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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식으로 레벨업하는 군주님-291화 (291/300)

291화

에펠탑을 변형시킨 기괴한 나무.

세계의 뒷면, 이면 세계의 핵심인 클리포트의 나무다.

-불쾌하구나.

닉스가 적대감을 드러냈다.

그럴 만도 하지.

세상의 이치와 질서를 뒤집는 금기의 나무.

밤을 주관하는 닉스의 입장에서는 에펠탑을 집어삼킨 나무를 보는 것만으로 ‘존재’를 부정당한 기분이 들 것이다.

“운명적인 재회로군요.”

“그래, 이 빌어먹을 녀석아.”

“품위가 느껴지지 않는 발언은 주의해 주십시오.”

“역겨운 냄새를 풀풀 풍기는 사람이 품위를 운운해 봐야.”

나는 오른손으로 공기를 휘휘 저었다.

“역겨운 냄새요? 전 아무것도 안 느껴지는데.”

“지영아, 넌 돌아가면 한 세트 추가다.”

“히잉.”

난 지영이를 가볍게 째려본 후, 다시 에펠탑 위를 올려다보았다.

“수많은 사람의 기원이 모인 건축물. 에펠탑을 이용했군.”

“예, 프랑스의 자랑이라면 두 세계를 이을 촉매로써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습니다.”

“무덤에 있는 에펠이 그 이야기를 들으면 땅을 치겠어.”

에펠탑의 건축가, 귀스타브 에펠의 이야기다.

르네는 전생에도 같은 수법으로 클리포트의 나무를 강림시켰다.

에펠탑에 쌓인 역사는 일반적인 성유물이나 역사적인 건물에 비해 길지 않다.

하지만.

그 짧은 기간 동안에 압도적인 명성과 이야기를 쌓으면서 세계적인 건축물이 되었다.

쌓아 올린 ‘격’이 만만치 않다는 것.

규모도 커서 클리포트의 나무를 겹치기에 적합한 구조물이다.

“안 그러나, 르네 데이비스?”

“당신, 클리포트에 대해 수상할 정도로 많은 지식을 가지고 있군요.”

“나름대로 주워 들은 게 있어서.”

“그 지식의 배경을 들으려면 머리 정도는 살려 둬야겠습니다.”

“네놈이 할 수 있다면.”

중지를 곧게 세우고는 좌우로 흔들었다.

내 정중한(?) 인사에 미간을 찌푸리는 르네 데이비스.

“인사는 여기까지 하죠.”

놈은 풍성하게 자란 잎사귀 사이로 몸을 감추었다.

쩝.

역시 이 정도 도발로는 안 되나.

-저대로 물러나다니. 싱겁구나.

“합리적인 거야. 저 구조물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려면 [나무]급 추종자가 필요하거든.”

-그대의 말대로라면, 저 흉측한 나무가 가동한다는 뜻이로구나.

“맞아.”

콰르르릉!

세계가 일그러진다.

이미 차원의 벽이 한번 무너진 상황.

에펠탑을 매개로 구현한 [클리포트의 나무]는 파리 지하 곳곳에 뻗어 놓은 뿌리에서 막대한 지력을 흡수.

모조리 암흑 마나로 치환했다.

재배열과정을 거치지 않았는데도 주위의 빛을 모조리 흡수할 만한 어마어마한 농도.

“스승님, 이거 좀 위험해 보이는데요?”

무지갯빛을 내포한 결계가 일행을 감싼다.

기감이 민감하지 않은 이들조차 클리포트의 나무가 끌어모은 암흑 마나를 마주하면 두려움을 느끼리라.

-어떤 술수가 나올지 짐작 가느냐?

“글쎄다. 경우의 수를 헤아리기가 어려워서 지켜봐야지.”

섣부르게 클리포트의 나무 근처로 접근했다간 일행이 당할지도 모른다.

내 마나 보유량조차도 아득하게 뛰어넘는 수준.

-구경만 하겠다는 게냐. 여의 계약자와 어울리지 않는 행위로구나.

“저 클리포트의 나무는 미완성품이야. 한번 지맥의 힘을 빨아들이면 다음까지 시간이 걸려.”

클리포트의 나무는 온전한 세계를 흡수, 차원의 원천으로 이면 세계를 구현하는 것이다.

