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5화
문어 다리처럼 흐느적거리면서도 살아있는 생물처럼 꿈틀거리는 밤의 어둠.
닉스는 극야의 힘으로 르네 데이비스의 몸을 칭칭 감쌌다.
『고작 이런 잔재주로는 날 어찌하지 못한다.』
“어리석은 사내로고. 여의 근원 앞에서 무릎을 조아리긴 커녕 잔재주라고 폄하하다니.”
촤라락!
극야의 힘이 더욱 거세게 요동친다.
파도처럼 솟구친 어둠의 장막은 수십 미터까지 늘어나더니 르네 데이비스를 덮쳤다.
[소닉 블레이드&소드 브레이크]
[융합기공]
[하울링 소드]
검에 깃든 오러 블레이드가 수백 갈래로 나뉘면서 극야의 힘을 잘게 베어 낸다.
파도처럼 몰려들던 어둠이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쪼개졌다.
“두 눈을 감는다고 하여 밤을 피해 가지는 못 하니라.”
오러 블레이드에 산산이 부서진 줄 알았던 극야의 힘이 소멸하지 않고 거인의 몸 여기저기에 들러붙었다.
[다크 배리어]
보랏빛 방어막이 갑주를 코팅하듯 차오르면서 극야의 힘을 막아 냈다.
『흥, 이런 수작질 따위.』
“수작인지 아닌지는 두고 보면 알 터.”
찌이이익!
방어막 여기저기에서 기묘한 소리가 터져 나온다.
셀 수없이 쪼개진 극야의 힘은 보랏빛 막 사이에 균열을 만들어서 더 깊이 파고들었다.
“뭐야. 여신님, 이런 재주도 있었어?”
“저치의 근원은 질서에 반하는 힘. 무언가를 비추는 그림자가 원본에 비할 바 있겠느냐.”
『이 힘을 그림자에 비교하다니. 건방지다!』
르네는 지면을 세게 쳤다.
[어스퀘이크&대진각]
[융합기공]
[월드 브레이크]
족적을 중심으로 대지가 붕괴를 일으킨다.
르네 데이비스가 자랑하던 파리의 아름다운 정경이 지면 아래로 꺼지고.
새빨간 용암이 솟구치면서 한 폭의 지옥도를 만들어 낸다.
5성급 마법 어스퀘이크.
마찬가지로 체술 중 최상위로 불리는 대진각을 융합, 지맥을 터트리면서 재앙을 일으켰다.
닉스가 불어넣은 극야의 힘이 용암에 씻겨나간다.
격만 놓고 보면 훨씬 위인 극야의 힘.
르네는 압도적인 출력 차이로 닉스의 힘을 상당수 걷어 냈다.
“큿.”
닉스의 신형이 흔들린다.
월드 브레이크는 단순히 극야의 힘을 밀어 내는 데 그치지 않았다.
족적을 기준으로 수백 미터가 초토화되었고.
길게 갈라진 대지에선 지옥의 화염에 버금가는 열기가 솟구치면서 우리를 위협했다.
닉스는 극야를 다시 일으켜서 전신을 보호했다.
『그 건방진 주둥이를 왜 멈춘 거지? 더 떠들어 봐라.』
“여신님한테 그딴 식으로 말하지 마라.”
[운류보를 사용합니다.]
갈라진 대지를 가볍게 밟으면서 빠르게 뛰어간다.
열기 따위, 호신강기를 펼칠 필요도 없다.
정확히는 오버 드라이브의 페널티 때문에 운용이 어렵지만.
운신 중에 경신법을 사용하는 게 전부다.
그 정도면 충분해.
메탈 반사 장갑으로 열기를 모조리 차단.
막 월드 브레이크를 사용한 르네 데이비스의 지척에 도달했다.
『건방진, 날 정면으로 상대하겠다고?』
“그렇다면.”
『대가를 치르는 건 네 몸뚱이가 될 것이다.』
강철 거인이 손을 뻗었다.
드드드득!
청각을 괴롭히는 기묘한 마찰음.
『이, 이 년이!』
“그대는 여신을 배알하는 자세부터 배워야겠구나.”
닉스가 하아, 하고 짧게 한숨을 쉬었다.
월드 브레이크로도 완전히 떨쳐내지 못한 극야의 파편.
강철 거인의 몸뚱이 여기저기에 박힌 어둠의 조각은 암흑 마나가 흐르는 것을 꾸준하게 방해했다.
한 발 늦은 반응.
[거인의 팔을 사용합니다.]
[드래곤 폼을 사용합니다.]
[괴력을 사용합니다.]
신의 분노를 포함, 온갖 버프로 강화된 육체 능력.
