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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98화 (298/300)

298화

한국으로 돌아가는 길.

“록펠러 마스터께서 귀빈을 모시라 하였습니다.”

공항에는 록펠러 재단 마크를 새겨 넣은 전용기가 일행을 기다렸다.

“이야, 마스터가 나한테도 잘 안 내주는 건데?”

“전용기는 많이 쓰잖아.”

“미스터 유. 그건 골드 문에서 구매한 거라고. 록펠러 재단은 좀 달라.”

록펠러 재단.

미국 재계에서 큰 영향력을 보유한 재벌 가문이다.

“길드를 넘어 가문 차원의 지원이라.”

“아무래도 마스터가 당신과 더 친해지고 싶은 모양이야.”

“그러게.”

나는 피식 웃었다.

윌리엄 록펠러가 전용기를 보낸 의도야 뻔했다.

역천 길드와 골드 문.

정확히는 나랑 윌리엄 록펠러의 친분을 전 세계에 과시할 겸, 가문 차원에서 돕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거지.

“좋은걸.”

“마스터와 나눈 이야기는 아직도 유효하나 보네?”

“난 세계 최고의 플레이어가, 골드 문은 최고의 길드에 오르는 거 말인가.”

“내가 미스터 유라면 둘 다 욕심을 낼 것 같아서.”

엘렌은 뒤를 힐끗거렸다.

우와- 연신 터지는 감탄사.

지영이를 포함한 일행이 신기하다는 눈빛으로 록펠러 재단 전용기를 흘겨본다.

“됐어. 애들 더 받는 것도 귀찮다.”

길드 관리는 내 전문이 아니다.

그럴 시간에 정수 하나 더 포식하고 힘을 쌓는 게 낫다.

토마스 분석관 같은 관리직을 더 받을까도 생각했지만, 자칫 윌리엄 록펠러와 척을 질 수도 있다.

그자의 능력은 멸망의 시대에 꼭 필요하니까.

세계 최고의 길드에 연연하는 것보다는 수완가를 아군으로 두는 게 더 이득이다.

“욕심이 가득한 것 같으면서도 이럴 땐 소박하단 말이야.”

엘렌은 더 권유하지 않았다.

-그대를 떠보려는 것은 아니겠느냐?

“쟤 성격상 안 그래.”

록펠러 재단에서 보낸 전용기 덕에 환승 없이 한국에 도착했다.

인천 국제공항에 발을 딛는 순간.

“유진호 플레이어! 이번 프랑스 대붕괴를 막은 소감 부탁드립니다!”

“프랑스에서 귀화 권유가 있었다고 들었는데 진짜입니까?”

“엘렌 테일러의 보증이 진짜인지 궁금해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파리의 결전에서…….”

찰칵! 찰칵!

메아리치듯이 광장을 맴도는 무수한 질문 공세.

카메라 셔터 소리가 쉼 없이 울리고 눈이 번쩍인다.

지영이가 혀를 내둘렀다.

“스승님. 전보다 더 많아진 것 같은데요?”

“인기 많은 것도 피곤한 일이야.”

작게 중얼거리고는 몰려든 인파를 둘러보며 웃어주었다.

향신료 제도 때 하고는 차원이 달라진 위상.

전 세계가 내 행보에 주목하고 있다.

나름대로 이미지 메이킹에 신경을 써야 할 때.

-그대가 언제부터 그런 걸 신경 썼느냐?

“특정 게이트에서만 얻을 수 있는 기연 같은 게 있잖아.”

-오호라. 정의감 넘치는 모습을 연출하여 기연을 독식하겠단 말이로구나.

“조금 귀찮아지겠지만.”

-순수한 의도였다면 여의 계약자가 아니지. 암.

어째 욕하시는 것 같은데요?

닉스를 살짝 노려보고는 기자들의 질문에 대꾸했다.

최소한으로 인터뷰를 진행했는데도 공항에서 벗어나는 데만 1시간 이상 걸렸다.

“아저씨. 다음에도 이러면 쓸어버릴지도 몰라요.”

“그러다가는 내 손에 죽는다.”

“아니, 너무 많잖아!”

엔리케는 울상을 지었다.

사람이 많다고 좋아하더니 1시간 만에 완전히 질린 모양이다.

내가 인터뷰를 하는 동안 일행 역시 자유롭진 못했다.