그 개념이 완벽하게 구현되었으면 저런 번거로운 짓을 벌일 일이 없다.

전생에도 완성되지 못한 클리포트의 나무.

이미 상대해 본 경험도 있으니, 르네가 어떤 수를 쓸지 지켜보며 대응하는 게…….

“어럽쇼.”

콰콰콰콰!

대기를 검게 물들인 암흑 마나가 소용돌이치면서 클리포트의 나무를 감싼다.

-그 얼빠진 반응은 무엇이더냐?

“방어막을 치잖아.”

“사부, 저 엄청난 마력이 우리 머리 위로 쏟아지는 것보다는 그게 낫지 않소?”

“파리를 감싸고 있던 방벽 때문에 그 고생을 한 건 잊어버렸냐.”

아, 핑 레이의 얼굴이 뒤늦게 어두워졌다.

“미스터 유, 저 방어막이 장벽보다 더 강한 거야?”

“느껴지잖아. 굳이 부딪쳐 보지 않아도.”

“하긴.”

엘렌은 흠, 하고는 짧게 신음을 흘렸다.

“저렇게나 엄청난 힘을 가지고 선택한 게 고작 방어냐?”

“흥, 이 몸이 두려워서 고개 숙인 꼴이군!”

세르게이가 콧방귀를 꼈다.

그건 아닌 것 같다만.

-저치는 의외로 자존심보다 실리를 택하였구나.

“그게 르네 데이비스의 무서운 점이야.”

알자스-로렌 지역에서 마주했을 때도 그랬다.

역사적인 부분과 맞물려서 꽤 세게 도발했는데도 선을 넘지 않았으니까.

클리포트의 나무가 현현한 이상, 시간이 지날수록 침식 범위가 늘어난다.

시간은 르네의 편이라는 것.

-하면 저 결계를 뚫지도 못하고 구경만 해야 하느냐?

“클리포트의 나무라고 해도 힘이 무한정 나오는 건 아니야. 방어로 돌린 암흑 마나가 떨어지면 공략할 수 있어.”

-요는 시간 싸움이라는 것이로구나.

“나무가 암흑 마나를 다시 모으면 방어막을 재가동할테니…… 그 안에 파괴하든 해야지.”

방어막의 유지 시간 - 282분.

암흑 마나 집약까지 걸리는 시간 - 340분.

토마스의 분석 능력으로 가늠한 대략적인 시간이다.

“너무 짧고, 또 기네요.”

약 5시간 가까이 대기해야 하고.

방어막이 해제된 뒤 공략할 시간이 1시간가량밖에 안 된다.

쟝 뒤르케와 나디아 카셀을 미리 잘라 냈다지만.

아르메 루즈의 총 전력은 아직 절반 이상이나 건재했다.

가장 핵심인 르네 데이비스도 멀쩡하니까.

클리포트의 나무가 암흑 마나를 다시 생산하면 전투 중에 힘을 소모한 일행이 버티기 어려워진다.

“이 방법은 가능하면 안 쓰고 싶었는데.”

나는 머리를 쓸어 넘겼다.

르네의 페이스대로 끌려가면 주도권을 넘겨줘야 한다.

그건 좀 곤란하지.

드라이스트레가 길드에 신세를 진 순간부터 에펠탑에 이르기까지.

르네 데이비스의 계획을 하나하나 분쇄하며 왔다.

여기까지 와서 흐름을 뺏길 소냐.

“나 좀 도와줄 수 있겠어?”

-호오, 결심이 선 표정이로구나.

“의표를 찌르려면 이 수밖에 없어서.”

나는 여신님을 포함, 일행 전부를 불러 모았다.

* * *

후우, 들이마신 숨을 크게 내뱉었다.

이 순간만큼은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모두 겪은 나라고 해도 긴장이 되는군.

새카만 기류로 감싸인 커다란 구조물.

에펠탑에 덧씌워진 클리포트의 나무를 한 번 바라본 후,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검어진 시야.

집중력이 고조된다.

[데모닉 파워를 사용합니다.]

[모든 능력치를 마력으로 치환합니다.]

익숙해진 무기력감을 뒤로하고 심장에 집약되는 마나의 흐름에 집중했다.

두근- 두근-

막대한 마나를 품은 [혼원룡의 심장]이 기분 좋게 뛴다.

충만해지는 마나가 손에 잡힐 듯 선명하게 느껴지고.