용족의 힘에 사이클롭스에게서 얻은 능력을 엮어 냈다.
거대화시킨 팔이 강철거인의 가슴팍을 강타하자.
콰아앙!
가슴팍이 푹 파였다.
“왜, 휘청거리고 있지 않나?”
『건방진 노오오옴!』
르네 데이비스는 일체화된 에펠탑을 금세 복원.
방패를 추켜세우면서 앞으로 나아왔다.
“감당 못 할 힘 가지고 신내긴.”
블링크를 사용.
급하게 달려드느라 자세가 무너진 르네 데이비스의 뒤를 노렸다.
다시 한번 터지는 충격음과 함께 강철거인이 휘청거렸다.
“건방진 게 누구인지 이제 분간이 가냐?”
나는 입술을 비죽였다.
* * *
쾅! 쾅!
폭음이 연달아 터진다.
[플레임 비트&다크 플라워]
[융합기공]
[데몬 플라워]
화염을 담은 지옥의 꽃이 사방에서 피어난다.
넓은 범위를 뒤덮는 공격.
르네 데이비스는 암흑 마나를 흩뿌린 직후, 숨을 골랐다.
‘어째서냐!’
손이 잘게 떨린다.
에펠탑과 동기화를 하면서 얻은 막대한 암흑 마나.
유럽 최고의 플레이어라고 불린 때보다도 훨씬 강한 힘을 손에 넣었다.
산자락을 베고.
발길질 한 번에 지진이 일어나며.
거센 헤일조차도 손짓 하나면 잠재울 수 있는 막대한 힘.
성좌에 버금가는 전능한 권능을 손에 넣었다.
‘그런 내가 왜, 저 녀석 하나를 이기지 못하느냔 말이다!’
[버스트 플레임&메일스트럼]
[융합기공]
[파이어 토네이도]
후끈해진 공기.
푸른 불꽃이 소용돌이치면서 닿는 것을 모두 재로 만들었다.
융합기공으로 끌어낸 화염의 진수.
그 위력은 5성급 스킬보다도 더 강력했고, 에펠탑의 힘을 빌리지 않은 상황에서도 60층대 보스 몬스터를 가루로 만들었다.
본신보다 수 배, 아니 열 배 이상으로 강해졌으니 마법의 파괴력도 올라갔을 터.
그래야 하는데.
서걱-!
흑색 강기가 화염 폭풍을 반으로 쪼갠다.
“왜, 뭐가 잘 안 돼?”
『건방 떨지 마라.』
파리를 구현했던 아공간은 잿더미와 새빨간 용암만 남은 지 오래.
둘 사이를 오간 공방의 여파에 휩쓸렸을 뿐인데도 한 폭의 지옥도가 펼쳐졌다.
르네에게 주어진 마력은 세계를 파멸시킬 만큼 강대했다.
경천동지할 힘이 진호 앞에서는 미풍만 못 하게 되어서 문제였지만.
화염 폭풍을 뚫고 나온 진호가 손을 쭉 뻗었다.
집약된 내공이 갑주를 스치고.
카각!
에펠탑의 잔해로 구현한 팔이 기괴한 소리와 함께 부서져 나간다.
르네는 암흑 마나를 소모해서 붕괴해 가는 팔을 붙들었다.
둘 사이를 오가는 무수한 공격.
승자와 패자를 구분하는 건 어렵지 않았다.
10미터 가까이 줄어 든 거인의 덩치.
반면 진호는 멀쩡했다.
무한하게 솟아날 것만 같은 암흑 마나의 출력이 꽤 줄어들었다.
‘큭. 그런 거였나.’
르네는 쓴웃음을 삼켰다.
감당하지 못할 정도의 커다란 암흑 마나.
에펠탑 잔해와 일체화된 후, 하늘조차도 쪼갤 수 있을 것 같은 엄청난 마력 양에 취해서 단순하게 공격을 퍼부었다.
그게 실수였다.
진호는 마치 자신의 공격 패턴을 모두 알기라도 하는 듯, 마법을 파훼하거나 흘려보냈다.
‘놈이 어떤 방법으로 간파했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르네의 눈빛이 차갑게 가라앉았다.
강한 힘에 취해서 들뜬 마음이 급속도로 차분해지고.
아공간에서 벌인 전투가 빠르게 머릿속을 스치고 지나갔다.
‘기교는 내가 몇 수 아래다.’
인정하기 싫은 사실.
르네는 융합기공의 효력을 최대로 끌어올리기 위해 온갖 스킬 북을 탐닉했다.
그뿐이랴.
각 스킬이 지닌 성질을 모조리 분석, 최대의 효율을 끌어냈다.
올마이티로 전직하면서 쌓아올린 탑.
