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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300화 (300/300)

300화

피가 분수처럼 솟아오른다.

15미터의 거체.

그 가슴팍에 구멍을 뻥 뚫어줬으니, 갈 곳 잃은 혈액이 꾸역꾸역 흘러나오면서 바닥을 적셨다.

『천상의 신이 경악합니다.』

『오염된 왕좌의 주인이 박장대소합니다.』

『지혜의 탐구자가 당신을 주시합니다.』

…….

몇몇 성좌들은 즐거움을.

대부분은 경악이라는 감정을 드러냈다.

-여의 계약자라면 이 정도는 당연한 것 아니더냐.

“조카랑은 좀 닮았어?”

-이스메니오스는 저보다 훨씬 크니라.

“그럼 망설이지 않아도 되겠네.”

-흥, 그럴 마음이나 있었느냐.

“예의상 하는 말이지. 당연한 것을.”

닉스랑 잡담을 나누고 있을 때, 드래곤 하나가 앞으로 나왔다.

“블루 드래곤 아카이드다. 난 방심 따위 하지 않는다.”

“레드에 블루에…… 지들이 무슨 파워레인저인 줄 아나.”

“파워레인저?”

“됐다. 설명해 주기도 입 아프고.”

[제6라운드를 시작합니다.]

블루 드래곤은 오연한 자세로 나를 내려다보았다.

달싹이는 입술.

0.1초 만에 완성된 대규모 마법이 전장 여기저기에서 쇄도한다.

사방에서 일어난 정전기로 공간 전체가 번쩍이는 것처럼 느껴진다.

번개를 주관하는 블루 드래곤다운 실력이군.

[진리안을 사용합니다.]

[만상침식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탐욕의 가호를 사용합니다.]

마안으로 블루 드래곤의 마나를 읽어내고.

거짓 성좌의 가호가 이미 재배열을 마친 마법에 간섭한다.

무엇이든 삼키는 바알의 가호가 드래곤의 마나를 제 색으로 덮어 버리니.

한 번 바라본 것만으로 마법의 제어 권한을 대부분 빼앗았다.

시전자에게로 돌아가는 번개 다발.

“필멸자. 도대체 무슨 짓을 벌인 거냐?”

“목을 내놓으면 알려 주마.”

“건방진!”

푸른빛이 블루 드래곤의 비늘을 물들인다.

레드 드래곤과 마찬가지로 마나를 부여, 제 비늘을 강화한 것이다.

평범한 종족은 깨달음이 있어야 펼칠 수 있는 오러.

저놈들은 숨만 쉬어도 오러의 사용 방법을 깨닫고 자연스럽게 운용한다.

“불합리하지.”

-그대가 할 말은 아니로구나.

“동감.”

회귀.

시간을 되돌리고 모든 기연을 독식한 나야말로.

불합리함의 상징이니까.

콰릉!

제 주인에게로 되돌아간 번개가 푸른 비늘과 충돌하면서 굉음을 퍼트린다.

-한데 별 효과는 없구나.

“번개를 주관하는 종이니까. 절대까진 아니어도 내성이 좀 있어.”

이미 목적은 달성했다.

마법의 제어를 강탈 당했다는 놀라움.

놈이 추가로 마법을 전개하지 않고 오러를 끌어올리느라 제자리에 멈춘 걸로 충분했다.

난 이미 다음 수를 준비했으니까.

[용의 날개를 사용합니다.]

땅을 박차는 것과 동시에 용의 날개를 퍼덕이자.

서로의 간격이 눈 깜짝할 사이에 좁혀진다.

몇 배나 올라간 비행속도.

이면 세계의 비행 타입 괴수, 크아펠의 정수를 용의 날개에 복속시킨 덕이다.

바람길에 의지했던 공중 이동.

이제는 용의 날개가 제 역할을 해 준 덕에 더 자유롭고 빠르게 기동 가능해졌다.

[초고속 영창]

[라이트닝 퍼니시먼트]

5배의 마나를 소모해서 주문을 완성시키는 스킬.

용족 고유 능력이다.

-저것도 포식으로 뺏지 그러느냐.

“플레이어 대상으로는 안 된다고 했잖아.”

쓰러트려도 가루로 변하는 걸 무슨 수로 포식하나.

탐나는 능력이지만 전생에도 얻지 못했다.

난 오른손을 뻗었다.

[마나 업소브를 사용합니다.]

손가락에 낀 반지.

탐식의 입에서 사이한 빛이 흘러나왔다.

건물 하나 굵기의 뇌전이 반지에 흘러들어 온다.

대상의 마력 스텟이 나보다 낮을 경우, 해당 마법을 흡수하는 강력한 스킬.

“이, 이건 말도 안 돼.”

