

“아리아드, 조용히 하고 받아먹어.”

쩝, 순한 사람이 돌면 더 무섭다더니. 괜히 더 자극했다가는 또 무슨 짓을 할지 몰라 소희가 입술을 삐죽이다가 그냥 입을 벌렸다.

소희야, 제발 로맨스 잊지 말자. 뼈에 새기고 새겨. 이 또라이 같은 남주와 필요한 건 그거 하나뿐이야.

순순히 입을 벌리는 그녀를 보며 조슈아의 입가에 미소가 띠더니 조심스레 음식을 넣어 주었다.

그리고 우물우물 씹는 그녀의 모습을 부담스러우리만큼 빤히 지켜봤다.

솔직한 심경으로는 체할 것 같았다.

소희는 괜히 눈을 피해 음식을 씹으며 이 남자가 갑자기 무엇 때문에 이리 바뀌었는지 고민했다. 그리고 결론은 아까 낮에 했던 행위로 닿았다.

역시, 몸 정이 생기면 맘 정도 생기는 건가. 혐오감밖에 없다 어쩌고저쩌고하더니 남자들은 다 똑같아!

“아리아드.”

갑자기 그의 손이 다시 턱에 닿아 고개를 자신의 쪽으로 돌려세웠다.

“여기 보고 먹어.”

어째 이 집착 수준은 소름 끼칠 정도로 무섭긴 하다. 불도저 같이 달리는 데온과 비슷한 수준으로 치달았다.

갑작스레 든 데온의 생각에 그녀가 사후피임약을 구할 방도가 뇌리에 스쳤다.

데온의 저택에 머물 때 찾아왔던 그 안경잡이 의원! 그 의원을 찾아가면 분명 받아 낼 수 있을 것이다.

의식의 흐름에 따라 결론을 내린 소희가 입을 떼어 큰 실수를 했다.

“데온은 어디로 끌려갔어?”

나름 다정하게 흐르던 분위기가 일순 굳어 섰다.

그가 한쪽 눈썹을 크게 치켜올렸다.

“네가 그걸 알아서 뭐 하게.”

그거야 찾아가려고 그러지.

소희가 분위기의 변화를 깨닫고 차마 하지 못하는 말을 삼키며 고개를 돌렸다.

“음, 맛있군.”

괜히 또 천장을 보며 위에 수놓아진 문양의 숫자를 셌다.

그에 조슈아의 성난 언성이 들려왔다.

“그 새끼는 두 번 다시 찾지 마.”

욕설을 입에 잘 담지도 않는 설정의 남주가 표현이 거칠어졌다.

소희는 대답 않고 괜히 노래까지 흥얼거렸다.

그에 또다시 조슈아의 손이 닿아 고개를 돌려세웠다. 이번에는 손길이 부드럽지 않고 매우 매서웠다.

“이름을 입에 담지도 마.”

“알겠어. 알겠다고.”

그 눈빛이 무서워 대충 고개를 주억거려도 점화한 불길이 끊이질 않았다. 데온의 발작 버튼이 조슈아이듯, 현재 조슈아도 다를 바 없는 모양이다.

“내가 네 주변 남자들을 밑바닥까지 끌어 내리겠다고 했지.”

그 날카로운 말에 설핏 소희의 미간이 구겨졌다.

아, 그러면 안 되는데. 그럼 데온파 독자님들이 다 떠나간다고.

“이제부터가 시작이야.”

그는 진정 본래 짜 놓은 소설의 설정대로 데온의 목을 자를 생각이었다.

그것도 반역죄로 몰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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