홍윤수와 신준석은 이미 랭커로 이름을 날린터라 주목을 상대적으로 덜 받았지만.

프랑스 대붕괴에서 활약한 남은 멤버들은 처음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았다.

나와 마찬가지로 플레이어 2년 차인 지영이야 말할 것도 없고.

이민자인 핑 레이와 엔리케, 그리고 카를라에게도 인터뷰 요청이 쇄도했다.

“형님, 너무 아쉬워하지 마세요.”

“제가요? 하핫, 농담이 과하십니다. 길드장님.”

영수 형님은 허허로이 웃었다.

지휘계통 능력은 시각적인 효과가 없어서 주목받기 어려웠다.

다른 멤버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인터뷰 요청이 적은 것도 그 이유였다.

표정을 보니 다행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지만.

혹시 몰라서 위로(?)를 건넸다.

우리나라로 돌아온 후에도 한동안은 바쁜 나날을 보냈다.

“자네 덕에 협회가 날개를 달았어.”

김우성 회장은 흥분한 기색으로 내 등을 탕탕 두드렸다.

아따.

이 영감님 힘 하나는 엄청나네.

명색이 우리나라의 랭커라는 것을 과시라도 하듯, 등을 칠 때마다 몸이 요란하게 들썩였다.

“팔팔하신 걸 보면 오래 사시겠습니다.”

“아무렴. 우리 특무대원이 힘써 준 덕에 살맛 나는데 벽에 똥칠할 때까지 일할 거라네.”

내가 힘쓴 덕에 수명 연장하신 건 사실이지.

전생의 흐름대로였으면 엘드리치 드래곤을 막다가 전사했을 운명이다.

이번 생에는 부디 원하는 만큼 일하다가 무사히 은퇴하십쇼.

“한수창 팀장님. 요새는 일 안 많습니까?”

“아, 저 승진했습니다. 이제는 본부장입니다.”

플레이어 협회는 공기업에 발을 걸치고 있어서 직급도 다르다.

일반 기업으로 치면 부장급.

한수창의 나이를 생각하면 엄청난 고속 승진이다.

“이거 참, 축하드립니다. 본부장님.”

“핫, 제가 한 일이 뭐 있습니까? 다 진호 길드장님 덕분입니다.”

“이러다가 최연소 상임 이사직을 맡는 거 아닙니까?”

“직함보다는 우리나라의 치안과 플레이어 처우 개선에 힘을 써야죠.”

겸손하긴.

내 덕을 많이 봤다지만, 한수창 본부장은 전생에도 뛰어난 수완 덕에 승진을 거듭했다.

김우성 협회장이 은퇴할 쯤이면 못해도 이사직까지는 올라가 있을걸?

타이밍만 맞아 떨어지면 차기 협회장을 노려볼 만도 했다.

“본부장님 같은 분이 있어서 든든합니다.”

“그건 제가 할 말입니다.”

우리는 덕담을 주고받았다.

플레이어 협회 방문 후에는 여러 언론과 인터뷰를 했다.

『프랑스를 구원한 히어로, 유진호 전격 인터뷰』

『유진호가 말하는 한국 플레이어 협회와 타국 협회의 차이』

『탑의 위험성을 재조명하다. 유진호와 클리포트』

…….

내 이름을 달고 쏟아지는 기사들.

인기 관리 때문에 억지로 하는 인터뷰가 아니다.

여론이라는 건 활용하기에 따라 내 무기가 될 수도 있거든.

1차 대침식 때만 해도 바벨탑에 대한 인식 자체는 크게 나빠지지 않았다.

게이트와 10대 마경이라는 변수가 생겼지만, 여전히 탑에서 나오는 무수한 재화와 마도 공학 기술은 매력적이었으니까.

-미리 경고하는 셈이구나.

“응, 당장 변하진 않겠지만, 조금씩 바꿀 거야.”

나비효과.

이미 태풍은 불고 있다.

회귀하면서부터 달라지기 시작한 미래.

일부는 내 의도대로지만, 예상 못 한 변화도 있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그 나비효과라는 것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때다.

르네 데이비스를 쓰러트린 건 역사의 변곡점으로 작용될 커다란 사건이다.

이 기회를 놓칠 수 없지.

난 길드원들에게 의무적으로 휴가를 줬다.

“야호오오! 다른 말하기 없기에요, 스승님!”