블루 드래곤의 눈동자가 사시나무처럼 흔들렸다.

파지직!

미처 흡수하지 못한 번개 파편이 사방으로 튀었다.

진룡장갑에도 닿았지만 큰 피해를 주지 못하고 힘없이 사그라진다.

5성급 마법이다 보니 완벽하게 흡수하진 못했다만.

내 마력 스텟이 성룡급 드래곤보다 앞서는 걸 확인했다.

크크.

나쁘지 않은 수확이군.

“이제 알아볼 것도 다 봤으니 끝내자.”

“건방진 필멸…….”

“누가 건방진지, 서열 정리부터 하는걸로.”

[폭마기를 사용합니다.]

[괴력을 사용합니다.]

한껏 말아 쥔 주먹으로 블루 드래곤의 가슴팍을 후려쳤다.

우지끈!

공간 전체를 울리는 선명한 파열음.

견고한 비늘이 깨어지고, 그 사이로 피가 솟구쳤다.

레드 드래곤 때와 별반 차이가 없는 모습.

“다음. 빨리 튀어나와라.”

나머지 드래곤들의 눈가 위에 긴장감이 감돌았다.

* * *

바벨탑은 무수한 세계와 연결되어 있다.

고신족들이 빚어낸 인공 세계.

닉스를 비롯하여 잠들어 있는 몇몇 성좌의 ‘개념’을 훔치고.

여러 신들의 사회의 협조를 구해 구축한 차원이다.

클리포트 추종자들이 실존하는 차원을 비추어 그림자 같은 이면 세계를 구축했다면.

탑은 여러 성좌에게서 차원의 ‘개념’을 빌리고 차원 곳곳에 발을 걸치면서 유지된다는 매커니즘이다.

그 중 드라켄 아일랜드는 바벨탑이 걸친 여러 차원 중에서 가장 강력한 세계다.

태어나는 순간 준 성좌, 그러니까 영웅에 해당하는 격을 보유하고.

숨만 쉬어도 강해지며 마법의 심연까지 깨우친다.

해츨링만 벗어나도 탑의 하이 랭커 바로 아래 등급의 능력을 보유한 종족.

블랙 드래곤 제라미스는 지상 최강의 종이라는 자부심을 마음속에 품고 살아왔다.

다이아몬드 승급전을 치르기 전까지는.

‘믿기지가 않는군.’

인간.

들은 바 있다.

바벨탑의 마수에 걸려든 지 얼마 안 된 종족.

기초 종족 값이 최저치이며, 과학이라는 기술이 발달했지만 탑의 그림자가 드리우기 전에는 마나조차 느끼지 못한 하위종이다.

실제로 탑의 초대를 받은 용족들의 이야기에 따르면 60층대에서 바닥을 전전한다 했으니.

질 가능성은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

“남은 건 너뿐이군.”

차가운 목소리가 제라미스의 정신을 일깨웠다.

무너지는 그린 드래곤의 신형.

그와 마찬가지로 ‘성룡’이 된 용족이다.

필멸자에게는 재앙이라고 불리는 강력한 드래곤.

그 강대한 존재가, 진호 앞에선 맥도 못 추리고 쓰러졌다.

“필멸자. 여태까지 상대한 동족과 내가 같다고 생각하지 마라.”

“아, 그러셔?”

“정식으로 소개하지. 내 이름은 제라미스 드 마그누스다.”

마그누스.

용족의 수장, 드래곤 로드를 대대로 역임하는 핏줄이다.

“위대한 종족의 조율자. 그 힘을 목도할 영광을 네게 허락해 주마.”

“허락이고 자시고. 뒤지게 맞기 싫으면 전력으로 와야 할 거다. 비만 도마뱀.”

“참으로 품위 없는 종족이군.”

[제10라운드를 시작합니다.]

제라미스는 막이 걷히자마자 드래곤 하트에 담긴 권능을 발현했다.

위대한 종족의 조율자.

각 속성의 화신이라고 불리는 동족의 힘을 체내에 흡수, 제 의지로 다루는 능력이다.

연달아 벌어진 전투.

대기 중에는 패배한 드래곤의 마나와 의념이 잔뜩 베어있다.

제라미스의 심장은 그 힘을 모조리 흡수.

본신의 능력을 증대시켰다.

검은 비늘 위에 감도는 오색빛깔의 마력.

“내 힘은 웜급 드래곤에 필적한다. 어찌하겠느냐, 필멸자여!”

세월이 지날수록 강해지는 드래곤.

웜급이란, 3천 년 이상 산 용족에게 붙는 호칭이다.

『천상의 신이 제라미스를 주시합니다.』

『황혼의 그림자가 제라미스를 주시합니다.』

…….