진호 앞에서는 무용지물이었다.
‘나보다 더 많은 스킬, 그리고 여러 기운을 다룬다.’
선법.
무공.
극야.
체술.
그 외에도 르네가 알지 못하는 기기묘묘한 힘을 다루면서 쉼 없이 변수를 만들어낸다.
르네는 여태 외면해왔던 것을 빠르게 받아들였다.
‘수 싸움에서 못 이기면 힘으로 밀어붙인다.’
융합기공만 의지해선 진호를 따라잡을 수 없다.
자신의 장점은 에펠탑과 동기화하면서 생긴 막대한 마나, 그리고 출력.
비대해진 마나를 세밀하게 컨트롤하기보다 있는 힘껏 방출하는 것이 장점을 극대화하는 방법이다.
[윈드 블레이드&마나 블래스트]
[융합기공]
[스톰블링거]
극한으로 압축된 바람의 칼날.
르네는 그 위에 오러 블레이드를 부여했다.
후웅-!
수십 미터에 달하는 검이 큰 궤적을 그리며 지면에 쏟아진다.
응축시킨 폭풍이 해방, 제 형태를 잃어버린 땅을 휩쓸었다.
진호의 눈동자 위로 묘한 빛이 아른거린다.
마나, 기, 신력 등을 읽어 내는 마안.
진리안으로 스톰블링거의 흐름을 읽어낸 후 마나가 집약된 부위에 공세를 가했다.
응축된 바람이 좌우로 흔들린다.
르네 데이비스는 흩어지려는 검을 다시 붙들려고 하지 않았다.
추가로 마나를 부여해서 검을 폭발.
오러 블레이드와 섞은 기운을 정면으로 터트렸다.
“쳇.”
순수한 힘의 폭발.
광범위하게 쏟아지는 바람과 오러 블레이드의 폭격을 파훼하지 못하고 제자리에서 막아 냈다.
『이 상황은 예상하지 못했나?』
르네는 다시 스톰블링거를 시전.
압도적인 마나 출력을 십분 활용해서 진호를 압박했다.
“쉽게 가나 했더니. 역시 썩어도 준치네.”
진호는 발을 앞으로 내디뎠다.
무리하게 나선 탓에 오러 블레이드 파편이 팔뚝을 스치고 지나갔다.
피가 솟구치지만 멈추지 않는다.
“이제부터는 근성 싸움이다, 그거잖아.”
르네가 마력을 최대로 방출하듯.
진호 역시 해일처럼 몰려드는 마력을 베면서 나아갔다.
화려함도.
공방을 주고받는 과정에서 파생되는 충격도 줄어들었지만.
그 어느 때보다도 치열한 싸움이 진행되었다.
* * *
난타전으로 변질된 전투.
푸악!
팔꿈치 아래가 스톰블링거에 노출되어서 잘려 나간다.
[변이]로 출혈을 막고.
초재생능력을 발동해서 팔을 복원한다.
시간을 역행하는 것처럼 다시 자라나는 오른팔.
왼손으로는 내공을 집중.
[백수제왕무 - 9초식]
[영귀기공포(靈龜氣功砲)를 사용합니다.]
응축시킨 기파를 방출했다.
콰득!
거인의 어깨가 푹 파였지만, 들어간 부위가 금세 튀어나왔다.
『끈질기군. 아직도 쓰러지지 않다니.』
“내가 할 말이다.”
아공간에서 전투를 벌인 지도 한나절이 지났다.
에펠탑 괴물을 반파시키고.
융합기공의 막대한 화력을 파훼한 데 이어 난타전까지 벌였다.
상처를 재생한 횟수는 셀 수 없을 정도.
전투 과정에서 날아갔다가 복원시킨 육체를 모으면 사람 몇 명이 나올지도 모른다.
마나야 혼원룡의 심장 덕에 부족함을 못 느끼지만.
체력, 그리고 정신력은 무한하지 않다.
당장이라도 쓰러지지 않는 게 이상한 몸뚱이.
초인적인 정신력으로 소모전을 버텨냈다.
르네의 상황도 낙관적이진 않았다.
5미터까지 줄어든 거인.
아니, 이제는 거인이라고 부르기도 민망할 정도다.
에펠탑에서 뿜어져 나오던 막대한 마나, 그리고 출력량을 떠올리면 초라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그 재생 능력도 무한하지는 않은 모양이군.』
르네의 목소리에 자신감이 깃들었다.
-특별한 수가 있느냐?
“이 상황에서 없으면 죽어야지.”
그래.
나한테는 아직 비장의 수단이 하나 남아있다.
“여신님, 그걸 하자.”
-그거라니, 무슨.
닉스의 눈동자가 의혹으로 물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