“사부. 휴가 때 꼭 가야 할 한국의 맛집 좀 알려주시오.”

“엣헴엣헴. 그런 건 내가 전문이지.”

“한국 속담 중에 개똥도 쓸 데가 있다고 하던데. 너도 도움이 되는군. 지영.”

“개, 개또오오옹?”

멍멍이랑 원숭이도 저 둘보다는 친하겠다.

대부분 휴가라는 단어에 반색했다.

그 지독한 수련광인 신준석도 작게 미소 지을 정도.

드라이스트레가 길드의 초대를 받은 때부터 제대로 쉰 적이 없으니까.

한 사람만 빼면 말이다.

“저는 더 수련하고 싶어요.”

그래.

넌 더 강해지겠다는 일념 하나로 만리타향인 한국에 왔었지.

카를라의 두 눈을 직시하며 입술을 떼었다.

“쉬는 것도 강해지는 방법이다.”

“…….”

납득하는 기색이 아니군.

“미스터 유. 카를라는 나한테 맡겨 주지 않을래?”

엘렌이 끼어들었다.

“당사자가 괜찮다면 얼마든지.”

“상관없어요.”

“그럼 우리 길드원 잘 부탁할게.”

엘렌의 눈빛에서 싸늘한 빛이 스쳐 지나갔다.

두 눈 뜨고 길드원을 뺏긴 입장이니 억울할 만도 했다.

근데 어쩌냐.

네 곁에 두었다가는 회귀 전과 똑같은 결과가 나올 건데.

“이틀 뒤. 다시 모입시다.”

짝!

가볍게 박수를 치며 일행을 해산시켰다.

* * *

이틀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회귀 후 처음으로 내려간 고향.

-조용한 곳이로구나.

“시골이니까. 여긴 변하지를 않네.”

멸망의 시대 직전까지도 이런 풍경이었다.

골목 하나만 더 돌면 고향집이 나올 텐데.

“똥강아지 왔냐?”

백발이 성성한 노인.

일찍 세상을 떠난 부모님 대신 날 키워 주신 할아버지다.

머리만 하얗게 변했지, 소매 아래로 농사로 단련된 근육이 드러난다.

여전하시구먼.

“네, 저 왔어요.”

할아버지는 기사를 보고도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셨다.

그 대신.

“뭘 하든 소신대로 해라.”

이라고 짧게 말씀하셨다.

흐흐.

할아버지는 원래 이런 분이었지.

내가 쓰던 방은 깨끗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빈자리를 늘 청소한 할아버지의 마음이 느껴졌다.

“아, 그래도 내 방이 좋아.”

등을 누워서 위를 올려다보았다.

익숙한 천장이다.

-후훗, 이런 분위기도 나쁘진 않구나.

“딱 하루만 좋아.”

-그대는 여유를 모르느니라.

“온 세상이 불타는 걸 보면 여유라는 게 없어지지 않겠어?”

-이미 많은 것을 바꾸지 않았더냐. 가끔은 쉬어 주어라.

닉스의 말을 한 귀로 흘리면서 두 눈을 감았다.

몰려오는 수마.

르네 데이비스를 쓰러트린 후, 제대로 쉬어보는 건 처음이다.

익숙한 곳에 오니 긴장감이 쫙 풀어졌다.

때아닌 낮잠을 즐긴 후, 할아버지를 도와 집에 밀린 일을 하나씩 처리했다.

“휴가가 아니라 일하러 온 기분인데.”

“떽! 할아비는 일하는데 젊은 것이 누워 있으려고?”

“겨울이잖아요. 농사도 다 끝나셨으면서.”

“지금 준비를 해야 내년을 따뜻하게 보내는 거여.”

이틀 동안 할아버지 일을 도운 후 서울로 다시 올라왔다.

길드 하우스에 모인 일행.

다들 휴가를 즐기고 왔는지 얼굴에 광택이 번들거렸다.

[바벨탑 접속 어플리케이션을 실행합니다.]

[현재 사용자가 머무는 공간은 안정되어 있습니다.]

[정상적으로 접속됩니다.]

[현재 다이아몬드 승급전이 활성화되어있습니다.]

[60층에 도전하시겠습니까?]

[Y/N]

“선배님들. 다녀오겠습니다.”

나는 홍윤수와 신준석에게 손을 흔들어준 후, 접속 버튼을 눌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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