발현하는 순간 세계를 짓누를 만한 전능감이 손에 아른거리는 것 같다.

“여신님.”

-후훗, 여만 믿어라.

그래.

지금부터 할 일은 내 모든 것을 맡길 수 있는 사람이 있어야만 가능한 도박이다.

성공 확률은 절반.

정확한 데이터는 아니다.

회귀 전 · 후를 통틀어서 쌓아 올린 경험으로 측정한 감의 확률이라고 봐야지.

그러니까 집중해야 한다.

“다들 아까 한 말을 기억해 주세요.”

“미스터 유가 방어막을 무효화시키면 진입하라?”

“응, 최소한 나무 안으로 진입해야 돼.”

르네가 준비한 수단.

클리포트의 나무가 제 기능을 다 하지 못하게 하려면 거리를 좁혀야 한다.

그러면서 놈들의 어그로까지 붙들어 놔야 하는 복잡한 작전.

닉스.

그리고 지영이가 내 곁을 지켜줄 것이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사용합니다.]

[스킬로 구현할 대상을 떠올리십시오.]

출력, 그리고 격의 차이.

갖가지 정수를 포식하면서 여러 기예를 익혔지만.

현 수준의 나로선 클리포트의 나무가 전력을 다해 친 방어막을 뚫어내지 못한다.

오버드라이브를 써도 불가능.

그렇다면.

“돌파 가능한 녀석을 불러와야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머릿속에 아른거리는 이미지를 구체화한다.

검게 물든 시야 너머로 어떤 성좌의 형태가 떠오른다.

데우스 엑스 마키나를 익힌 직후, 처음으로 사용했던 대상.

[히페리온을 구현합니다.]

금속이 새빨간 불꽃으로 뒤덮인다.

첫 사용 때는 마나 부족으로 피를 토했는데.

장족의 발전이로고.

모두 [데모닉 파워]로 스텟을 치환한 덕분이다.

“잠깐만, 너도 데모닉 파워를 익혔냐!?”

세르게이가 화들짝 놀라면서 삿대질을 했다.

회귀 전의 네가 알려준 거다.

상념을 빠르게 지우고는 히페리온의 이미지를 떠올리는 데 집중했다.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잘 떠올릴 수 있는 성좌 하면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게 녀석이다.

심장에 창을 꽂아 넣었을 때.

놈의 신력으로 [시간]과 관련된 정수들을 움직였다.

그 덕에 옛 태양신의 기원과 신력 운용 원리까지도 이해했단 말이지?

이면 세계와의 상성도 좋고.

금속이 물결치듯 움직이자, 마나가 깨진 독에 물 붓는 것처럼 우수수 빠져나간다.

숨이 차오르지만 참았다.

혼원룡의 심장이 더 빠르게 움직이며 마나를 공급했다.

내가 할 일은 두 가지.

마나가 떨어지지 않게 힘을 부여하는 것과.

히페리온의 이미지를 머릿속으로 확실하게 떠올리는 것이다.

새빨간 불을 휘감은 금속이 인간의 형태로 변한다.

[태양신 - 히페리온을 구현했습니다.]

[구현 가능 시간은 3초입니다.]

데모닉 파워로 모든 능력치를 치환했는데도 지속시간이 3초밖에 안 된다니.

역시 가성비가 안 좋다니까.

『불쾌한 어둠이 내 앞에 있구나.』

히페리온은 창끝을 클리포트의 나무에 겨누었다.

녀석.

지시를 내리지 않았는데도 마음대로 움직이는군.

태양이라는 근원을 품은 덕에 본능적인 적대감으로 움직이는 걸 다행이라고 생각해야 하나.

[슈퍼 노바를 사용합니다.]

직역하면 초신성 폭발.

태양의 힘이 집약된 창이 일직선으로 쏘아진다.

어떤 어둠도 태양신의 화염에 닿는 순간, 제 모습을 잃어버리고 무(無)로 돌아간다.

클리포트의 나무가 두른 어둠의 방어막조차도.

그 어떤 것도 침범하지 못할 것 같았던 강대한 힘이 불꽃에 사그라진다.

방어막을 뚫고 클리포트의 나무에 박힌 창.

콰아아아아앙-!

세계가 무너질 것 같은 커다란 폭음과 함께 하얀 빛이 시야를 물들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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