진호를 지켜보던 성좌들.

혹은 용족을 후원하는 성좌 여럿이 제라미스에게 관심을 보냈다.

드래곤 로드의 혈족이라고 해서 기운을 완벽하게 컨트롤하지는 못한다.

받아들이는 거야 가능하지만 한계를 넘어선 힘을 소화하는 것은 별개의 문제.

그 어려운 것을 가뿐하게 해 낸 제라미스에게 관심이 쏟아지는 건 당연했다.

“보아라. 수많은 별빛이 내게 속삭이는 것을!”

“어쩌라고. 시끄럽네.”

“뭣이라?”

“넌 주둥이로 싸우냐?”

“성좌들이 지켜보는 중인데도 천박하구나.”

“됐다. 그냥 죽어라.”

[축지]

공간 사이를 접는 선법.

진호가 한걸음을 내딛자, 제라미스의 지근거리로 이동했다.

공간 장악력에 간섭하는 [전이 지연] 마법이 있었지만 축지의 발동을 저지하지는 못했다.

제라미스는 당황해하면서도 마나를 빠르게 재배열, 마법 공세를 퍼부었다.

“하여간 배운 게 없어요.”

[만상침식의 가호]

[탐욕의 가호]

웜급에 버금가는 힘.

각 마법의 위력도 배 이상 강해졌지만, 모조리 제라미스에게 돌아왔다.

힘의 강 · 약은 상관없다.

진호가 다루는 건 섭리에 간섭하는 가호.

마나, 혹은 의지력보다 동등한 격으로 상대해야 했다.

되돌려진 마법을 제라미스가 막는 동안.

진호는 단전에서 끌어올린 내공과 폭마기를 양팔에 집중시켰다.

[괴력을 사용합니다.]

[백수제왕무 - 13초식]

[황룡아를 사용합니다.]

여러 정수를 복속시키면서 4성급으로 오른 괴력.

백수제왕무 후반부 초식, 황룡아.

두 힘이 충돌하는 순간 [이클립스]로 반발력을 최대치까지 끌어올렸다.

소용돌이치면서 나아가는 순수한 힘의 파동.

제라미스의 가슴팍을 강타한 폭마기와 강기가 비늘을 뭉개고 바스라트렸다.

“크아아아!”

여러 용족의 힘을 흡수하면서 강해진 제라미스.

승리를 자신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볼썽사나운 비명을 내질렀다.

* * *

[지구(3) 차원 측이 승리했습니다.]

[승리한 차원 측 인원은 전원 다이아몬드 등급으로 승급합니다.]

[패배한 차원 측은 40%만 승급합니다.]

[승급 인원은 공헌도에 따라 결정됩니다.]

비늘이 찢겨진 채, 잘 다져진 고깃덩이가 된 드래곤.

제라미스의 몸뚱이가 가루로 화한다.

“웜급 까지는 할 만하네.”

-일방적으로 농락한 주제에 그렇게 말하기더냐?

“제대로 된 건 아니었잖아.”

드래곤 로드의 후예.

혈통 대대로 내려오는 권능을 활용할 줄은 몰랐다.

공간에 널린 힘을 수습하는 것까진 잘했다만, 르네 때와 마찬가지로 강해진 힘을 제대로 활용하진 못했다.

“나도 꽤 고전했다고.”

파괴와 재생을 거듭한 양손.

강기, 그리고 폭마기를 부딪치면서 증폭시키는 게 보통 일인 줄 아나.

양팔은 넝마가 되다 못 해 뼈만 앙상하게 남아 버렸다.

제라미스가 기운을 받아 내는 틈을 타서 빠르게 재생.

연속으로 몰아붙여서 승리를 따낸 거지.

마냥 쉬운 상대는 아니었다.

-어찌 되었든, 한고비를 넘겼구나.

“드디어 시작점에 섰어.”

여러 차원의 경쟁자들과 마주하는 층계.

60층 너머야말로 바벨탑의 진면모가 드러난다.

더 혹독한 미션.

훨씬 강한 경쟁자들.

그리고.

종족 전체의 성적이 좋지 않으면 가속화되는 탑의 침식까지.

“두 번 다시 멸망의 시대가 오지 않게 하기 위해선 마음을 놓을 수 없어.”

-복수도 잊지 말거라.

“설마. 멸망의 시대를 막는 건 부수적인 거야.”

내 진짜 목표는 탑이라는 것을 만든 고신족의 파멸이다.

진정한 적을 쓰러트리기 전까지는 뒤를 돌아보거나 멈추는 일 따위, 없을 것이다.

-여가 그대와 함께 하겠노라.

“잘 부탁해.”

나는 여신님을 보며 미소를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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